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7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70화(170/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아구구…….”
정신을 차리자마자 삭신이 쑤시는 느낌에 신음했다.
뭐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어둠 속에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이름이 쥰이라고 하던 그 이상한 녀석이 갑자기 판티늄의 핵을 오염시키면서 주위에 있던 신수들이 마수로 변했었지?
그러고 나서 조슈아와 함께 판티늄의 뿌리에 얻어맞아, 갈라진 땅속으로 떨어진 건 기억나는데…….
‘어디 보자. 머리…… 안 깨졌고. 팔다리…… 부러진 곳 없고. 다른 데도 멀쩡하군.’
다행히 우리 아버지의 과보호로 몸에 지니고 있던 보호 마석이 발동해서 외상을 입은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온몸이 쑤시는 건, 아까 신성력을 사용한 탓에 반작용으로 내상을 입은 데다가 긴장해서 계속 어깨에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십년감수 했다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손으로 더듬더듬 확인해 보니, 팔찌로 엮인 보호 마석 10개 중의 4개가 한꺼번에 박살 난 상태였다.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상당히 깊은 곳까지 떨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체감하기로는 그냥 눈만 한번 살짝 감았다가 뜬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한참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서둘러 주변을 살폈으나, 빛 한 점 없이 사방이 어두워서 지금 당장 습득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었다.
“피오, 키노……. 조슈아?”
나와 함께 떨어진 애들을 찾으려고 이름을 불렀으나 변함없는 침묵만이 나를 반겼다.
나는 일단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때, 밑에서 처음으로 뚜렷한 반응이 느껴졌다.
“으으…….”
“헉, 조슈아?!”
어쩐지 바닥이 좀 말랑하더라니, 아무래도 내가 지금까지 조슈아를 깔아뭉개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 팔꿈치에 명치를 찔려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조슈아의 몸에서 재빨리 내려왔다.
“조슈아, 괜찮아? 조슈아!”
하지만 조슈아는 여전히 끙끙거리기만 할 뿐, 쉽게 의식을 찾지 못했다.
이상하다. 나하고 밀착해 있었으니까, 마석으로 함께 보호받았을 텐데 왜 이렇게 맥을 못 추지?
아까 판티늄에게 얻어맞은 데다가, 여기로 떨어지면서 내 깔개 노릇을 하느라 어느 정도의 충격을 입기는 한 건가?
아, 그러고 보니 조슈아는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했지? 그래서 떨어질 때 무서워서 혼절했나?
어쨌든, 조슈아의 위치를 알고 나니 나머지 녀석들을 찾기도 쉬웠다.
족제비들과 신수들로 추정되는 생물체들까지 조슈아 근처에서 발견해 무사히 살아 있는 걸 확인했다.
고롱고롱 숨 쉬는 소리를 들어보니, 다른 녀석들은 나와 조슈아에게 꼭 달라붙어 있었던 덕분에 다친 곳이 없는 듯했다.
그건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여기로 떨어진 후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몰라도, 황궁에 바로 소식이 전해졌겠지?’
황궁 바로 뒤에 위치한 신수 서식지에서 이런 변고가 일어난 것이니, 분명 곧장 소식이 알려졌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땅속에 있어서 발견이 쉽게 될까 하는 거였다.
나는 아직도 쓰라린 가슴과 배를 살살 쓸어내리며 고개를 들었다.
격렬하게 요동치던 땅은 어느새 제법 잠잠해져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위쪽은 시끄러운 데다가 간간이 진동이 전해져 오는 중이었다.
판티늄의 뿌리가 있던 자리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나마 땅속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 게 다행이었다.
파앗!
나는 조슈아에게 신성력을 살살 불어넣어 보았다.
여전히 속이 아렸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피를 토하지 않았다.
아까는 갑자기 방대한 양의 신성력을 사용하려고 하니 반작용도 컸던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지금 내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 기껏해야 이런 식으로 조슈아를 찔끔찔끔 치유해 주는 게 최선이었다.
‘젠장, 도대체 그 녀석은 뭐지?’
나는 일단 조슈아와 다른 아이들부터 깨우기로 하고 신성력을 불어넣으면서 아까 있던 일을 곱씹었다.
그러다 보니 짜증이 밀려와서, 수상한 소년이 마음대로 입을 맞췄던 뺨을 신경질적으로 벅벅 문질렀다.
신수들이 느닷없이 마수로 변하다니, 이런 건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녀석…….
내 신성력에는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켜 내상을 입어 놓고, 주변을 삿된 힘으로 오염시키며 몸을 회복하다니?
그런 면은 지난 회차들에서 만났던 흑화된 모르페우스와 비슷했다.
‘모르페우스! 감히 그분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해라!’
문득 5년 전, 라 벨리카 황제의 탄신 연회 때 황궁 안에 숨어들어왔던 놈들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었던 의심에 다른 의혹이 더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왠지 오늘 만난 소년이 그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삿된 힘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이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마수와 관련된 기이한 능력도 그렇고…….
