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69)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69화(169/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귓가에 푸드덕하고 커다란 새가 날갯짓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시야가 어두워지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신수 서식지 안에 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꼭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기라도 하듯이 다급한 울음소리를 내며 숲 너머로 날아갔다.
뭐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이제 막 정오가 지난 한낮인데도 서늘한 한기가 일순간 밀려들어 살갗이 시렸다.
조슈아도 나와 같은 위화감을 느꼈는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까보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족제비들도 정신을 차린 듯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이 기묘한 현상을 만들어낸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손에는 지금 막 바닥에서 뽑아낸 푸른 기운을 띤 하얀 신석이 들려 있었다.
마수가 죽으면 마석을 남기는 것처럼, 신수에게도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꽃밭 말고 아무것도 없는데, 왜 저런 게 땅속에서 나온 거지?
그러다 일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에 손끝이 움찔했다.
아니, 있었다.
지금 이 신수 서식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면서 당장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이에 존재하는 신수.
지면 아래에 뿌리를 내린 식물형 마수 판티늄.
설마 몸체라고 할 수 있는 나무 모양의 기둥이 아니라, 뿌리에 핵이 있던 건가?
“아델, 데메테아가 일곱 마리의 마수를 정화해 자신의 신수로 종속시킨 이야기를 알아?”
잔잔한 소년의 미성이 귓가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
소년은 여전히 창백한 낯을 한 채 방금 쏟아낸 피가 묻은 입가를 손으로 훔쳤다.
그는 주위에 감돌고 있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아까부터 시종일관 평온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상태였다.
소년이 꺼낸 이야기는 당연히 나도 알고 있었다.
로잔티나의 사람이라면 세 살 먹은 아이조차 들어봤을, 전승 신화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왜 하는 거지?
“원래 태초에 가장 처음 만들어진 건 혼돈이었다고 하잖아.”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희가 기록한 역사에 의하면, 12신이 오염된 엘리시움을 정화해 어둠을 몰아내고 지금의 풍요로운 세계로 만들었다고 하지.”
착각처럼 다시 한번 공기가 크게 맥동했다.
꼭 거대한 심장이 내 발밑에서 박동하는 것 같았다.
신수들도 이변을 느낀 듯이 파르르 몸을 떨며 나와 소년에게 가까이 달라붙었다.
“그러니까, 원래 빛이 아니라 어둠이 이 세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즉 근원이나 마찬가지라는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거야.”
여전히 머리 위에서는 새들이 바쁘게 날갯짓하며 울고 있었고, 신수 서식지 안의 초목은 쏴아아 소란하게 몸을 부대끼며 흔들렸다.
기묘한 초조함이 엄습했다.
“원래 이 세계에 먼저 있던 것도 신수가 아니라 마수였다는 의미고, 엄밀히 따지자면 오히려 본래의 모습을 잃고 오염당한 상태에 있는 건…….”
소년이 옆에 있는 신수들에게 손을 뻗었다.
“지금 이 아이들이라는 의미지.”
그의 손이 처음으로 신수들에게 닿았다. 그러곤 털을 쓰다듬듯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소년의 다른 손에 쥐어진 신석이 검게 물든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동시에, 소년이 쓰다듬던 신수들이 경련하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우드득, 우드득, 섬찟한 소리가 들리면서 내 눈앞에 있는 신수들의 몸체가 기괴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달콤한 솜사탕 같던 신수들이 마수처럼 변하는 걸 보며 경악했다.
“아무래도 이 아이들은 내 옆에 있는 걸 원하는 것 같으니 데려갈게. 그래도 상관없겠지?”
신수만이 아니었다.
소년이 있는 곳에서부터 서서히 꽃과 풀들이 오염되듯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변이 그렇게 오염되어 갈수록 소년의 상처가 점차 회복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옆에 있던 신수들을 보호하듯이 본능적으로 급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델.”
그러자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눈에 알아봤어. 넌 데메테아가 가장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걸.”
어느새 또 훌쩍 가까워진 소년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이질적인 광채를 띤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집어삼킬 듯이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본능적인 경계심과 위기감이 치솟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소년이 움직여 한 일은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난 그런 존재들을 혐오하지만, 왠지 넌 싫지 않아.”
내가 미처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뺨에 부드러운 감촉이 눌러 찍혔다.
