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3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30화(30/207)
“좋았어. 망가진 데 없이 상태는 멀쩡하군. 이 정도면 제값에 팔 수 있겠어.”
천 안에 곱게 싸여 있던 건 내 눈에도 익은 솜뭉치 같은 연노란색 풀이었다.
“썩을, 한두 번 해왔던 일도 아닌데 하필 이번에는 재수 없게 들켜서.”
그것은 내가 얼마 전 조슈아를 도와 물통에 난 구멍을 막는 데 사용했던 신수 둥지 제작용 방수 풀이었다.
나는 악덕 고참이 그것을 몇 번이나 밖으로 빼돌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약으로 유통 중인 거구나!’
저 방수 풀은 그냥 쓰면 아무 이상도 없지만 일정 기온 이상에서 가공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분이 들뜨는 마약 같은 물건이다.
그래서 한때는 저 풀과 관련한 범죄가 일어났던 적도 있어, 지금은 관리를 엄중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밤늦게까지 잔업 중이던 조슈아가 이런 범죄의 현장을 목격했으니…….
“그나저나 미치겠네……. 이제 이놈을 어떻게 처리하지?”
악, 그런데 잠깐만!
텃세 부리던 놈하고 싸웠다며!
소설에서 분명 그랬으면서!
하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잖아!
사실 난 회사 다니던 시절의 텃세 같은 걸 생각했단 말이다.
망할 상사 새끼 한 번만 죽빵 날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악으로 버티던 그 시절!
물론 패드립 섞인 독설과 악담을 퍼붓고 자기가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그런 짓도 완전 나쁜 짓이긴 한데!
그래도 이건 심각성이 다른 범죄잖아!
신수들아, 조슈아의 생명이 위험한 이런 일이었으면 내가 아니라 경비병을 불렀어야지!
“후우, 어쩔 수 없군.”
그때 마침 결정을 내린 듯, 악덕 고참이 조슈아에게 걸어갔다.
“하필 이 시간에 이런 창고에 찾아온 네 불운을 탓해라.”
“무, 무슨 짓을 하려고요?”
“여기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숙소에는 안 들리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확실히 그 말처럼 이곳은 신수 둥지 내에서도 외진 곳이라 크게 소리를 질러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 안 들릴 것 같았다.
악덕 고참이 묶여 있는 조슈아에게 손을 뻗었다.
앗, 안 돼!
“아가들아! 물어!”
엉겁결에 외친 내 목소리에 신수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꺄앙!”
“꺙!”
쿠당탕!
“으, 으악! 이게 뭐야……!”
순식간에 문을 부수고 들어간 새끼 신수들이 조슈아의 앞에 서 있던 남자를 덮쳤다.
“시, 신수들?”
조슈아도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신수 두 마리가 달라붙어 조슈아의 밧줄을 갉았다.
“으아악! 이 미친 것들이! 저리 비켜어어어……!”
남자가 신수들을 떼어놓기 위해 마구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바람에 새끼 몇 마리가 반동을 못 이기고 떨어져 나갔다.
“애, 애기들 괴롭히지 마요! 이 나쁜 사람!”
밧줄에서 풀려난 조슈아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났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자세로 움직였다.
팔다리가 흐느적거리며 마구잡이로 휘둘러졌다.
난 급격하게 긴장감이 떨어지기 시작한 눈앞의 광경을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 놀이공원이나 신장개업하는 가게 앞에 세워두는 바람 인형 있잖은가?
그 인형 두 개가 사지 간수를 못 한 채 사방으로 버둥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쿠억!”
그러다 새끼 신수들에게 눈이 가려져 운 나쁘게 조슈아의 주먹에 한 대 얻어맞은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꾸앙꾸앙!”
“뿌앙!”
그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새끼 신수들이 얼른 온몸으로 깔아뭉갰다.
악덕 고참은 기운이 다 빠졌는지 신수들에게 깔린 채 신음만 내뱉었고, 조슈아는 행색이 엉망이긴 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해 보였다.
‘아, 아니……. 이대로 끝난 건가? 이렇게 싱겁게?’
시기상 소설에서 언급되었던 조슈아가 위험했던 사건이 이게 맞긴 한 것 같은데…….
하지만 역시 조슈아가 신수와 각인한 듯한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새끼 신수들을 구원투수로 내보내서 그런가?
그래서 조슈아가 위기의식을 덜 느꼈나?
‘으, 으악! 그럼 또 내 탓인 거야?’
혹시 또 내가 너무 성급하게 움직인 탓에 일을 망친 건가 싶어서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치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까는 어쩔 수 없었다.
눈앞에서 조슈아가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단 말이다.
‘일단 소설에 사기당했어……! 단순한 텃세로 일어난 싸움이 아니었잖아!’
“끼끼!”
그렇게 내가 창고 밖에서 남몰래 머리를 쥐어뜯으며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된 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고뇌하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족제비들이 토다다닥 뛰어왔다.
뒤를 이어 사람들의 발소리까지 들렸다.
