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2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27화(27/207)
1황자는 내가 이상하게 구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앞에 있는 수정 속의 마수에게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갔다.
1황자의 머리 위로 위압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렇게 수정에 넣어서 보관하기까지 하다니, 좀 신기하네.”
당연한 말이었지만, 1황자는 박제된 마수 앞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꼭 그가 눈앞에 있는 마수에게 한입에 집어 삼켜질 것처럼 보였다.
“꼭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아.”
이윽고 1황자가 수정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순간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오빠가 날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정말 떠올리기 싫었고, 지금까지도 잘만 잊고 지내던 과거였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마수 앞에 서 있는 1황자를 본 순간, 가슴 가장 밑바닥에 짓밟아 묻어놨던 옛 기억이 제멋대로 풀려났다.
‘더는 날 좋아해 달라고 귀찮게 하지 않을게. 오빠가 앞으로 두 번 다신 날 안 본다고 해도 상관없어.’
빙의 1회차 때, 내가 바보같이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을 좋아했던 시절.
하지만 로잔티나에 침공한 마수들로 인해 파국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이기도 했다.
벌써 꽤 오래된 일인데,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나는 모든 일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너무 일찍 일어나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마수를 조종하는 세력을 막기 위해 원작에서 계략에 빠져 죽었던 장소로 향하려 하는 1황자를 거의 애걸하다시피 붙잡았다.
‘하지만 이번 한 번만 내 말대로 해주면 안 돼? 제발.’
1황자는 늘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지만, 그때만큼은 귀담아 들어주길 바랐다.
어쩌면 이번에는 그가 내 말을 무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목숨이 달린 일인데, 죽음의 예언을 들은 이상 조금의 꺼림칙함은 느끼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돌아온 건 온몸이 얼어붙을 듯이 냉랭한 눈빛이었다.
‘넌 이런 상황에서조차 여전히 그런 헛소리를 늘어놓는 건가? 지금 네가 한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모르나 본데.’
뒤이어 가슴을 깊게 뚫고 들어온 그의 말은 꼭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네가 정말 미래를 안다면, 얼마 전 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죽었지?’
뒤이어 내 손을 뿌리치려던 1황자가 내 얼굴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싸늘한 기운을 묻히고 있던 그의 눈매가 작게 꿈틀거렸다.
‘……널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야.’
잠시 후, 그가 내 손을 조용히 떼어냈다.
나를 등지고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한 치의 주저함도 담고 있지 않았다.
‘설령 죽더라도 내가 가야만 해. 그게 황족으로서의 내 사명이니까.’
그러고 나서 그는 결국 시신으로 돌아왔다.
엉망이 된 1황자를 보고 나는 참지 못해 그를 비웃었다.
잘 죽었다, 이 멍청한 놈.
사람 가슴에 몇 번이나 대못을 박더니 결국 이렇게 죽어버리고, 정말 쌤통이다.
그렇게 외치면서 울며 웃었다.
“음, 그래, 아스포델. 네 취향이니까 존중할게. 으음……. 취향이 상당히 특이하긴 하지만.”
얼마간 흰 괴조를 여기저기 뜯어보며 말을 쉽게 고르지 못하던 1황자는 이내 애매하게 웃는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반짝이는 금발, 숲의 향기를 품은 녹안. 고귀한 느낌을 풍기는 단정한 얼굴.
그러나 날 향한 눈빛과 표정만큼은 낯설었다.
“……마.”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뭐?”
내 말을 잘 듣지 못해 되물은 1황자가 내 얼굴을 보고 과거의 기억 속에서처럼 퍼뜩 움직임을 멈추었다.
녹음을 담은 눈이 서서히 커다랗게 떠졌다.
“역시, 그냥 오지 마.”
그런 그를 향해 다시 말했다.
“전에 내가 했던 말 취소할 거야. 다신 우리 궁에 오지 마.”
“아스포델…….”
“네 얼굴 보기 싫어.”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말만 한 뒤, 놀란 듯한 1황자를 두고 돌아섰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그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듣기 싫은 소음은 복도에까지 들어찬 쏟아지는 빗소리와 어느새 달리기 시작한 내 발소리에 묻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 후, 방에 틀어박힌 나를 1황자와 마가렛이 찾아왔다.
하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중에 외출에서 돌아온 아빠가 걱정스럽게 날 살폈다.
둥지에서 본 새끼 신수들처럼 아버지에게 안겨 다독임을 받으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왠지 기분 나쁜 꿈을 꿀 것 같아서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Chapter 9
1황자 유클레드와 2황자 루벨리오의 갈등
세상만사 다 그렇지만, 내 기분과 상관없이 또 내일의 태양은 떴다.
“흠, 좋아!”
