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9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93화(193/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내가 에스텔에게 강제로 먹인 것 때문이었다.
“빨리 일어나서 성녀라는 것을 증명하셔야 할 게 아닙니까! 에스텔 님……!”
에스텔은 몸에서 열이 오르고 식은땀이 나는 것 때문에 내가 자신에게 진짜 독을 먹였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사실 그건 독이 아니라 엄연한 성수였다.
그것도 아주 강한 축복의 기운을 가진 초특급 성수 말이다.
그러나 에스텔에게는 독이나 마찬가지이긴 했다.
이것은 애초에 가짜 성녀에 대비해 내가 미리 준비하던 것이었는데, 에스텔의 몸속에 있는 성물의 힘을 일시적으로 막는 효과가 있었다.
이번에 신수 서식지에서 만난 쥰이라는 소년이 나한테 성흔과 비슷한 도장을 찍어서 내 신성력을 봉인한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다만 완성 직전에 내 신성력이 봉인되는 바람에, 이번에는 이전 회차들만큼 강력한 효과를 지닌 성수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에스텔이 가진 성물은 한동안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예정이었다.
“폐하, 아무래도 에스텔 님에게는 황궁 생활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의 인도로 4부군님을 치료하시느라 너무 무리하신 게지요. 지금도 이렇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지셨으니, 저희는 일단 대신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마리벨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하니, 한 발 뒤로 물러나기로 한 것 같았다.
진짜 성녀랍시고 갑자기 황녀인 내가 나타났으니, 자칫 잘못했다가는 대신전과 황실의 싸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사실 황실에서도 지금 당장 에스텔을 어떻게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비록 지금은 내 도발에 응하지 않고 상황을 회피하려는 모습이었지만, 일단 마리벨 신관의 주장대로 대신전에서 에스텔이 가진 신성력을 몇 차례의 검증을 거쳐 확인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수상해도 다른 명확한 증거 없이는 에스텔을 가짜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리벨도 라 벨리카 황제가 적당히 타협하고 마찬가지로 한 발 뒤로 물러난 것이라 생각한 듯했으나…….
“불가하다.”
“예?”
라 벨리카 황제는 마리벨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아, 아니, 도대체 왜 불가하단 말입니까?”
마리벨은 경계심과 긴장감이 깃든 얼굴로 라 벨리카 황제를 마주했다.
표정을 보니, 정말 황실에서 나를 앞세워 대신전과 척을 지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마리벨은 잇따른 라 벨리카 황제의 서늘한 말이 다소 뜬금없다고 느낀 듯했다.
“어젯밤에 황실의 중요한 기물을 도둑맞았다.”
“예? 황실의 기물이요?”
“그래, 마침 위스테리아 궁의 손님들이 삿된 힘의 근원을 찾는답시고 황궁 안을 온통 헤집고 다닐 때였지. 방금 3황녀가 말한 대로, 이 또한 시기가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나는 뜨끔했다.
신의 정원에 있던 성유물이 사라진 걸 알아차린 건가?
그, 그 범인은 나인데…….
하지만 당연히 입을 씻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다.
한편 마리벨 신관은 라 벨리카 황제가 진실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을 잡아두기 위해 거짓 이유를 가져다 붙인 건지 긴가민가한 듯했다.
“그래서…… 지금 저희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어젯밤에 황궁에 있던 자들은 조사가 끝낼 때까지 출궁할 수 없다. 그러니 마리벨 신관도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기꺼이 협조하리라 믿지.”
라 벨리카 황제는 그렇게 냉정하게 통보한 뒤, 손짓으로 마리벨과 에스텔을 치워버리라고 근위병들에게 명령했다.
마리벨 신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이곳은 그렇지 않아도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라 벨리카 황제의 홈 그라운드인 황궁이었다.
“3황녀님, 그럼 대신전으로는 언제 출발하실 예정이신지요?”
그런데 그때, 조용히 있던 모르페우스가 갑자기 나를 걸고넘어졌다.
“일단 황궁에서의 일이 얼추 정리된 뒤 저희와 함께 대신전으로 동행하시겠습니까?”
모르페우스의 얼굴은 여전히 고요하여 그 안에서 다른 의도를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놈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눈을 서늘히 빛냈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그, 그렇군요! 3황녀님께서 정말 신성력을 각성하셨다면 마땅히 대신전에 가셔서 검증을 받으셔야지요. 더군다나 그냥 신성력을 각성하신 것도 아니라, 성녀 후보 아니십니까?”
