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01)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02화(201/207)
Side
더글라스 뷔요른과 테드릭 린델
“고생하셨습니다, 뷔요른 공.”
“자네들이야말로 수고했네. 이번에 신세 진 일은 잊지 않도록 하지.”
“별말씀을.”
더글라스 뷔요른은 참모들과 함께 감찰부를 등지고 궁 밖으로 걸어 나왔다.
밝은 햇빛이 내리비친 더글라스의 얼굴은 전보다 약간 말라 인상이 한층 각박해 보였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스트리움의 일은 오늘로 마무리되었다.
사건에 연루된 교수들은 당연히 줄줄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미꾸라지처럼 틈새로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번 일로 그가 입은 피해도 막심했다.
더글라스는 일련의 사태에 모든 책임을 지고 학장 자리에서 사퇴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기부금 형식으로 받은 돈도 모조리 로잔티나 국고에 집어넣어야만 했다.
그렇다 해도 더글라스 뷔요른이 실제로 받은 기부금은 장부에 적힌 것의 배는 되었기에, 숨겨둔 자금까지 모조리 털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더글라스 뷔요른으로서도 이 일로 인한 출혈이 제법 컸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러고 나서야 겨우 한시름 덜게 된 더글라스에게 며칠 전에 믿기지 않는 소식이 전해졌다.
‘3황녀가 성녀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도대체 왜 3황녀가 느닷없이 신성력을 각성했단 말인가?
그럼 그가 먼저 대신전에 들여보낸 에스텔은?
설마 이대로 정식 성녀가 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건가?
‘몇 달 전에 우연히 뛰어난 신성력을 가진 소녀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하늘이 나를 돕는다고 생각했거늘!’
더글라스는 에스텔이 정식 성녀로 인정받고 나면, 아예 공식 후원자가 되어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예정이었다.
필요하다면 에스텔을 양녀로 들일 생각도 있었다.
에스텔이 진짜든 아니든, 그런 건 상관없었다.
더글라스 뷔요른이 가진 힘이라면 가짜도 얼마든지 진짜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에스텔을 이용해 대신전까지 장악하여 훗날을 위한 더 큰 도약을 모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에스텔이 대신전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가짜라는 의심을 샀단 말인가!
더군다나 에스텔은 더글라스가 아스트리움의 일로 정신없이 바쁜 사이에 황궁에서 온갖 분탕질을 다 치고 돌아다닌 모양이었다.
운 좋게 4부군 록샨을 치료해 위풍당당하게 황궁에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후 그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에스텔의 신성력이 의심받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 뒤 에스텔은 쥐약이라도 먹었는지 황궁 안에 사악한 힘이 깃든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며 한바탕 소란을 떨기까지 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더글라스 뷔요른의 손녀인 2황녀 알렉시아를 두고 삿된 기운이 느껴진다느니 하며 망발을 지껄였다는 부분에서는 저절로 이가 갈렸다.
그나마 황궁의 귀중한 기물을 도난당한 사건에는 증거가 없어 가까스로 혐의를 벗은 모양이지만, 성녀로서의 에스텔의 입지는 이미 위태로워진 상태였다.
마리벨 신관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린 계집이 천지 분간 못 하고 설치는 걸 막기는커녕 오히려 한술 더 떠서 황실 모독죄로 큰일을 당할 뻔했으니…….
‘하여간 머저리 같은 것들. 하지만 이제는 이 더글라스 뷔요른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더글라스 뷔요른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마차에 올랐다.
“대신전에서 발표한 성녀 후보가 오늘 황궁 밖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했지? 데메테아 님의 성총이 깃든 성녀라니 보고 싶군.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가자.”
* * *
“이제 행렬이 안 보이네요.”
“그렇군, 우리도 이만 들어가지.”
바스티온으로 향하는 행렬이 출발하고 나서도 배웅을 나온 사람들은 곧바로 떠나지 않고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 3부군 쿤차가 먼저 궁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옆에 있는 카루스를 보고 흠칫했다.
“아니! 카루스, 자네 아직도 그렇게 눈물을 짜고 있었나?”
“죄, 죄송합니다. 주책인 걸 알면서도 자꾸 감정이 북받쳐서 그만…….”
카루스가 붕어처럼 퉁퉁 부은 눈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멋쩍은 듯이 웃었다.
“올해 저희 제르가 신성 의식도 치르고, 이렇게 형 누나들하고 같이 여행도 가고, 아버지로서 해준 것도 없는데 혼자 열심히 쑥쑥 크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저는……. 왠지 마음이……. 크흥.”
