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6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64화(164/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물론 비리로 한배를 탄 그들의 껄끄러운 관계가 들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청 마석의 확인을 거부하는 눈치 빠른 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강경하게 반대할수록, 애초에 헛된 의심을 품고 있던 학자들은 더욱이 눈에 불을 켜고 입에서 침방울을 튀기며 야단이었다.
‘저런 멍청한 놈들 같으니……!’
더글라스 뷔요른은 그동안 말을 잘 듣다가 갑자기 나대는 학자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별것도 아닌 토론 주제 하나 때문에 이렇게 쓸데없는 분란이 생기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들 조용히 하시게.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언성을 높이며 소란을 피우는가!”
더글라스 뷔요른이 서늘히 일갈하자, 흥분했던 학자들이 흠칫하여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더글라스의 냉담한 눈이 경고의 의미를 담아 학자들을 훑었다.
“여기가 아스트리움도 아니고, 오늘 같은 날 이렇게 체통 없이 굴면 쓰겠나? 귀하신 분들께서 참관객으로 걸음해 주신 자리네. 모두 아스트리움의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며 자중하시게.”
긴말은 하지 않았지만, 과연 대귀족의 가주다운 위엄 있는 모습이라 할 만했다.
시선에서 느껴지는 선득함에, 흥분했던 학자들이 금세 몸가짐을 단정히 했다.
더글라스 뷔요른은 기세를 몰아 서둘러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뷔요른 공이 아스트리움에 도청 마석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폐하께 직접 아뢰어 허가를 받았던 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턱을 쓸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1부군 테드릭이 먼저 빙긋이 웃으며 좀 전에 모루페우스가 지나가듯이 꺼낸 말을 거들었다.
“학장실에 누군가 허락 없이 들어가 중요한 서류와 인장을 건드린 것 같다고 했었지요. 이 일은 가볍다면 가볍지만, 중하다면 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스트리움은 황녀와 황자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곳이니 혹여라도 불온한 목적으로 접근한 자가 있다면 마땅히 색출해 내야지요.”
옆에 있던 3부군 쿤차도 외알 안경을 추어올리며 못마땅하게 구시렁거렸다.
“그래요, 뭐가 되었든 빨리빨리 진행합시다. 오늘은 우리 루벨…… 아니, 황자, 황녀님들을 위한 날이 아닙니까? 이러다가 오후에 있을 중요한 시험까지 미뤄지면 책임지실 겁니까?”
2부군 요네스는 제 부친의 일이었기 때문에 차마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난감하게 입을 다물었다.
더글라스 뷔요른은 얼어붙은 얼굴로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그는 아까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토론회의 주제가 바뀐 것을 공공연하게 지적한 걸 후회했다.
또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들의 입을 진작 틀어막지 못한 것이 한탄스러웠다.
“뷔요른 공은 바쁠 테니, 번거롭게 움직이실 필요 없습니다. 아스트리움에는 황실 근위병을 보내면 되니 토론회는 계속 진행하시지요.”
테드릭이 온화한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그는 뒤에 서 있던 궁인들에게 작게 뭐라고 말하며 손짓했다.
당연히 더글라스 뷔요른은 전당에 남아서 학자들의 토론회 따위나 한가롭게 구경할 기분이 아니었다.
“아스트리움의 총책임자로서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동행하지요.”
그는 학장실에 기어들어 온 쥐새끼를 잡기 위해 설치한 덫에 제 발등을 찍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옷자락을 거칠게 흩날리며 진리의 전당을 나섰다.
그러고 나서 진리의 전당 안에는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럼…… 학장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까요?”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바쁘신 와중에 참관하러 와주신 분들도 계신데, 토론회는 그대로 이어가지요.”
다른 학자들은 난처한 모습이었으나, 루드밀라는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누군가 사사로이 관직을 매매했을 때, 그와 관련된 당사자들에게 어떤 처벌을 내리는 것이 옳은가. 흥미로운 주제 아닙니까.”
곳곳에서 동료 교수들의 적대감 어린 시선이 날아들었으나, 그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루드밀라는 더글라스 뷔요른과 다른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에게 밉보여 눈 밖에 났다.
그러니 이제 와서 원성을 더 사는 것 정도는 두렵지 않았다.
루드밀라는 사실 아스트리움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행태를 눈치채고도 지금껏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뷔요른은 보통 가문이 아닌 데다 더글라스 개인의 명망 역시 루드밀라와는 비교할 수 없이 드높았다.
게다가 기부금 명목으로 일을 처리한 그의 수완이 워낙 깔끔하여, 비밀리에 찾아본 서류와 다른 증거물들에서도 뭐 하나 덜미를 잡을 부분이 없었다.
그러니 루드밀라가 나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밖에 되지 않았다.
“제가 먼저 의견을 발표하지요. 로잔티나 국법에 직접적으로 관련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나, 역사에 남은 판례에 근거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루드밀라가 아스트리움에서 퇴출당하기 전에 교수로서 마지막으로 발언하는 자리였다.
더군다나 이렇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생긴 마당에, 끝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싶지는 않았다.
“켈리아 황제 45년의 기록에 의하면, 황실의 2등급 관직에 속하는 외무부 제2관 의전 담당관이 금 두 궤와 비옥한 토지를 비밀리에 받고 대가성 청탁으로 사무관을 지정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자 둘은 가산의 절반을 몰수당하고 3년의 노역형에 처해졌습니다.”
