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3화(23/207)
“우리 황녀님이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실까?”
어쨌든 그렇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혼자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 마가렛이 장난스럽게 내 콧잔등을 툭 건드렸다.
“자, 저기 보세요. 벌써 도착했어요.”
아이고, 벌써 그렇게 되었나?
잠깐 딴생각을 했을 뿐인데 시간이 금방 지나갔구나.
“그럼 황녀님, 전 여기 있을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셔요?”
“응!”
마가렛이 새끼 신수의 둥지 앞에 날 내려주며 당부했다.
새끼 신수들은 낯을 많이 가려서 아무나 둥지에 출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가렛은 나와 함께 이곳에 올 때마다 둥지 밖의 쉼터에서 다른 궁인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다.
“꾸아아!”
내가 둥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새끼 신수들이 나를 격하게 반겨줬다.
어이구, 우리 귀여운 말랑 찹쌀떡들.
신수들은 맑은 정기를 가진 사람을 좋아했는데, 아스포델도 그중 하나였다.
일단은 나중에 신성력 각성을 해 성녀라고 불리기까지 하니까 말이지.
난 잠깐 새끼 신수들하고 인사를 나누다가, 마가렛이 쉼터로 들어갔을 때쯤 슬그머니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디 보자.
내 안락한 노후…… 아니, 미래를 위한 우리 테이머 친구는 어디 있을까?
“야, 고아 새끼! 너 진짜 일 똑바로 못해? 언제까지 거기서 노닥거릴 거야?”
아, 저기 있구나.
오늘도 갈색 더벅머리를 한 소년이 누군가에게 혼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왠지 조슈아는 카루스와 닮은 점이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대충 누가 구박당하는 현장에 가보면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노, 노닥거린 게 아니라 아까 점심을 못 먹어서 잠깐…….”
“인마, 그래서 지금 선배가 부르는데도 계속 밥이나 먹고 있겠다고?”
“아뇨!”
고참으로 보이는 남자의 호통에 내가 찾던 소년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달려갔다.
“하,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불쌍한 고아 새끼를 거둬 줬으면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니야?”
나잇살도 좀 있어 보이는 놈이, 어린애 하나 앞에 세워놓고 이 잡듯이 잡는 꼴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네가 오고 나서부터 잡무가 얼마나 많이 늘어났는지 알아? 그럼 다른 사람들의 두 배, 세 배는 더 열심히 일해야지! 한가하게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 앙?”
“죄송합니다…….”
“나 때는 말이야…….”
고참 사육사의 설교가 길어질수록 조슈아의 허연 얼굴이 점점 더 파리하게 질려가는 게 보였다.
점심도 못 먹었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어쩐지 애가 오늘따라 피골이 상접한 것처럼 보였다.
저, 저 양심 없는 아저씨 같으니라고!
아니,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라고 했는데.
최소한 밥이나 먹이고 꼰대질을 해야지, 애를 굶기면서 저렇게 구박이라니.
넌 아웃이다, 인마!
이 세계에서 제법 오래 살긴 했지만 역시 K-정서가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그런지, 조슈아의 뒤에서 차게 식어가는 주먹밥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됐다.
“쯧, 하여간에 둔해 빠져 가지고. 손이 빠르기를 해, 하다못해 눈치라도 있어? 그렇다고 신수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고. 저런 새끼 신수들한테도 툭하면 질질 끌려다니면서 무시당하는 꼴 하고는.”
계속되는 독설에 조슈아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흥, 케인 님은 대체 이런 놈의 뭘 보고 아직까지도 퇴출시키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고참 사육사는 급기야 조슈아를 거둔 신수 둥지 관리인의 이름까지 들먹였다.
“어이, 난 잠깐 볼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울 건데 대신 네가 이거 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보란 듯이 턱짓한 건 신수들이 마실 물을 받아놓는 커다란 통이었다.
“오늘은 날이 더워서 물이 빨리 비었으니까 다시 채워놔. 대충 설렁설렁하지 말고 꼭 가득 채워놔야 해!”
그가 사라진 뒤 조슈아는 남은 주먹밥을 먹을 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수 둥지 안의 수로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통을 채우려면 적어도 열 번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일단 상황을 좀 지켜볼까?’
원래 이 미래 신수 마스터인 조슈아는 소설에서 여주인공인 아스포델과 5년 후쯤에야 만난다.
그때 그는 이미 강력한 신수와 각인을 마치고 록샨의 밑에서 직접 일하던 인재 중의 인재였다.
성격은 자신감 있고 당차서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작중에서는 그런 조슈아의 불우한 과거는 짧게 언급만 되고 지나갔다.
조슈아가 그의 동반자인 신수 메멘타와 각인한 것은 5년 전이었다.
고아였던 그는 운 좋게 당시의 신수 둥지 관리사에게 거두어져 견습 사육사가 되었다.
처음 황궁에 들어왔을 때는 텃세를 부리며 그를 괴롭히던 동료들도 있었다.
한 번은 그중 한 명과 싸움이 붙어 크게 다칠 뻔했다.
