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61)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61화(161/207)
Chapter 33
지혜의 날, 지혜롭지 못한 자에게
“3황녀님!”
“앗, 카루스 아버지.”
“오늘 아스트리움에서 첫 시험이시죠? 힘내세요! 제가 록샨 님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따가 온 마음을 담아 황녀님을 응원하러 갈게요!”
지혜의 날을 맞아 대대적인 시험이 치러지는 장소로 향하는 길.
나는 우연히 마주친 카루스에게 실컷 격려를 받고 허허허 웃으며 걸어갔다.
‘뭔가 햄스터 같은 동물에게 응원이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이구먼.’
‘아델, 실은 아빠가 마수 토벌 때문에 급하게 자리를 비우게 되었단다.’
카루스의 말처럼 우리 아빠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현재 궁을 떠난 상태였다.
‘일정을 보니 아무래도 곧 다가올 지혜의 날까지 환궁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우리 아델의 기념적인 첫 시험날에 함께하지 못해서 아빠가 정말 미안하구나.’
‘에이, 괜찮아요! 어차피 시험은 평소에 공부하던 대로 보는 거라 특별할 것도 없는걸요.’
나는 학부모 참관에 빠져 미안해하는 아빠에게 이렇게 뻔뻔스러운 소리를 하였더랬지.
우리 육식 꽃사슴 아부지가 부하들을 이끌고 마수 토벌을 나간 세월이 한두 해도 아니고, 때마다 기본적으로 보름 정도는 자리를 비우는 것에 나도 이미 익숙했다.
그래서 전혀 동요하지 않고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엄청나게 대견스러운 듯이 나를 애정 넘치는 눈으로 보며 자상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대신에 돌아올 때 아빠가 아델을 위해 희귀한 마수를 몇 마리 잡아주마.’
‘오…….’
‘얼마 전에 박제품들을 많이 정리해서 자리가 비었잖니. 우리 아델이 더는 쓸쓸한 눈으로 빈자리를 둘러보지 않을 수 있게, 전시실을 새로 꽉꽉 채워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으렴.’
그건 쓸쓸한 게 아니라 감개무량한 거였는데…….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내 장난감 방에 하나둘씩 늘어가던 박제품들을 나중에 주체할 수 없게 되어 아예 우리 궁에는 전시실이 따로 생겨났다.
하지만 그 넓은 전시실도 요즘은 꽉 차게 되어서, 얼마 전에 박제품들을 반쯤 처분했다.
그런데 넉넉해진 방을 아련하게 둘러보던 내 얼굴이 아빠에게는 무척 애처로워 보였던 모양이다.
흠, 물론 몇 년 동안 모아놓은 걸 처리하려니 나름대로 고민이 되어서, 생각보다 엄선해서 전시실을 비우긴 했지…….
예를 들어 어머니, 아버지, 조슈아, 히세리온 가문의 친척들, 내 이부형제들 같은 가까운 사람들이 처음으로 선물해 준 박제품이라든가, 아니면 생일 같은 특별한 기념일에 선물 받은 박제품이라든가, 또 아주아주 희소성 있는 마수로 만든 박제품이라든가,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은 단칼에 버리기 좀 그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동안 눈에 콩깍지가 끼어 진짜로 박제품들이 멋지게 보이기 시작했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내 전시실에 있는 마수 박제품들의 위용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는 걸 볼 때마다 어깨가 으쓱한 느낌이 들었다거나 한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도 지난 몇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어차피 조만간 아빠나 다른 사람들이 내 전시실을 새로운 마수들로 가득 채워 줄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태연한 마음으로 ‘전시실의 조화를 위해 이번에는 하얗고 파란 마수들만 잡아달라’고 아빠에게 먼저 천연덕스럽게 요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아스포델!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그때, 우리 집 첫째 녀석이 갑자기 불쑥 나타났다.
유클레드 녀석은 또 소리 없이 살금살금 다가와서 나를 덥석 안아 들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소리가 맞는지 이제는 이런 짓거리에 그렇게 화도 안 났다.
그래서 나는 그냥 여전히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했다.
“유클레드 오빠, 내 박제품들 말이야.”
“아…….”
“이번에 전시실을 정리했는데, 너무 알록달록한 것도 내 심미안에 영 거슬린단 말이야? 차라리 분기별로 주제를 정해서 컬렉션을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지 않아?”
“너 진짜 마수 박제품에 진심이구나.”
유클레드가 내 말에 김이 샌 표정을 지었다.
얘가 지금 뭐라는 거냐?
물론 마수 박제품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니 나름대로 정이 든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걸 진짜로 좋아한다고 생각하다니?
그냥 다 성의고 하니까 이왕이면 더 보기 좋게 정리해 두려는 거지!
나는 또 헛소리를 지껄이는 유클레드를 곱지 않은 눈으로 흘겨보다가, 그의 뒤에 서 있는 수려한 소년을 뒤늦게 발견했다.
“여전히 마수 박제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으셨군요, 3황녀님.”
