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48)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48화(148/207)
학자들은 신관들과 황족 자제들에게 이딴 말도 안 되는 공문을 보낸 게 누구인지 아스트리움에 단체로 따지러 가는 듯했다.
‘백날 뒤져봐야 안 나올 텐데~’
이 가짜 공문서를 만드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성령들을 보내서 아스트리움에서 사용하는 공문서용 종이와 도장이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알아내고, 그다음에 사람들이 없을 때 족제비들을 보내 그걸 살짝 슬쩍하면 게임 끝나는 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관들과 엮인 문제가 벌어졌으니, 아스트리움의 학자들도 당연히 마지못해 가짜 공문서의 내용을 따를 줄 알았다.
‘지금까지 달달한 돈맛을 봤던 인간들이,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쪽팔리지 않으려면 이제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
나는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조만간 단체로 보내버릴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우리 집 애들에게 줄 선물을 주섬주섬 꺼냈다.
“자, 이건 피오와 키노에게 주는 간식.”
[우와! 맛있는 냄새!] [킁킁, 처음 보는 간식이네?]“그리고 이건 앤디미온에게 주는 신간 소설이고, 이건 티타니아 언니에게 주는 로잔티나 대표 미남 화첩이야.”
[오오오, 벌써 신간이 나왔단 말이냐? 어서 이리 줘! 지금 당장 봐야겠…… 앗, 티타니아! 이 몸이 현신할 때 사용하는 황소 인형에 왜 네가 들어간 거야?! 당장 안 비켜?] [어머 어머, 로잔티나 대표 미남들만 모아둔 화첩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정말 훌륭하잖아! 다들 한입에 호로록 하고 싶어! 어? 그런데 아스포델, 첫 페이지는 왜 비어 있는 거야?]“아, 그으건 말이지, 우리 아버지라서.”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록샨의 초상화라니, 나도 가지고 싶어! 빨리 다시 붙여줘!]“티타니아 언니……. 난 오래 살고 싶어서 안 돼.”
내가 흐린 눈으로 답하자, 화첩을 넘기고 있던 미노타우로스 인형이 원통하게 풀썩 주저앉았다.
물론 저 안에 들어가 있는 건 티타니아였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무서운걸.
우리 아버지 초상화를 다른 여자(이미 죽은 성령이긴 하지만)에게 내 손으로 넘겼다가 들키는 상상만 해도 심장이 후덜덜해지진다고.
‘게다가 티타니아가 우리 아버지 화첩을 보고 호로록거리는 것도 좀…….’
“피오, 키노. 간식 다 먹었으면 잠깐 나가자.”
[응? 어딜?] [놀러 가는 거야?]“엉. 우리 집 첫째랑 다른 집 첫째 만나러.”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피오와 키노를 데리고 약속했던 장소로 향했다.
* * *
황성의 남쪽 화원에 들어서자마자 족제비들의 귀와 코가 찡긋거렸다.
[앗 이 목소리는!] [앗! 이 냄새는!]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족제비들이 내 품에서 냅다 뛰어내려 앞으로 달려갔다.
“아, 깜짝이야! 갑자기 뭐가 달려드나 했네.”
잠시 후 꽃과 나뭇잎으로 가려진 곳에서 우리 집 첫째, 유클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예스, 너 괜찮아?”
“괜찮아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족제비들이 온 걸 보니까 아스포델이 가까이에 있나 봐. 일단 족제비들부터 떼어줄까?”
“음. 아니요, 그냥 두세요. 저도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운걸요.”
나는 유클레드의 것이 아닌 다른 소년의 목소리와 낮은 웃음소리에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계속 걸음을 옮겨 화원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내 내 시야에 비친 광경은…….
“어, 아스포델! 어서 와.”
흰 꽃이 흩날리는 화원에서 가장 먼저 유클레드가 나를 반겼다.
그는 의자에 앉은 누군가에게 찰싹 달라붙은 족제비들을 떼어내다가 나를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오늘 누가 입궁했는지 이리 와서 봐봐. 오랜만이라 얼굴은 기억하려나?”
유클레드와 족제비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의자에 앉은 소년을 보고 있었다.
사실은 화원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소년의 모습에 저절로 시선이 날아가 꽂혔다.
족제비 두 마리를 머리와 팔에 매단 수려한 외양의 소년 또한 유클레드 너머로 나를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황녀님.”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웃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소년의 붉은 눈과 입술이 가늘게 휘어지며 청아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오면서, 레예스의 위로 흰 꽃잎과 붉은 단풍잎이 나부끼며 떨어졌다.
앉아 있던 레예스가 일어나자, 그 역시 유클레드 못지않게 키가 큰 게 갑자기 확 느껴졌다.
얼굴도 1년 전에 비하면 좀 더 선이 날카롭고 성숙해진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레예스의 생일이 지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지금 14살인가?
