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0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00-201화(200/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이런 시기에 바스티온으로 가는 건 애매한 것 같기도 했지만, 오히려 지금이기에 적절한 면도 있었다.
우리 아버지도 두 명의 성녀 후보니 뭐니 하는 때였기 때문에 이번 출궁에 비교적 쉽게 동의한 것이다.
지금 내가 황궁을 떠나면, 사람들의 이목은 내가 아닌 또 다른 성녀 후보에게 집중될 터였으니 말이다.
대신전에서는 우리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두 명의 성녀 후보가 각각 누구인지 정확한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니 에스텔이 나댈수록 또 다른 성녀 후보의 존재는 베일 뒤에 가려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제가 그 타락한 신의 영혼을 담은 그릇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나는 얼마 전에 위스테리아 궁에서 레예스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갑자기 이게 다 무슨…….”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속사정을 모르는 유클레드는 내 말에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듯이 녀석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넌 이런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도 없이 결정한 거야? 게다가 레예스네 집이라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를 향한 유클레드의 눈빛이 기이해졌다.
“아스포델 너, 사실은 내가 전부터 뭔가 이상했는데…….”
응? 그런데 왜 이렇게 심상치 않은 표정인 거지?
설마 이 녀석이 뭔가를 눈치챘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리고 역시 긴장할 필요 없었다.
이렇게 한껏 분위기를 잡은 유클레드의 입에서 다음 순간 은밀하게 속삭여진 말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설마 레예스, 그 녀석한테 관심이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흐린 눈으로 유클레드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세상 심각한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레예스는 로잔티나의 열두 기둥 중 하나인 바스티온의 후계자인 데다가, 성품도 나무랄 데가 없긴 하지. 아스트리움에서 같이 공부할 때 보니 나서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도 머리는 비상한 편이고……. 외부와 교류가 적어서 ‘로잔티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에는 꼽히지 않았지만, 외모도 그 정도면 루벨리오 같은 애들보다 훨씬 훌륭한 것 같긴 해. 뭐야, 그럼 설마 레예스는 단점이 없는 건가? 역시 내 친구……. 아니, 이게 아니라!”
유클레드는 말할수록 그럴듯하다 싶었는지,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내 어깨를 덥석 붙들었다.
“너, 너 이 오빠한테만 솔직히 말해봐. 진짜 레예스 좋아해?”
이 녀석은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로서는 좀 헷갈렸다.
어쨌든 별일도 아닌데 예민하게 반응하는 유클레드 녀석을 보니, 오랜만에 내 청개구리 심보가 또 발동하는군.
“뭐, 그렇다고 하면 어쩔 건데?”
쿵!
그 순간, 유클레드는 나한테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그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안 돼! 절대 안 돼, 난 반대야……! 네 나이가 몇인데 벌써 그런 데 관심을 가져? 넌 아직 아빠랑 오빠한테만 붙어 다닐 나이잖아!”
개구리가 올챙이일 때 기억을 못 한다더니, 유클레드는 본인이 이 나이일 때 다 큰 어른인 척했던 걸 까맣게 잊고 황당한 소리를 지껄였다.
“레예스 이 자식, 가만두지 않겠어! 어쩐지 널 볼 때마다 평소보다 말랑말랑한 얼굴로 간지럽게 눈웃음을 치더라니! 안 그런 척 남한테 은근히 선 긋는 성격이면서 너한테만 유독 다정하게 굴고! 물론 네가 귀여우니까 누구라도 네 앞에서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리고 너도 레예스 그 녀석이 너한테 그렇게 친근하게 구니까, 어린 나이에도 흥미와 호감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만……!”
급발진해서 열을 내다가 또 혼자서 뭘 납득했는지 오락가락 혼란스러워하는 유클레드의 꼴이 여간 웃긴 게 아니었다.
어라, 이거 아무래도 귀찮아질 것 같은데.
나는 또 육아물 속 동생 바보 오빠의 계보를 이으려는 조짐을 보이는 유클레드를 성가신 눈으로 쳐다보며 잠깐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마침내 제법 괜찮은 제물을 물색하고는 입을 열었다.
“유클레드 오빠,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 마. 방금은 그냥 농담한 거야.”
“지, 진짜?”
“그래, 사실은 내가 왜 바스티온에 가려고 하냐면…….”
* * *
“왜…… 제가 3황녀님을 바스티온에 초대한 것으로 되어 있는 거지요?”