뭐, 뭐야, 레예스도 같이 있었어? 유클레드 이 자식, 그럼 진작 그렇다고 말을 했어야지……!
레예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청아한 미소로 나를 보다가, 유클레드 대신 조금 전의 내 물음에 답했다.
“3황녀님 말씀처럼 일정한 기간마다 전시실을 새로 꾸미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혹시 정리가 되면 나중에 저도 초대해 주시겠어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몰두할 수 있는 취미가 있는 건 멋진 일이지요.”
나는 레예스의 앞에서 이렇게 유클레드에게 어린애처럼 덥석 안긴 데다, 마수 박제품에 환장한 인간처럼 보인 것에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웃는 얼굴로 굳어 있다가 이를 악물며 유클레드에게 고개를 스르륵 돌렸다.
“느 등증 느르느르(나 당장 내려놔라).”
“난 또 아스포델, 네가 시험 때문에 긴장이라도 해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인 줄 알았네. 그래서 이 오빠 님이 위로해 주려고 했는데.”
“쁠리 느르느르그.”
“그런데 뭐라고? 잘 안 들리니까 좀 크게 말해봐.”
유클레드는 일부러 이러는 건지 아니면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지, 눈치 없이 나를 살살 자극하기만 했다.
결국 내가 열이 받아서 유클레드의 앞머리라도 쥐어뜯으려고 했을 때, 그가 갑자기 잊고 있던 게 생각난 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아, 맞다! 너한테 줄 게 있었는데. 잠깐만, 나 대신 아스포델 좀 들고 있어 봐.”
유클레드는 나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잠깐 맡긴 뒤, 수행인에게 뭔가를 가져오게 했다.
그런데 유클레드가 별생각 없이 나를 넘겨준 사람은 다름 아닌 레예스였다.
졸지에 유클레드에게서 나를 받아 안게 된 레예스가 처음에는 바로 상황 판단을 못 한 듯이 눈을 깜빡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도 레예스에게 공주님 안기로 들려 어리둥절하게 그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가까이에서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레예스와 나는 당황해서 두 눈을 흔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레예스와 내가 가까이에 있을 때마다 감기에 걸린 환자처럼 굴던 마가렛은 지금 다른 수행인들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어 우리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와, 근데 레예스……. 이 각도로 봐도 굴욕이 없네?
나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이 눈앞에 있는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레예스도 퍽 갑작스러운 상황인데도 나를 안정감 있게 안아 든 채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붉은 나뭇잎 하나가 레예스의 머리에 사뿐히 내려앉는 게 보였다.
그냥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소년의 군청색 머리칼과 붉은 나뭇잎의 대비가 유독 선명해서 자꾸만 시선이 갔다.
나는 괜히 마가렛 쪽을 힐끔 쳐다본 뒤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레예스, 머리에 단풍잎 붙었어.”
레예스도 눈을 깜빡이며 나를 따라 덩달아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요?”
레예스가 꼭 목욕 후에 물기를 터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지만 나뭇잎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나를 받치고 있는 두 손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잠깐만, 내가 떼줄게.”
그래서 내가 대신 나뭇잎 쪽으로 팔을 뻗었다.
레예스가 나를 가만히 보다가 내가 더 편히 움직일 수 있게 앞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마침내 레예스의 머리카락에 얽혀 있던 단풍잎을 떼어낸 뒤, 나는 손에 쥔 것을 레예스의 앞에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레예스. 이 단풍잎, 네 눈이랑 색깔이 똑같아.”
레예스가 그런 나를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가요? 저는 요즘 은행잎을 보면 황녀님이 생각나던데. 물론 황녀님의 황금안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아름답지만요.”
그렇게 우리가 속닥거리는 사이, 유클레드는 수행인에게서 받아 든 것을 한번 훑어보며 확인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걸 내 앞으로 내밀었다.
“자, 아스포델. 널 위해서 이 오빠 님이 특별히 준비한 거야.”
“이게 뭐야?”
“오늘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를 대강 추려 봤어. 우리 시험은 오후에 있으니까 점심 먹기 전까지 빨리 한번 훑어봐.”
아니, 이 얘기는 어제 끝난 거 아니었어?
나는 결국 쓸데없는 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 유클레드를 복잡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을 앞에 두니, 차마 필요 없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렇게 신경 써주다니 고맙네…….”
“뭘, 난 네 오빠니까 당연한 일이지. 역시 아스포델 너한테는 나밖에 없지?”
“그으래.”
“하, 그럴 줄 알았어. 자, 그럼 이제 다시 이 오빠한테 와. 시험장까지 이 오빠님이 직접 데려다줄 테니까.”
“그건 됐거든?”
나는 은근슬쩍 레예스에게서 나를 다시 받아 들려고 하는 유클레드를 째려본 뒤 내 발로 앞장서 시험장까지 걸어갔다.
뒤에서 유클레드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널 챙겨주는 오빠한테 매몰차게 굴 수가 있느냐며 투덜거렸지만,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유클레드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오늘 우리가 시험을 보게 될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