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5)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5화(25/207)
실제 황족의 이름을 허락 없이 차용하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었지만, 저기 나오는 주인공들이 2황녀 알렉시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이 소설 장르가 귀염뽀짝 육아물이 아니라 걸크러시 여주 성장물이었으면 여주인공은 알렉시아가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소설의 여주인공인 아스포델도 그런 언니를 몹시 자랑스러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부러움과 열등감도 가졌었다.
물론 소설에서는 그런 점이 사랑스럽게 묘사되었었지만.
“그러고 보니 우리 지난 생일 연회 이후로 처음 보는 건가? 그때 많이 놀랐지? 아델이랑 좀 더 같이 놀고 싶었는데 생일 연회가 그렇게 끝나서 아쉬웠어. 그래도 크게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야.”
그래도 역시 지금은 여덟 살밖에 안 돼서 그런지, 내 눈앞에 있는 어린 알렉시아는 멋지다기보다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응, 나도 연회가 일찍 끝나서 아쉬웠어.”
“내가 준비한 선물도 그날 망가져서 새로 보냈는데, 봤어?”
“받자마자 바로 열어봤어. 고마워.”
사실은 안 열어봤지만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했다.
궁에 돌아가면 마가렛한테 물어봐야지.
“참, 요즘 유클레드 오빠랑 자주 만난다며?”
“아냐. 자주는 아닌데.”
내 말에 알렉시아가 흐음, 하고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날 빤히 쳐다봤다.
“다음엔 나랑도 만나서 놀자. 시간 괜찮을 때 초대해 줘. 아니면 내가 초대하면 와줄래?”
귀찮은데.
그래도 소설에서 나름 내 최애였던 알렉시아여서 그런지, 1황자 유클레드를 대할 때만큼 매몰차게 대답하긴 좀 어려웠다.
“그으으래. 시간 되면.”
내가 대충 대답하자 알렉시아가 또 웃었다.
“2황녀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알렉시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에 알렉시아가 라이칸을 길들이는 중이라고 말했으니, 저 목소리의 주인은 신수 훈련사인 게 분명했다.
“아, 선생님이 부른다. 그럼 난 먼저 가볼게. 다음에 봐!”
알렉시아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바람같이 뛰어서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델, 새끼 신수들이랑 잘 놀아주고 있었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버지가 날 찾아왔다.
“록샨 님! 오셨습니까!”
“그래, 오늘도 수고하는군.”
역시 우리 아버지는 신수계의 위대한 혜성이셨다.
새끼 신수 둥지에 아버지가 모습을 비추자마자 일하던 사람들 모두가 바짝 각이 선 모습으로 그를 반겼다.
그들의 눈에는 존경심이 철철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인사를 짧게 받아준 아버지가 새끼 신수들 사이에 숨어 있던 나를 단번에 찾아내 안아 들었다.
그때까지도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 놀란 듯이 허억 헛숨을 들이켰다.
“이제 시간이 되었구나. 새끼 신수들하고는 다음에 또 와서 놀아주자.”
“네, 아빠!”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카루스와 만날 일정이 잡혀 있었다.
난 발밑에 달라붙는 귀여운 신수들을 어렵사리 뒤로한 채 아버지와 함께 새끼 신수의 둥지를 빠져나왔다.
Chapter 8
내 미운 남동생과 오빠
“안녕하세요, 록샨 님. 그리고 아스포델 님.”
“안녕, 카루스 아빠!”
“좋은 오후네, 카루스.”
카루스는 궁 안에 친한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아버지와 나를 유독 반가워했다.
“오늘도 같이 열매를 보러 가주셔서 기뻐요, 황녀님. 록샨 님도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약속을 잡은 건, 뜻밖에도 카루스가 먼저 우리 궁에 서신을 보냈기 때문이다.
소심함의 극치인 남자가 어쩐 일로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그런데 역시 카루스의 용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우리를 격하게 반가워하던 것도 처음뿐, 로사리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점점 눈치를 보며 쭈그러들던 카루스가 결국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저, 두 분께 제가 너무 염치없는 청을 드린 게 아닐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늘 열매를 보러 혼자 가다가 동행하는 분이 생기니 너무 좋아서…….”
“그런 말 말게. 나와 아델 둘 다 오히려 이렇게 초대받아 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니.”
“록샨 님…….”
아버지의 말에 감동한 듯 카루스의 눈이 또 촉촉해졌다.
어이구, 알고는 있었지만 참 다루기 쉬운 사람이네.
