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92)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92화(192/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내 딸이 성녀라고?”
“내 동생이 진짜 성녀라고?!”
해가 뜬 직후, 어젯밤의 기적을 목격한 주요 인물들이 모두 알현실에 모였다.
라 벨리카 황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범인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유클레드 같은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작은 밤사이 감격스러운 마음을 한결 추슬렀는지 촉촉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덕업일체의 끝판왕답게, 그의 눈에는 꼭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듯한 흐뭇함이 만연한 상태였다.
아이작은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라 벨리가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4부군님뿐만이 아니라 황궁 안에 있는 병자들과 신수들마저 모두 회복시킨 힘입니다. 게다가 3황녀님께서 각성하시어 신성력을 발현하실 때 느낀 이 천연수처럼 맑고 투명하고 또 순수하며 신성하기까지 한 기운은, 데메테아 님께서 성녀님께 직접 내리신 게 분명합니다!”
과연 신전 덕후다운 찬사로군.
그런데 모르페우스를 따르는 하급 신관이 얼마 전에 사람들 앞에서 모르페우스를 찬양하며 했던 말이랑 굉장히 비슷한데?
혹시 덕후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건가?
어쨌든. 아이작의 말대로 내가 성유물을 먹고 신성력 뽕에 취해 있을 때 치유된 건 우리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황성 안에는 온갖 사람이 다 있었는데, 그들의 상태 이상이 한꺼번에 해결된 것이다.
칼에 손가락이 베이거나 감기에 걸린 정도의 작은 부상뿐만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어떻게 해도 낫지 않던 고질병 같은 것까지 싹 다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궁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젯밤에 기적을 경험했다며 경탄 어린 소문이 퍼져 나가는 중이라고 들었다.
“지금 바로 세 사람을 데려오라.”
라 벨리카 황제가 곧장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알현실에 에스텔과 마리벨, 그리고 방금 내가 생각한 하급 신관이 들어왔다.
“폐, 폐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세요!”
에스텔은 라 벨리카 황제를 보자마자 철퍼덕 무릎을 꿇고 애처롭게 호소했다.
그녀는 하룻밤 새 눈에 띄게 초췌해져 있었다.
노숙이라도 한 것처럼 옷차림은 꾀죄죄하고 머리는 산발을 한 채로, 에스텔이 억울한 듯이 원통하게 외쳤다.
“전부 요한 신관 때문이에요! 저자가 저를 방해해서 4부군님의 상태를 악화시킨 사특한 물건을 찾지 못한 거예요!”
“에스텔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 미친놈, 아니, 미친 신관이 갑자기 헛소리를 지껄이며 저와 성녀님을 공격했습니다!”
마리벨까지 분개한 듯이 입에서 침을 튀기며 하급 신관을 삿대질했다.
아, 저 하급 신관 이름이 요한이었군.
듣자 하니 어젯밤에 에스텔과 마리벨, 그리고 요한 이 세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제한 시간까지 명령을 이행하지 못해 에스텔은 몹시도 초조하고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었다.
마리벨 신관이 에스텔의 말을 거들어 덧붙였다.
“폐하. 요한 신관이 어젯밤에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짓거리를 한 것은 황궁 안에 있는 삿된 힘과 접촉했기 때문이라 사료됩니다. 속히 고문, 아니, 취조하여 어젯밤의 행적을 밝혀내야 합니다!”
그런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 마리벨은 저 요한이라는 하급 신관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오, 오해입니다. 저는 단지 데메테아 님을 기만한 가짜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려던 것뿐…….”
“에스텔 님은 가짜가 아니다, 이 무지렁이 같은 놈아! 내가 직접 기도 시간 때 데메테아 님께 신탁을 받았단 말이다!”
“저도 어제 직접 신의 성음을 들었습니다!”
“하, 너 같은 놈에게 성음이라니 그럴 리가! 대신전에 들어오기 전까지 더러운 뒷골목이나 구르던 것이…….”
“마리벨 신관. 요한 신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지요.”
“아이작 신관?”
그때, 아이작이 마리벨의 말을 가로막았다.
마리벨은 왜 아이작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 의아한 모양이었지만, 아이작의 신분 역시 대신전 안에서 무시할 수 없었기에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더 들어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헛소리일 게 뻔한데요. 아이작 신관도 이 녀석이 평소에 어떤 괴상한 짓거리들을 하고 다니는지 알지 않습니까?”
