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0화(20/207)
“아이쿠, 그만 나가 봐야겠네요. 까꿍아, 아빠 내일 또 올게. 그때까지 건강하게 있어.”
나는 왠지 좀 짜증이 난 상태로 카루스에게 업혀 신의 정원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와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나를 보고 마가렛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카루스는 혹시 안에서 자기가 나한테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어 뒤늦게 걱정이 되었는지 내 눈치를 보면서 불안해했다.
나는 그런 그를 두고 그냥 다시 아버지가 있는 궁으로 돌아갔다.
* * *
‘여기서 혼자 뭐 해?’
그날 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꿈을 꾸었다.
‘오늘 3황자 궁에서 다 같이 다과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빙의 2회차, 열 살 때의 어느 날.
그날은 황자, 황녀들의 다과 모임에서 그들의 호감도를 높이는 주요 에피소드가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이미 1회차의 실패를 경험 삼아 이부 형제들의 공략은 때려치우기로 결정한 뒤라, 나는 그 모임에 불참했다.
그래도 끝내 마음 쓰이는 게 하나 남아 있어서 다과 모임이 한참 진행 중일 무렵 결국 3황자 궁으로 향했다.
역시나 어린애 하나가 3황자의 궁 앞에 벌을 받듯이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날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아이는 주위에 시종도 하나 두지 않고 그 비를 쫄딱 맞고 있었다.
이미 소설에서도 본 장면이었고, 지난 1회차에서도 겪은 적이 있는 일이었다.
두 번째이긴 하지만 어린놈이 기묘하게 고요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우산을 씌워주자 덥수룩한 검은 머리를 가진 작은 남자아이가 흠칫해 고개를 들었다.
예쁜 주홍색 눈.
그러나 그는 나와 눈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고 황급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 저……. 3황자님이 허락할 때까지 밖에 서 있으라고 하셔서…….’
이때 나는 4황자와도 적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1회차 때 쓴맛을 본 이후로 나는 아스포델의 다른 남매들과 친하게 지내며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4황자는 적당히 관리해 주지 않으면 나중에 악의 세력에 흡수될 위험이 있긴 했다.
그래서 이번엔 그렇게 되기 전에 악역들을 깨끗이 뿌리 뽑을 계획이었다.
그럼 어차피 4황자도 다른 황족들과 굳이 가까이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런 이유로 지난 회차에서와 달리 내 태도가 살갑지 않아, 이번 생에서의 그는 내게도 서먹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 4황자가 이렇게 비 오는 날 궁 밖에 서 있는 건 다른 황녀, 황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3황자만의 농간인 게 분명했다.
그들은 이런 날씨에 어린애를 벌주듯이 세워둘 정도로 비열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심지어 2황자 루벨리오조차 이런 일은 질색했으니까.
물론 루벨리오는 중간 보스급 악역이었지만 그래도 날 상대할 때만 더럽게 굴었지, 평소에는 고상하지 못한 걸 퍽 혐오했다.
‘너, 저 다과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저는…….’
로잔티나에서는 신의 정원에 열매로 맺힌 순간부터 나이를 셌다.
그러니 개화하지 못한 채 로사리움에서 열매로 지낸 3년의 시간까지 합해 4황자의 나이는 이제 여덟 살이었다.
그런데 이때는 성장이 더뎌 몸집이 볼품없을 정도로 왜소했던 탓에, 4황자는 나이보다 훨씬 더 어려 보였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창백한 하얀 피부가 대비되어 꼭 병든 오골계 새끼 같아 보이기도 했다.
4황자는 내 물음에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시간이 꽤 지나서 슬슬 파장할 것 같기는 한데……. 들어가고 싶으면 지금 나랑 같이 갈래?’
사실 난 그의 이런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처럼 소설의 에피소드대로 4황자를 다과 모임에 데려가 줄까 싶어서 물었다.
겸사겸사 3황자도 엿 먹이고, 다른 이부 형제들과 4황자의 안면이라도 트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다 한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그냥 마침 한가한 때에 다과 모임 에피소드가 겹쳤을 뿐이니까.
게다가 내심으로는 4황자와 다른 이부 형제들이 많이 친해지면, 꼭 내가 녀석을 챙기지 않아도 나중에 흑화해 악역 편에 붙는 일도 없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숨어 있었다.
‘3황녀님하고…… 같이요?’
내 말을 들은 4황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 밑으로 가려져 있던 눈이 다시 드러났다.
기이할 정도로 맹렬한 빛을 품은 눈이었다.
‘……제가 3황녀님과 동행해도 될까요?’
여기까지 4황자의 대사는 소설이나 지난 빙의 1회차 때와 크게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뒤이은 내 대답은 그때와 달랐다.
