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6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63화(163/207)
Side
페터 로빈슨과 아스트리움의 학자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페터 로빈슨은 아연실색하여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제가…… 왜 이래?”
“관직을 매매? 처벌? 지금 우리더러 이걸 토론하라고?”
다른 학자들 모두 페터처럼 당황한 얼굴이었다.
다급히 아스트리움의 학장인 더글라스 뷔요른을 확인했으나, 페터가 있는 곳에서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분명 사전에 논의된 문제는 이게 아니었는데?!’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문제가 바뀌었다.
혹시 아스트리움의 윗놈들, 학장과 명예 교수들이 그들을 물 먹이려고 수작을 부린 걸까?
하지만 그동안 자기네들도 챙겨 먹은 게 얼마인데, 이런 곳에서 공공연하게 그럴 이유가 어디에 있지?
‘만약 짜고 친다고 해도 내가 선생님이면 마지막에 내 문제만 슬쩍 바꿀 거예요. 그럼 내가 제일 좋은 성적을 받을 거 아니에요.’
얼마 전, 페터 로빈슨은 3황녀가 지나가듯이 던진 말을 듣고 처음으로 동료 교사들에게 의심 어린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몰래 학장실의 사람에게 부탁해 시험지를 확인해 본 결과…….
‘이, 이게 도대체 뭡니까? 우리끼리 미리 공유한 문제와 공식 시험지에 적힌 문제가 다르잖습니까? 게다가 한두 개도 아니고 지금 이게 몇 개인 거죠?!’
정말 3황녀의 말처럼, 시험지에 낯선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악한 페터는 학자들을 모아놓고 직접 한 명 한 명 일일이 대조해 범인을 색출해 내기 시작했다.
‘빨리 실토하십시오! 왜 우리를 속인 겁니까?!’
‘소, 속이다니요? 실수입니다. 실수예요. 제출할 문제를 몇 개 추려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순간적으로 헷갈려서, 실수로 다른 문제를 최종 시험지에 올린 겁니다.’
‘다른 분들은요?!’
‘그게, 저도 실수로…….’
‘다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허허, 참. 저희도 난감하네요. 설마 이런 실수를 한 게 저 한 명이 아닐 줄은…….’
서로를 의미심장하게 훑어보는 눈빛을 보니 말로는 실수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고의로 문제를 바꿔서 낸 게 분명했다.
이 의리도 없고 이기적인 얌체 같은 놈들……!
3황녀의 말을 듣고 확인해 보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다른 놈들의 말만 믿고 큰 낭패를 볼 뻔했다.
당연히 페터와 무고한 학자들은 광분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거참, 진정하십시오. 이렇게 미리 알았으니, 문제는 다시 바꿔서 내면 그만 아닙니까?’
‘못 믿겠습니다! 지혜의 날 현자의 탑에서도 우리를 보러 올 거라는데, 누군가 욕심을 품고 심보 고약한 생각을 해서 나중에 또 몰래 문제를 바꿀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하여 학자들은 서로를 경계 어린 눈으로 노려보다가, 차라리 아스트리움 안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학장과 명예 교수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한 차례 서로에게 감정이 상한 바가 있었다.
‘이 일은 교수들끼리 해결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도움은 필요 없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모르페우스와 아이작의 불꽃 튀는 성서 랩 배틀이 있던 날,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은 자신들 또한 그런 공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는 느닷없는 소식을 듣고 당장 아스트리움에 쳐들어갔다.
당연히 아스트리움에서는 당황하며 그런 공문서를 신관들과 황족 자제들에게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더글라스 뷔요른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인 명예 교수들은 오히려 그런 근거 없는 소리에 넘어가, 냉큼 멋대로 시험 날짜까지 잡고 온 학자들을 질책했다.
당연히 거기에 더욱 뿔이 난 학자들은 아스트리움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러 놓고는 오히려 우리를 탓한다면서 입에서 침을 튀겼다.
