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8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84화(184/207)
“폐하! 부디 제 말을 귀담아 들어주십시오!”
애처로운 소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황궁 안에 간악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당장 근원을 색출해 내 정화해야만 합니다!”
가짜 성녀 에스텔은 황제에게 읍소하는 충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황제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계속해서 황궁 안의 삿된 힘에 대해 경고하고 있었다.
듣자 하니 라 벨리카 황제가 다른 용무로 만나주지 않아서, 조금 전부터 밖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에스텔 양. 폐하께서는 중요한 용무로 지금 시간을 내기 어려우시네. 위스테리아 궁으로 돌아가 있으면 적당한 때 알현 허가가 날 것이니 나중에 다시 오게나.”
“1부군님 말이 맞네. 그런데…… 도대체 그 간악한 기운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느껴진다는 건가?”
나보다 먼저 도착한 1부군 테드릭과 2부군 쿤차가 에스텔을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에스텔을 돌려보내려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테드릭과 달리, 쿤차는 에스텔의 말에 흥미가 있는 것 같긴 했다.
“쿤차, 지금 그런 것을 묻는 건 적당하지 않군.”
“크흠! 폐하께서 바쁘시니 대신 얘기를 듣고 중요한 내용을 알려드리려 하는 것이지요.”
에스텔은 둘 중 어느 쪽을 공략해야 할지 약삭빠르게 깨달은 듯이, 호소력 짙은 촉촉한 눈으로 쿤차를 보며 말했다.
“황궁이 넓어 지금 이대로는 정확한 위치를 짚어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여 폐하께 황궁 안을 살펴보는 것을 허락받고자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이 불순한 기운은 결코 제가 착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감히 로잔티나의 황궁 안에 숨어들어와 고귀하신 분들께 해를 끼치는 삿된 것을 제가 정화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아니,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도…….”
“자고로 악한 기운은 어리고 약한 자에게 깃들기 쉽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황자님과 황녀님들께도 해를 끼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에스텔의 말에 쿤차가 불안한 듯이 안절부절못했다.
예로부터 아들 사랑이 지극했던 쿤차는 혹시나 황궁에 있다는 그 악한 기운이 루벨리오에게 악영향을 끼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예, 저는 그저 데메테아 여신님을 모시는 성녀로서 황궁 안에 계신 분들을 지켜드리고 싶을 뿐이에요.”
어쨌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간절히 호소하는 에스텔의 모습은 사뭇 결연하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저 여자애, 얼마 전에 마리벨 신관이 성녀라고 했던 애 아니에요?”
마침 소식을 들은 몇몇 황자와 황녀들도 무슨 일인지 보러 왔다.
원래 이 시간은 아스트리움의 수업을 받는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일정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들 한가한 편이었다.
“헉! 이, 이럴 수가……!”
그런데 가짜 성녀 에스텔이 황자와 황녀들을 보자마자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저기, 방금 오신 황자님 중 한 분께 삿된 기운이 느껴집니다! 제가 말한 원흉과 접촉하신 게 분명해요!”
“뭐라고?! 어, 어느 황자 말인가? 설마 우리 루벨은 아니겠지?”
에스텔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목도한 것처럼 가냘픈 한 송이의 꽃처럼 비틀거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1황자님, 이 에스텔이 잠깐 눈을 뗀 사이에 간악한 것과 마주치시다니!”
“뭐?”
갑자기 이름을 불린 유클레드가 당황했다.
장단이 잘 맞는 쿤차와 에스텔을 약간 찌푸린 눈으로 보고 있던 1부군 테드릭도 자신의 아들이 지목당하자 움찔 몸을 떨었다.
“당장 정화하셔야 해요! 에스텔이 지금 바로 구해드릴게요!”
에스텔은 누가 말리기도 전에 앞으로 달려나가 목표물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니까, 1황자 유클레드가 아니라 2황녀 알렉시아의 손을 말이다.
“어?”
“응?”
“엥?”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사태에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의문을 드러냈다.
바로 그 순간, 에스텔에게서 신비롭게 느껴지는 기이한 빛이 번쩍였다.
“으읏…….”
그러고 나서 에스텔이 비 맞은 진달래꽃처럼 휘청이다가, 알렉시아의 품으로 풀썩 쓰러졌다.
“서, 성녀님이 쓰러지셨다!”
에스텔의 기행에 살짝 설득된 일부 궁인들이 야단을 떨었다.
하지만 에스텔은 자신을 급히 부축하려는 손길들을 피하며 오히려 비틀거리는 척 알렉시아에게 몸을 더 바짝 기댔다.
“에스텔 양?”
난데없는 일을 당한 알렉시아의 눈썹이 비대칭을 그리며 치켜 올라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저, 저는 괜찮아요. 갑자기 강한 신성력을 사용했더니 잠깐 현기증이 나서…….”