‘그래. 난 너만 데려다주고 금방 나올 거지만.’
그래도 당연히 승낙할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에서도 몇 번이나 서술되었다시피 4황자는 애정 결핍이었고, 그는 늘 다른 이부 형제들을 동경해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으니까.
‘그럼 저도 안 들어갈래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망설임 없이 떨어진 대답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황자의 궁을 쳐다보던 눈길을 내려 다시 4황자를 응시했다.
‘다과 모임에 참석하시려던 게 아니면, 3황녀님은 어디에 가시던 중이었어요?’
‘그냥 잠깐 산책을 나왔다가 다시 내 궁으로 가려던 참이었지.’
‘저기, 그럼 제가 3황녀님 뒤를 따라도 될까요?’
뜻밖의 말에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어서 입술을 살짝 끌어 올렸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아이가 얼른 변명하듯이 입을 열었다.
그냥 3황녀 궁으로 가는 길목까지만 따라가겠다느니,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거슬리게 굴지 않겠다느니, 하는 소리가 작은 입에서 어물어물 흘러나왔다.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툭 내뱉듯이 말한 뒤 돌아섰다.
내가 손짓하자 의미를 알아차린 마가렛이 4황자에게 들고 있던 남는 우산을 하나 건네줬다.
잠시 후, 내 뒤를 조심히 뒤따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4황자는 정말 신경에 거슬리는 짓은 단 하나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내 등 뒤에서 걸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침묵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혼자 결정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이 녀석은, 이번 생에서도 어떻게든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 * *
짹짹.
“…….”
그리고 눈을 뜨자 아침이었다.
‘아씨, 개꿈 꿨네.’
조금 전까지 눈앞에 펼쳐졌던 꿈 내용을 되새기는 동안 기분이 점점 더 더러워졌다.
아니, 뭐 이런 기분 나쁜 개꿈이 다 있어?
어제 놈의 열매를 보고 온 탓인가?
아무튼 불쾌한 아침이었다.
“잠꾸러기 황녀님, 일어나실 시간…… 어머, 벌써 눈을 뜨셨네요?”
“마가렛, 나 소금!”
“네? 소금이요?”
결국 나는 마가렛이 가져다준 소금을 창밖으로 뿌려 공기를 정화하고 난 뒤에야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
Chapter 7
미래를 위한 인재 발굴은 일찍부터
“참나, 진짜 별 재수 없는 꿈을 다 보겠네.”
지난밤의 꿈을 곱씹으며 나는 혼자 구시렁거렸다.
꿈자리 한번 뒤숭숭하기도 하지.
도대체 언제 적 케케묵은 일을 끄집어내서 보여주는 거람?
“뀽뀽?”
“꺙꺙!”
그때 불현듯 눈앞에서 희고 둥근 뭔가가 꼼지락거렸다.
“꾸앙!”
아이구.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 손을 멈췄더니 앞에 있던 아가들이 날 보채기 시작했다.
하트 모양 귀와 꼬리를 단 찹쌀떡 같은 새끼 신수들이 내 앞에 옹기종기 모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윽, 귀여워. 그래그래, 장난감 여기 있다~!”
심장을 격침당한 나는 흐물흐물 녹아 손에 들고 있던 분홍 갈대 풀을 더 열렬히 흔들었다.
지금 난 아버지 록샨이 일하는 황성 내의 신수 둥지에 와 있었다.
신수들에게 먹이를 주는 등 기초적인 생활을 돌봐주는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아버지가 직접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수들과 함께 있는 아버님……. 오늘도 아름다우셨지.’
캬하, 난 아까 보았던 장면을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며 감탄했다.
‘마음이 계속 꾸리했는데 확실히 기분 전환이 되는구먼.’
게다가 새끼 신수들도 귀엽고.
그래, 난 원래 이런 귀염뽀짝한 걸 좋아한단 말이다.
말랑하고 보송한 작은 생명체들을 보면 마음이 포근해지면서 하루의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잖아.
‘그런 거대 닭둘기 같은 무시무시한 마수가 아니라…….’
어제 드디어 수정 조달이 완료되어 그 안에 박제된 흰 괴조를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촉촉해졌다.
감히 우리 어머님 라 벨리카 황제 폐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진짜 그 박제품은 내 놀이방에 위풍당당하게 장식되었다.
그걸 볼 때마다 마가렛과 내가 흠칫거리는 건 덤이었다.
더불어 내 눈에 맺히는 이슬도 나날이 늘어가는 것 같았다.
“이 녀석아! 둥지는 구석구석 눈에 안 띄는 곳까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사실은 오늘 여기에 그냥 놀기만 할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었다.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보이는 광경에 열정적으로 갈대 풀을 흔들던 손이 조금 느려졌다.
시선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