확실히 쥰이라는 소년은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모르페우스가 이전 회차들에서는 그들과 손을 잡아서 강력한 흑막으로 성장했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쥰이란 소년은 어쩌면 거기에서 더 나아가…….
‘혹시 데메테아가 전에 경고한 열세 번째 추락한 별의 후예와 관련이 있는 걸까?’
신좌에 오르지 못하고 도태되어, 이름조차 잊혀진 열세 번째 신.
신화 속에서 데메테아 여신은 세상을 파괴하던 일곱 마리의 마수를 정화해 신수로 만들었다.
그런데 반대로 신수를 마수화하는 힘이라니, 그런 걸 할 수 있는 소년이 평범한 사람일 리가 없었다.
그런 일은 신의 권능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으음.”
“앗! 조슈아, 정신이 들어?”
“읏, 황녀님……?”
그때, 조슈아가 깨어났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반색했다.
“뭐야, 여긴 어디……. 헉! 그러고 보니까 조금 전에…….”
조슈아는 잠깐 어리둥절하더니, 곧 아까의 일이 퍼뜩 떠오른 듯이 급히 숨을 들이켰다.
“황녀님! 괘, 괜찮으신가요? 밑으로, 밑으로 떨어졌는데!”
“괜찮…… 흐악!”
그런데 조슈아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켜서, 그의 머리에 이마를 박고 말았다.
퍽! 하는 과격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별이 반짝였다.
조슈아와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나란히 바닥을 뒹굴었다.
“으어억……! 머리, 머리가! 화, 황녀님! 저 방금 바위 같은 데 머리를 박았나 봐요! 너무, 너무 아파요! 으허억……!”
이 자식이?! 지금 내 머리가 돌대가리 같다고 은근슬쩍 욕하는 거야? 네 머리가 더 단단하거든!
“헉, 허억! 황녀님, 어, 어떡하죠? 저 아, 앞도 안 보여요. 저…… 저 눈이 멀었나 봐요옷!!”
조슈아가 공황 상태에 빠진 듯이 으어어, 으어어 좀비 같은 소리를 내면서 허우적거렸다.
가뜩이나 깨어나자마자 경황이 없는데, 나와 격렬한 박치기를 하고 또 주변이 어두워서 앞도 안 보여 많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우씨, 그런데 나도 아픈데! 지금 눈물까지 찔끔 났단 말이다! 이마에 혹도 난 것 같다고!
[으으으?]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먕?
-마야아아……!
소란한 탓인지 족제비들과 신수들도 깨어났다.
“조슈아, 진정해! 눈이 먼 게 아니라, 그냥 여기가 어두워서 안 보이는 거야! 천천히 심호흡해! 흡하, 흡하! 자, 빨리 따라 해!”
“흐, 흡하, 흡하?”
[에엥……? 흐, 흡하?]-먀먕?
“제대로 해! 한 번 더! 흐읍하아!”
“흐읍하아……!”
[흐, 흡하아……!]그래도 내 어른스러운 대처(?)로 조슈아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족제비들과 신수들도 멋모르고 열심히 심호흡을 따라 했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잠시 후, 우리는 한결 침착해진 모습으로 둘러앉았다.
“아, 아아! 그렇군요. 황녀님이 가지신 보호 마석 덕분에 산 거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게서 상황 설명을 대충 들은 조슈아가 얼른 예의 바르게 감사 인사를 했다.
“아냐, 나야말로 고마워. 조슈아가 나 안 버리고 끝까지 보호해 줬잖아.”
“별말씀을요,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조슈아는 당황해서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아까 신수 서식지가 마수 서식지로 변하던 중에 조슈아가 주저 없이 앞으로 나와 나부터 챙겨준 건 좀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땅 밑에 갇혀서 어떻게 하지요?”
[꼬마 주인아, 우리가 위로 길 뚫을까?! 나 흙 잘 파는데!]“아! 제가 뀽뀽이를 불러서 땅을 팔까요? 지금은 뀽뀽이를 불러도 아무 문제 없겠죠?”
나는 눈을 빛내는 족제비들과 조슈아를 흐린 눈으로 쳐다봤다.
음, 조슈아와 족제비들의 사고가 비슷하군…….
여기서 땅을 파면 과연 어느 세월에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일단은 주변을 좀 살펴보자. 아까 내가 언뜻 확인해 봤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넓더라고.”
나는 팔을 뻗어 손에 닿는 벽면을 가볍게 통통 두드렸다.
역시…… 아까 신성력을 사용할 때 미약한 빛이 생겨서 어렴풋이 주변을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내가 착각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여기, 왠지 누가 일부러 만들어둔 공간인 것 같아.”
그리고 아까부터 저쪽에서 묘하게 익숙하면서 찝찝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