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88)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88화(188/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바빠 보이네?”
“너……!”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힘없이 쭈그려 앉아 짧은 휴식을 취하던 에스텔이 두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는 낮에 봤을 때보다 추레해진 몰골이었다.
마리벨과 함께 황궁 안에 있는 삿된 기운의 근원을 찾는답시고 사서 고생하고 다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개고생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었다.
“어마마마한테 허락받아 유예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똥줄 좀 타나 봐? 그러게 애초에 왜 그런 핑계를 대서는.”
“피, 핑계라니? 황궁 안에 삿된 기운이 있다는 건 진짜야!”
에스텔은 혹시 주변에 누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려는 듯이 다급히 눈을 돌려 두리번거렸다.
나와의 대화를 누군가가 들을까 봐 불안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자신을 편들어서 나를 쫓아내 줄 사람이 가까이에 있기를 바라서 그러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멀리서 언뜻 보이는 근위병들 외에는 지금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수행인 없이 몰래 아버지가 있는 궁을 빠져나온 데다가, 일부러 에스텔이 인적 없는 곳으로 혼자 가기를 기다렸다가 다가온 것이니 당연했다.
“가짜 성녀 주제에. 완전히 못 고칠 것 같으면 잘난 척하지나 말든가. 힘도 약한 게 괜히 설치니까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부작용 같은 건 없을 거라고 큰소리치더니, 사실은 너도 장담 못 하겠지? 어떻게 된 게, 넌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내가 언제……!”
자신을 매도하는 매정한 말에 에스텔은 울컥한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감정을 다스리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작게 심호흡했다.
“너……. 네 아버지를 구하고 싶으면 당장 해독제 내놔.”
에스텔은 화를 꾹꾹 억누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열이라도 오르는 것처럼 빨갰다.
이마에는 굵은 식은땀도 배어나왔다.
어쩐지 에스텔의 상태가 아까보다 썩 좋지 않아 보였던 건, 삿된 힘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꽁지 빠지게 돌아다녀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에스텔은 불안하게 입술을 깨물다가, 이내 나를 달래듯이 상냥하게 꾸며낸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왜 날 가짜라고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오해야. 이건 성물의 힘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내가 데메테아 님께 받은 성력이거든? 대신전에서 이미 검증도 다 끝냈어. 그래도 정 의심스러우면 모르페우스 신관님과 마리벨 신관님께 부탁해서 황궁 안에서 다시 공개적으로 검증받을 수도 있어.”
그녀는 아까 나 때문에 강제로 섭취한 독이 몸으로 점점 퍼져 가는 것 같아서 초조한 눈치였다.
“어쨌거나 결국 네 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성녀인 나뿐이야!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이런 짓을 한 걸 후회할 거야. 내가 잘못되면 네 아버지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에스텔은 끝까지 허세를 부렸다.
물론 나한테 그녀의 협박은 우습기만 했다.
“그야 당연히 검증에는 안 걸리겠지.”
나는 자리에서 걸음을 떼 에스텔에게 다가갔다.
에스텔이 경계심 어린 눈으로 나를 보며 반사적으로 주춤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그녀는 얼어붙은 듯이 제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네가 가진 성물, 네 몸 안에 있잖아.”
내 손가락이 에스텔의 명치 부근을 쿡 찔렀다.
“이미 네 일부가 되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성물의 힘이 네 힘인 줄 알 수밖에.”
“그, 그걸 어떻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에스텔은 경악을 넘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성녀를 사칭해 황궁까지 들어온 간 큰 사기꾼답게, 금방 낯빛을 바꿔 뻔뻔하게 소리쳤다.
“증거 있어? 내 몸 안에 성물이 있다는 증거 있냐고?!”
원래 불리한 상황에서 증거를 찾기 시작하는 사람이 빼도 박도 못할 범인이던데.
나는 우기기 시작한 에스텔에게 선선히 말했다.
“물론 지금 당장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보일 수 있는 증거는 없지.”
“그것 봐! 증거도 없이 생사람을 잡다니, 지금 네가 하는 건 엄연한 신성 모독…….”
“근데 넌 운이 좀 나쁜 편이야. 원래는 널 좀 다르게 써볼까 싶었는데.”
물론 에스텔이 쉽게 이실직고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가령 크리오스에 있어야 할 네가 왜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
“헉!”
“네가 굳이 우리 아빠한테 접근해서 이 황궁까지 기어들어 온 이유가 뭔지. 또 누가 너한테 이러라고 시킨 건지.”
