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4화(24/207)
신수들은 콩 골라내기 장인이었다!
그들이 한 번 훑고 간 자리마다 두꺼비 콩만 감쪽같이 쏙쏙 사라졌다.
“꾸엥!”
그 후에 조그만 단추 구멍 같은 입에서 언제 흡입했는지 모를 두꺼비 콩이 먹고 남은 수박씨 버리듯이 후드득 쏘아져 나왔다.
난 띠용 놀랐다.
신수들이 저렇게 다재다능할 줄이야?
그나저나 신수들이 너무 유능해서 내가 나설 데가 없네.
그래도 조슈아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선에서는 좀 도와줄 의향이 있었는데 말이야.
“앗, 어떻게 된 거지? 콩이 다 골라져 있잖아?”
잠시 후 또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 조슈아가 다 골라진 사료를 보고 놀랐다.
“누가 대신해 준 건가?”
그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건 새끼 신수들뿐이었다.
“꺙!”
“꾸꾸꿍!”
귀여운 찹쌀떡들이 통통통 튀어 올라 조슈아에게 저들의 존재감을 주장했다.
“서, 설마 너희가 해놓은 거야?”
조슈아가 흔들리는 눈으로 새끼 신수들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또 그들이 ‘꿍꿍!’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조슈아는 농담이었는지, 곧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나도 참,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이람.”
새끼 신수들이 항의하듯이 울었지만 조슈아의 귀에는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그의 눈이 흐려졌다.
“지난번에 신수들이 날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오, 내 얘기인가 보군.
그럼 이쯤 해서 나타나 주는 게 인지상정.
“안녕!”
“앗, 황녀님?!”
내가 뿅 하고 나타나자 조슈아가 낚싯바늘에 꿰인 날치처럼 쭈그려 앉아 있던 자세에서 펄떡이며 일어났다.
“로잔티나의 별께 태양의 축복이 내리기를!”
나한테 황급히 인사한 그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호, 혹시 황녀님이 콩을 골라주셨나요?”
엥? 내가 그걸 어떻게 골라 놔?
마침 공교로운 타이밍에 나타나서 그런지, 조슈아가 터무니없는 착각을 했다.
“아냐, 그거 신수들이 해준 거야!”
본능적으로 날름할까, 하는 생각을 한순간 했지만…….
‘어, 어쩔 수 없잖아. 난 보통의 기회주의자인걸.’
하지만 결국 내 양심에 따라 솔직히 알려줬다.
무엇보다도 저 올망졸망한 새끼 신수들이 한땀 한땀 노력해 이룬 결과물을 날름 주워 먹는 건 귀염뽀짝이들의 애호가로서 못 할 짓이 아닌가?
“아하, 신수들이요……?”
하지만 조슈아는 어딜 봐도 믿지 않는 듯한 얼굴로 날 보며 미묘하게 웃었다.
꼭 어린애한테 ‘인형들은 사실 주인이 잠든 밤마다 몰래 티파티를 연대~’하는 소리라도 들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렇군요, 신수들이 해준 거군요.”
“진짠데!”
“후후. 네, 그렇겠지요.”
“진짜라니까!”
“예, 믿어요. 아무렴 황녀님 말씀인데요.”
거참, 되게 안 믿네.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흠, 어차피 조금 더 있으면 알게 될 테니까 뭐.
“있잖아, 이거 먹어.”
난 허리춤에 묶고 있던 예쁜 꾸러미를 풀어서 조슈아에게 줬다.
궁을 나서기 전에 챙겨온 마들렌과 쿠키 같은 작은 간식거리였다.
“제, 제게 주시는 건가요?”
“응. 주먹밥 다 식었잖아.”
조슈아의 눈이 금방 그렁그렁해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황녀님. 지난번에도 저를 위로해 주시고…….”
아닛, 대사까지 정말 카루스 판박이 같네.
이거 캐릭터 성이 너무 겹치는 거 아닙니까?
누가 보면 이쪽이 아들인 줄 알겠어.
조슈아도 나이가 들어서는 그래도 자신감 넘치고 멋있어지는데, 지금은 자존감이 한참 낮을 때라 그런지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쭈글거림이 넘쳤다.
‘아무래도 이번 회차에서는 차근차근 자존감을 좀 키워줘야겠어.’
난 또다시 다른 사람의 부름을 받고 멀어지는 조슈아의 뒷모습을 지그시 응시하며 생각했다.
“어? 혹시 거기 아델 아니야? 앗!”
“헉!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앞에 계신 걸 몰랐어요!”
어이쿠, 그런데 지금 자존감이 문제가 아닌가 보다.
어쩐지 앞을 잘 보지 않고 부주의하게 움직인다 싶더니, 결국 조슈아가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을 발견하지 못해 부딪쳤다.
상대는 키가 작은 어린애였다.