썩은 낯짝으로 에스텔과 함께 퇴장하려던 마리벨이 모르페우스의 말을 듣고 재빨리 끼어들었다.
“또한 3황녀님께서 성녀로 판명된다면, 이후에는 반드시 대신전에서 생활하셔야 합니다.”
“뭐? 앞으로 아스포델이 대신전에서 살아야 한다고?”
유클레드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이 얼굴을 사납게 구겼다.
날카로운 기운을 폴폴 풍기는 게, 어지간히 담이 큰 사람이 아니라면 심장이 쪼그라들 만도 했다.
그래서 마리벨은 몸을 움찔거렸지만,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페우스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데메테아 님께 받은 힘으로 신을 섬기고 제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하긴 뭐가 당연해? 쟤는 이제 고작 열 살이야.”
“신전에는 더 어린 나이에 견습 신관이 된 아이들도 많지요.”
“알 게 뭐야? 우리가 끝까지 못 보낸다고 하면 어쩔 건데?”
나는 꼭 자기 일처럼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서서 모르페우스와 맞서는 유클레드에게 좀 감동했다.
그리고 유클레드를 이렇게 잘 키운 나 자신에게도 감탄했다.
“아, 아무리 황족이라고 해도 데메테아 님의 사랑을 받는 모르페우스 님께 너무 무례한…….”
“당신은 닥치십시오.”
“하앗.”
하급 신관 요한이 모르페우스와 대거리하는 유클레드에게 발끈한 듯이 입을 열었으나, 모르페우스의 싸늘한 일갈에 바로 퇴치당했다.
아니……. 퇴치가 아닌가?
모르페우스에게 욕을 얻어먹은 것치고는 너무 좋아하는데.
알현실에 있던 모두가 상기된 얼굴을 푹 숙인 채 후욱후욱 거친 숨을 내쉬는 요한을 찝찝한 눈으로 쳐다봤다.
모르페우스는 요한에게 경멸 어린 눈초리를 한번 보낸 뒤, 다시 우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물론 3황녀님께서는 황족으로서의 의무도 짊어지신 분이니, 아예 대신전에 귀속되는 것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최소한 몇 년 정도는 대신전에서 따로 교육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는 신성력을 안전하게 다루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이기도 하니, 3황녀님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모르페우스도 황족들이 단번에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먼저 한발 양보하는 모양새였다.
내 안전을 위해서라는 말에 유클레드도 주춤했다.
솔직히 모르페우스가 말한 게 보편적인 사실이긴 했다.
그래서 지난 2회차 때도 내가 대신전에 짱박혀 살면서 마리벨에게 교육을 빙자한 갈굼을 당했던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모르페우스는 자기에게 유리한 홈그라운드로 나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으로 말을 꺼낸 게 분명했다.
“모르페우스 님의 말처럼, 3황녀님께서 대신전에 오셔서 에스텔 님과 함께 교육을 받으시면 되겠군요.”
마리벨이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스리슬쩍 덧붙였다.
우중충했던 그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 걸 보니 살짝 배알이 꼴렸다.
처음에는 내가 성녀랍시고 나대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만약 대신전에 들어온다면 황녀를 자기 밑에 두고 굴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조금 혹한 모양이었다.
계속 기절한 척하던 에스텔도 무심코 눈을 번쩍 떴다가 아차 한 듯이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도 마리벨의 말에 조금 솔깃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지가 생기면 마리벨의 관심이 분산되어 에스텔이 지금보다는 자유로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이기 때문에 에스텔로서는 오히려 옆에 위험인물이 늘어나는 셈이라 갈팡질팡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일단 나는 에스텔이 착각하는 것처럼 이대로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줄 생각도 없었고, 또 내가 직접 대신전으로 들어갈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싫은데.”
“예에?”
“내가 왜 답답하게 신전에서 처박혀 살아야 해?”
나는 입매를 비틀며 신관들의 권유를 빙자한 강요를 단칼에 거부했다.
모르페우스의 눈이 서늘히 가라앉았다.
그래도 그는 내가 순순히 응하지 않을 줄 알고 있어서 동요하지는 않않았다.
하지만 마리벨은 내 반응에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신성력을 각성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성녀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만. 만약 계속 거부하시면 불미스러운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리벨이 나를 겁주듯이 말했다.
당연히 나는 그 하찮은 공격이 가렵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왜 신관들의 인정을 받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