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7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73화(173/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우리 아빠가 다쳐서 의식불명 상태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기겁할 만한 소식에 당연히 어머니와 나는 곧바로 아버지를 보러 갔다.
마수 토벌을 떠났던 우리 아버지가 전에 없던 큰 부상을 입었다는데, 신수 서식지가 마수 서식지로 변하고 내가 땅 밑에 파묻힐 뻔했던 게 대수랴?
“록샨은 어디에 있지?”
“이쪽입니다!”
“어마마마, 빨리 가요, 빨리!”
황궁 의원과 모르페우스도 전부 다 아버지의 상태를 보러 가 있다니, 도대체 아버지가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알 수가 없어 나도 안절부절못했다.
“폐하!”
“어마마마!”
“아델 누나!”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문 앞에 초조하게 서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먼저 소식을 듣고 온 듯한 부군들과 내 이부 형제들도 있었다.
“오, 오셨군요, 폐하! 록샨 님이, 록샨 님이…….”
“아스포델, 너 어디에 있었던 거야? 온 궁 안으로 널 찾으러 사람을 보냈는데…….”
라 벨리카 황제를 보고 울먹이는 카루스와 나를 향해 초조하게 뭐라고 하는 유클레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직된 얼굴로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 불안감을 더욱 극대화했다.
“폐하, 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저희는 방해가 될까 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부군 테드릭의 말대로 어머니와 나는 그들을 지나쳐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마자 확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몸이 저절로 굳었다.
“록샨의 상태가 많이 위중한가?”
“폐하!”
처음에는 황궁 의원과 궁인들에게 가려져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보이지 않았다.
“4부군님께서 부상을 입은 채로 돌아오셨는데 아직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시, 신관님의 신성력으로도 치유가 되지 않아서 어찌하면 좋을지…….”
하지만 황제의 방문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서둘러 몸을 낮추면서 마침내 그들의 뒤에 누워 있는 사람이 눈앞에 드러났다.
“아, 아빠?”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왜 우리 아버지가 저런 꼴로 누워 있지?’
늘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던 남자가 지금은 군데군데 붉게 물들고 찢겨 흐트러진 옷차림을 한 채 미동 없이 침상에 늘어져 있었다.
몸 곳곳에 섬뜩하게 벌어진 살갗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렀다.
어떤 부분은 독이 번지기라도 한 것처럼 검게 변해가고 있기까지 했다.
나를 보고 늘 ‘아델’ 하고 다정하게 웃던 아버지의 얼굴이 지금은 고통스러운 듯이 일그러진 채 식은땀에 젖어 있는 게 보였다.
그의 입에서 간헐적으로 미약하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가 아니었다면 저 몰골을 보고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심각한 아버지의 상태에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갑자기 예전 1회차 빙의 때 마지막으로 봤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나를 지키려고 새까맣게 몰려드는 마수 떼 앞을 망설임 없이 막아섰었다.
나는 우글거리는 마수들 사이로 사라져 가는 아버지를 막지 못했다.
훗날 내게 유일하게 그나마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왔던 그의 상처투성이 팔을 떠올릴 때면 아직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피범벅이 되어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시간이 지나면서 애써 묻어두었던 트라우마가 다시 도지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핏기가 빠진 것처럼 몸이 얼어붙고 덜컥 숨이 막혀왔다.
“신성력도 소용이 없다니, 어떻게 된 거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4부군님께서 평범한 마수에게 당하신 게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부상을 입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르페우스가 설명하는 소리가 내 멍한 정신을 깨웠다.
차갑게 식은 라 벨리카 황제의 얼굴에는 감정적 동요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나를 안은 그녀의 손에는 아까보다 아프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당장 록샨과 동행했던 이들을 안으로 들여라.”
“여기 있습니다!”
“고하라. 그동안 황궁의와 신관들은 록샨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치료에 사활을 걸도록.”
라 벨리카 황제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이어진 이후, 토벌대에 속한 기사가 부복한 상태로 서둘러 설명했다.
“록샨 님을 공격한 것은…… 그것이,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마수여서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마수였다고?”
“예, 그리고…… 그 마수들은 어떤 소년에게 조종되는 듯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소리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라 벨리카 황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서늘한 예기가 더욱 강해졌다.
“어떤 소년이었지?”
“나이는 열서너 살 정도 되어 보였고, 눈은 보라색에 머리카락은 검은색이 약간 섞인 상아색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정말 평범한 소년인 것 같았는데, 어째서인지 마수들이 그 아이에게 복종하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들은 소년의 인상착의가 오늘 내가 신수 서식지에서 만난 소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마수 서식지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록샨 님을 공격한 것은 검은 몸체에 독이 흐르는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가진, 언뜻 마라커스와 닮은 생김새의 마수였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날쌔고 강했고요. 그 외에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토벌대에 속해 있던 사람은 면목 없다는 듯이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마수들을 조종하던 소년은 그 후 록샨 님의 신수에게 공격받았으니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황궁으로 아직 돌아오지 않은 토벌대가 그 소년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중요한 것이 생각났다는 듯이 다급히 덧붙였다.
“아, 그리고! 황궁으로 귀환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신관이라고 하면서 의식이 없는 록샨 님을 치료해 준다고 접근했는데……. 오히려 그 후에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혹시 그 소년과 한패일지도 몰라 연행해 왔습니다.”
“당장 그자를 데려오라.”
서릿발 같은 음성으로 명령한 라 벨리카 황제가 모르페우스에게 물었다.
“모르페우스 신관. 지금 들은 정보로 방도를 찾을 수 있겠나?”
“이 정도로는…… 정보가 부족한 듯합니다.”
하지만 모르페우스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대신, 라 벨리카 황제의 앞에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르페우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그는 입을 열을 않았으나, 꼭 내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듯했다.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시선에서, 모르페우스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켜며 정신을 차렸다.
손을 들어 내 뺨을 한 대 철썩 때렸다.
주변 상황이 워낙에 바쁘게 돌아가서 그런지 라 벨리카 황제와 모르페우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런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멍청하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나도 성치 않은 상태라 신성력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일이 있어도 우리 아버지부터 치료해야 했다.
원래 나는 내가 방대한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한동안 더 감출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마마마, 저 아버지한테…….”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을 먹고 서둘러 움직이려고 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문 안으로 뛰어들어 오면서 목소리를 크게 높여 외쳤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날아가 박혔다.
하얀 신관복을 입은 자그마한 몸집의 누군가가 라 벨리카 황제의 앞으로 구르듯이 달려와 철퍼덕 무릎을 꿇었다.
황제의 명으로 끌려온 것은 뜻밖에도 어린 소녀였다.
진달래꽃 같은 진분홍 머리카락과 금색에 가까운 담황색 눈을 가진 소녀가 참으로 대담하게도 라 벨리카 황제를 직접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폐하, 제가 4부군님을 치료할 수 있어요!”
소녀를 여기까지 데려온 듯한 근위 기사는 질겁한 얼굴로 문 앞에 굳은 듯이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달려와 사죄했다.
“소, 송구합니다, 폐하! 토벌대가 연행해 온 신관이 아직 어린 소녀라서 잠깐 포박하지 않고 풀어줬는데, 설마 이런 무례를 저지를 줄은…….”
근위 기사는 설마하니 어린 여자아이가 겁도 없이 자신을 뿌리치고 황제의 앞으로 직접 나설 줄은 몰라서 몹시 당황한 듯했다.
나는 나대로, 바닥에 꿇어앉은 소녀의 낯익은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이, 이게 뭐야?
얘가 왜 지금 여기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