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58)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58화(158/207)
나를 보는 루벨리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걸 보니, 정곡을 짚은 나한테 포악하게 성질을 부리고 싶은 마음과 내가 다른 이부 형제들과 함께 있지 않고 그에게 온 것에 대한 놀라운 마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나는 루벨리오가 다른 반응을 보이기 전에 교육실 안으로 냉큼 들어갔다.
루벨리오가 그런 나를 경계하다 뒤로 한 발짝 주춤 물러났다.
“뭐야, 너……. 짜증 나게 뭘 아는 척…….”
그러다가 이내 나를 향해 매섭게 눈을 치떴다.
“누가 너한테 그런 거 부탁했어? 어차피 수행인들이 찾고 있어서 필요 없거든?”
“아니, 그래도 다음 수업 시작하기 전에 빨리 찾으려면 내가 같이 있는 게 도움이 될걸?”
당연히 루벨리오는 가시 돋친 고슴도치처럼 나한테 까칠하게 굴었다.
하지만 언제는 루벨리오가 나한테 다정했고, 또 언제는 내가 루벨리오의 말을 잘 들었던가?
“여긴 찾아봤어? 어떻게 생긴 책이야? 지난번에 내가 봤던 그건가?”
나는 교육실의 뒤쪽 구석을 기웃거리며 루벨리오가 잃어버린 책을 찾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루벨리오는 잠깐 가만히 서서 아무런 움직임과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그쪽은 아직 안 봤어. 지난번에 그 책 말고, 검은 가죽 표지에 금박으로 글씨가 적힌 거야.”
나는 의심스럽게 어깨 너머로 루벨리오를 돌아보았다.
어라, 뭐지? 이 녀석이 왜 이렇게 맥아리가 없어?
아까까지만 해도 잔뜩 예민해져서 있는 대로 가시를 흩뿌리길래, 지금도 좀 더 바락바락 성질을 내면서 나를 쫓아내려고 할 줄 알았더니 왜 이렇게 얌전해?
조용히 몸을 돌려 다른 커튼 안쪽을 확인하는 루벨리오의 옆얼굴을 보니 묘하게 기가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시 조금 전에 제르카인을 몰아붙인 거나, 유클레드와 싸운 걸 후회하나?
이 녀석은 유아독존에 자아도취에 빠진 왕자님이라 남들이 뭐라고 하든 전혀 신경 쓰지도, 상처받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는 건가?
평소에도 루벨리오는 우리 이부 남매들 속에서 겉도는 편이었다.
솔직히 그건 루벨리오의 밉살맞은 태도와 말투가 문제였지만, 내가 워낙 착해서 그런가?
그래도 어린 녀석이 남매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외따로 있는 걸 보면 가끔은 딱하기도 했다.
물론 루벨리오는 그래도 헬리만과는 친한 편이었고, 다른 이부 형제들과 그다지 가깝지 않은 건 헬리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헬리만은 챙겨주는 친누나 알렉시아가 있어서 루벨리오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루벨리오 녀석은 헬리만과 달리 황녀, 황자들의 모임에도 꼬박꼬박 나오고, 매일 얄미운 소리를 하면서도 우리에게 곧잘 먼저 말을 걸었었다.
‘지금까지는 그게 남들 앞에서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혹시 나름대로는 우리랑 친해지고 싶어서 자꾸 얼쩡거린 건가?’
그때 내 미심쩍은 시선을 느꼈는지, 루벨리오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갑자기 손에 잡고 있던 커튼을 팍 내동댕이쳤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하네. 너 진짜 뭐야? 왜 그 녀석 옆에 안 남고 나한테 온 건데?”
녀석이 돌연 나를 휙 돌아보는 바람에, 나는 괜히 잘못한 것도 없이 움찔했다.
“제르카인 그 녀석이 분명 네 앞에서 억울하다고 징징 짰을 텐데, 그럼 평소처럼 네가 달래줘야 하는 거 아냐? 게다가 너랑 나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잖아.”
“뭐야, 기껏 신경 쓰여서 와 봤더니 별 쓸데없는 걸 다 따지고 있네.”
나는 어린 녀석이 의심도 많아서 성가시게 군다고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신경 쓰인다고……? 내가?”
그런데 내 말이 그렇게 의외인가?
루벨리오가 믿기 어려운 말을 들은 것처럼 혼란과 당혹감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제르 옆에는 유클레드 오빠랑 타마린느 언니도 있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없어도 돼.”
제르카인도 너무 나만 의지해서는 좋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루벨리오 녀석은 갑자기 또 가시를 세웠다.
“그 녀석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고 나는 아니라서 온 거라고? 너 지금 날 동정해?”
하, 이 녀석 또 삐딱하게 듣기는?
오늘따라 영 기분이 들쑥날쑥해 보이는데, 요즘 학업 스트레스가 그리도 심하더냐?
“루벨리오 오빠, 너 불쌍한 사람이야?”
“헛소리하지 마! 내가 왜 불쌍한 사람이야?”
