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1)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1화(21/207)
나도 종종 본 적이 있는 신수 둥지의 관리인이 이제 15살 정도로 보이는 초콜릿색 머리의 소년을 앞에 세워놓고 부실한 일 처리를 혼내고 있었다.
“새끼 신수들은 구석에 남은 먹이를 숨겨 놓는 습성이 있어서 하루 세 번씩 확인해 빨리빨리 치워야 한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다시 청소하겠습니다!”
소년은 후다닥 둥지 안쪽으로 움직였다.
“꺄앙!”
“꾸웅!”
“자, 잠깐만! 얘들아, 여기 치울 동안만 저쪽에 가서……. 으앗!”
하지만 둥지 청소를 하다가 우르르 달려드는 새끼 신수들에게 치여 이리 넘어지고 저리 엎어지고, 급기야는 신수들에게 깔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실제로 일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어이, 신입! 여기 배변통 찼다. 냄새나니까 얼른 옮겨!”
“네, 네!”
그래도 그는 사람들이 부를 때마다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니느라 참 바빠 보였다.
“앗!”
출렁!
“으악! 조심 좀 하지 못해?! 방금 청소한 구역인데 흘렸잖아!”
“헉,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닦을게요!”
“어휴, 진짜 계속 이러다가 다음 달쯤 퇴출당하고 말지, 퇴출당하고 말아.”
내가 봤을 때도 그랬다.
소년은 황성 내 신수 둥지의 청소와 신수들의 배변 처리 등의 허드렛일을 도맡은 견습 신수 사육사였다.
하지만 온갖 방면의 전문가들만 모인 황성에서, 저 소년은 아무리 견습이라고는 하나 제 몫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상당히 무능해 보였다.
“거기! 지금 록샨 님과 3황녀님이 와계신 것 모르나? 입방정 떨지 말고 부지런히 일들 해!”
“헉, 록샨 님과 3황녀님이요?”
“그래,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셨지만 나중에 다시 오실 수도 있으니 똑바로 좀 하라고!”
잠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흩어져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엥, 성체인 신수들을 보러 간 아버지는 그렇다 쳐도 난 아까부터 여기 있었는데.
하지만 이해한다.
아직 어린 나는 내가 봐도 너무 콩알 같아서, 이렇게 새끼 신수들 사이에 숨어 있으면 찾아내기 어려울 만도 했다.
“꾸앙!”
난 하얀 찹쌀떡들을 몰고 슬금슬금 움직여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꺙!”
“뀽!”
“읏, 잠깐……! 이러지 마!”
그는 아까처럼 새끼 신수들에게 떠밀려 둥지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도 너희 때문에 또 혼났잖아. 왜 자꾸 날 괴롭히는 거야?”
어른들에게 혼난 데 이어 새끼 신수들에게도 치여서 서러워졌는지, 소년이 귀여운 말랑콩떡들에게서 벗어나는 걸 포기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나만 보면 매일 밀치고 깔아뭉개고……. 너희도 내가 싫어? 여기서 쫓아내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난 여기가 아니면 있을 곳이 없단 말이야…….”
난 우울해 보이는 그에게 속닥거렸다.
“괴롭히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거야.”
“헉!”
바로 옆에서 어린애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자 소년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쳤다.
“시, 신수가 말을……!”
할 리가 있겠냐?
황급히 고개를 돌린 소년의 동그란 연둣빛 눈이 마침내 새끼 신수들 사이에 숨은 나한테 닿았다.
“어? 이런 데 웬 어린애가……. 흐억! 서, 설마 황녀님?!”
한발 늦게 내 정체를 유추해 낸 듯, 소년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안뇽?”
난 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해 주었다.
새끼 신수들에게까지 치이는 무능한 견습 사육사.
하지만 내 눈에는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은은한 아우라가 여실히 보였다.
신수들이 좋아서 환장하는, 타고난 청명한 기운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조슈아.
훗날 우리 아버지의 뒤를 이어 차세대 최고의 테이머이자 강력한 마수 사냥꾼이 될 소년이었다.
* * *
“록샨 님, 황녀님. 1황자님이 방문하셨어요.”
“유클레드가?”
아, 뭐야.
기껏 힐링 잘하고 궁으로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귀찮게 1황자 놈이 또 날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4부군님.”
“반갑구나, 유클레드.”
“아스포델, 너도 안녕.”
“흐액.”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나도 모르게 어릴 때 불렀던 동요를 흥얼거리게 되는군.
“아델, 아빠는 귀족 회의 때문에 나가보마. 오빠와 둘이 이야기 나누고 있으렴.”
아버지는 역시 이번에도 아이들끼리 놀라며 1황자와 나만 방에 두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 후 1황자와 나는 지난번처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지난번 일 때문에 할 말이 있어서 왔어.”
