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8)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8화(18/207)
내가 작게 속닥거리자 놈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런 녀석에게 음산하게 속삭여 주었다.
“네가 아빠한테 달려가서 고자질하는 것보다 내 주먹이 더 빠르다?”
“……!”
“방금 내가 실수로 박치기했을 때도 아팠지? 그런데 작정하고 널 때리면 훨씬 더 아프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며 보란 듯이 주먹을 쥐었다 펴자 2황자가 급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말이야. 나는 네가 쿤차 아빠랑 같이 있어도 내 마음에 안 들면 널 때릴 거야!”
“……!”
불끈 쥔 내 주먹을 보여주니 2황자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퍼드득 몸까지 떨었다.
루벨리오는 누군가한테 이런 노골적인 협박을 받은 게 처음이라 얼이 빠진 듯했다.
나는 다독이는 척 녀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 좀 착하게 살자. 응?”
다시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돌아가 비실거리는 루벨리오의 손을 영차 잡아당겼다.
“자, 내 손 잡고 일어나!”
수행인들이 휘청이는 그에게 냉큼 달려들었다.
“황자님, 괜찮으십니까?”
“루벨, 턱 빨개!”
에효, 마무리는 그냥 어린애 수준에 맞게 할까?
유치하지만 내가 맞춰 줘야지.
착한 나는 루벨리오에게 결국 아량을 베풀어 그에게 제 발로 퇴장할 기회를 주기로 하고 무언가를 발견해 놀라는 척하며 우렁차게 외쳤다.
“어, 그런데 오빠 설마 쉬야한 거야?”
“……뭐?!”
놈의 고간을 향해 손가락질하자, 동공을 흔들며 날 보던 녀석이 그것을 따라 휙 고개를 숙였다.
카루스로 인해 생긴 노란 얼룩이 교묘한 위치에 자리한 걸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사실 정확한 위치는 허벅지 쪽이긴 한데, 언뜻 보면 그게 그거인 것처럼 보이긴 하니까.
곧바로 루벨리오가 엄청나게 충격받은 얼굴로 항변했다.
“아니야, 이건……!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우와, 이제 여덟 살이나 됐는데! 그런데 길바닥에서 쉬야! 했대요!!”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까지 전부 다 들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치자 녀석의 눈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째 조금 전 일보다 이 일에 더 큰 심적 타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난 아직 일곱 살이야!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건 그냥 조금 전에 저 사람이 쏟은 게 묻은 것뿐…….”
“괜찮아! 창피하다구 거짓말할 거 없어!”
응, 아무것도 안 들려!
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할 거야!
“황궁은 넓으니까 길에서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어린애들은 특히 그런 거 잘 못 참으니까 실수할 수도 있는 거랬어. 그렇지, 마가렛?”
2황자 놈이 뭐라고 말을 이으려고 할 때마다 ‘괜찮아! 괜찮아!’를 외쳤다.
“에궁, 아델은 착하니까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카루스 아빠도, 마가렛도 비밀로 해줄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이익……! 너 진짜!”
아무리 해명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알았는지 루벨리오는 폭발 직전까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다가 결국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나중에 두고 보자!”
오, 나중에 두고 보자니. 방금 진짜 유치했다.
“가, 같이 가, 루벨!”
3황자 헬리만과 뒤에 딸린 수행인들도 주인들을 따라 후다닥 뛰어갔다.
좋아, 방해꾼을 치워버렸다.
내가 알기로 놈은 꽤 깔끔 떠는 성격이었으니, 이 꼴로 오해를 받으며 대로변에 더 서 있기 창피하긴 했을 것이다.
“끼긱, 끼?”
“끼유!”
엥?
그런데 내 어깨 위에 올라가 지금까지의 일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피오와 키노가 갑자기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닥거렸다.
그러더니 밑으로 폴짝 뛰어내려 황자들의 뒤를 토다다닥 쫓아가기 시작했다.
“어멋? 잠깐……!”
“괜찮아. 그냥 놔둬.”
마지막으로 목격한 피오와 키노의 얼굴에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마가렛이 깜짝 놀라 쫓아가려 했지만 그냥 혀를 차며 말렸다.
에구,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저러나 몰라.
어쩌다 나같이 착한 주인 밑에서 저런 성격 나쁜 사역마들이 나왔는지. 쯧쯧.
“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3황녀님.”
한편, 카루스는 나한테 제대로 낚인 것 같았다.
날 올려다보는 그의 눈이 촉촉하게 젖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꼭 작은 영웅이라도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래……. 가뜩이나 일곱 살 먹은 애랑 맞짱 떠서 현타 오는데 그래도 얻는 게 있어야 내가 보람이 있지.
나는 괜히 쓰게 느껴지는 입맛을 다시며 아직도 꿇어앉아 있는 카루스의 등에 덥석 업혔다.
“3, 3황녀님?”
“카루스 아부지, 나 업어 줘.”
“황녀님, 제가 업어드릴게요!”
마가렛이 황급히 외쳤다.
하지만 나는 팔다리에 힘을 줘서 카루스에게 거머리처럼 매달렸다.