루드밀라의 낭랑한 목소리가 진리의 전당 안으로 퍼져 나가자, 불편하고 어색하던 분위기가 서서히 환기되었다.
“트리스탄 황제의 치세 때는 황녀전하의 궁에 속한 3등급 궁인이 외동아들의 병을 치료할 귀한 약재와 맞바꾸어 인사에 관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관계자의 작위는 몰수, 또한 그 식솔들은 모두 유배 보내졌습니다.”
귀에 또박또박 박혀 들어오는 음성에 사람들은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당연히 찔리는 구석이 있는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은 거북한 얼굴이었다.
“이 일을 외부에서만 봤을 때, 3급 궁인보다 2급 외무부 의전 담당관이 직책으로나 도의적으로나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시대에 따른 관념의 차이와 당시 로잔티나를 지배했던 군주의 성향 때문이라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여기에서 중요하게 따져 봐야 할 기준은 ‘존귀하신 황족분들을 직접 모시는지’의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참관객들은 이어지는 루드밀라의 주장이 퍽 흥미로운 눈치였다.
물론 아직 어린 황족들과 놀이 친구 중에는 벌써부터 따분한 듯이 넋을 놓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의식주 생활 전반에 걸쳐 황족을 직접 가까이에서 모시며 용안을 뵙는 궁인들과 호위 기사를 비롯해, 어린 황녀 황자님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저희 아스트리움의 학자들까지……. 황족을 지척에서 모시는 이들이 잘못했을 때는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처벌의 수위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루드밀라는, 주변에 있는 동료 학자들을 냉정한 눈으로 훑어보며 강경하게 주장했다.
“이것으로 미루어, 저는 관직의 매매를 직접 주도한 자는 국가에 속한 공직자의 경우 앞으로 영구적으로 관직에 오르지 못할 뿐 아니라, 작위를 반납하고 가산을 전부 몰수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관객들은 이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일부는 루드밀라의 말을 곱씹듯이 사뭇 진중한 얼굴로 턱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반면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은 눈에서 불똥을 튀기며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저게 지금 뚫린 입이라고……!’
작위를 반납? 가산을 전부 몰수? 게다가 앞으로 영구적으로 관직에 오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지금 우리에게 하는 소리가 아닌가!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은 울컥해서 이를 갈았다.
그러다가 참지 못한 한 사람이 불쑥 외쳤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면 참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피치 못할 사정 말입니까?”
그러나 그는 루드밀라의 침착한 물음에 주춤했다.
“그러니까, 생계가 어려운 와중에 병든 노모까지 건사하며 살아서 그런 형벌을 받으면 식솔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경우라든가…….”
현재 가벼운 소화불량 정도를 앓는 노모를 둔 학자가 말했다.
“트리스탄 황제의 치세 때도 병든 아들을 위해 한 일이나 일가족이 유배 보내졌습니다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뭐가 다릅니까?”
“지금은 태평성대니 말이지요!”
“태평성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관리가 부패하고 비리가 만연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더욱 혹독한 형벌을 내려 경각심을 일깨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늘 냉정하고 차분하던 루드밀라가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그녀의 눈빛은 몹시도 매서워, 시선만으로도 앞에 있는 사람의 뺨을 후려치는 듯했다.
기세에 밀린 학자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입술만 뻐끔거렸다.
바로 그때, 아까부터 청중의 분위기를 살피던 아스트리움의 학자 중 한 명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결연하게 외쳤다.
“아무렴요! 순수한 진리를 숭상하는 학자로서 어찌 이런 도의에 어긋난 일을 두둔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유를 불문하고 엄히 처벌하여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
다들 경악해서 제 얼굴에 침 뱉는 소리를 지껄인 학자를 휙 돌아봤다.
하지만 모두를 놀라게 한 장본인은 뻔뻔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아스트리움의 학자님들입니다. 나라를 유지하는 데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시는군요.”
“더군다나 어린 황녀, 황자님들께 직접 지식을 전수하시는 분들이 아닙니까? 누군가를 교육하는 이들은 마땅히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죠.”
그들의 속도 모르고 참관객들은 과연 훌륭한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며 감탄했다.
머뭇거리던 학자들이 잠깐 주변을 살피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마, 맞습니다. 아무렴 이런 일은 단호히 판결해야 합니다. 사정이 있다고 누구는 봐준다면 오히려 틈새를 노려 비리가 성행하겠지요.”
“오히려 저는 루드밀라 학자님이 주장한 형벌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황궁 관직에 오르는 것만 막아서 되겠습니까? 아예 학자로서도 두 번 다시 어디에서든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학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제 얼굴에 침을 뱉으며 열성적으로 ‘무관용 원칙에 의한 강력한 처벌!’을 외치고 있었다.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었지만, 분위기상 ‘초범은 봐줍시다!’ 같은 소리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었다.
누군가 2층에서 ‘풉’ 하고 그들을 비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벌컥!
바로 그때였다.
“당장 토론회를 멈추십시오!”
누군가 진리의 전당의 문을 기별 없이 거세게 열어젖혔다.
로잔티나 황실 기사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엄숙한 얼굴을 한 채 차가운 기운을 흩뿌리며 안으로 들이닥쳤다.
“뭐, 뭡니까?”
“아스트리움의 학자님들. 지금 제가 호명하는 분들은 바로 저희를 따라와 주십시오. 급히 조사해야 할 것이 있으니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말은 협조였지만, 기사들이 흘리는 냉엄한 기운을 보자면 오히려 협박이라고 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