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3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34화(34/207)
난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차라리 그냥 나 혼자 떨어지게 놔두지 그랬어.”
“뭐? 어떻게 그래?”
난 진심이었는데, 1황자는 무척 황당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반문했다.
그러더니 그가 약간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하듯이 물었다.
“너, 아직도 나한테 화 많이 났어?”
“뭐?”
“너한테 계속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찾아다닌 거라고 했잖아. 사실 지난번에 신수 둥지에서 봤을 때도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그는 어째서인지 어두운 얼굴로 또 망설이다가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 올려 나를 마주했다.
“미안해.”
그러더니 오히려 나한테 사과해 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이상한 표정을 지은 것 같았다.
“내가 그때 네 놀이방에 있던 마수…….”
그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1황자가 다소 성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거 보고 네 취향이 특이하다고 그랬잖아.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걸 가지고 함부로 그런 얘기 하면 안 됐던 건데. 미안해.”
“…….”
“네가 기분 상한 것도 이해해. 그래서 계속 사과하고 싶어서 만나려고 했던 건데……. 혹시 그것 때문에 더 화났으면 그것도 미안해.”
말을 끝마친 1황자가 조금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난 그를 말없이 빤히 응시했다.
내 시선을 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1황자의 눈도 점점 더 많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내 나는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오빠 진짜 바보구나?”
“뭐?”
“진짜 멍충이야.”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1황자가 실망과 반발심이 뒤섞인 눈을 한 채로 얼굴을 찌푸렸다.
“아델, 그만 돌아가자.”
그때 문밖에서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난 1황자를 방에 두고 뒤돌아섰다.
그래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사했다.
“……다음에 또 과자 가지고 차 마시러 와. 여기 요리사가 만든 거 맛이 꽤 괜찮더라.”
내 말을 들은 1황자 유클레드가 잠깐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다가, 곧 웃었다.
“그래. 다음에 많이 가지고 갈게.”
“그리고…… 아까 나 모른 척하지 않고 도와줘서 고마워.”
“어, 뭐……?”
덧붙인 말은 좀 의외였는지 유클레드가 약간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두 번 말하지 않고 문을 콩 닫았다.
* * *
1부군과 유클레드의 궁을 나와 아버지와 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
어느덧 하늘에는 주황색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아델, 혹시 나중에라도 아픈 곳이 있으면 아빠한테 꼭 말해줘야 한다.”
“네.”
기분 탓인지 잔잔하게 불어 드는 바람이 아까보다 다정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아까 보았던 유클레드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급한 표정을 지은 채 내게 달려오던 그의 모습이 지금까지 내 안에 남아 있던 과거의 기억 위에 선명히 덧칠해졌다.
‘나 진짜 바보구나.’
조금 전 유클레드에게 한 말은 사실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정말 멍청이야.’
원래 사람은 단 한 순간의 기억만으로도 평생을 살 수 있는 동물이라고 했다.
어쩌면 나도 그런가 보다.
내게 수없이 상처 주고 나를 수없이 실망시켰던 유클레드가 처음으로 그 절박한 빛을 띤 눈 속에 나를 담아냈을 때…….
난 이번 생에서 또 바보 멍청이가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바보…….’
물론 그렇다 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한순간에 전부 잊고, 예전처럼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생에서는 늘 남보다 못했던 1황자가 이번에 먼저 나를 붙잡아준 건, 내게 이번 생에 조금의 기대는 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 나도 꽉 닫힌 마음에 아주 조금만 틈을 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조금, 진짜 아주 조금만.’
나중에 또다시 그 뒷모습을 봐야 한다 해도 슬프지 않을 정도로만.
그리고 내가 오늘 유클레드에게 한 걸음 다가오는 걸 허용한 이상, 그보다 먼저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마침내 긴 고민에 종지부를 찍고 난 입을 열었다.
“아빠, 우리…….”
* * *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하네, 카루스.”
“무슨 말씀을요! 저야 두 분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쁜걸요.”
신비로운 공기가 가득 고인 신의 정원은 변함없이 고요했다.
오늘도 윤기 없는 작은 열매는 시들시들한 덩굴에 둘러싸여 꺼져 가는 생명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열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사이 카루스가 자주 들렀었는지, 열매에는 새까만 기운이 덕지덕지 묻은 상태였다.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손가락 끝으로 열매의 표면을 살짝 건드렸다.
