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0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05화(204/20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
“요리가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군요. 혹시 더 필요한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스티온의 저녁 만찬은 꽤 훌륭했다.
북부 음식은 황도와 차이가 있었지만, 손님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쓴 기색이었다.
“혹시 이게 아까 그거야……?”
“방금 요리사가 설명한 걸 들어보면 그런 것 같은데.”
“곰은 근육질이라 좀 더 질길 줄 알았는데, 별로 안 그러네?”
특히 다들 바스티온 공이 직접 잡아 온 곰 고기를 감명 깊게 먹었다.
가넷 바스티온은 잠깐 만찬장에 얼굴을 비쳐 예를 표한 뒤, 갑작스러운 눈사태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만찬장에서는 바스티온 형제와 아이작이 주도적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정말 이런 설경은 처음이네요. 바스티온이 여신의 숨결을 직접 받는 곳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다른 지역과 다를 줄은 몰랐어요.”
만찬을 마치고 방으로 향하는 길에 마가렛이 혀를 찼다.
그녀는 복도의 창문에 비치는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도 남보랏빛으로 물든 창밖을 보며 말했다.
“엄연히 따지면 바스티온 역시 성지라 불려야 할 곳이 아닌가. 이런 혹독한 추위에도 굳건히 뿌리내려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식물들을 보면, 그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로울 정도지.”
그들의 말처럼, 바스티온 가문이 있는 북부는 사시사철 기온이 낮았다.
원래는 바스티온 역시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했다고 한다.
하지만 데메테아가 마수들을 봉인하기 위해 녹색 빙벽을 만든 이후로는 흰 눈이 쌓이는 한겨울만 쭉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니 일전에 레예스가 녹색 빙벽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클로비스 꽃과 나비 떼를 보고 위화감을 느낄 만도 했다.
방으로 돌아간 나는 먼저 뜨끈한 물에 씻었다.
그러고 나서 마가렛이 준 꿀차까지 원샷하고 나자 기분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어, 시원하다.”
“전 가끔 제가 모시는 분이 황녀님이신지, 선황녀님이신지 헷갈린다니까요.”
마가렛이 수건으로 내 머리를 말려 주면서 내가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돌려 했다.
똑똑!
“아델 누나.”
“앗, 들어와!”
그때, 제르카인이 아버지보다 먼저 내 방에 찾아왔다.
제르카인도 씻었는지 복숭아 같은 뺨이 보송보송했다.
그런데 붙잡은 그의 손은 차가웠다.
아무래도 복도가 추워서 내 방까지 오는 길에 몸이 다 식은 듯했다.
“제르, 이쪽으로 와서 앉아. 마가렛, 제르한테도 따뜻한 거 한 잔 줘.”
나는 일단 제르의 손에 아직 따뜻한 내 컵을 들려줘서 손을 녹이게 했다.
“에구, 이렇게 씻자마자 몸이 차가워지면 감기 걸릴 텐데. 꿀차 먹고 오늘은 일찍 자자. 알았지?”
“누나, 저도 오늘 여기서 같이 자면 안 돼요?”
제르카인은 마차에서처럼 나한테 어리광을 부렸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처럼이니까 그러자.”
이 누님의 케어가 필요한가 보군!
낯선 곳에 카루스도 없이 혼자 왔으니 불안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제르카인은 동행한 아이 중에서도 제일 어리니까 특별히 보살펴줄 필요가 있었다.
아빠의 허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가 굳이 내 방에서 제르를 쫓아낼 리는 없었다.
그래서 마가렛도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제르카인의 잠자리를 내 옆에 주섬주섬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르카인은 내 허락이 기쁜지 귀엽게 배시시 웃으면서 바스티온의 고용인이 가져다준 꿀차를 마셨다.
나는 해파리 성물을 보관한 곳을 힐끔 쳐다봤다.
내가 신성력을 업그레이드시킨 후로 데메테아는 또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도 데메테아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데다, 혹시 또 성물의 힘을 사용할 일이 있을까 해서 해파리를 여기까지 가져와 봤다.
그러다가 문득 제르카인이 꿀차를 마시다 말고 멍한 눈으로 창밖으로 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단순히 바깥의 풍경을 감상한다기에는, 지금은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두웠다.
게다가 그는 묘하게 무언가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제르, 왜 그래?”
“왠지 누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서요.”
그러나 밖에서는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한동안 귀를 기울여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한데?”
게다가 지금 이곳에서 제르카인을 따로 부를 만한 사람은, 기껏해야 우리와 함께 온 아이들뿐이었다.
하지만 만찬 때 보니 다들 여독이 덜 풀려 피곤한 듯했고, 또 이렇게 어둡고 추운데 밖에 나갔을 리도 없었다.