“아휴, 내 말이. 그런데 내가 왜 불쌍하지도 않고 가련하지도 않은 루벨리오 오빠를 동정하니? 차라리 네 수행인들을 더 동정하겠다.”
나는 혀를 쯧쯧 차면서 루벨리오를 흘겨봤다.
루벨리오는 내 말에 다른 의미로 울컥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한테 무시당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진정이 된 눈치였다.
“그, 그, 그럼 왜 내가 신경 쓰이는데? 네가 왜? 내가 왜?”
그런데 이 녀석, 이제는 왠지 얼굴이 좀 빨개진 것 같다?
혹시 창문 앞에 있어서 햇빛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가?
아무튼, 나는 이 상황이 귀찮아져서 괜히 루벨리오에게 짜증을 냈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 신경이 쓰이면 그냥 쓰이는 거지, 꼭 하나하나 이유가 따로 있어야 돼?”
사실은 제르카인이 루벨리오에게 심술궂은 마음이 들어서 그의 책을 몰래 숨긴 게 맞는 것 같아, 누나인 내가 대신 책임지러 왔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루벨리오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다가, 분홍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빠르게 창가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애꿎은 커튼 밑자락만 손으로 정신 사납게 쥐어뜯었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한번 보고, 대충 시간을 가늠했다.
슬슬 못 참고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루벨리오와 단둘이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왠지 지금의 루벨리오는 조금 덜 신경질적이고 덜 까칠해 보여서, 이왕 말을 꺼내려면 지금이 적기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리걸음으로 루벨리오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그에게 지나가듯이 툭 말했다.
“나 사실은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뭐, 뭐가?”
“루벨리오 오빠, 제르카인이 내 뒤통수치는 미래 봤지?”
“……!”
내 갑작스러운 직구에 루벨리오가 두 눈을 부릅떴다.
“루벨리오 오빠는 예전에 신성 의식 때 예지를 봤다고 했잖아. 물론 그래봤자 자세한 건 모르고, 그냥 조각난 찰나의 미래를 뜨문뜨문 본 것뿐인 듯했지만 말이야.”
나는 무릎 위에 팔을 올리고 그 위에 턱을 괸 채 크게 떠진 루벨리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신전이랑 신관님에 대한 것도 언뜻 알고, 레예스에 대한 것도 알고…….”
지금까지 난 혹시 루벨리오가 레예스에 대한 것만 빼고, 나머지는 내 지난 회차에서의 미래를 본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물론 그렇다면 왜 지난 회차들에는 황족들과 엮이는 일 없이 단명했던 레예스만 예외적으로 루벨리오가 본 예지에 들어가 있던 건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분명 일전에 루벨리오가 신전을 경계했던 것과 달리 모르페우스는 이제 내 손안에 들어왔고, 다시 그런 식으로 나쁜 악당이 될 리는 없을 터였다.
그러니 나로서는 루벨리오가 백색 심연에서 본 것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지난 회차에서의 미래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약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고, 루벨리오가 본 것들이 전부 이번 3회차의 미래가 맞다면 말이다.
“혹시 제르가 미래에 날 죽이는 것도 봤어?”
어쩌면 이번 3회차에도 모르페우스는 또 흑화하고, 제르카인은 나를 죽일 운명인 건 아닐까?
“그래서 전부터 제르를 보면 그렇게 껄끄러워하고 나한테도 자꾸 제르에 대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말고 그랬던 거야?”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면 좀 더 납득이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데메테아는 나와 같은 날 신성 의식을 치른 루벨리오를 통해 이번 회차에 여전히 존재하는 위험을 경고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물론 왜 나한테 직접 예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루벨리오를 이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데메테아 해파리가 강림했을 때 신인 그녀조차 인세의 일에 관여하는 건 어렵다고 했으니, 어쩌면 그래서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했는지도 몰랐다.
역시 내가 정곡을 찌르기라도 한 듯이 루벨리오는 얼어붙은 얼굴로 나를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런데 아까 들어보니까 우리 루벨리오 오빠가 제르카인한테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막 그랬다며? 왜 그랬어?”
“그건…….”
“루벨리오 오빠가 말한 것처럼 우린 별로 친하지도 않잖아. 그런데 나중에 내가 뒤통수를 맞든 말든, 왜 그냥 놔두지 않고 계속 신경 썼어?”
“그, 그건…….”
루벨리오는 아까처럼 입술만 뻐끔거리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런 그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며 결정타를 날렸다.
“루벨리오 오빠야, 사실 나 좋아하지?”
“……!”
“사실 나랑 막 친해지고 싶지?”
“……!!”
루벨리오의 얼굴이 손가락으로 쿡 찌르면 바로 터질 것 같은, 잘 익은 방울토마토처럼 변했다.
그에게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루벨리오는 나를 욕하고 싶은 것 같기도 했고, 내 말을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인가가 터져 나오기 전에, 먼저 뒤쪽에서 옷자락이 스치는 듯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문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마침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제르카인이었다.
제르카인은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루벨리오를 보고 있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