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4화(4/207)
“가, 갑자기 이게 무슨……!”
“내가…….”
나는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 앞에 선 남자를 비웃었다.
“언젠가 반드시 화근이 될 거라……. 그것이 두려워 미리 없애러 왔다더니.”
이 한 문장을 말하는 데 또 한바탕 피를 토해내고, 가까스로 내뱉은 목소리는 거칠게 문드러져 있었다.
“그런데 왜, 날 바로 죽이지 않고 그렇게 방심하고 있나?”
하지만 그래도 의미가 닿기엔 충분했다.
남자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급히 내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 했다.
내가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으, 으아악!”
지이익……!
그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아귀에 목을 단단히 틀어 잡혀, 바닥에 질질 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크헉……!”
“아악!”
문가를 지키고 서 있던 4황자의 다른 수하들도 차례로 같은 꼴이 되었다.
나는 또 한 번 피를 토하며 나머지 금제를 풀었다.
첫 번째 것을 해제하고 나니 나머지는 좀 더 쉬웠다.
내가 따로 봉인하고 있던 성령들이 방을 빠져나가 황궁 어딘가에 있을 4황자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이래 봬도 여주인공 버프를 받았다고.’
세간에는 단지 상징성 때문에 신전에서 나를 중시할 뿐, 실제로 내가 가진 능력은 가벼운 정화 능력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다.
핏물 밴 입술에 저절로 비린 미소가 걸렸다.
친애하는 내 아우가 부디 이 누이의 마지막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길.
[아스포델! 죽으면 안 돼!] [정신 차려, 아스포델!] [나쁜 놈들, 전부 다 가만히 안 둘 거야!]희뿌연 시야에 내 앞을 지키듯이 선 영혼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쳐 보였다.
지금까지는 시끄럽다고 구박했는데 지금은 좀 반갑다, 너네.
그래도 내가 죽을 때마다 옆에 있어주는 건 너희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동안 좀 더 자주 불러서 놀아주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하지만 지금 후회해 봤자 어차피 이미 늦었다.
이것이 내 마지막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신님.
‘마지막으로 4황자, 그 개새끼를 죽이고 천국에 가겠습니다.’
결국 그날 새벽, 나는 세상에 첫 빛이 뜨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죽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허무한 2회차 빙의 인생의 끝이었다.
* * *
‘아, 억울하다. 그 고생을 했는데, 설마 이렇게 개죽음을 당할 줄이야.’
나는 영혼이 되어 검푸른 공간에 둥둥 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사후 세계 비슷한 곳인 듯했다.
그럼 난 진짜 죽은 거구나.
그때,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더니 빛으로 된 구체가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저것이 나한테 저주를 내린 목소리의 주인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나를 약 올리는 말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다렸으나 예상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파아앗!
그 대신, 동그란 빛이 환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영혼 상태인 몸이 꼭 자석에 붙기라도 하는 것처럼 저절로 구체에 끌려갔다.
‘설마 내 영혼을 먹어 치우려는 거야? 이렇게 다짜고짜?’
나는 위기감을 느끼고 황급히 소리쳤다.
“잠깐, 잠깐만!”
하지만 흰 구체는 내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
마침내 내 몸에 새하얀 빛이 살짝 닿았다.
뒷덜미에 쭈뼛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야, 적어도 삼세번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인간적으로 두 번은 너무 치사하잖아!”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껴 소리친 순간, 하얀 구체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당장에라도 빨려 들어갈 듯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던 몸이 멈추었다.
그 상태로 하얀 구체는 움직임이 없었다.
착각인가?
뜻밖에도, 어쩐지 조금 머뭇거리는 느낌도 났다.
나는 옳거니 싶어 그대로 밀고 나갔다.
“삼세번의 규칙 몰라? 밥도 삼시 세끼 먹고 게임을 해도 삼세판은 돌리는 게 국룰인데!”
-…….
“삼위일체, 만세삼창, 맹모삼천이란 말도 있잖아! 아기 돼지 삼 형제, 삼신, 삼순이, 삼식이, 3의 법칙도 모르냔 말이야!”
솔직히 아무 말 대잔치라는 자각이 있었다.
하지만 영혼이 삼켜질 위기 아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번만 다시 해! 세 번째엔 진짜 잘할 수 있으니까!”