“나, 나, 나는 다른 목적은 아무것도…….”
“너하고 천천히 놀면서 하나씩 차근차근 알아보려고 했는데 유감스럽네. 네 성물이 급하게 좀 필요해졌거든.”
“뭐, 뭐라고?”
에스텔은 생각보다 내가 자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처럼 보이자 크게 놀란 듯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에는 일렀다.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성물은 네 안에 있으니까, 그걸 가져가려면 네 몸을 가를 수밖에 없잖아?”
“자, 잠깐만……!”
에스텔이 기겁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 아니, 일단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둘러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에스텔의 뒤에는 벽이 있어서 그녀의 기대만큼 나와 거리를 벌릴 수는 없었다.
“자, 장난이지? 또 나한테 겁줄 생각으로 그냥 협박하는 거지?”
에스텔은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 몸을 갈라서 성물을 꺼내겠다니……. 하하, 3황녀님은 참 짓궂으시네요. 그런 농담을 다 하시고…….”
이내 현실 부정을 할 생각인지 에스텔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물론 나는 웃지 않았다.
에스텔의 입술에 걸려 있던 굳은 미소도 점차 사그라졌다.
“나, 나한테 알아내야 할 게 많이 있다며!”
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내딛자, 에스텔이 벌침에 쏘이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들썩였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내 배후에 누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어차피 순순히 말 안 할 거잖아. 그리고 꼭 널 통해서 알아내야 하는 것도 아니야.”
그녀는 전처럼 내가 어린애라고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고 떨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담황색 눈에 두려움이 서서히 번지는 것을 보니, 내가 진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서, 성물…….”
나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궁지에 몰린 쥐처럼 오들오들 떨던 에스텔이 퍼뜩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황급히 다시 입을 열었다.
“나한테 있는 성물이 필요하댔지? 내가 황궁에 들어와서 찾으려던 것도 내가 가진 것과 비슷한 성물이야……!”
나는 에스텔에게 다가가던 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말이 효과가 있어 보이자 에스텔은 더욱 열성적으로 소리쳤다.
“사, 사실은 지금도 그걸 찾고 있었어! 내가 내일까지 그걸 찾아서 너한테 주면 꼭 날 죽이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그녀의 말을 듣고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찾고 있던 게 성물이라고? 언제는 삿된 힘이 깃든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건, 나쁜 기운이 깃들었으니까 처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손에 넣으려고 그냥 둘러댄…….”
내 의심 어린 물음에 에스텔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한테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고 있는데 또 사기를 쳤다는 걸 자기 입으로 밝히기 어려운지, 그녀는 불안한 얼굴로 내 눈치를 봤다.
“그, 그래! 이렇게 된 김에 너희 아빠한테 물어봐! 이번 마수 토벌 때 가져온 성물을 어디에 뒀냐고. 그럼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거 아니야?”
“우리 아빠 지금 아프거든?”
“앗……. 그, 그럼 너희 엄마한테…….”
에스텔의 목소리가 땅으로 꺼질 듯이 작게 잦아들었다.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에스텔을 의심스럽게 훑어봤다.
“또 거짓말하는 것 같은데? 너, 네 목적을 달성할 생각으로 이런 상황에서까지 날 이용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절대 아니야! 나, 난 진짜 네가 성물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솔직히 말한 거야!”
“근데 너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애초에 삿된 기운이 깃든 물건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거짓이었던 거면, 결국 그걸 정화해서 우리 아빠를 낫게 할 수 있다는 말도 사기였던 거잖아.”
“허업!”
내 지적에 에스텔이 급히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나는 오늘도 멍청해 보이는 에스텔을 하찮은 시선으로 쳐다봤다.
“설령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너 그거 하루 만에 찾을 수 있어? 아니지, 이제 하루도 안 남았네.”
“찾을 수 있어! 찾을 수 있어! 내, 내가 진짜 찾자마자 너한테 줄게!”
에스텔은 내가 승낙하지도 않았는데, 강물에 떠밀려 가다가 지푸라기라도 잡은 사람처럼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그래도 에스텔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멀리서 보이는 황성 안의 시계탑을 한번 확인한 뒤, 에스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 뜨기 전까지 찾아.”
“뭐, 뭐? 라 벨리카 황제가 말한 하루가 되려면 그것보다 한나절은 더…….”
“그래서 싫다고?”
“아아니야!”
에스텔은 말년 병장 앞에서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처럼 곧바로 후다닥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