그렇게 감정이 상한 끝에, 학자들은 무능하고 돈값도 못 하는 아스트리움의 윗놈들을 못 믿겠으니 차라리 우리끼리 똘똘 뭉쳐 짜고 치는 판을 만들자고 논의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한배를 탄 동료라고 생각했던 교수들의 속이 오히려 더 시꺼멓기 짝이 없었다.
사실은 페터의 깨달음이 늦어서 그렇지, 처음부터 문제를 바꿔치기해 혼자 돋보이려는 얌체 같은 마음을 품고 교사들끼리 문제를 출제하는 데 찬성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이참, 귀하신 분들께서 괜히 번거로우실까 봐 저희 선에서 이번 일을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역시 학장님만이 아스트리움과 저희 모두를 위한 공정한 방법으로 이 일을 해결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페터는 그 속 시꺼먼 놈들을 매섭게 쏘아보며 여느 때처럼 학장에게 알랑방귀를 뀌었다.
물론 더글라스 뷔요른의 입장에서도, 제 휘하에 있는 아스트리움의 교수들이 아무 잡음 없이 공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이득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지못한 척, 이 짜고 치는 판에 발을 얹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교수들의 공개 시험은 ‘공개 토론회’로 이름부터 품위 있게 바뀌었다.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은 참관객들의 앞에서 안심하고 체면을 차릴 수 있게 되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오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혹시 루드밀라의 짓인가?’
의심 어린 학자들의 시선이 애초부터 그들의 계획에 협력하지 않았던 유일한 한 사람, 루드밀라에게 날아갔다.
루드밀라는 융통성 없이 꽉 막힌 학자로 유명했다.
페터는 루드밀라가 연줄로 아스트리움에 들어왔다고 비꼬았지만, 사실 그녀의 실력이 진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루드밀라처럼 당당하게 제 능력으로 아스트리움에 들어온 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스트리움에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늘어갔고, 기존에 있던 학자들도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워졌다.
원래 검은 재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덩달아 검어진다는 소리가 있다.
처음에는 이런 부조리한 행태를 불쾌해하던 사람들도 차차 현실과 타협해, 결국은 아스트리움에서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한두 푼이라도 꽂아 넣고 말았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명목은 ‘기부금’이었기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도 아니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명분도 충분했다.
하지만 루드밀라는 끝까지 혼자만 고고하게 굴어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은 그녀가 눈꼴시었다.
어차피 그녀는 곧 퇴출당할 예정이라, 다른 학자들은 루드밀라를 은근히 따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 루드밀라가 보복 삼아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놀란 얼굴을 보면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가 출제될 줄은 몰랐던 듯했다.
“그럼 토론을 시작해 주십시오.”
모르페우스 신관은 무심하게 주제 발표를 마친 뒤 단상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더글라스 뷔요른이 서둘러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잠깐, 모르페우스 신관. 아무래도 주제가 잘못된 것 같소.”
“분명 저는 사전에 전달받은 내용을 그대로 읽었습니다만.”
더글라스 뷔요른은 모르페우스의 손에 들린 종이를 다급히 가져가 확인했다.
그 직후, 그의 얼굴이 굳었다.
모르페우스에게 전달된 발표지의 종이와 인장 모두 아스트리움의 것이 확실한데, 내용만 달랐다.
일전에 신관들과 황족 자제들에게 뜬금없이 교수들의 공개 시험을 알리는 공문이 조작되어 전달되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본데요?”
“발표지가 바뀌었나?”
전당 안은 아까부터 계속 어수선했다.
모르페우스가 느릿하게 말했다.
“제게 전달된 발표지가 중간에 교체되었다면, 누군가 일부러 바꿔치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누가, 왜 그런 짓을 하지요?”
그는 짐짓 흥미롭다는 듯이 더글라스 뷔요른의 손에 들린 종이를 훑어봤다.
“혹시 지금 발표한 이 주제에 암시된 다른 의도라도 있다는 겁니까?”