어차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락바락 우기면서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의외로 그게 먹혔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양심이 있는 놈이었는지, 한참 동안 잠잠하던 흰 구체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듯이 위아래로 작게 흔들렸다.
-좋아, 한 번 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그 직후, 눈앞에 낯익은 하얀빛이 터져 나갔다.
“황녀님! 다섯 번째 탄신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풍경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Chapter 3
빙의 인생 3회차면 풍월을 읊는다
“황녀님! 5번째 탄신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믿을 수 없는 기분에 멍하니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휘황찬란한 황실 연회장이었다.
꽃과 보석들로 장식된 실내의 풍경이 몹시도 화려해, 아리도록 눈이 부셨다.
나는 그중 가장 상석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분명 나는 이 장면을 알고 있었다.
소설이 시작되는 첫 지점.
동시에, 내가 아스포델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첫 순간.
그러나 여전히 내가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면 혹시 여긴 천국인 게 아닐까?
어쩌면 주마등일 수도 있다.
사람은 으레 죽기 전에 과거의 기억을 본다고 하던데.
하지만 이건 너무 진짜처럼 생생하잖아.
“아델, 왜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니?”
그때 누군가 넋을 놓고 있던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감히 허락도 없이 지고한 황족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같은 피를 나누어 받은 혈족이 유일했다.
한순간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웃음기를 머금은 아름다운 얼굴이 두 눈을 찔러 들었다.
“아직 잠이 덜 깼나 보구나. 아니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란 건가.”
다정히 읊조린 남자가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애정 어린 입맞춤을 남겼다.
눈앞에 신비로운 은빛 머리칼이 커튼처럼 드리워진 순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빠?”
“그래, 아델. 모두가 네 생일을 축하해 주러 왔단다.”
그는 내 아버지, 록샨 히세리온이었다.
히세리온 가문 특유의 청아한 은발과 진청색 눈동자를 가진 신비롭고 고아한 분위기의 미남이 시야에 들어찼다.
중년이 되어서도 변치 않는 미모를 자랑하던 아버지이나,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지금은 그 남다른 자태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그는 서늘한 인상과는 달리 나에게만큼은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였다.
내가 아스포델로서의 이 빌어먹을 삶을 사는 동안, 유일하게 아무 조건 없이 한결같이 나를 아껴줬던 건 이 사람밖에 없었다.
“폐하께서는 조금 늦으신다 했으니 먼저 선물을 풀어보자꾸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던 나를 아버지가 안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버지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조그맣고 통통한 어린아이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나 정말 돌아왔구나.
다섯 살의 과거로.
“탄신일을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3황녀님.”
“생일 축하한다, 아스포델.”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이동한 곳은 온갖 선물이 진상된 연회장의 중앙 홀이었다.
근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가 나를 향해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의 부군들과 그들이 데려온 내 이부형제들도 귀족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게 보였다.
“자, 아델. 어떤 선물이 가장 마음에 드니?”
선물더미 앞으로 나를 데려간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엉겁결에 눈에 익은 선물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거……. 파란 리본이 달린 거요.”
진짜 어린애라도 된 것처럼 생각을 거치지 않은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그러자 아버지가 눈꼬리를 접어 달콤하게 웃었다.
우와, 새삼스럽지만 우리 아버지 미모 진짜 장난 아니시네.
“이게 가장 좋은가 보구나. 그럼 한번 열어볼까?”
나는 아버지의 미모에 홀린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가 이렇게 웃는 이유가 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내가 고른 저 선물을 준비한 사람이 아버지이기 때문이지.
소설에서처럼 나도 매번 저 파란 레이스 리본으로 장식된 상자를 골랐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연회장에서 뜯어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크, 큰일 났습니다!”
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내가 막 상자를 품에 안았을 때 누군가 다급히 연회장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소설에 적힌 대로라면 원래 이날,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궁인 때문에 놀라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려야 했다.
실제로도 처음 아스포델이 된 1회차 때는 그렇게 했었고.
하지만 소설 전개상 꼭 망가져야 하는 물건인 것도 아니고, 기껏 아버지가 신경 써서 준비한 선물인데 망가지면 아깝잖아.
장치를 건드리면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안쪽에 반짝이는 꽃잎이 흩날리도록 설계된 아주 예쁜 유리 오르골인데.
그래서 지난 2회차 때와 지금은 도토리를 품은 다람쥐처럼 상자를 소중히 끌어안고 놓치지 않았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