“그렇다 한들 설마 요한 신관이 여신님에 대한 것까지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게다가 마침 성음을 들은 시기가 마음에 걸리는군요.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마리벨 신관이 의식을 잃었을 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직접 여신님께서 내리신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진정한 성녀님께서 나타나셔서 영문 모를 발작으로 위험해진 4부군님을 단박에 치유하셨단 말입니다. 하아, 정말이지! 얼마나 성스러운 광경이었는지요!”
어젯밤의 일을 상기하듯이 아이작이 또 뺨을 상기시키며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마리벨은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또 다른 성녀가 나타나서 다 죽어가던 사람을 되살리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신관이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본능적으로 신성함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위대한 힘이었습니다. 아마 그 압도적인 힘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성녀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마리벨은 불신과 당혹감이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그는 아이작의 말을 순순히 믿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높은 사람들만 있는 자리이기도 했고, 또 아이작의 말을 무턱대고 부정하기에는 확실히 분위기가 묘했다.
“하, 하지만 타국도 아니고 로잔티나 안에서 동시대에 두 명의 성녀가 나온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결국 아이작의 입에서 감정을 약간 억누른 의심의 말이 흘러나왔다.
에스텔도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급히 반발했다.
“난 가짜가 아니에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성녀라면서 나타났다는 사람이야말로 사칭범일 게 분명하다고요! 이렇게 공교로운 시점에 딱 좋게 등장하다니 이상하지도 않아요?”
“내가 가짜라고?”
“헉!”
내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들은 에스텔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고개가 나를 향해 로봇처럼 뻣뻣하게 돌아갔다.
나는 처음부터 계속 어마마마의 옆에 앉아 있었는데, 라 벨리카 황제의 위광에 가려져 나를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지난번에 봤을 때만 해도 나한테 친하게 지내자고 해놓고, 오늘은 이렇게 대뜸 매도하면 서운해.”
“3, 3황녀님이 설마…… 새로 나타났다는 그 성녀?”
나를 가리키는 에스텔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신관님들이 그렇다고 하네? 에스텔 양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방치만 하고 치료하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 말이야. 어젯밤에 내가 각성이라는 걸 해서 완치시켜 버렸나 봐.”
“크흡, 아버지를 생각하는 성녀님의 마음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 갸륵함에 데메테아 님께서 응답하신 게 분명합니다!”
아이작이 감동을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옷소매로 촉촉해진 눈가를 찍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르페우스 신관님.”
“그래……. 정말 여신님께서 3황녀님을 아끼시는 것 같더군.”
모르페우스는 내가 사람들의 앞에서 신성력을 발현한 순간부터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다.
지금도 그는 알현실 안에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 있다가, 아이작 신관이 동의를 구하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짧게 대꾸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3황녀가……. 어떻게 성녀가…….”
에스텔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머리가 고장 난 것처럼 버벅거렸다.
에스텔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정체를 알고 위협한 협박범이 진짜 성녀랍시고 등판한 셈이니 질겁할 만도 했다.
“에스텔 양. 어쨌든 뜻하지 않게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만, 난 꼭 에스텔 양이 가짜라고 생각하진 않아.”
에스텔은 내가 자신을 처참하게 뭉개버릴 줄 알고 긴장했는데 오히려 편들어주는 듯하자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나는 그런 에스텔에게서 시선을 떼고 라 벨리카 황제를 향해 말했다.
“어쩌면 데메테아 여신님께서 로잔티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이번에는 성녀를 두 명 내려주셨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아까 에스텔 양이 말한 것처럼 때마침 아버지가 마수 토벌에서 부상당했을 때 타이밍 좋게 성녀라고 등장한 게 몹시 이상하고 수상하지만…….”
내가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에스텔이 몸을 흠칫했다.
“그래서 말인데, 에스텔.”
나는 다시 에스텔을 응시하며 방긋 웃었다.
“내가 그렇지 않아도 어제 갑자기 각성이라는 걸 하면서 신성력을 많이 썼더니 엄청 피곤해. 그러니까 에스텔 양이 지금 날 좀 회복시켜 줬으면 좋겠어.”
내 말에 에스텔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식은땀만 흘렸다.
그러다가 이내…….
“아, 아아! 어젯밤에 요한 신관님의 주먹에 스친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에스텔이 또 같잖은 연기를 하며 풀썩 쓰러졌다.
“끌어내라.”
라 벨리카 황제가 가차 없이 냉정하게 명령했다.
“이, 이게 무슨! 에스텔 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마리벨도 에스텔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기절한 척하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의 이마에 굵직한 핏대가 섰다.
마리벨은 이를 갈면서 에스텔을 탈탈 흔들었다.
하지만 에스텔은 고역인 듯이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끝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에스텔은 성력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