모르페우스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세례와 성서 낭독, 또 하급 신관들의 교육으로 단련된 대신전의 총아답게 그의 음성은 전당 안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선명하게 꽂혀 들어갔다.
모르페우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또 수군거렸다.
더글라스 뷔요른은 재빨리 분위기를 살핀 뒤 태연한 얼굴로 손에 들린 발표지를 모르페우스에게 다시 넘겨줬다.
“아닙니다. 지금 발표하신 것 또한 원래 후보로 추려져 있던 주제인데, 아무래도 중간에 혼선이 생겨서 최종 단계가 아닌 발표지로 바뀐 모양입니다. 이대로 진행해도 문제는 없으니 토론회를 다시 시작하지요.”
이번에는 학자들이 웅성거렸다.
페터는 더글라스 뷔요른을 미심쩍게 쳐다봤다.
‘정말 이대로 토론을 진행한다고? 우리와 얘기한 것과 다르잖아! 혹시…… 또 어떤 놈이 막판에 총장과 거래를 해서 내용을 바꿔치기했나? 그래놓고 총장이 지금 실수인 척 시치미 떼는 거 아니야?’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 이런 예민한 주제를 공개적으로 들고 온 건지 이상했지만, 혼란스러운 머릿속에는 이성적이지 못한 의심만 무럭무럭 자라났다.
더군다나 평소에 경매라도 하듯이 더 많은 성의를 보인 자에게 좋은 자리를 주던 더글라스 뷔요른이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혹시 이번에도 뒤에서 따로 거액을 투자한 교수를 위해 문제들을 슬쩍 바꿔주고 모른 척하는 게 아닌지 못내 의심스러웠다.
이미 신뢰가 깨진 전적이 있었던 탓에, 다른 학자들도 페터와 비슷한 눈으로 서로를 날카롭게 훑어봤다.
그때, 모르페우스가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나가는 어투로 덧붙여 말했다.
“그래도 도중에 발표지가 의도적으로 교체되었을지도 모르니, 확인은 한번 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총장실을 비롯해 아스트리움의 내부 곳곳에 도청용 마석을 두었다고 들었는데, 우선 그것부터 조사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모르페우스는 임시지만 아스트리움에 몸담은 자라 그런지, 보통의 신관들보다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아스트리움에 도청용 마석을 두게 된 이유는 일전에 누군가 가짜 공문서를 만들 때 몰래 학장실에 들어와 인장을 훔쳐 쓴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것을 조사하라니?
도청용 마석의 기록은 사흘 동안 유지되었다.
그래서 더글라스 뷔요른은 주기적으로 마석을 확인했는데, 가장 최근의 기록은 바빠서 아직 점검하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었을 줄 알고 내놓으라는 말인가?
더글라스 뷔요른은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튀는 대화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에 굳이 그렇게까지…….”
“저는 모르페우스 신관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때 루드밀라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토론은 이대로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혹시 누군가의 불미스러운 의도가 개입되었을지도 모르니 확인은 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글라스 뷔요른에게 의심스러운 마음을 품고 있던 학자들도 재빨리 동조했다.
“맞습니다! 얼마 전에도 총장실에 누군가 몰래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혹시라도 증거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최근 사흘 동안 아스트리움의 건물 안에서 켕기는 언행을 저지른 적이 없는 학자들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자신의 체면이 상할 내용이 도청 마석에 기록되진 않았을지 자신이 없는 학자들은 화들짝 놀라 결사반대를 외쳤다.
“그래도 아스트리움 내부의 일은 저희끼리 조용히 처리하는 게 옳습니다!”
“그럼요! 고작해야 토론 주제가 바뀐 정도의 일이 아닙니까?”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은 두 무리로 갈려 서로를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역시! 저놈들이 뒷돈을 주고 우리를 물 먹인 게 분명해!’
‘어제 우리가 다른 놈들을 몰래 흉본 게 공개적으로 까발려지면 어떡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