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68)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68화(168/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말린다고 금방 떨어질 것 같지도 않았고, 보아하니 신수들과 족제비들 모두 전투력이 별 볼 일 없는 듯했다.
그래서 일단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소년이 있는 곳으로 다시 후다닥 달려갔다.
소년은 여전히 꽃밭 속에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휴, 아직 살아 있군.”
혹시 그사이에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뻔했는데 다행이었다.
‘앗, 아니야! 괜찮을 줄 알았으니까 내가 다른 일을 먼저 하러 간 거지!’
진짜다. 진짜라니까?
아무튼, 숨만 붙어 있으면 아무리 위중한 환자라도 살려낼 수 있었다.
나는 옷이 찢어지고 살이 갈라진 소년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맞닿은 곳으로 신성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어?”
하지만 소년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았다.
섬뜩하게 찢긴 환부에서 오히려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읏…….”
움직임 없이 누워 있던 소년의 몸이 움찔거리며 그의 입술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렀다.
내게 클로비스 꽃을 주며 해사하게 웃던 소년의 얼굴이 지금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믿기 어려운 현상에 얼굴이 저절로 굳었다.
바로 그 순간, 소년이 눈을 번쩍 떴다.
그 뒤의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갑자기 어지럽게 시야가 뒤바뀌며 곧바로 강한 힘이 나를 밀쳤다.
등이 바닥에 아프게 부딪히는 것과 동시에 강한 악력이 내 목을 틀어쥐었다.
짙푸른 하늘이 내 위로 쏟아질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 강렬하게 내 시야를 파고든 것은 소년의 살기 어린 눈이었다.
쏴아아…….
바람이 꽃과 나무를 한 차례 훑고 지나간 뒤, 마침내 나를 찌를 듯하던 살기가 옅어졌다.
“아……. 너였구나.”
내 목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던 손아귀에서도 서서히 힘이 풀렸다.
“난 또, 여기까지 쫓아온 줄 알고……. 느낌이 비슷해서 착각했어.”
등줄기가 선득해질 정도로 매섭고 날카롭던 소년의 분위기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잔잔하게 누그러졌다.
나는 경직된 얼굴로 소년을 마주하다가 시선을 내렸다.
뜨끈한 게 내 위로 떨어진다 싶더니, 소년의 상처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였다.
그의 가슴에 굵직하게 난 세 갈래의 베인 상처는, 꼭 짐승의 손톱 같은 것에 긁힌 자국으로 보이기도 했다.
딱 이런 모양과 크기의 상흔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의 신수인 뮤리엔에게 공격당한 마수들에게서였다.
당연히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소년의 상처를 우리 아버지가 만들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현재 우리 아버지는 멀리 마수 토벌을 떠난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그가 이런 어린 소년을 공격하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미안. 나한테 화났어?”
내가 말이 없자 소년은 그의 과격한 행동에 화가 났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너인 줄 몰라서…… 혹시 내가 너무 세게 밀쳤나?”
소년이 난색을 표하며 내 위에서 몸을 비키려고 했다.
“아니면 목이 아파? 그래도 자국은 안 남았는데.”
나는 그가 완전히 일어나기 전에 다시 손을 뻗었다.
내 신성력이 다시 한번 소년의 상처 부위로 스며들었다.
“아, 잠깐……. 크윽!”
후두둑!
바로 그 순간, 반작용이라도 일어나듯이 소년이 피를 울컥 토해냈다.
내 뺨에도 따뜻한 핏방울이 튀었다.
“너, 뭐야?”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신성력에 상처가 치유되기는커녕 오히려 내상을 입다니, 내가 알기로 이런 경우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성결한 기운을 품은 신수와 반대되는 삿된 존재인 마수.
하지만 당연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소년은 마수가 아니었다.
그럼 또 다른 하나의 경우.
신의 선택을 받았으나 타락하여, 그릇된 힘이라 할 수 있는 사기를 기반으로 삼았던 이전 회차에서의 모르페우스와 그의 수하들.
하지만 어째서 이 소년이 예전의 모르페우스와 비슷한 상태로 보인단 말인가?
소년이 낮은 기침을 토해내며 살짝 찡그린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쥰이라고 했잖아. 내 이름 벌써 잊어버렸어?”
“이름 따위를 물어본 게 아니야.”
족제비들을 뿌리치고 이쪽으로 온 신수 몇 마리가 나와 소년의 주변을 에워쌌다.
-먀양! 먕!
그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듯이 안절부절못하며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피투성이가 된 소년의 몸에 머리를 비비기도 했다.
이런 점은 확실히 이상했다.
이 소년이 예전의 모르페우스처럼 삿된 힘을 품은 존재라면, 왜 신수들이 그를 이토록 따르는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소년이 타락한 존재라면 애초에 판티늄의 보호를 받는 이 신수 서식지 안으로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던 걸까?
“황녀님?!”
그렇게 내가 소년을 경계심과 의구심이 뒤섞인 눈으로 탐색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나는 흠칫 놀라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슈아?”
