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4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43화(143/207)
유클레드는 그걸 보고 옳다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참, 그 녀석이 드디어 황도로 올라와서 어제 나한테 편지를 보냈는데……. 아니다, 지금 손님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군. 나중에 말해줄게.”
유클레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예의가 바른 녀석이었다.
그래서 히아킨을 갈굴 의지가 만반이면서도 최소한 그 혼자 대화에서 소외시킬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 모습이 뭔가 모순적이면서도 웃겼다.
‘그리고 나도 레예스한테 편지 받았는데!’
아무래도 이 녀석은 자기 친구가 나하고 더 친하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유클레드는 노골적으로 히아킨을 향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자기가 면접관이라도 된 양 또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동생과 함께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왜 너 혼자지?”
“아, 여동생은 감기에 걸려서…….”
“불합격. 그럼 너도 오지 말았어야지. 너도 보균자일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 아스포델을 만나러 왔단 말이야?”
“앗…….”
“넌 일단 거기 소파 구석으로 옮겨가서 앉아 봐. 오늘은 이대로 아스포델과 거리 두기를 하도록 해. 아스포델? 넌 손부터 닦자. 가뜩이나 일교차가 큰 가을인데 조심해야지. 또 지난번처럼 감기에 걸려서 아프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나는 또 제멋대로 자상한 오빠 모드로 돌입해서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기 시작한 유클레드를 영혼 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유클레드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수건으로 내 손을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깨끗이 문질러 닦아주었다.
한술 더 떠서,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웬 피톤치드 방향제 같은 것도 공중에 칙칙 뿌려댔다.
유클레드에게 세균 취급을 받은 히아킨은 살짝 기가 죽은 것 같았다.
유클레드는 이제 시작이라는 듯이 그런 그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또 한 번 스윽 미끄러뜨렸다.
“그런데 너, 여동생이 정말 감기에 걸린 건 맞아? 혹시 아스포델과 단둘이 있길 바라고 여동생을 일부러 떼어놓고 온 건 아니겠지?”
“아, 아니에요! 동생은 정말 아픈 게 맞아요. 진짜로요!”
나는 피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유클레드를 무시하고 히아킨이 가져온 상자의 리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고 유클레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뭐야? 히아킨 란타나, 네가 가져온 거야? 설마 아스포델에게 주는 첫 방문 선물로 시시한 걸 준비한 건 아니겠지?”
“저희 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 케이크예요.”
히아킨이 자신감이 살짝 꺾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클레드는 그의 말에 진심으로 놀란 눈치였다.
“뭐? 아버지가? 한 가문의 안주인이 직접 요리를 한단 말이야?”
유클레드의 노골적인 질문에 히아킨이 움찔했다.
하지만 유클레드는 악의가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에 물은 것이었다.
나는 혀를 쯧쯧 차면서 유클레드에게 말했다.
“황실 기사들도 귀족이지만 밖에서 야영할 일이 있으면 직접 간단한 보급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잖아?”
“흠? 듣고 보니 그건 그렇군.”
“또 귀족 가문의 자제들도 기념일 같은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걸 만들어서 선물하기도 하고. 오빠도 받아본 적 있지 않아?”
“맞아, 그런 적이 있었지. 하긴, 다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겠어. 그래서, 이게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케이크라고?”
“어, 네. 그렇습니다.”
히아킨은 생각과 다른 유클레드의 무난한 반응에 조금 놀란 듯이 어리벙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도 먹어 봐. 이건 우리 황실 요리사처럼 전문가가 만든 거라 맛있을 거야.”
“화, 황실 요리사에 비교할 건 절대 아닌데요!”
내 말이 황송하다는 듯이 히아킨이 서둘러 덧붙였다.
그는 유클레드가 지나치게 기대했다가 안 좋은 소리를 할까 봐 몹시 걱정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음?!”
이건 분명 유클레드의 취향일 거다.
히아킨이 가져온 케이크를 한 입 맛본 유클레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신기한 맛이군.”
유클레드는 3황자 헬리만과 그 똘마니들처럼 서민의 맛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생각 없이 말하는 놈이었으면 이 방에 남겨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흐음, 나쁘지 않은데?”
생긴 건 수수해도, 히아킨의 부친이 만든 케이크는 어린애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하게 달고 맛있었다.
즉, 대외적으로는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단 음식은 끊지 못하는 유클레드의 취향에 아주 부합하는 케이크일 수밖에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히아킨을 보는 유클레드의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히아킨은 의외로 긍정적인 유클레드의 반응에 얼떨떨한 듯했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 서서히 감동이 들어찼다.