오랜만에 보는 소년은 굉장히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내게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는 소년을 향해 대충 손을 휘휘 흔들었다.
“어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성의 없는 설명으로 퉁 칠 상황이던가요? 3황녀님 때문에……! 아까도 제가 1황자님한테 얼마나 귀찮게 시달렸는지 아세요?”
소년은 울컥한 듯이 내게 따졌다.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다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추긴 했지만, 레예스와 닮은 얼굴에는 여전히 나를 향한 불만이 그득했다.
그는 바로 <황녀 아스포델>의 남주인공이자, 레예스의 동생인 카일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나는 라 벨리카 황제의 허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황궁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오늘이 바스티온으로 출발하는 날이었다.
레예스와 카일도 황궁에서 같이 합류하기로 했는데, 카일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큰 불만이 있는 듯했다.
그건 내가 유클레드에게 카일의 이름을 팔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나는 유클레드가 갑자기 레예스를 향한 경계심과 적대심을 불태우는 것을 깨닫고 그 화살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사실은 카일이 초대해서 바스티온에 가려는 거야.’
‘뭐, 카일? 그게 누구……. 혹시 레예스 동생을 말하는 거야?’
‘어, 맞아. 레예스 동생.’
유클레드는 내 말에 긴가민가한 눈치였다.
‘하지만…… 넌 분명 그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잖아?’
‘사람 마음은 원래 변하게 마련이지.’
‘이, 이렇게 갑자기?’
‘원래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좋다는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게 마련이잖아? 바스티온 둘째 공자가 그렇게 내 마음에 들고 싶다니 기회 정도는 줘 보기로 했어.’
그렇게 해서 카일은 지금도 유클레드의 경계심 어린 탐색의 눈길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유클레드의 눈은 마치 먹잇감을 어떻게 사냥할지 생각하는 사자 같았다.
나는 한번 혀를 찬 뒤, 카일의 팔을 잡아당겼다.
내가 그에게 고개를 가까이 기울이자 카일의 몸이 살짝 뻣뻣하게 굳어졌다.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그럼 더 성의 있게 설명해 줄게. 이건 다 네 형을 보호하기 위해서야.”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변명…….”
“넌 네가 유클레드 오빠에게 당한 짓을 레예스한테 겪게 하고 싶어?”
“……!”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한 내 말에 카일의 입이 딱 다물렸다.
그의 눈은 큰 깨달음을 얻은 듯이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기 형 사랑이 대단한 놈이었다.
그러다가 카일이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뭔가가 이상하다는 듯이 눈매를 설핏 찌푸리며 나를 쳐다봤다.
“잠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황녀님이 형한테서 떨어지면 되잖아요?”
앗, 이 녀석이 제법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는데?
“그건 안 돼.”
“왜요?”
나는 카일을 좀 더 바짝 끌어당겼다.
그는 또 불편하게 몸을 움찔거렸다.
나하고 가까이 붙어 있어서 더운지, 카일의 귀는 아까보다 약간 붉어 보였다.
나는 거기에 대고 좀 더 은밀하게 속닥거렸다.
“너희 형하고 나는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거든. 한마디로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지.”
“뭐? 그건 또 무슨……. 아니, 누구 마음대로 남의 형하고…….”
카일이 불쾌감과 의아함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보며 반문하려고 했을 때, 불현듯 음산한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내가 모르는 새 정말 둘이 많이 친해졌나 봐?”
“헉!”
카일이 소스라치게 놀라 번쩍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유클레드가 우리의 뒤에 서 있었다.
“아, 유클레드 오빠. 카일이 나랑 같이 바스티온에 갈 생각을 하니까 너무 기대된다고 하네? 설레서 막 가슴이 두근거린대.”
“뭐, 뭐? 내가 언제…….”
카일이 당혹감에 빨갛게 물든 얼굴로 기겁해서 반박했으나, 이미 늦었다.
“호오, 그래? 쪼그만 게, 또 그런 발랑 까진 말로 순진한 우리 아스포델을 꼬드기고 있었단 말이지?”
유클레드는 떠나기 전에 잠깐 이야기 좀 나누자며 카일의 뒷덜미를 덥석 잡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나를 보는 카일에게 힘내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 줬다.
카일은 그때서야 내가 방금 일부러 그에게 친한 척했다는 걸 알았는지, 억울함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렇게 나는 카일을 유클레드에게 제물로 던져준 뒤 주변을 살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