아무래도 방금은 좀 나이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나 싶어서 일부러 더 칭얼거렸다.
“이짜나, 나 궁에서부터 여기까지 혼자 많이 걸어왔어. 다리 아포.”
“네? 록샨 님의 궁에서부터 여기까지는 거리가 꽤 되는데 왜…….”
“그야 난 어제부터 다섯 살이니까!”
의기양양하게 외치자 카루스가 작게 웃으며 날 업은 상태로 몸을 일으켰다.
좋아, 좋아. 이상하다고 의심받지는 않은 것 같아.
카루스는 날 넘겨받으려 다가온 마가렛에게도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저, 3황녀님. 조금 전 황자님들이 하신 말씀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절대 사실이 아니니까요.”
“맞아요, 황녀님! 그런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도 마셔요.”
그런데 카루스가 갑자기 나한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마가렛도 울컥한 듯이 동조했다.
조금 전에 2황자 놈이 한 말 때문인 모양이다.
나더러 부정 탄 불길한 애라고 했던가?
하필 내 생일에 황궁 결계에 문제가 생겨 괴조가 침입하고 로사리움에 불이 난 것 때문인가 본데…….
하지만 어차피 그런 헛소문은 내가 성력 각성만 하면 바로 사라질 터니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으응, 괜차나. 그보다 카루스 아부지, 저거 들고 열매한테 가던 중이었어?”
왠지 여기서 조금이라도 상심한 척하면 날 달랜다고 애쓸 것 같은 분위기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돌렸다.
“아……. 네, 새벽에 모은 붉은 개 오줌 나무의 수액이 열매에게 좋다고 들어서요.”
어우, 어쩐지 냄새가 지독하더니만 붉은 개 오줌 나무 수액이었어?
아까 루벨리오에게 쏟아서 그런지, 병에 든 수액은 절반 정도가 줄어 있었다.
‘용기 모양은 이틀 전에 본 거랑 좀 다른데, 저 상서로운 기운은……. 쿤차가 준 게 저거였구나.’
이름이나 냄새는 좀 그렇지만, 붉은 개 오줌 나무의 수액은 정력제로 효능이 좋아 꽤 귀한 것이었다.
‘그게 열매한테도 좋은지는 몰랐지만…….’
카루스는 쿤차가 준 것이 아까운지, 반쯤 빈 병을 상당히 씁쓸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무룩한 그의 옆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오늘은 사기가 없네.
사흘 전에는 내가 손을 대서 좀 쫓아주고, 그저께 남은 건 쿤차한테 옮겨가서 그런가?
‘그나저나 왜 이번 회차에서는 아직 성력 각성도 안 했는데 내 눈에 사기가 보이는 거지?’
혹시…… 내 바람대로 정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클리어 난이도를 좀 낮춰 준 걸까?
‘우오, 그런 거면 좋겠다!’
갑자기 샘솟는 희망에 기분이 급격히 좋아지며 깨방정을 떨고 싶어졌다.
일단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은 덮어 두고 히히 웃으며 카루스를 재촉했다.
“그럼 빨리 가자! 열매 배고프겠다.”
“아, 네!”
카루스는 어벙한 사람답게 내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신의 정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나랑 같이 움직이게 되었지만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참,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이렇게 쉽고 만만……. 아니, 이렇게 순둥한 사람 밑에서 어떻게 4황자 같은 놈이 태어난 거지?
어머니를 닮았다기에는, 우리 라 벨리카 황제 폐하도 독사가 아니라 맹수 과인데.
푸드덕!
“까악!”
“으갸학!”
그렇던 중에 갑자기 머리 위에서 새의 울음이 들려왔다.
카루스가 그걸 듣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격하게 경기해서 나도 덩달아 깜짝 놀랐다.
본인도 오두방정을 떨어 창피했는지, 어깨를 움츠리며 얼굴을 붉혔다.
“큼, 크흠.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새가슴…….
하찮은 걸 보는 시선으로 카루스를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들었다.
작은 괴조 한 마리가 황성 주변에 쳐 놓은 결계에 몸을 부딪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때마다 노란 섬광이 튀어 한낮임에도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제처럼 무리를 짓는 종이 아니라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마수였다.
“한동안 조용했는데 또 마수들이 소란이군요. 사흘 전에는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러게요. 그래도 록샨 님이 계시니 안심이지요.”
원래 괴조를 포함한 마수들이 불나방처럼 결계에 꼬여 드는 건 가끔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어머님이 결계 수호석을 담당하는 공허의 탑 주요 인원과 경비병을 싹 갈아치운 데다, 관련 보수도 철저히 했으니 한동안은 안심해도 될 터였다.
물론 개중에는 억울하게 잘린 사람도 있지만 말이지…….
‘하지만 검은 마석에 조종당했다는 증거가 없으니.’
그때 결계 안쪽에서 신수가 날아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괴조는 금방 일망타진되어 조용해졌다.
“록샨 님은 정말 멋지세요. 저도 저 반의반만큼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나는 선망 어린 카루스의 중얼거림을 듣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불가능할걸?”
“그, 그렇겠죠…….”
앗, 나도 모르게 너무 단칼에 잘랐나?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