“아, 아버지께서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제가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할 때마다 늘 행복한 얼굴로 간식을 만들어주시거든요. 아, 물론 황자님, 황녀님과 제가 감히 친구라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하는 히아킨은 정말 가족을 좋아하는 듯이 한결 편안하고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유클레드도 란타나의 배경을 알고 있을 텐데, 그래서 그런지 히아킨을 보는 시선이 살짝 묘했다.
곧 유클레드가 작게 헛기침을 한 뒤, 또다시 폼을 잡으며 말했다.
“네가 아스포델의 놀이 친구로 적합한지, 한 번만 봐서는 잘 모르겠군. 너, 다음에 또 아스포델의 궁에 오면 반드시 날 부르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어? 그런데 다음? 그건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닌데요. 그리고 동석하는 것도…… 황녀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가능하고, 제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뭐?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말이. 넌 순진한 듯하면서 은근히 할 말은 다 하는구나? 의외로 당돌한 구석이 있는데?”
“앗,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렇게 말을 잘하는데 그동안 왜 헬리만의 앞에서는 조용히 있었지?”
“그러게요……. 왠지 1황자님과 3황녀님은 화내지 않고 제 말을 잘 들어주실 것 같아서 그런가 봐요.”
“음, 너 은근히 보는 눈도 있는데?”
유클레드는 히아킨과 대화를 이어갈수록 만족스러운 듯이 제 턱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은근히 쉬운 놈이라며 속으로 혀를 찼다.
“마침 오늘 레예스한테 답장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네 얘기도 해줘야겠네. 드디어 우리 아스포델이 자의로 첫 놀이 친구를 들였다고 말이야.”
히아킨이 돌아간 뒤에, 유클레드는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면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뭐? 그런 얘기를 뭐 하러 해?”
아니, 답장에 쓸 말이 그렇게 없나?
나는 마뜩잖게 유클레드를 흘겨봤다.
“왜, 너랑도 친하게 지냈잖아? 가끔 네 소식을 전해 주면 재미있어하는 것 같던데.”
“그냥 말하지 마.”
왠지 모를 떨떠름함에 유클레드를 말렸다.
사실 히아킨의 얘기가 레예스의 귀에 들어가든 아니든, 딱히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이 좀 껄끄러웠다.
꼭 레예스 몰래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묘하게 켕기는…… 음, 그런 느낌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이럴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도 이런 내 기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레예스한테 네 얘기하는 거 싫어? 아, 하긴. 나야 1년 동안 가끔 편지라도 주고받았다지만, 너하고는 그것도 아니었지. 못 본 지 오래 지났으니까 이제는 그냥 어색한 사이일 수도 있겠네.”
“그으건 아니지만, 그냥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알았어. 너 낯가림하는구나. 이럴 때 보면 아직도 그냥 애기…….”
“우씨! 그래, 애기 주먹 맛 좀 한번 봐라!”
“아! 아야! 아파파, 아파! 알았어, 오빠가 잘못했어. 미안하니까 한 번만 봐줘, 응?”
은근히 나를 놀려먹으려고 하는 데다가, 육아물 여주인공 오빠 아니랄까 봐 손발이 오그라드는 소리를 내뱉으려고 하는 유클레드를 주먹으로 응징했다.
쓸데없이 덩치만 커서 내구성도 강해진 유클레드가 하나도 안 아픈 얼굴로 엄살을 떨었다.
나는 그게 더 분해서 유클레드를 주먹으로 몇 대 더 퍽퍽 때렸다.
하지만 결국 진이 빠져 먼저 포기한 건 나였다.
‘와, 진짜 분하다! 드디어 내 나이가 두 자리가 되었는데, 아직도 이놈을 못 이기다니!’
내가 속으로 아흐흑 피눈물을 흘리든 말든, 유클레드는 그를 때리다가 지쳐서 널브러진 내 꼴이 웃기다고 혼자 아하하 웃기 바빴다.
“아, 다음 주 중에는 레예스가 직접 입궁할 것 같은데 오랜만에 만나니까 기대된다. 아스포델, 너도 다시 보면 금방 또 예전처럼 친해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미 내가 너보다 그 녀석하고 더 친하다니까 그러네.
하지만 이 바보 같은 유클레드가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를 이미 나한테 뺏긴 걸 알게 되면 충격을 받을까 봐, 마음씨 넓은 내가 아직은 그 사실을 비밀로 해주기로 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유클레드는 여동생을 너무 잘 둔 것 같았다.
방 안에는 아직 달콤한 크림 냄새가 풍겼고, 창문에서 스미는 햇빛은 오렌지색이었다.
그 속에 번지는 작은 소년의 웃음소리가 풍경과 제법 잘 어울렸다.
그런 어느 평온한 오후였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