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99)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99화(199/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다음에는 정말 성유물을 찾았을 때 연락하라고 했을 텐데요.
앳되고 낭랑한 목소리.
왠지 이런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서였지?
“그, 그게 이변이 생겨서요.”
-이변?
내가 잠깐 고민에 빠진 사이, 에스텔과 크리오스 제국의 성녀는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에스텔이 정말 이러면 되느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3황녀가…… 성녀 후보가 되었어요.”
에스텔의 말에 잠깐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도 숨소리를 죽이고 성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다렸다.
곧 마석에서 의아한 반문이 흘러나왔다.
-지금요?
“네, 네.”
-왜 벌써…….
“예?”
-아니에요. 그래요, 그렇게 되었군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서 놀랐겠어요, 에스텔.
크리오스의 성녀가 에스텔을 다독이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기론 크리오스의 성녀 역시 나와 비슷한 나이일 텐데, 기묘할 정도로 어른스럽고 침착한 느낌이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성녀 노릇을 해와서 그런가?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라고 하기엔, 크리오스의 성녀는 에스텔의 말에 조금도 충격을 받거나 놀란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내 예상이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에스텔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나를 힐끔거리며 자신의 성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성녀님이 저한테 3황녀를 주의하라고 계속 그러셨잖아요. 혹시 성녀님은 3황녀가 로잔티나의 성녀인 걸 알고 계셨어요?”
-나는 제누스 신의 선택을 받은 크리오스의 성녀예요. 나의 신께서 내게 말해주셨답니다.
에스텔은 ‘헙!’ 하고 감탄 어린 숨을 터뜨리며 입을 막았다.
반면 나는 성녀의 말을 듣고 얼굴을 구겼다.
그게 사실이라면 제누스 신은 참 쓸모 있는 신인데?
이쪽의 신이라는 데메테아는 자기 필요할 때만 나타날 뿐 아니라, 나한테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보다 에스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보세요.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3황녀가 성녀 후보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 그게……. 4부군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 3황녀가 신성력을 각성했어요.”
에스텔이 또 나를 힐끔거리면서 우물쭈물 말했다.
왠지 슬그머니 눈을 굴리는 걸 보니까 지금이라도 다시 성녀의 편으로 돌아서 내 뒤통수를 칠지 말지 각을 재는 것 같았다.
나는 허튼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에스텔의 머리카락이 혼자서 동그랗게 꼬아지며 위로 올라갔다.
에스텔이 유령이라도 본 듯이 히익 숨을 들이켰다.
뭐, 유령이라는 게 틀린 소리는 아니긴 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내 성령인 티타니아가 지금 에스텔의 옆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으니까.
에스텔은 멀리 있는 성녀보다 가까이에 있는 내가 무서웠던 듯, 깨깽 하면서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다가 에스텔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성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참, 그런데 분명 성녀님이 4부군한테 부작용이 일어날 걱정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멀쩡하던 4부군이 위중해졌다고 해서 얼마나 곤란했다고요.”
에스텔은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듯이 약간 불편한 내색을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에스텔을 위로해 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마석에서는 여전히 상냥하나 미묘한 성가심과 한심함을 담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스텔이 무능한 건 내 책임이 아닌데, 지금 날 탓하는 건가요?
“뭐, 뭐라고요?”
-나도 당황스러워요. 성유물의 힘을 받아놓고도 이렇게 쓸모가 없다니. 애초에 에스텔은 크리오스에서도 도대체 무슨 용기로 성녀 흉내를 내려고 했던 거예요?
성녀의 지적에 에스텔은 말문이 막힌 듯이 어버버거렸다.
-하지만……. 어쨌거나 에스텔은 내가 보호해 줘야 할 신자이니, 이대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죠.
이것 봐라, 당근과 채찍을 교묘하게 사용하는데?
-예정을 앞당겨서 좀 더 일찍 로잔티나로 갈게요.
“가, 감사합니다, 성녀님. 그, 그럼 언제 오세요?”
-먼저 크리오스 황실에 대신전의 의사를 전달해야 할 테지만, 승낙하지 않을 리 없으니……. 원래 예정보다 보름 정도는 앞당길 수 있을 거예요.
크리오스에서 이미 성녀는 꽤 막강한 권력을 지닌 듯했다.
그녀는 대신전에서 의견을 전달하면 당연히 황실이 거기에 따를 것이라는 듯이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앗, 그렇군요. 성녀님이 빨리 오신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네요…….”
-지금 로잔티나에 성녀 후보가 둘이 되었다니, 시기가 이른 듯하지만 오히려 잘 이용하면 생각보다 재미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어요. 내가 도착할 때까지 잘 버티고 있어 봐요.