‘제르카인.’
그리고 마음속으로 내 미운 남동생, 4황자의 이름을 불렀다.
우웅.
그러자 열매가 아주 희미하게 미동했다.
꼭 내가 온 것을 알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짐승이 눈을 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까꿍이가 3황녀님의 손길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카루스가 기뻐하며 말했다.
아버지도 한 발짝 뒤에서 나와 열매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상하게 웃었다.
나도 그들을 향해 한 번 웃어준 뒤 다시 열매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님께서는 여전히 절 그런 눈으로 보시네요.’
‘누님은 모르시겠지만, 제가 누님께 품은 그리운 마음 역시 늘 변함이 없었지요.’
사실 그때 제르카인이 그런 말만 안 했어도, 난 그를 조금 더 미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이곳에서 4황자의 초라한 열매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속에는 무거운 망설임이 크게 생겨나 있었다.
사실은 그에게 배신당한 것에 화가 나기는 했지만, 4황자가 왜 자기 자신마저 파멸시키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부친인 카루스와 함께 황궁에서 어떤 취급을 받으며 지내 왔는지, 눈과 귀가 달린 황족이라면 모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을 테니까.
그 와중에 4황자가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의지하던 대상이 나였다는 것도 진작 눈치채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늘 그에게 선을 그었다.
나중에 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또 어쩐지 그가 주는 애정이 온전한 내 것 같지 않아서.
‘결국 난 진짜 아스포델도 아니니까.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이곳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고.’
그러니 어떤 의미로 지금까지 나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고는 하나, 이 세계에서 단 한순간도 나 자신을 전부 내던져 버리는 일 없이 어느 정도는 관조하는 느낌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냥 한 번씩 주고받은 걸로 치자.’
내가 그를 상처입힌 것과 내가 그에게 상처 입은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큰지 이제 와서 따져보는 것도 무의미할 뿐이다.
어쨌든 나는 결국 이 아이를 완전히 버릴 수 없는 모양이니까.
하여 나는 과거로 돌아오기 전, 나를 배신한 그를 그때 그냥 죽인 셈 치기로 했다.
실제로는 내가 보낸 성령들에게 녀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진짜, 넌 내가 이렇게 착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 아가야.”
그렇게 작게 읊조리며 눈앞의 열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까처럼 감질나게 건드리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확실히 손바닥을 전부 다 밀착시켜 열매를 감싸듯이 잡았다.
파앗!
악취를 풍기던 검은 기운이 흩어졌다.
내 손이 반가운 듯 열매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이번에는 거기에서 손을 떼지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미묘한 마음을 회피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 주저함에 미련 한 방울을 더해 종지부를 찍었다.
왠지 내 빙의 3회차 인생의 진정한 시작점은 지금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Chapter 12
지금까지 너무 쉽게 풀렸죠? 사실은 하드모드였습니다!
1황자 유클레드는 진짜 금방 우리 궁에 놀러 왔다.
“봐, 감쪽같지? 신관님들이 금방 치료해 줬어.”
결국 그는 신관을 불러 부러진 팔을 고쳤다.
난 인내심이 그것밖에 안 되느냐고 비웃으려다가 저 부상의 원인이 나란 걸 깨닫고 얼른 말을 돌렸다.
“그으러게, 이제 안 아프겠네.”
“말했던 대로 깔끔하게 부러져서 원래도 별로 안 아팠어.”
유클레드는 이번에도 생색을 하나도 안 냈다.
난 또 조금 아련해졌다.
그래, 내가 소설에서 너의 이런 부분을 좋아했었는데!
이후에 알고 지낼수록 이 녀석에게 품고 있던 환상이 개박살 나서 그렇지.
“그보다, 오늘 가져온 과자 한번 먹어봐. 아마 네 취향에 맞을걸?”
1황자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의 접시를 눈짓했다.
난 가자미 눈으로 그걸 내려다봤다.
‘엄청 달겠구먼.’
아무래도 이 녀석은 처음 여기서 같이 간식을 먹었을 때 했던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날 설탕 과자 동지로 여기는 게 분명했다.
‘에효. 그래, 누구를 탓하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걸.’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