바로 그 일을 계기로 조슈아는 그의 평생의 동반자라 할 수 있는 메멘타와 각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신수 둥지에 자주 찾아오는 이 사랑스러운 황녀님은 그때 조슈아를 따뜻하게 위로해 줬던 작은 아기 신수를 생각나게 했다.
소설에 나온 조슈아의 과거는 이게 전부였다.
그러니 소설의 전개를 그대로 따라가려고 용쓰던 1회차 때는 꼬박 5년을 기다려 조슈아를 만났다.
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말했다시피 억지로 아스포델의 흉내를 내서 좋은 결과를 얻은 적은 없었다.
조슈아도 황녀인 내가 친한 척하는 걸 부담스러워하기만 했으니까.
그래서 2회차 때는 내 방식으로 좀 더 일찍 접근해 봤다.
황녀의 권력을 써서 텃세로 고생하고 있는 걸 일찍부터 도와줬더니, 조슈아는 생각보다 쉽게 내 수중에 들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작중에 나왔던 조슈아와 신수의 각인 계기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때 결국 조슈아 육성에 실패하고 내가 얼마나 간이 떨렸는지!
‘하마터면 마수 침공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할 뻔했으니까.’
게다가 원래 정해진 미래와 달리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변한 조슈아의 성격도 문제였다.
원작에서처럼 스스로 텃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어린 황녀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조슈아는 이후로도 쭉 자신감을 갖지 못해 소극적으로 굴었다.
어쩌면 그래서 신수와의 각인에 끝내 실패한 걸지도 몰랐다.
‘그러니 이번에는 일단 지켜보겠어.’
“읏챠!”
때마침 첫 번째 양동이로 물을 떠 온 조슈아가 그것을 빈 통에 쏟아부었다.
‘앗?’
그런데 통의 밑단이 좀 깨져 있었나 보다.
조슈아가 물을 길어와서 붓자마자 밑에서 졸졸 흐르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보였다.
하지만 조슈아는 허당이라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까부터 조슈아 주변을 기웃거리던 새끼 신수 한 마리만이 그걸 발견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꾸앙!”
“미안, 지금은 바빠서 못 놀아줘. 오늘은 더우니까 저기 그늘에 가서 놀고 있어!”
“깡!”
새끼 신수의 애처로운 눈빛에도 조슈아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또 물을 받으러 바쁘게 뛰어 사라졌다.
통통통!
그리고 나는 보았다.
새끼 신수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물이 새는 통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통통!
그렇게 새끼 신수는 물이 새는 지점으로 가서…….
통! 쏘옥!
“…….”
작은 구멍에 흡착되다시피 몸을 붙였다.
다행히 효과가 있어 물은 더이상 새지 않았다.
하지만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뭐, 뭐냐?
이 어디선가 본 듯한 묘하게 익숙한 전개는.
저거 전래동화 콩쥐팥쥐에서도 비슷한 거 나오지 않았나?
못된 계모와 팥쥐가 콩쥐를 괴롭히느라 깨진 둑에 물을 받으라고 하니까 두꺼비가 몸으로 구멍을 막아서 도와줬었지, 아마?
“뭐야, 벌써 다 했어?”
“헉, 헉……. 네!”
“어디……. 흠, 뭐. 시킨 대로 가득 채워놓긴 했군.”
조금 후에 돌아온 악덕 고참이 이번에는 다른 일거리를 들고 왔다.
그가 발로 툭 차서 조슈아의 앞으로 들이민 건 초식계 새끼 신수들이 먹는 사료 포대였다.
약간 뜯어진 입구에서 작은 열매와 곡식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안에 가끔 섞여 들어오는 덜 익은 두꺼비 콩, 죄다 골라서 빼놔. 욘두 콩하고 모양은 비슷하지만 신수들이 싫어하는 거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잘 골라놓도록 해!”
그러고 나서 이 배짱이 같은 고참은 또 홀랑 사라졌다.
“후우…….”
혼자 남은 조슈아가 한숨을 내쉬며 포대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넓게 펼친 돗자리 같은 천 위에 사료의 곡식과 콩을 고르기 시작한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처량했다.
난 그동안 아직도 온몸으로 수통의 구멍을 막고 있는 새끼 신수를 뽀옥 빼내 줬다.
“꺙!”
“괜찮아, 괜찮아. 자, 이걸로 막았다! 이제 됐지?”
신수는 똑똑했다. 그래서 내가 자기를 빼내면 또 물이 샐 걸 알아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더라.
‘조슈아, 사랑받고 있구나.’
대신 내가 둥지 제작용으로 만들어진 솜뭉치 같은 방수 풀을 좀 뜯어와서 구멍을 막자 새끼 신수는 얌전해졌다.
“조슈아! 잠깐 이리 와 봐라.”
“앗, 네!”
역시 어느 직장에서나 막내는 더럽고 서글픈 법.
허드렛일을 도맡은 조슈아를 여기저기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는 한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꾸!”
“꿍!”
그러자 이번에 앞으로 나선 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새끼 신수들이었다.
그들은 리본으로 묶인 알사탕들처럼 쪼르르 뛰어가서 사료를 덮쳤다.
그리하여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