“예! 성녀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면서 물건도 열심히 찾아볼게요. 저, 그리고 혹시 새로운 지시 사항 같은 건 없나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성녀가 되세요. 에스텔은 똑똑하니까 내가 굳이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해요.
“미……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녀님. 그럼 성녀님이 오실 때까지 그 3황녀는 제가 자근자근 잘 밟아두고 있을게요!”
에스텔이 성녀를 향해 결의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에스텔은 움찔하면서 또 내 눈치를 봤다.
그래도 연기라고 치면 이쪽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기는 해서 나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에스텔은 마석의 연결을 끊어 크리오스 성녀와의 대화를 끝마쳤다.
그런 뒤, 나는 방금의 일을 통해 알아낸 사실을 곱씹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이걸로 확실해졌다. 에스텔, 넌 어차피 여기에 죽으라고 보내진 거였네.”
“뭐, 뭐라고?!”
“로잔티나에서 분탕질 좀 치다가 자폭하라고 여기에 보낸 거였군.”
에스텔은 크리오스의 성녀와 통신한 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지 불안하게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반박했다.
“그, 그럴 리가 없어! 성녀님은 물건을 찾은 뒤에 날 다시 데려가겠다고 하셨어!”
“너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으니까 유클레드를 꼬드겨서 로잔티나에 자리 잡을 생각이었던 거 아니야?”
“그건……!”
에스텔이 내 말에 자신의 흑역사를 떠올린 듯이 얼굴을 붉혔다.
아무튼, 나는 에스텔의 혼란을 책임져 줄 마음이 없었다.
그녀에게 내 생각을 자세히 설명해 줄 의무도 없었다.
“어쨌든, 방금 들었지?”
“뭐, 뭘……?”
“너희 나라 성녀 말이야. 너한테 성녀보다 더 진짜 같은 성녀가 되라잖아.”
에스텔은 여전히 의문과 경계가 섞인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삐딱하게 웃어 보였다.
“저렇게 기대하고 있는데 실망시키면 안 되지.”
* * *
“아스포델, 너 그 소식 들었어?”
“뭔 소식?”
“그 성녀인지 나발인지 하는 애 말이야. 갑자기 착한 척하면서 로잔티나 제국민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한다잖아.”
대신관이 다녀간 뒤에도 ‘아스포델 절대 지켜!’ 작전을 고수하며 나를 보러 온 유클레드가 마뜩잖다는 듯이 미간을 좁힌 채 투덜거렸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에스텔이 내 말대로 움직였나 보군’ 하고 생각했다.
“너무 속 보이지 않아? 대신전에서 두 명의 성녀 후보에 대해 공표하는 시기에 맞춰서 괜히 보란 듯이 나대는 거 아냐?”
에스텔은 한때 야심 차게 1황자비의 자리를 노렸지만, 사실상 그녀의 계획은 이제 완전히 텄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이렇게 유클레드에게 제대로 밉보인 것 같았으니 말이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번에 황궁에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반성하는 취지로 마리벨 신관과 함께 봉사하는 거라잖아?”
“그럼 그냥 대신전으로 돌아가서 소리소문없이 하면 되지, 왜 굳이 황궁에 손님으로 머물면서 시끄럽게 왔다 갔다 하겠다는 거야? 어마마마도 왜 그런 걸 허락하신 거지?”
“에스텔의 소속은 대신전이라 움직임을 제한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그렇겠지.”
대신에 에스텔이 황궁 밖으로 나갈 때마다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을 붙일 게 분명했다.
나도 에스텔이 혼자 도망갈까 봐 염려하지 않았다.
성유물의 힘이 없는 에스텔은 보통의 평범한 여자아이였으니 감시망을 뚫고 도망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스포델, 넌 이대로 있을 거야?”
유클레드는 생각할수록 기분이 언짢은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상태로 내게 물었다.
“물론 난 네가 괜히 성녀라고 소문나서 귀찮아지는 건 싫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그 에스텔인지 뭔지 하는 애가 설치게 내버려 두는 것도 뭔가 마음에 안 드네.”
“나도 할 일 있어.”
“할 일? 뭔데?”
“난 에스텔이 뼈 빠지게 봉사할 동안 잠깐 유람이나 다녀오려고.”
“뭐?”
내 뜬금없는 말에 유클레드가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에게 친절하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줬다.
“레예스네 놀러 갔다 오려고.”
“뭐어? 아니, 네 친구도 아니고 내 친구 집에 네가 왜…….”
“이미 어마마마 허락도 받았어.”
“……?!”
물론 진짜 놀기 위한 목적으로 가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