“아니, 오히려 난 네가 좋은 것 같아. 그러니까 너도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내 뺨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춘 소년이 눈을 나붓이 접어 웃으며 나를 향해 속삭였다.
“황녀님!”
[꼬마 주인!]조슈아가 족제비들을 데리고 내게 달려왔다.
나는 그가 뀽뀽이를 소환하려 하는 걸 깨닫고 다급히 소리쳤다.
“안 돼, 조슈아! 신수 부르지 마……!”
멈칫한 것도 잠시, 한달음에 달려온 조슈아가 나를 낚아채듯이 끌어안았다.
다행히 그는 내 말을 듣고 뀽뀽이를 소환하지 않았다.
어쩌면 뛰어난 육감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지금 신수를 불러 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은 걸지도 몰랐다.
소년은 조슈아에게 밀쳐지기 전에 먼저 가볍게 자리를 박차 뒤로 물러났다.
우우우웅!
이번에는 정말 확실하게 땅과 대기가 흔들렸다.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고막을 찢어버릴 것처럼 이 공간 전체에 거칠게 울려 퍼졌다.
대지 깊숙이 파고들어 있던 굵은 뿌리들이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뒤틀린 땅을 뚫고 올라왔다.
기나긴 잠에 빠져 있던 판티늄이 깨어나 포효했다.
“그럼 다음에 또 놀자, 아델.”
그 사이로 울린 소년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물에 번지듯이 사그라졌다.
“마음 같아서는 너도 데려가고 싶지만, 아마 넌 지금은 날 따라오지 않을 테니까……. 나중에 또 만나.”
소년이 있는 곳을 다시 확인했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바람과 함께 나부끼던 판티늄의 나뭇잎은 어느덧 검푸른 빛으로 변해 있었다.
꼭 하늘에서 검은 비가 쏟아지는 듯했다.
신성한 기운을 흘리던 판티늄에게서 숨이 막힐 정도로 자욱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황녀님! 일단 서식지 밖으로 벗어날 테니 절 꽉 잡고 계세요!”
조슈아가 나를 안고 요동치는 대지 위를 내달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더 이상 신수 서식지라고 할 수 없었다.
마수화된 신수들이 곳곳에서 우짖는 소리가 선득하게 뒷덜미를 긁었다.
나는 오염된 신수 서식지를 정화하기 위해 서둘러 신성력을 방출했다가, 아까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피를 쏟아냈다.
“우웁!”
“황녀님?!”
[아스포델!] [꼬마 주인아, 괜찮아?!]조슈아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족제비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내 팔에 안겨 겁먹은 듯이 몸을 떨던 작은 신수들도 먕먕거리면서 몸을 들썩였다.
나는 올라오는 핏물과 욕설을 삼키며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잠깐, 꼬마 주인 얼굴에 이상한 게 있어!]그러다 돌연 피오가 솜 발바닥으로 내 오른쪽 뺨을 벅벅 문질렀다.
[뭐지? 여기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아, 안 지워져!] [어디? 나도 한번 보…… 앗, 따가워!]키노도 합세했다가 정전기라도 인 것처럼 펄쩍 뛰었다.
내 얼굴에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까 소년이 장난스럽게 입을 맞췄던 부위였다.
설마 그 녀석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건가?
나는 이미 보이지 않는 소년을 떠올리며 와락 얼굴을 우그러뜨렸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내상을 입어 골골대는 와중에도 신수 서식지는 착실히 흑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다른 신수들과 마찬가지로 마수화한 판티늄의 뿌리가 채찍처럼 우리를 후려갈겼다.
다행히도 조슈아는 그동안 갈고닦은 놀라운 순발력으로 몇 번이나 그것을 피해냈다.
“크흑!”
하지만 바닥이 부서진 퍼즐 조각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어, 결국은 발을 헛디뎌 굵은 뿌리에 한 방 거세게 얻어맞고 말았다.
조슈아는 거대한 충격이 강타한 순간에도 제 몸은 신경 쓰지 않고 나를 감쌌다.
그런데 하필 조슈아가 넘어진 곳은 판티늄의 뿌리가 빠져나와 깊게 갈라진 곳이었다.
우리는 지옥의 입구처럼 벌겋게 벌어진 지면 밑으로 추락했다.
“황녀님……!”
[꼬마 주인아!]-먀아아앙!
마지막으로 내가 본 것은, 몸에 소지하고 있던 보호 마석이 작동하며 찬란한 빛을 터뜨리는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