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4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44화(44/207)
“쥐벼룩 같은 게 열받게 하네, 진짜.”
“쥐, 쥐벼룩이라니! 훌쩍,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나한테 한 대씩 맞을수록 힘이 약해져 가던 녀석은 이제 변신이 풀려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어린 남자애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흑……. 신의 사자가 되어 백색 심연에 들어온 700년 동안 이런 포악한 인간은 처음 보는구나.”
이게 뭐라는 거야?
가만히 있는 사람 빡치게 만든 게 누군데.
그러고 보니 내 기억이 미화돼서 그렇지, 지난 두 번의 회차 때도 이런 식으로 속을 뒤집어 놔서 열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래도 꾹 참았었던 내가 보살이지.
“귀엽게 생긴 인간 새끼 주제에 어찌 이다지도 흉악하단 말이냐…….”
“뭐라고, 인간 새끼?”
“새, 새끼 맞잖느냐…….”
“맞긴 뭐가 맞어, 줘도 안 가질 최하급 악령 주제에. 이제부터 인간 아기님이라고 해!”
자그마한 주먹을 움켜쥐고 건방진 악령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나, 나를 이렇게 대한 인간은 처음…… 후회할……!”
“됐고, 빨리 나한테 줄 거 내놔.”
“뭐? 뭘 말이냐?”
발뺌하는 악령을 향해 나는 들으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오늘 여기 들어온 이유가 뭐겠어? 빨리 축복 내놔.”
물론 내가 오늘 받아 가려는 것은 데메테아 여신의 축복 중에서도 가장 최고인 신성력 각성이었다.
“그건 자격이 되는 인간한테만 해주는…….”
“이미 자격 되는 거 다 아는데 자꾸 말 길게 할래?”
다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노골적인 협박에 흠칫한 악령이 딸꾹질했다.
“아, 알겠다! 주면 되잖아!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건방진 악령이 곧 ‘옛다, 먹고 떨어져라!’ 하는 느낌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파앗!
그래도 공갈은 아니었는지, 내 몸에 성결한 기운이 넘쳐흐를 듯이 가득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 그래. 이런 느낌이었지.
벌써 20년 전의 일이라, 성력이 처음 몸을 가득 채울 때 이렇게 기분 좋은 느낌이었던 걸 잊고 있었다.
온몸이 깨끗하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 차서 꼭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내 심장을 감싸며 흐르는 무궁무진한 힘이 느껴졌다.
“이제 됐지? 이제 그만 내 눈앞에서 사라져!”
켈피가 내 앞에서 빨리 꺼지라고 떽떽거렸지만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생겨 조금 전보다 뾰족함이 덜어진 눈으로 악령을 볼 수 있었다.
“그래, 받을 거 받았으니까 이제 갈게.”
녀석도 한결 부드러워진 내 눈빛에 놀랐는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런 그에게 제법 상냥하게 말했다.
“근데 그전에 나도 너한테 선물 줘도 돼?”
“서, 선물?”
“너도 나한테 선물 줬잖아. 나도 너한테 주고 싶어. 그러니까 하나씩 주고받자.”
백색 심연에 들어온 황족에게 이런 제안을 받은 건 처음인지, 녀석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악령은 잠깐 멍하게 나를 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확 붉혔다.
그러다가 큼큼 헛기침을 하고 웅얼거렸다.
“그, 그렇게 나한테 뭘 주고 싶다면 내가 특별히 받아줄 수도 있어! 뭐, 뭘 줄 건데?”
“진짜 받아줄 거야?”
“그래.”
“진짜지?”
“아, 그렇다니까! 뭐든 내가 특별히 받아줄 테니까 어디 한번 내놔 봐!”
바로 선물을 주지 않고 거듭 의사를 확인하자 악령이 애가 달은 듯이 서둘러 답했다.
나는 그를 보고 씨익 웃었다.
내 사악한 미소를 본 악령이 그때에서야 불길함을 느낀 듯 흠칫했다.
하지만 늦었다.
“내가 너한테 줄 건 이름.”
“뭐? 잠깐……!”
“악령 켈피. 오늘부터 네 이름은 ‘앤디미온’이야.”
내가 가진 성력을 쓸어 담아 마지막으로 녀석의 가슴에 손을 댔다.
파앗!
그 순간, 사방으로 황금색 깃털이 날아올랐다.
그것은 순식간에 내 손이 닿은 악령의 심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자, 잠깐! 이게 뭐야! 어떻게 된……!”
“넌 오늘부터 내 발닦개 1호다.”
그 소리에 악령은 경악하여 버둥거렸다. 하지만 무의미한 반항이었다.
내게 강제 종속된 악령 앤디미온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내 왼쪽 새끼손가락에 묶인 보이지 않는 성력의 실이 영혼과 연결된 게 느껴졌다.