에스텔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한 모습으로 알렉시아를 올려다보았다.
“황자님께 깃든 삿된 기운이 생각보다 짙어서…… 조금 지쳤을 뿐이에요.”
“그, 그 삿된 기운이라는 건 정화가 된 건가?”
쿤차가 다급한 음성으로 에스텔에게 물었다.
그는 어느새 루벨리오를 끌어당겨 다른 황자, 황녀들에게서 떨어뜨린 상태였다.
“아, 아버지? 답답해요. 이것 좀 놔주세요.”
“루벨, 넌 가만히 있거라.”
“큽!”
쿤차의 가슴팍에 얼굴이 눌려 볼이 찌그러진 루벨리오가 불편하게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쿤차는 새끼를 보호하는 아비 캥거루이라도 된 것처럼 오히려 루벨리오의 뺨을 더욱 세게 찌그러뜨리기만 했다.
“휴우, 그래도 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 안심하세요.”
“급한 불을 껐다니……. 그럼 완전히 정화한 게 아니라고?”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근원을 없애기 전에는 완전한 정화가 불가능하니까요. 뿌리를 남겨둔 잡초가 계속 자라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간악한 힘을 품은 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를 찾아내기 위해 황성 안을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이고요.”
에스텔은 여전히 알렉시아에게 몸을 의지한 채, 식은땀을 닦기라도 하듯이 보송한 이마를 손등으로 훑으며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 보니 1황자님께서는 의식하지 못하시는 사이에 그 삿된 존재와 생각보다 깊이 접촉하신 듯해요. 지금 제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나실 뻔했어요.”
다음 순간, 퍽 진실해 보이는 에스텔의 염려 어린 눈이 알렉시아를 향했다.
“다만 지금은 제가 4부군님을 치유한 직후라 강력한 신성력을 연달아 사용하기 어려워서……. 1황자님 옆에 한동안 머물면서 틈틈이 정화 시켜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이것이 바로 에스텔의 노림수였다.
1황자 유클레드에게 깃들지도 않은 간악한 기운을 정화하는 척하며 그를 구했다는 공로를 세우고, 또 유클레드와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 그와 친밀함을 쌓으려는 속셈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왜 굳이 저런 핑계로 황성 안을 살펴보려는 거지? 그냥 시간을 끌려는 것뿐인가? 아니면…….’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아직도 연기 중인 에스텔을 살폈다.
그때 1부군 테드릭이 음, 하고 낮게 침음했다.
뒤이어 그가 에스텔에게 확인하듯이 물었다.
“한데 에스텔 양이 말하는 1황자가…… 지금 몸을 기대고 있는 그 황족을 말하는 게 맞나?”
그 순간 에스텔의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앗, 죄송합니다. 강한 신성력을 사용했더니 몸을 가누기 어려워서 저도 모르게……. 하지만 저와 이렇게 붙어 계시면 황자님의 몸에 아직 남은 삿된 힘을 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이 몸을 비비 꼬다가, 이내 알렉시아를 향해 결의에 찬 얼굴로 다짐하듯이 말했다.
“1황자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 에스텔이, 꼭 이 한 몸을 다 바쳐서라도 황자님을 무사히 구해드릴게요!”
이쯤 되자 사람들 사이에도 미묘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특히 1황자 유클레드의 얼굴은 아주 볼만했다.
“저, 에스텔 님.”
황족들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하던 궁인 중 하나가 아직도 알렉시아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에스텔의 옷을 급히 잡아당기며 속닥거렸다.
“그분은 1황자님이 아니라 2황녀님이십니다.”
“뭐?”
“그러니까, 1황자 유클레드 님이 아니라 2황녀 알렉시아 님이시라고요.”
에스텔의 얼굴이 멍해졌다.
“……누가요?”
“지금 눈앞에 계신 분이요.”
“이분이요……?”
“예, 그분이요.”
싸아아.
갑자기 우리가 서 있는 황제궁 앞의 온도가 5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에스텔이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이 알렉시아의 얼굴을 담아냈다.
졸지에 악한 힘이 깃든 존재가 된 알렉시아 역시 평소와 달리 웃음 한 점 없는 서늘한 눈으로 에스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에스텔은 헉 하고 펄쩍 뛰듯이 알렉시아에게서 떨어졌다.
“화, 황녀라고? 진짜? 황자가 아니라 황녀?!”
어지간히도 많이 당황했는지,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알렉시아와 유클레드를 차례대로 손가락질했다.
“황자보다 더 잘생겼는데……?! 그런데 황자보다 더 황자 같은 사람이 어떻게 황녀일 수가 있어!”
의문의 1패를 당한 유클레드의 얼굴이 곧장 불쾌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