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6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67화(167/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모처럼의 자유구나!’
우리 아버지도 마수 토벌로 자리를 비워 궁에 없었고, 아스트리움도 초토화되어서 한동안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이 좋은 날 밖에 나가지 않으면 언제 또 나간단 말인가?
[꼬마 주인아! 이제 밖으로 나가는 거야?] [워호! 이게 얼마 만의 나들이야?]“앗, 밖으로 얼굴 내밀지 마! 지금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너네 뼈도 못 추린다니까?”
내 옷 안에 쏙 들어가 있던 피오와 키노도 신바람이 났는지, 잔뜩 들떠서 시시덕거렸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자꾸만 간지럽게 꼬물꼬물 움직여대서, 나야말로 우리 아버지가 준 보호 마석을 오늘 처음으로 사용할 뻔했다.
이 녀석들이, 지금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도 이러네?
나는 작게 혀를 찬 뒤, 황궁 안을 산책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결계를 넘었다.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황성 밖으로 나가는데, 아무한테도 안 들킬 수가 있느냐고?
너무 많은 걸 따지지 마라…….
원래 소설에서 이런 자잘한 일탈 정도는 여주인공의 뜻대로 진행되는 법이다.
“아이고, 이게 뭐야? 어디서 갑자기 족제비 털 같은 게 날아와? 난 족제비 알레르기가 있는데…… 푸엣취! 푸엥치!”
슈웅!
“앗, 쿤차 님. 방금 쿤차 님의 팔찌가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뭐야?! 안 돼, 우리 디오메네 가문에서 오 대 전에 히세리온과의 내기에서 이겨 대대로 물려받아 온 보물이……! 뭣들 하는 게야? 다들 빨리 떨어진 보석을 줍지 않고!”
슈우웅!
이런 식으로 나는 황실 근위병이 재채기를 하느라 눈을 질끈 감고, 마침 아래를 지나가던 궁인들과 황족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쏜살같이 하늘을 날아 황성을 벗어났다.
“길레타, 이제 좀 천천히 가도 돼.”
-삐이잇!
“너희는 나오기 전에 내가 한 말 안 잊었지?”
[그럼! 내 기억이 얼마나 좋은데!] [물론이지, 꼬마 주인.]“피오, 너 오늘 찾아야 한다고 했던 거 말해봐.”
[어, 그러니까! 만개한 은빛 방울 민들레꽃이랑, 음력 보름날 정오에 뜬 햇빛을 받은 판티늄의 새순이랑, 신수 서식지에 기생하는 반딧불이랑 또, 또…….]“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큰소리치더니 그새 까먹었지? 이 똥쟁이 족제비야.”
[무, 무슨 소리야! 진짜 기억하고 있다니까? 나, 난 그냥 절반은 내가 말했으니까, 나머지 절반은 키노한테도 말할 기회를 주려고 그러는 거지!]피오 녀석은 키노도 시험해 보라며 캬악거렸다.
하지만 피오와 달리 키노는 제법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에 굳이 기습적으로 시험해 볼 필요가 없었다.
[초승달을 세 번 머금은 정결한 샘물과 노란 솔새의 아홉 번째 꽁지깃이잖아, 이 바보야.] [맞아, 이거다! 내가 말하려던 게 바로 이거였어!]나는 끝까지 말을 안 듣고 내 옷 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정신 산만하게 재잘거리는 두 족제비를 데리고 길레타의 고삐를 조여 하강했다.
도착한 곳은 제르카인의 신성 의식 날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황궁 후문 쪽의 신수 서식지였다.
“자, 그럼 제군들. 각자 오늘의 할당량을 서둘러 모아 오도록 합니다. 실시!”
[실시!] [실시!]피오와 키노가 신이 나서 푸른 풀밭 속으로 뛰어갔다.
나도 길레타를 물가에 놓고 족제비들이 간 곳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디 보자, 챙겨 온 시계를 보니 정오가 되려면 얼마 안 남았군!
빨리 판티늄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오늘 내가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아까 피오와 키노가 읊은 재료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이걸 왜 모으는 거냐고?
혹시 저 재료들을 나열할 때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예를 들어서 예전에 신수 덕후인 우리 아버지와 성수 덕후인 아이작 신관이 만났을 때라든가!
그렇다. 오늘 내가 족제비들과 함께 여기에 온 건 바로 성수를 만들 재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그냥 어중이떠중이 신관들이 다 만들 수 있는 흔해 빠진 저성능의 성수가 아니라, 이 위대하신 성녀님만 만들 수 있는 초특급 스페셜 레전드 성수를 말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직접 성수를 만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5년 동안에도 종종 몰래 성수를 만들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한 이벤트가 다가오고 있어서, 나도 모처럼 심혈을 기울여 실력 발휘를 좀 해볼 생각이었다.
‘흥. 물론 필요한 사람에게 그냥 성력을 때려 붓는 게 제일 효율적이지만, 아무나 이 성녀님의 은총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지!’
그런데 내가 이걸 무슨 일 때문에 만들려고 하는지 궁금하다고?
곧 제누스 신을 따르는 이웃 나라, 크리오스 제국에서 귀한 손님이 올 예정이었다.
육아물, 더군다나 여주인공의 능력이 신성력인 소설이라면 꼭 등장하는 단골 클리셰가 있지 않던가?
일명 ‘가짜 성녀’와 ‘진짜 성녀’ 말이다.
이 지상에 있는 12개의 나라에는 신이 내린 성녀, 혹은 성자가 몇백 년 만에 한 번씩 강림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곤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크리오스 제국에 나타난 성녀도 그 대명사였다.