“그러게요. 제가 바람 소리를 잘못 들었나 봐요.”
제르카인도 같은 생각인지, 자신의 착각이 겸연쩍다는 듯이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
그날 밤은 고요한 하얀 풍경과 어딘가 쓸쓸한 바람 소리 속에서 다들 깊게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은 바스티온의 성채는 어제보다 더욱 반짝반짝하게 빛났다.
“4부군님, 3황녀님. 지난밤에는 푹 쉬셨습니까?”
“배려해 준 덕분에 편안히 보냈네.”
“송구하나, 바스티온 공께서는 이른 새벽에 또 외출하셨습니다. 어제 주거지 쪽에 이례적으로 큰 눈사태가 일어나 조속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신 것이니, 모쪼록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손님이 왔는데 이틀 연속으로 가문의 주인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확실히 드문 일이라 할 만했다.
그래서 직접 소식을 전하러 온 길란은 면목이 없는 얼굴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스티온에서 황실을 등한시한다고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후 중에는 늦지 않게 돌아와, 꼭 손님들과 함께 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영지 안에 문제가 생겼다니 할 수 없지. 이해하네.”
길란은 아버지의 온화한 답변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듯이 물러났다.
“그럼 4부군님, 3황녀님. 제가 바스티온을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신관님께서 말입니까?”
“허허, 데메테아 님께 제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치기 전에는 저도 이곳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때, 아이작이 슬금슬금 우리에게 다가와 직접 바스티온을 소개해 주겠다고 나섰다.
“이왕 이렇게 바스티온에 오셨으니,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성채와 영지 구석구석을 안내해 드리며 바스티온의 역사에 대해 알려드리지요. 제가 젊긴 하지만, 아마 어지간한 가신들보다도 바스티온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어, 어라? 그런데 왜 불길한 느낌이 들지……?
왠지 지금의 아이작한테서, 예전에 우리 아버지에게 열성적으로 성수를 설명할 때와 비슷한 광기가 엿보이는 것 같은데…….
“비록 바스티온이 성지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신화가 존재하던 시절에 데메테아 여신님의 숨결과 손길이 직접 닿은 신성한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내 촉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작이 눈을 번쩍이며 바스티온과 데메테아 여신을 연결지어 말하는 순간, 나는 어깨를 흠칫 떨고 말았다.
“제가 그런 바스티온에서 태어난 것도 운명이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저는 대신전에서도 꾸준히 바스티온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해, 학자들 못지않게 많은 지식을 쌓았습니다. 그러니 제게 안내를 맡기시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 아니, 신관님! 신관님도 바쁠 텐데, 저랑 아빠는 괜찮…….”
“이렇게 상냥하실 수가! 하지만 괜찮습니다, 황녀님! 전 지금 전혀 바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아무리 바쁘다 한들, 설마 성녀……. 아니, 황녀님을 위해 내어드릴 시간이 없겠습니까? 이 아이작은 언제라도 기꺼이, 황녀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제 무엇이든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서둘러 거절했으나, 아이작은 이미 뽕이 차오를 대로 차올라서 맛이 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신전 덕후에게 유사 성지(?)라 할 수 있는 장소의 소개를 맡겼을 때 닥칠 일이 쉽게 상상돼서 핼쑥해졌다.
이렇게 뽕이 찬 아이작이라면 추운 바스티온 영지를 해질 때까지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들어야 할 수도 있었다!
“외숙부. 손님들한테 성 구경은 제가 시켜드릴게요.”
그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카일?”
“형이 방금 저한테 손님 접대를 맡겼거든요.”
군청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이 총총 다가와서 예의 바르게 덧붙였다.
우리 아버지도 아이작이 좀 부담스러웠는지,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카일을 선택했다.
“신관님, 마음은 감사하지만 신관님의 귀한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으니, 저와 아델은 바스티온의 둘째 공자에게 안내를 받겠습니다.”
아이작을 향한 아버지의 눈에 서늘한 경계심이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성녀에 대한 그의 집착을 눈치챈 것 같기도 했다.
“그, 그래도 카일보다는 제가…….”
“참. 외숙부, 방금 형하고 길란이 외숙부를 찾던데요. 뭔지는 몰라도 황도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확인할 게 있는 것 같았어요.”
아이작은 그 말에 미련 넘치는 얼굴을 한 채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아이작을 보내고 나서 카일은 정말 우리에게 성 안내를 해줬다.
아이작에 비하면 확실히 설렁설렁한 태도인 게 느껴졌지만, 어차피 이 추운 날씨에 오래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으므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설마 바스티온에 오면 형하고 내내 같이 붙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문득 우리 아버지의 눈을 피해 카일 녀석이 나를 도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