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75)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75화(175/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Chapter 35
내가 알던 성녀가 아니야
“록샨, 몸은 좀 괜찮은가? 보양을 돕는 귀한 약재를 좀 가져왔네.”
“록샨 님께서 의식이 없으실 땐 가슴이 철렁했는데……. 크흡,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록샨 님…….”
“록샨 님!”
라 벨리카 황제는 이번 일에 대해 모두 함구하라는 황명을 내렸다.
그래서 소식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아는 부군들과 마수 토벌대의 사람들은 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하러 우리 궁에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쿤차처럼 예의상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진심으로 아버지의 무사 생환을 기뻐했다.
개중에는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우리 아버지의 평소 인망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때마침 성녀님이 주변을 지나가다가 록샨 님과 마주쳐 도움을 주시다니, 이는 분명 하늘이 도운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딱 적절할 때 나타나 아버지를 구한 성녀 에스텔을 찬양했다.
나는 찌푸린 얼굴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데메테아 여신의 신도들이 입는 신관복을 입고, 떡하니 마리벨을 뒷배로 세워 나타난 소녀는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가짜 성녀였다.
그런데 이전 회차들에서는 크리오스 제국의 성녀로서 사절단 대표로 로잔티나에 방문했던 가짜가, 이번에는 어떻게 로잔티나의 성녀로 둔갑한 건지 내막을 알 수가 없었다.
‘가만, 그럼 조만간 로잔티나에 올 크리오스 제국의 성녀는 또 누구지? 설마 그것도 가짜인가?’
아무렴 가짜 성녀가 그렇게 많을까 싶기도 했지만, 하나가 있는데 둘은 없을까 싶기도 했다.
게다가 악역 보존의 법칙(?)에 따라 원래 크리오스에 있어야 할 가짜 성녀가 다른 곳에 버젓이 나타났으니,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가짜로 대체되었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마리벨 신관이 황제의 앞에서 친히 성녀라고 소개한 에스텔은 대신전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채 안 됐다고 했다.
신탁은 마리벨 신관이 직접 받았다고 했는데, 그는 자세한 내용을 우리에게 밝히지 않았다.
보아하니 성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까지는 말을 아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군. 정녕 데메테아 님의 뜻을 직접 받드는 인도자에게 내가 도움을 받은 것이라면, 마땅히 신께 감사드릴 일이지.”
황실에서도 아직 성녀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성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경의를 표하는 게 아니라, 꼭 한 다리 걸러 아는 사람을 대하듯이 다소 거리를 두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성녀에게 생각보다 무미건조한 태도를 보이는 아버지에게 의아함을 느꼈다.
“아델이 왔구나.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리 가까이 와 보렴.”
일단 겉으로 보이는 부상은 모두 치료되었지만, 아버지는 피를 많이 쏟아서 그런지 아직 원기 회복이 덜 된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추레하기는커녕 오히려 한층 더 청초해진 모습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방 안을 빼꼼 들여다보다가, 침대 위에 기대앉아 나를 부르는 아버지에게 쪼르르 다가갔다.
내가 냅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비비적거리자 아버지가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이제 괜찮단다. 아빠 때문에 우리 딸이 걱정했구나.”
지금까지 아버지 입에서 내 무단 외출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아버지의 안정을 위해서 그 사실은 일단 비밀에 부쳐진 모양이었다.
나는 쿵쿵 뛰는 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상태를 확인해 봤다.
비록 가짜 성녀기는 하지만, 일단 우리 아버지의 부상을 치료한 힘은 진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몸 안 깊숙이 침투한 정체 모를 마수의 독은 아직 남아 있는 게 느껴졌다.
아주 은밀하게 숨어 있는 강한 독이라, 모르페우스는 물론이고 대신관이 와도 치료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 결연하게 말했다.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델이 꼭 지켜드릴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 상태부터 해결해야 했다.
[역시, 낙인 같은데.]“낙인?”
[그러니까, 그 누군지 모를 몹쓸 놈이 아스포델 너한테 도장을 쾅 찍어놓은 거라고.]내 뺨을 유심히 살피던 티타니아가 못마땅한 듯이 고운 얼굴을 찌푸렸다.
[신이 인간에게 성흔을 내리는 것처럼 말이야.]“그게 가능해? 진짜 신도 아닌데?”
[예전에는 신이 아니어도 신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후손들이라면 가능했지. 엘리시움에 있는 12개 나라의 직계 황족 중에서도 순혈 정도? 하지만 그 피가 희석된 건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게다가 이 기운은 어느 나라의 황족에게서도 느껴본 적이 없을 만큼 낯설어서, 뭔가 이상해. 더군다나 그 기운이 네 신성력보다 커서, 이렇게 힘을 누르고 있는 것도…….]티타니아는 내 얼굴을 요리조리 한참이나 뜯어 보다가, 아까부터 구석에 가 있던 앤디미온을 불렀다.