이틀 뒤, 아침 일찍 일어나 침대 밑에서 으쌰으쌰 체조를 한 나는 두 손으로 아프지 않게 양 볼을 찰싹 내려쳤다.
그래, 오늘은 다시 심기일전해서 보람찬 하루를 보내야지.
그저께는 역시 악몽을 꿔서 밤에 잠을 좀 설쳤다.
하지만 대신 어제는 피곤해서 그런지 아주 꿀잠을 잤다.
잠깐 감상에 빠져 우중충해져 있긴 했지만, 나도 언제까지나 땅만 파고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멘탈 관리, 멘탈 관리!’
뺨을 다시 찹찹 안 아프게 때린 뒤, 나는 마가렛의 시중을 받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황녀님, 잠깐 밖으로 나와 보시겠어요? 록샨 님께서 선물을 준비하셨답니다.”
“아빠가?”
아침 식사 후 마가렛이 날 후원으로 데려갔다.
에구, 그만 걱정시켜 버렸나 보네.
일단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핑계는 댔지만 안 믿는 것 같았지.
지난 이틀 동안 확실히 내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긴 했나 보다.
아버지가 날 위해 갑자기 이런 깜짝 선물까지 준비한 걸 보면.
“아델, 우리 딸 왔구나! 이것 좀 보렴.”
그리하여 후원에서 아버지가 야심 차게 내게 준 것은 바로…….
“널 위해 아빠가 새벽 일찍부터 서쪽 마수 둥지에 가서 마라커스를 잡아 왔단다. 꼬리가 가장 탐스러운 놈으로 골라 봤는데 마음에 드니?”
“우와아아…….”
참으로 흉악하게도 생긴 붉은 마수였다.
온몸이 꼭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위용 넘치는 송곳니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이 몹시도 인상적이었다.
‘흐읍!’
난 그만 억울해서 울 뻔했다.
‘내 취향은 마수가 아닌데!’
난 우리 애기 신수들처럼 귀염뽀짝한 게 좋은데!
애초에 제가 마수 같은 걸 좋아했으면 피폐물을 봤지, 육아물을 팠겠냐고요!
어쩐지 날 여기로 데려오는 동안 마가렛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모호한 표정을 짓더라니.
그래도 완전 소중한 우리 아버지 기 죽이면 안 되지.
“아빠 선물 너무 좋아요! 우와, 완전 최고! 고마워요, 아빠.”
젠장,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려니 창의성 없는 말만 나오는군.
이미 사라진 영혼을 긁어모아 아버지 찬양, 선물 찬양을 하자 그가 흐뭇하게 웃으며 마수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이것도 수정에 넣어서 아델의 놀이방에 넣도록 하자.”
결국 내 놀이방에는 마수 박제품 2호가 생겼다.
더불어 놀이방에 갈 때마다 나와 마가렛의 눈도 두 배로 촉촉해지게 생겼다.
바깥에는 그날부로 새로운 소문이 돌게 되었다.
3황녀가 마수를 겁내기는커녕 아주 좋아해서 벌써부터 그것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논다는 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생일 연회 때 3황녀가 연회장 안으로 날아 들어온 마수를 한 손으로 때려잡았다는 과장된 헛소문까지 더해졌다.
어차피 금방 가라앉을 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코웃음을 치고 무시했다.
그 소문이 머지않은 훗날 나한테 무시무시한 망나니 황녀로서의 명성이 붙는 시초가 될 줄은, 당연하게도 이때의 나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 * *
“또 자리를 비운 건가?”
“예, 1황자님. 황녀님은 조금 전 외출하셨어요.”
오늘도 1황자 놈이 날 찾아왔다.
지난번에 내가 면전에서 꼴 보기 싫다고까지 했는데도 참 끈질겼다.
하지만 난 궁에 없는 척하며 녀석을 만나 주지 않았다.
마가렛의 말을 들은 1황자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어째 요즘은 내가 올 때마다 없는 것 같은데.”
“호호……. 원래 활동적인 분이신지라 해가 지기 전에는 궁에 계실 때가 드물답니다.”
잘한다, 마가렛!
거짓말 시켜서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힘내주시게.
“1황자님, 오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차라리 다음엔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오시는 게 어떨지요? 마침 3황녀님의 일정을 아는 전담 궁인이 앞에 있으니 지금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뜨헙.
그때 1황자놈의 전담 궁인으로 보이는 수행인이 뒤에서 쓸데없는 조언을 했다.
날카로운 눈빛을 보아하니, 자꾸만 자신의 주인을 문 앞에서 바람맞히는 내 행태에 기분이 불쾌한 모양이었다.
난 내심 속이 불편해졌다.
1황자의 전담 궁인이 말한 대로, 1황자가 정식으로 나와 약속을 잡고자 한다면 지금처럼 언제까지나 거절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마가렛도 그 사실을 알기에 만약 1황자가 저 말에 동조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