“이쪽이야, 이쪽! 족제비 놈들이 창고 쪽으로 사라졌어!”
“허참, 도대체 어느 구멍으로 그런 날짐승들이 들어온 건지……. 어? 문이 왜 부서져 있지?”
난 서둘러 모습을 숨겼다.
아까 저 악덕 고참이 둥지 풀을 꺼내 들었을 때부터 안 보이더니만, 아무래도 우리 똑똑한 족제비들이 숙소에 있던 다른 관리사들을 불러온 것 같았다.
그래, 잘했다!
역시 진작부터 어른들을 불러왔어야 해.
“아, 아니!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창고 안이 엉망이잖아! 설마 너희, 여기서 싸우기라도 한 거냐?”
“잠깐, 이건……! 벨라 풀 아냐?!”
창고 안의 상황을 확인한 관리사들이 경악했다.
그들은 주변 모습을 한 번 훑어본 뒤 대략의 사정을 파악한 듯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빨리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과, 관리사님. 그게…….”
안절부절못하던 조슈아가 이내 사실을 고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결의를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조, 조슈아가, 조슈아가 벨라 풀을 훔치려 했어요!”
바로 그때 아직도 새끼 신수들에게 깔려 있던 악덕 고참이 선수를 쳤다.
“제가 똑똑히 들었어요! 저걸 밖에 가지고 나가서 팔 거라고! 그걸 저한테 들키니까 공격해서 절 이렇게 만든 거라고요……!”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잡아떼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을 조슈아에게 덮어씌우려 하기까지 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 선배가 한 짓이잖아요!”
“이 새파랗게 어린 게 어디서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아닙니다, 관리사님들! 이 녀석이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신수들까지 이용해서 절 이렇게 만들었다고요! 이런 수상한 놈의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조슈아는 말싸움에 일가견이 없는 것 같았다.
악덕 고참이 큰 목소리를 내며 누명을 씌우는 동안, 조슈아가 한 일이라고는 입술을 뻐끔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관리사들은 자기들끼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놈 말이 맞는지 명쾌한 증거가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느낌이었다.
뭐야, 내가 나설 차례인가?
“아냐, 아조씨가 한 일이자나!”
난 기회를 틈타 살그머니 끼어들었다.
내가 우렁차게 외치며 갑자기 나타나자, 모두들 놀라서 눈을 홉떴다.
“화, 황녀님?”
“내가 저기 숨어서 다 봐써! 저 아저씨가 풀도 훔쳐서 숨겨놓고, 저 오빠한테 들키니까 막 묶어놓고 때려써!”
나는 어린애 말투를 흉내 내면서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를 삿대질하며 계속 말했다.
“아조씨, 어린애 괴롭히는 건 나쁜 어른이야. 도둑질하는 것두 나쁜 어른이야!”
갑작스러운 증인의 등장에 범인인 악덕 고참은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슈아도 입을 크게 벌린 채 날 쳐다봤다.
“아, 아니, 이 시간에 황녀님이 도대체 여기 왜 계시는 겁니까?”
앗, 그러게. 변명 거리는 아직 생각 안 해뒀는데.
에라, 모르겠다. 되는대로 씨부리자.
“낮에 신수 둥지에 와쓸 때 뭘 떨어뜨렸는데 그래서 찾으러 온 고야. 그런데 창고가 시끄러워서 한 번 와봤다가 저 아조씨가 소리 지르길래 무서워서 숨어 이써써!”
좀 이상하다고 생각돼도 뭐 어쩔 건데.
나 황녀야!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닙니다, 전 아니라고요!”
하지만 범인 녀석은 갑자기 황녀가 증인으로 튀어나오니 불안과 초조함에 먹혀 이성을 상실한 모양이었다.
“창고가 어두워서 황녀님이 뭘 잘못 보신 모양인데, 설마 이런 쪼그만 어린애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예?!”
남자가 겁대가리 없이 지껄인 말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쪼그만 어린애?”
불쾌함에 조금 전까지 일부러 순진한 어린애인 척하고 있던 것도 집어던져 버렸다.
“이 건방진 것! 지금 감히 누구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냐?”
내 입에서 흘러나온 냉엄한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놀란 듯이 흠칫 몸을 떨었다.
게다가 내 흉흉한 눈빛까지 정면에서 받은 남자는 얼굴을 새하얗게 질린 채 ‘허헉!’ 숨을 들이켜기까지 했다.
“난 로잔티나의 황녀다. 내 나이가 어리다 해서 너희가 감히 함부로 무시해도 될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비록 이 육체는 다섯 살짜리 어린애의 것이었지만, 그래도 지난 세월 동안 영혼에 축적해 온 황녀로서의 내공이란 게 있었다.
“특히 너처럼 나잇살만 처먹구 어린애 하나 괴롭히는 데서 희열을 느끼며 밥 먹듯이 거짓말만 하는 놈 백 명보다, 아직 다섯 살바께 안 된 어린 내 말 한마디가 더 가치 있는 게 당연하단 걸 모르는 고냐?”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