조금 무리했는지 코피가 찔끔 나왔다. 그걸 옷소매를 대충 훔쳐냈다.
좋아, 쓸 만한 발닦개를 하나 구했다.
700년 동안 여기에만 처박혀 살아서 그런지 나름 순진해서 쉽게 포획할 수 있었다.
녀석이 어린애 모습을 하고 있어서 동정심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이래 봬도 놈은 악령이었다.
예전에 백색 심연에 들어갔던 황족 중에 끔찍한 환영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미친 자들도 몇 명 있었다고 소설에서 봤는데, 그중 일부는 이 켈피가 한 짓이었다.
그러니 이놈은 좀 호되게 부려 먹어도 되었다.
그럼 볼일도 다 끝마쳤으니 이제 돌아가야지.
내게 나가는 길을 안내해 주려는 듯, 새들이 다시 날아올랐다.
나는 그것을 따라 걸음을 뗐다.
그때였다.
“으아악!”
어디선가 비명이 울렸다.
익숙한 목소리.
2황자 루벨리오인 게 분명했다.
* * *
도대체 뭘 하고 있기에 저렇게 비명을 지르나 싶었다.
‘원래 저 녀석은 아무 일도 없이 신성 의식을 끝냈을 텐데?’
그래서 같은 날 여신의 축복을 받아 신성력 각성을 한 아스포델을 더 시기 질투해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게 정해진 순서였다.
‘……가만. 혹시 아까 나 때문에 꽃가지 끝에 살짝 금이 가서 길잡이 꽃이 안내를 잘못한 건 아니겠지?’
괜스레 마음이 쓰이던 차에 공교롭게도 길잡이 새들이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날 인도했다.
뭐야, 나가는 문이 있는 곳도 저쪽이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하얀 심연 속을 조금 더 걷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2황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의식을 위해 예쁘게 꾸민 게 무색하게도 녀석은 잔뜩 흐트러진 채 넋을 놓고 있었다.
연하늘색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2황자야.”
내가 부르자 눈물로 범벅된 얼굴이 멍하니 들어 올려졌다.
“거기서 뭐 해?”
오만한 루벨리오가 이렇게 망연자실해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루벨리오의 얼굴이 더 처참하게 뭉개졌다.
“말도 안 돼. 내가, 내가 왜……. 왜……!”
“엥?”
털썩!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씹어 뱉던 녀석은 급기야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야, 너 진짜 기절했어?”
깜짝 놀라 다가가서 몸을 흔들어 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혹시 몰라 막 각성한 신성력을 몸에 흘려보내 줬다.
그래도 루벨리오는 깨어나지 않았다.
일단 겉은 상처 같은 것 없이 멀쩡한데, 뭔가 정신적 충격을 받을 일이 있었나 보다.
‘어떻게 하지?’
얘, 정신 차리기 전에는 여기서 못 나갈 텐데.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어떻게 할까 좀 고민하다가 그냥 나가는 길에 루벨리오를 같이 데려가 주기로 했다.
어차피 놈도 의식은 다 치른 것 같고, 괜히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서 그냥 버리고 가기에도 속이 편치 못했으니까.
바닥에 떨어진 2황자의 꽃가지까지 회수해 허리띠에 고이 꽂아준 뒤 루벨리오를 잡아당겼다.
“으챠!”
어라, 그런데 안 들린다.
지금 내 몸으로는 힘이 부족한가 보다.
할 수 없이 곱게 옮겨 주려던 마음을 바꿔 먹고 루벨리오의 발을 붙잡아 질질 끌었다.
기절한 놈의 머리가 산발이 되고 옷차림도 지저분해졌지만 별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문은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를 따라 움직인 황금색 새들과 하늘색 고양이가 문 앞에서 맴돌았다.
좋다, 나가자!
나는 루벨리오와 함께 문 너머의 어둠으로 몸을 들였다.
화앗!
이번에는 검은빛이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쏟아져 들어왔다.
* * *
“아델!”
“루, 루벨?!”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아버지와 루벨리오의 아버지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
특히 루벨리오의 아버지인 쿤차는 나한테 질질 끌려 나온 아들을 보고 기겁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루벨리오가 이런 몰골이 되어서 나온 거지?!”
“아델, 넌 괜찮니?”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의 행색이 좀 엉망이구나.
“괜찮은데, 웁!”
하지만 내 말이 못 미더운지, 아버지가 내 뺨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서 살펴봤다.
“아니, 여기 핏자국이!”
“구냥 코피 쪼금…….”
“코피가 나다니!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른 곳은? 더 다친 데는 없고?”
“없쏘요…….”
피가 많이 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루벨리오! 눈을 떠 봐라, 루벨리오!”
쿤차도 아들의 상태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 오오……! 이것은!”
“저 새는!”
주변이 웅성웅성 시끄러웠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