1황자는 짧은 안부 인사 뒤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뭔 할 말?”
아버지도 참, 이런 배려는 필요 없는데.
“궁 뒤쪽에 난 그 문 말이야. 역시 너 혼자 거길 통해서 궁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너무 위험한 것 같아.”
거봐, 이 녀석이 이렇게 괜히 쓸데없는 소리나 하잖아.
난 의자에 턱을 괴고 앉아 심드렁하게 1황자의 말을 흘려들었다.
예상대로 별로 중요한 말이 아니어서 귀담아 들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진지한 얼굴을 한 채로 말을 이었다.
“네 말처럼 나 정도 나이가 되면 상관없겠지만, 넌 이제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애인데 혼자 외출하기엔 너무 어리잖아.”
아홉 살짜리 꼬맹이의 말에 난 귀가 가렵지도 않았다.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달랑달랑 흔들면서 ‘난 네 말을 귓등으로 듣고 있다!’는 티를 내줬다.
“너, 내 말 듣고 있어?”
“으아니!”
“윽, 무시하지 말고 제대로 들어. 네 마음대로 밖을 돌아다니다가 넘어져서 다치거나 넓은 황성에서 길을 잃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진짜 그런 장면을 상상하기라도 했는지, 1황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역시 너무 위험해.”
위험하기는 무슨, 개뿔.
“크흠, 그렇다고 내가 딱히 널 엄청 걱정해서 말한 건 아니고.”
그건 그렇겠지.
네가 날 걱정하는 건 상상이 안 되니까 말이다.
어쨌든 기껏 찾아와서 무슨 소리를 하려나 했더니, 역시 1황자의 말은 영양가가 없었다.
내가 황성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길을 잃겠냐?
그리고 넘어져서 다치기는. 난 그런 어린애 아니거든?
“설마 며칠 전처럼 그동안 너 혼자 밖에 나간 적이 자주 있었어?”
느낌이 온다, 느낌이 와.
왠지 대화를 길게 끌면 이놈이 더 귀찮게 굴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래서 순순히 놈이 원하는 답변을 해주었다.
“아니. 그때 처음 나간 거야.”
“정말이야?”
하지만 녀석은 쉽게 믿지 않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쳐다봤다.
어린 게 의심만 많아서는.
그래도 이번 회차에서는 처음이니까 거짓말한 건 아니라고.
“진짜야. 오빠랑 나간 게 처음인데?”
뻔뻔하게 대답하자 1황자가 어째서인지 어깨를 움찔거리다가 큼큼거리며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래, 그건 다행이네.”
역시 어려서 그런지 이런 거짓말도 쉽게 믿는 것 같았다.
“그럼 나랑 약속해. 앞으로도 네가 더 클 때까지는 혼자 밖으로 나가지 안 돼. 알았지?”
이 녀석은 진짜 할 짓도 없나?
나한테 굳이 찾아와서 이런 웃기지도 않은 짓을 하는 1황자 녀석에게 불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금방 얼굴을 펴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속하지 뭐.”
참나, 그냥 거짓말로 대답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내가 몰래 밖에 나가면 네가 뭐! 뭐 어쩔 건데?
어린 1황자 놈은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이번에도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 내 대답을 듣고 밝게 펴졌다.
“좋아. 나도 그때 약속한 대로 우리가 어른들 몰래 밖으로 빠져나갔던 건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1황자는 다시 본래의 침착함과 여유로움을 완전히 되찾은 듯,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이 녀석이. 누가 한가하게 여기서 차를 마셔도 된다고 했냐?
“할 말 다 했으면 이제 그만 가보지?”
“뭐, 벌써?”
1황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내 빠른 축객령에 기분이 상한 듯했다.
“차 한잔 마실 시간 정도는 줘도 되잖아. 뭐 바쁜 일 있어?”
“휴우, 난 늘 바빠.”
얘는 내가 자기처럼 한가한 줄 아나 봐.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회한을 담아 말하자 1황자가 사레들린 듯이 찻잔을 들고 컥컥 기침을 했다.
“뭐, 크흠. 뭐가 그렇게 바쁜데?”
“그냥 이거저거 할 게 엄청 많단다.”
“이거저거가 뭔데?”
“내가 말하면 알아?”
“당연히 알지. 난 너보다 네 살이나 많다고.”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뀔 뻔했다.
“됐거등? 과자나 먹든가.”
계속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그냥 과자나 먹고 입 다물란 뜻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도 맞다.
난 1황자의 앞에 온갖 잼과 크림이 들어간 설탕 범벅의 다디단 과자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밀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1황자를 위해 준비한 견과류가 들어간 담백한 과자를 집어서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내가 밀어준 산더미 같은 설탕 과자들을 본 1황자가 눈을 깜빡였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