그나저나…….
‘오늘은 있네, 저 사기.’
나는 아버지에게 안겨 옆에 있는 카루스를 힐끔거렸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괜찮았는데, 오늘의 그에게는 또 검은 안개가 뭉쳐 있었다.
‘아무래도 카루스가 자체적으로 만든 사기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가볍게 확인 한번 해볼까?’
“카루스 아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뭐 해써?”
“저요? 오늘은 조식 후에 방 청소를 했어요.”
그래도 만에 하나 사기의 출처가 따로 있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그런데 카루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방 청소? 그건 궁인들이 할 일인데?
“이번에는 장식장과 책장 사이사이의 먼지까지 털어내고 카펫도 갈았지요. 그랬더니 방이 한결 깔끔해져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더군다나 직접 방을 정리한 게 한두 번도 아닌 모양이다.
우리 아버지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혹시 카루스에게 부끄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결국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긴, 카루스는 볼 때마다 수행인 없이 혼자 다니고 있었지.
황궁에서도 무시받는 오클란테 출신이니 수행인들도 그를 무시하고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게 분명했다.
그 말은, 어머니가 카루스의 궁에 따로 들르는 일도 아예 없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그래도 황제 폐하가 걸음 하는 곳을 저렇게까지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니.
애초에 어머니가 카루스를 궁에 들인 것도 그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귀족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카루스에게도, 그와 만든 열매에게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지금 말하는 걸로 봐서 카루스는 직접 청소하는 일을 수치스러워하지도 않는 듯했으니…….
어쩌면 저런 허드렛일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그의 몸에 익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는 뭐 해써?”
“간단히 점심을 먹고 록샨 님과 황녀님을 만나 뵈러 나왔지요!”
카루스가 나를 보고 싱글벙글 웃었다.
“그게 다야?”
“예? 제가 뭔가 더 해야 할 일이 있었을까요?”
내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는 얼굴을 보면 정말 특이한 일은 없었던 모양인데…….
난 카루스의 의아한 시선을 받고 별것 아니라는 듯이 헤헤 웃어 보이는 것으로 성과 없는 대화를 끝내 버렸다.
잠시 후, 나는 아버지와 카루스를 등진 채 서늘한 눈으로 열매를 내려다봤다.
“까꿍이가 전보다 기운이 없네요. 오늘은 좀 괜찮을 줄 알았는데…….”
“힘내게, 카루스. 여러 사람이 이렇게 걱정하고, 또 신경 쓰고 있으니 금방 차도가 있을 거야.”
뒤에서 우울하게 중얼거리는 카루스의 목소리와 그를 위로하는 아버지의 속삭임이 들렸다.
그들의 말처럼 4황자의 열매는 오늘도 시들시들했다.
“열매야, 아프지 말고 쑥쑥 자라…….”
나는 그 앞에 쭈그려 앉아서 열매를 쓰다듬어 주는 척했다.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입으로 읊조리는 말과 정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마 나 같은 어린애가 이걸 어떻게 죽일까 고민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그런데 넌 왜 이렇게 날 볼 때마다 반가워하는 거야?’
오늘도 열매의 표면에서 전해지는 기쁨과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줄 뻔했다.
올 때마다 이러는 걸 보면 내 착각은 아닌 듯한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살의를 품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거야? 너, 눈치 빨랐잖아.’
아직 성력 각성 전이지만 사기를 보는 눈이 뜨여서 그런가?
열매를 보면 볼수록 확실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열매는 가까스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금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과 같았다.
열매에 가만히 손을 대면, 지금 이 아이가 생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카루스가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릴 때마다 그런 열매에게 매몰차게 속삭였다.
‘그냥 포기해. 그냥 지금 죽어.’
그럴 때면 열매는 몸을 불쌍하게 파르르 떨면서 내 손에 더 깊이 몸을 기댔다.
꼭 내가 제 목숨을 쥐고 있는 걸 알고 아양을 떠는 것 같기도 했고, 숨이 꺼지기 직전의 어린 새가 제게 뻗어진 손에 간절히 매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기분이 더러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찝찝해졌다.
‘어디서 자꾸 약한 척이야? 가증스럽게.’
사실 나는 어쩌면 아주 조금 망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내 기억 속에 있는 다 자란 4황자 놈이었다면 주저 없이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이건 뭐야.
이 절박함.
이 가련함.
이렇게 맹목적일 정도로 애처롭게 사람의 손길과 온기를 갈구하는, 다 죽어가는…….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