‘어라, 이상하다?’
나는 유클레드의 옆에 선 레예스를 보면서 눈을 꿈뻑였다.
겨우 1년 만에 보는데 왜 이렇게 어색한 느낌이지?
“어, 음. 안녕. 지, 진짜 오랜만이네?”
그런 심경을 무의식중에 반영한 듯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 인사도 왠지 모르게 좀 뻣뻣했다.
얼마 전에 유클레드와 대화를 하다가, 내가 레예스와 더 친하다고 속으로 자부심을 느꼈던 게 무색했다.
유클레드가 내 뚝딱거리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끌어다가 제 앞에 세웠다.
“레예스, 얘 좀 봐. 네 앞에서 낯가림하나 봐. 완전 귀엽지?”
“네, 귀여우세요. 1년 전처럼, 지금도 변함없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유클레드의 주책맞은 소리에 레예스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서 나를 더 어색해지게 만들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 귀여워지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레예스가 한결 더 짙은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낮은 소리를 내 웃었다.
이, 이 녀석이?
그동안 바스티온에서 뭘 먹고 컸기에 이렇게 사람 마음을 예전보다 더 들었다 놨다 하는 거지?
“그렇지? 자, 아스포델. 그렇게 서먹해하지 말고 다시 인사하자. 안녕,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 레예스 오빠.”
유클레드는 오랜만에 자기 친구가 와서 신났는지, 간 크게 내 손을 직접 붙잡고 흔들면서 내 목소리를 흉내 내 인사했다.
그러다가 유클레드가 갑자기 뭔가가 걸리는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으음? 아니다. 아스포델이 다른 놈한테 오빠라고 하는 건 별론데. 그냥 호칭은 바스티온 공자로 하자.”
“원래 레예스라고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때는 네가 어렸잖아. 이제는 다 컸으니까 호칭 정리를 하는 게 좋겠어.”
“고작 1년 전이거든?”
“아홉 살이랑 열 살이 같아? 매번 네가 하던 소리인데?”
갑자기 유클레드가 레예스를 견제하기 시작해서 혀를 쯧쯧 찼다.
1년 전에도 나하고 레예스가 너무 친해 보인다고 투덜거리더니, 그동안 레예스가 눈에 안 보이니까 잠깐 잊고 있다가 다시 경계심이 샘솟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레예스 넌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 없지? 안됐다.”
“네, 3황녀님처럼 귀여운 여동생이 있어서 1황자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레예스는 유클레드의 헛소리에도 여전히 청아하게 미소 띤 얼굴로 호응해 줬다.
나는 지난 1년 동안에도 레예스의 인성에는 변함이 없었던 모양이라고 속으로 감탄했다.
“형.”
“대신 저한테는 귀여운 남동생이 있지만 말이지요.”
그때, 갑자기 화원의 한쪽에서 누군가가 총총 뛰어왔다.
나는 의아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가 기겁했다.
“형. 여기, 꽃 따 왔는데…….”
“카일, 이리 와.”
레예스와 같은 군청색 머리칼을 가진 소년이 나를 발견하고 살짝 멈칫하다가,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레예스가 자신보다 작은 소년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 옆에 세웠다.
“3황녀님, 이쪽은 제 동생인 카일이에요. 카일, 황녀님께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로잔티나의 별께 바스티온의 카일이 인사드립니다.”
레예스의 말을 따라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소년의 머리카락은 형과 같은 군청색이었지만, 그의 눈은 붉은색이 아닌 푸른색이었다.
소년의 얼굴은 레예스와 닮아 있었다.
다만 눈꼬리가 좀 더 올라가고 입매에 고집이 살짝 담겨서 그런지, 형보다는 까칠하고 성격이 있어 보였다.
나는 당연히 이 소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황녀 아스포델>의 남주인공 카일이잖아!’
하지만 나와는 연애 플래그가 하나도 없던 놈!
“안…… 녕!”
나는 무심코 몸을 슬쩍 뒤로 빼며 답했다.
지난 회차에서 나와 일적으로 지독하게 엮였던 놈을 이렇게 보송한 시절에 다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맞다, 그러고 보니까 레예스가 이번에 남동생하고 같이 황도에 올라온다고 했었지?
레예스가 편지에 적어 보낸 녹색 빙벽 얘기에 온 관심이 쏠려서 남주인공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었네.
“카일, 황녀님께 꽃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고 했지?”
레예스가 카일에게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유클레드도 웃으면서 덧붙였다.
“맞아, 아스포델. 방금 꼬맹이가 너한테 준다고 화원에서 꺾어온 거야.”
나는 누군가의 형인 레예스의 모습은 처음 봐서 옆에 있는 카일보다 그를 힐끔거렸다.
나처럼 자기 형을 한번 쳐다본 카일이 내게 다가왔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