그러자 초콜릿색 머리칼과 녹색 눈을 가진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조슈아가 해롱해롱한 상태의 족제비들을 성난 신수 떼에게서 건져내 품에 안고 있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황녀님이 왜 여기에 계세요?”
우리는 거의 동시에 서로에게 물었다.
“아, 나는 그냥 산책 삼아서 잠깐 온 건데…….”
“저는 뀽뀽이가 탈피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 영양가 높은 먹이를 직접 찾아주려고…….”
또 동시에 대답한 직후, 꽃밭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내 부실한 핑계를 들은 조슈아가 의혹 어린 눈으로 날카롭게 주변을 훑었다.
“산책이라니, 설마 혼자요?”
“혼자 아니야.”
나는 재빨리 발뺌했으나, 조슈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근방 100m 안에서 느껴지는 다른 인기척은 분명 없는데요. 저와 황녀님, 그리고 황녀님의 앞에 있는 그 소년 말고는요. 아, 지금 물가에서 평소와 다른 기척이 하나 느껴지는 걸 보니, 황녀님께서 데려온 신수인가 보군요.”
“그, 그게 구분이 돼?”
“그럼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신수 감응력과 귀 하나는 로잔티나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라고 했는걸요. 적어도 이 신수 서식지에 있는 모든 생물의 소리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답니다. 물가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이 특유의 날갯짓 소리와 숨소리는 분명…… 길레타? 길레타를 데려오셨군요.”
조, 조슈아 뭐지? 숨소리와 날갯짓 소리? 무슨 절대음감이라도 되나?
맞다. 잊고 있었는데, 이 녀석도 사기캐였지?
“그, 족제비들도 같이 있잖아. 그러니까 혼자는 아닌데…….”
조슈아의 예리한 눈빛을 정면에서 받고 나도 모르게 변명하듯이 웅얼거렸다.
나를 향한 조슈아의 얼굴은 드물게도 굳어 있었다.
“어째서 수행인도 없이 혼자 나오신 건가요? 만약 누가 알았다면 절대로 황녀님을 이렇게 혼자 내보냈을 리가 없는데, 몰래 나오신 거 맞죠?”
“그게.”
“지금은 록샨 님도 출타 중이신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아니, 애초에 어떻게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황성을 빠져나오신 거지요?”
가끔 쭈글거리는 조슈아지만, 이럴 때는 제법 관록 있는 신수 소환사 같았다.
“조슈아야말로 우리 아버지 따라서 마수 토벌하러 간 거 아니었어?”
“저는 이번에 동행하지 않았어요. 그보다 황녀님, 말 돌리지 마세요.”
“칫…….”
“그런데 황녀님, 그 남자아이는 황녀님이 아시는 앤가요?”
조슈아의 찝찌름한 시선이 내 뒤쪽으로 향했다.
“혹시 친구를 만나러 오신 거예요? 그런데 친구 상태가 좀…… 이상해 보이는데요.”
그제야 잠깐 잊고 있던 소년의 존재를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조슈아가 방금 몇 번이나 나를 황녀님이라고 불렀지? 밖에서는 비밀이었는데?
“글쎄, 안다기보다는…….”
나는 애매하게 말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눈에 들어온 장면에 멈칫했다.
“야, 너 뭐 해?”
“아, 얘기 끝났어?”
“지금 뭐 하는 거냐니까?”
“음, 내가 찾던 게 있는데 아무래도 여기쯤인 것 같아서.”
몸도 성치 않은 놈이 느닷없이 바닥은 왜 파헤치고 있어?
그것도 맨손으로 말이다.
“그만해, 상처가 더 벌어지잖아.”
“괜찮아, 안 아파.”
안 아프긴 뭐가 안 아파?
얼굴은 허옇게 질려서, 가슴팍의 상처에서도 여전히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데?
꽃밭의 흙을 파고 있는 손도 엉망진창이었다.
“왜 맨손으로 땅을 파? 손가락에서도 피 나잖아.”
“혹시 지금 내 걱정해 주는 거야?”
소년이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저런 몸 상태로 실없이 웃는 걸 보니, 혹시 이 녀석이 머리도 다친 게 아닌가 싶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도 여기서 뭘 찾고 있다고 하더니, 혹시 그걸 말하는 건가?
설마 저것 때문에 저 몸을 이끌고 이 꽃밭에 와서 쓰러져 있었나?
“아, 찾았다.”
그러다 마침내 무언가가 손에 잡혔는지, 소년이 나를 보고 있던 시선을 내렸다.
“역시 여기에 있었네.”
나도 그를 따라 흙이 파헤쳐진 꽃밭으로 눈을 돌렸다.
“황녀님? 혹시 그 애 다친 건가요? 옷이 빨간데…….”
조슈아가 의혹 어린 목소리로 물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우우웅!
신수 서식지 안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 건 바로 그때였다.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기묘한 파동이 공기를 가르며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갑자기 나뭇잎과 풀잎이 거세게 흔들렸다.
나는 어지럽게 머리가 흔들리는 느낌에 윽, 하고 신음하며 귀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