소설에서 크리오스는 이번 세대에 그들의 나라에서 성녀가 나왔다고 엄청나게 거들먹거리며 로잔니타까지 와서 위세를 부렸다.
하지만 클리셰의 법칙에 따라 이 성녀는 가짜였다.
당연히 그 비밀을 밝힌 사람은 소설의 여주인공인 아스포델이었다.
내가 비밀리에 알아본 소식에 의하면 곧 크리오스에서 이 가짜 성녀가 있는 사절단이 올 듯했다.
‘안녕, 아스포델.’
그런데 어째서일까?
바로 그 순간, 일전에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네. 이제는 그게 진짜 네 이름 같아?’
왜 하필 지금 그 개꿈이 생각난 건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크리오스 사절단의 소식을 처음 알게 된 게 이 꿈을 꾸었던 날이라 그런가?
‘그동안 고생 많았어. 곧 내가 찾아갈 거야. 원래 내가 가졌어야 할 내 것들을 돌려받으러.’
익숙한 듯 낯설었던 소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괜히 귀를 문지르다가, 찝찝했던 꿈 생각을 다시 털어버렸다.
아무튼, 내가 만들 이 성수는 가짜 성녀가 왔을 때 사용할…….
-먀앙!
-먕먕먕!!
퍽!
“어억……!”
그때, 갑자기 슬라임 같은 물컹한 몸이 나를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옆으로 철퍼덕 넘어진 내 위로 솜사탕 떼…… 아니, 분홍 경단 같은 신수 떼가 덮쳐들었다.
“무, 무겁……. 아구구, 그래, 이 언니가 왔다고 반겨주러 왔구나?”
몰려든 신수들이 내게 환영 인사를 하듯이 작은 날개를 정신없이 파닥거렸다.
“그래그래, 이 언니를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고?”
-먕!
“미안하지만 오늘도 언니가 많이 바빠서 놀아 주기 어려운데…….”
-먕!!
내 말에 신수들이 몸을 마구 펄떡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분홍 찹쌀떡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격렬하지?
이 애타는 눈빛을 보니, 단순히 내가 반가워서 이러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건 마치…… 예전에 조슈아를 위기에서 구해달라고 한밤중에 신수들이 나를 찾아왔던 날을 생각나게 만드는…….
“앗, 혹시……!”
그러다가 퍼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우리 집 똥쟁이 족제비들이랑 싸움이라도 붙은 건가?!”
-먀먕!
“앗, 아니라고? 알았어, 알았어! 이, 일단 가볼 테니까 내 위에서 그만 뛰어……!”
숨 막힌단 말이다, 이 녀석들아! 한두 마리도 아니고 떼거리로 이렇게 날 압사시키려고 하다니!
아무래도 이 신수들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못 이긴 척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코끝을 스치는 짙은 피비린내를 맡고 움찔 눈매를 굳혔다.
피 냄새의 주인공은 보라색 꽃밭 속에 파묻혀 있었다.
정결한 공기 속에 불온하게 감도는 피비린내와 나를 직접 이곳에 데려온 신수들이 아니었다면 이 소년을 발견하지 못했을 터였다.
“뭐야……. 죽었나?”
나는 꽃밭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아니다. 살아 있네.’
다행히 소년의 가슴팍이 희미하게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지난번에 여기서 봤던 애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다쳐온 거지?’
소년의 상태는 퍽 심각해 보였다.
그냥 이렇게 봐서는 정확한 원인을 알기 어려웠지만, 가슴팍이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이 지독한 피 냄새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신수 서식지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상처를 입은 뒤에 여기로 피신해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어린애가 이런 부상을 입을 만한 일이 도대체 뭘까?
이 녀석, 왠지 모르게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것 같더라니 역시 평범한 애가 아닌가?
나는 찌푸린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봤다.
보라색 꽃송이들 속에 잠든 것처럼 누운 소년의 모습이 제법 가련해 보였다.
“그래도 날 만나다니, 운이 좋았네.”
나는 특별히 소년에게 성녀의 은총을 전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앞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고 급히 꽃밭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솜사탕 떼가 당황스러운 듯이 먕먕거리며 나를 쫓아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성한 기운을 흘리는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으로 정신없이 달려가 갓 자라난 판티늄의 새순을 재빨리 채취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 것과 같은 행위였지만, 깊은 단잠에 빠진 거대한 식물형 신수 판티늄은 잠잠했다.
나는 신비로운 광채를 머금은 새하얀 새순을 특수 처리된 유리병 안에 무사히 넣은 뒤, 그제야 휴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어, 하마터면 늦을 뻔했네!
이, 이런 나를 매정하다고 하지 마라.
지금을 놓치면 이 판티늄의 새순을 채취하기 위해 꼬박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다.
-먕먕먕!!
-먀아아!!!
하지만 이해심 없는 분홍 경단들은 한껏 포악해져서, 아까보다 더욱 인정사정없이 나한테 몸통 박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앗, 알겠어! 지금 다시 갈 거야! 바로 다시 가서 도와주려고 했어, 진짜라니까!”
[앗, 꼬마 주인?! 왜 거기서 그렇게 얻어터지고 있어?!] [야아, 이 판티늄 똥 같은 놈들아! 너희가 뭔데 아스포델을 우리 허락도 없이 쥐어패?! 꼬마 주인은 패도 우리가 팬다!]그걸 본 족제비들이 흰 수염을 휘날리며 달려들어, 솜털 같은 주먹과 꼬리를 분홍 찹쌀 경단 같은 신수에게 찹찹 휘둘렀다.
족제비들의 의리는 퍽 감동적이었지만, 내 주변은 아주 개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