카루스는 말하다 보니 또 감정이 올라오는지 손수건에 대고 코를 풀었다.
쿤차는 그런 카루스의 모습을 보고 쯧쯧 혀를 찼다.
“자네도 참 요란하게 구는구먼. 아무튼, 나는 먼저 가보겠네. 이제부터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 말이야.”
“앗! 쿤차 님, 지금 다른 약속이 있으신가요? 괜찮으시면 함께 차나 한잔 나눌 수 있을까 했는데…….”
카루스는 시무룩하게 말끝을 흐리다가, 이번에는 옆에 있는 테드릭을 향해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럼 혹시 테드릭 님은 어떠신지…….”
“이런, 미안하네. 나도 지금은 할 일이 있어 어려울 것 같군.”
하지만 난감한 미소를 짓는 테드릭을 보며 카루스는 실망한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예전에는 다른 부군들의 그림자만 봐도 어쩔 줄 모르던 사람이 이렇게 먼저 차를 마시자고 권유할 줄도 알게 되다니, 카루스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만했다.
“역시 중책을 맡으신 분들께서는 늘 바쁘시군요. 저만 제르가 없으니 할 일이 없나 봐요.”
“카루스, 자네도 참 눈치가 없구먼. 사실 자네야말로 지금 가장 바빠야 할 사람 아닌가?”
“예?”
쿤차가 희멀건 두부처럼 맹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루스를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이 답답한 사람 같으니. 자네가 지금 한가하게 차나 끓일 때냐 이 말이네. 내가 자네를 도와줘야 할 이유는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맹물처럼 밍밍하기 짝이 없는 자네 같은 사람은 어차피 내 경쟁자가 되지 못할 테니 넓은 마음으로 하나 일러주지.”
카루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쿤차의 눈에는 한심 쩍은 기색이 완연했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해보게. 1부군과 내가 지금 왜 이렇게 바쁘게 각자의 궁으로 돌아가려고 하겠나? 설마 진짜 일이나 하려고 자진해서 궁에 처박히려는 것처럼 보이나?”
“그, 그런 게 아니었나요……?”
“쯧쯧쯧.”
쿤차가 이래서 너는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음 순간, 불현듯 쿤차의 손이 카루스의 어깨를 확 붙들었다.
카루스는 바로 코앞에서 쿤차의 눈이 강렬하게 번뜩이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이건 절호의 기회일세.”
“예, 예?”
그런 그를 향해 쿤차가 비밀 얘기를 하듯이 아주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은밀하게 속닥거렸다.
“이제 록샨도 없고 아이들도 확 줄었으니 폐하께서 적적하실 게 아닌가? 그런데 이 좋은 기회를 허투루 날려 먹을 셈이야?”
“그 말씀은…….”
“응당 정갈히 목욕재계를 하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답게 치장해 폐하를 즐겁게 해드려야지!”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카루스가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쿤차는 벌써부터 아주 대단한 의욕이 어린 얼굴로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얄미운 록샨이 또다시 자리를 비운 지금이야말로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비록 라 벨리카 황제의 명으로 록샨이 마수 토벌을 나갔던 얼마 전에는 총애를 독차지하는 데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더욱 심기일전하여 황제의 눈에 드는 데 성공하고 말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렇게 야심과 의욕이 가득한 쿤차의 모습에 테드릭이 약간 곤혹스러운 얼굴로 변명했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 가문에서 전보가 와서 답신을 보내려 하는 것인데…….”
“흥, 굳이 그렇게 아닌 척할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저 맹탕 같은 카루스가 아니고서야 다 같은 생각일 테니까. 그럼 저는 폐하를 모실 준비로 바빠서 먼저 실례.”
쿤차는 턱을 높이 든 채 도도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 그렇군요……. 쿤차 님과 테드릭 님 모두 폐하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벌써부터 준비를…….”
방금 쿤차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카루스가 흔들리는 눈으로 옆에 남은 테드릭을 훔쳐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혈색 없이 하얀 카루스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다시 창백해졌다가 왔다 갔다 했다.
목이 타는 것처럼 카루스는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다.
“아니, 카루스. 오해네. 난 정말 서신을 보낼 곳이 있어서 자네의 초대를 거절한 것뿐이야.”
“예, 예에. 물론 그러시겠지요. 그, 그럼 저도 두 분을 방해하면 안 되니 이만…….”
카루스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흘리며 어정쩡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미 테드릭이 뭐라고 변명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