“황녀님, 괜찮으십니까?! 이놈이,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조슈아가 서둘러 몸을 낮추고 사죄했다.
왠지 일이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가 가봐야 하나 싶었다.
“그만해, 난 괜찮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넘어진 금발 꼬맹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쿨하게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났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내 잘못도 있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마. 바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만 가봐.”
조슈아의 어깨를 툭툭 친 금발 꼬맹이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델!”
역시 조금 전에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금발 꼬맹이가 친근하게 날 부르며 달려왔다.
멀리서도 확연히 반짝이는 짧은 금발과 묘하게 시원시원해 보이는 팔다리의 움직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게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드레스 셔츠와 바지를 간편하게 차려입은 2황녀 알렉시아였다.
“역시 네가 맞았구나. 멀리서 보고 혹시 했는데. 신수 둥지에는 무슨 일이야?”
반갑게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도 마주 인사했다.
“안녕. 난 그냥 애기 신수들 보러 왔어.”
“그렇구나. 난 수업 받으러 왔어. 요즘 라이칸을 길들이는 중이라.”
그렇군.
알렉시아는 활동적인 성격이라 야외에서의 교육 시간을 좋아했다.
실제로도 육체를 이용한 무위 전반에 높은 성취를 보였고, 신수를 길들이는 데도 재능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나 미래의 조슈아처럼 영혼의 각인을 통해 신수와 교류하는 게 가장 신성한 방식이었지만, 긴 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유대감을 쌓는 것도 신수를 길들이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참고로 우리 라 벨리카 황제 폐하처럼 그냥 기세로 복종시키는 방법도 있긴 했는데…….
음,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하기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응? 그런데 아델, 여기 뭐가 붙었네.”
그러다 알렉시아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듯이 내 얼굴 어딘가에 시선을 두었다.
“어디? 여기?”
“아니, 거기 말고. 내가 떼 줄게.”
더 가까이 다가온 알렉시아가 손을 들어 내 턱을 고정시켰다.
“쉿. 잠깐이면 돼. 가만히 있어.”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어서 금빛 속눈썹 밑으로 더 선명하게 빛나는 금빛 눈이 나를 정면에서 담았다.
두근…… 이 아니라.
어우, 뭐지?
갑자기 주위에 장미꽃이 흩날리는 환영이 보이면서, 고전 애니메이션인 베르사유의 장미 배경음이 귀에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알렉시아는 어른이 된 뒤 길게 기른 머리를 하나로 느슨히 땋고 다니곤 했는데, 한순간 그 미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역시 보이시한 걸크러시 언니라는 설정값이 있어서 그런가?
쪼그만 게 어릴 때부터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서 멋짐이 남다르긴 했다.
“아, 됐다.”
마침내 내 눈가를 후 불어 무언가를 날려 보낸 알렉시아가 만족스러운 듯이 씨익 웃음 지었다.
“고, 고마워.”
아유,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네.
아니, 그보다 너야말로 좀 전에 넘어질 때 옷에 뭐가 묻은 것 같은데 말이다.
거참, 역시 쿨한 성격이라고 해야 할지.
“아냐. 그보다 새끼 신수들이 널 잘 따르네.”
알렉시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아직도 내 옆에 남아 주변을 맴돌고 있는 새끼 신수들이 보였다.
“신수들이랑 너랑 조그만 애기들끼리 그렇게 같이 있으니까 되게 귀엽다.”
알렉시아가 눈을 접으며 세상 달콤하게 웃었다.
하마터면 거기에 격침당할 뻔했다.
사실 2황녀 알렉시아는 내가 소설에서 가장 좋아했던 아스포델의 이부 형제였다.
물론 작중에서 아스포델과 가장 친하던 건 1황자 유클레드였지만, 어쨌든 내 개인적인 취향을 따지자면 그렇단 얘기다.
그녀는 황녀, 황자들 모두를 통틀어 어머니 라 벨리카 황제를 가장 많이 닮은 황족이기도 했다.
훗날 알렉시아는 로잔티나의 제1 기사단을 직접 이끌며 ‘광휘의 검사’라는 애칭으로도 불리게 된다.
그녀가 눈부신 황금빛 머리채를 흩날리면서 섬광보다도 날카로운 검격으로 허공을 가를 때면, 누구나 그 뒷모습에서 현 황제인 라 벨리카를 연상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직접 겪었던 두 번의 생에서도 알렉시아는 로잔티나 제국민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 영애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성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소설 제목이 <2황녀님은 멋있었다>였던가?
그 밖에도 그녀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많았다.
특히 익명의 저자가 쓴 음지의 소설과 극본, 노래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2황녀님과 나>, <사랑하는 기사 황녀님>, <오! 그녀의 이름은 황금빛 불꽃>, <여신님의 두 번째 샛별에게 경배하라> 등등…….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