[앤디미온! 넌 거기서 뭐 해? 너도 빨리 이리 와서 좀 같이 봐봐.] [아니! 이 위대하신 앤디미온 님은 이 정도 거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걸 티타니아 네가 나 대신 잘 말했구나.] [이게 어디서 한 것도 없이 숟가락을 얹으려고 해? 허세 부리지 말고 가까이 와서 직접 보라니까? 자,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는지 여기 좀 만져 봐.] [앗, 따가워……! 무, 무슨 짓이냐! 손을 대면 자꾸만 따끔거려서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있던 건데!] [어휴, 따끔거려 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뭐 이렇게 나잇값도 못 하는 겁쟁이가 다 있담?] [겁쟁이라니, 누가……! 이, 이 위대하신 앤디미온 님께 무슨 망발이야!]앤디미온이 발끈해서 티타니아에게 달려들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없애는데?”
나는 두 사람을 재빨리 떼어놓고 해결 방법을 아는지 확인했다.
[흥, 그거라면 내가 알고 있지.]이번에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선 건 의외로 앤디미온이었다.
“진짜? 뭔데?”
[위대하신 앤디미온 님, 제발 해결책을 알려주세요! 라고 하면 말해주지.]앤디미온이 한껏 거들먹거리며 내게 건방지게 요구했다.
이 녀석이 또 기어오르네?
본능적으로 주먹이 꿈틀거렸지만, 장단 한번 맞춰주지 못할 이유는 없어서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줬다.
“위대하신 앤디미온 님, 제발 해결책을 알려주세요!”
[엣헴. 그래, 이 앤디미온 님이 어리석은 중생인 네게 묘안을 알려주겠다. 데메테아 님의 힘이라면 불가능은 없는 법! 곰과 호랑이가 백 일 동안 치성을 드려 인간이 되었다는 얘기처럼, 너도 데메테아 님께 경애 어린 마음으로 매일 기도를 올려라!]“아하, 기도……. 언제까지?”
[그거야 어리석은 중생인 네게 달린 일이 아니겠느냐! 만약 네 진심이 곰과 호랑이보다 못하다면 데메테아 님께 목소리가 닿는 데 백 일이 넘게 걸릴지도…….]따악!
[으악! 아악! 내 이마……!]지금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성력을 담아 딱밤을 날리자, 앤디미온이 이마를 감싸며 데굴데굴 굴렀다.
“딱 하루 준다. 넌 내일까지 해결책을 못 찾아내면 딱밤 서른 대 맞을 줄 알아.”
[이, 이 포악한……!]앤디미온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부들거렸다.
나는 나대로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 방을 나섰다.
방금은 앤디미온이 헛소리를 지껄인 것을 응징하기 위해 협박했을 뿐, 그렇다고 해서 정말 그에게 모든 걸 맡길 생각은 아니었다.
‘문제가 발생한 신수 서식지에 다시 한번 가볼까?’
그때 내가 만났던 수상한 소년.
멋대로 내 뺨에 뽀뽀……. 아니, 낙인이라는 걸 찍은 녀석을 떠올리자 저절로 이가 갈렸다.
게다가 왠지 정황상, 그 소년이 아버지를 공격한 소년과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 조슈아와 떨어졌던 지하에서 발견한 이상한 장소도 그와 연관이 있는 듯해 마음에 걸렸다.
현재 라 벨리카 황제의 칙령에 의해 소년을 비밀리에 추적하고 있었는데, 아직 들려오는 소식은 없었다.
이번 일 때문에 어머니도 바쁜 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나를 불러서 신수 서식지에서 벌어진 일을 확인하고, 모르페우스에게 내 상태를 살피게 했다.
나는 모르페우스의 반응을 유심히 봤는데, 그는 내게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이 뭔지 정체를 알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영 신뢰가 가지 않아서, 모르페우스에게 내 신성력이 봉인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사실 대신전에 나타난 가짜 성녀에 대한 것도 모르페우스가 정말 몰랐는지 의심스러웠다.
물론 시기상 가짜 성녀와 접점이 없었다는 건 그럴듯했지만, 마리벨은 모르페우스의 오른팔 같은 수하가 아니던가?
“어머, 3황녀님?”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이렇게 마주치다니 우연이네요! 저, 기억하시나요?”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자마자, 오늘도 하얀 신관복을 입은 소녀가 반색하며 내게 다가왔다.
현재 황성에 손님으로 머물고 있는 가짜 성녀 에스텔이었다.
“제가 구한 록샨 님의 따님이시라지요? 이렇게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닌데, 편하게 저를 언니라고 부르셔도 좋아요. 제가 황녀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으니까요.”
그녀는 내게 다가와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로 대뜸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지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