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45)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45화(45/207)
원래대로라면 백색 심연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꽃으로 돌아갔어야 할 새들이 여전히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관.”
옥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던 어머니도 눈에 이채를 띠며 입을 열었다.
“2황자와 3황녀의 용태를 확인하라.”
신관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달려왔다.
나한테 제일 먼저 뛰어온 건 아이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간에 잠깐 방황하더니, 이내 두 눈을 질끈 감고 노선을 변경해 2황자에게 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다른 신관이 내 손을 붙잡았다.
이후 맞잡은 손을 통해 신성력이 밀려들어 왔다.
동시에 허공을 날아다니던 새들이 깃털로 변해 내 안으로 빨려들 듯이 스며들었다.
“눈이……!”
아버지가 나를 보며 급히 숨을 들이켰다.
신관도 흥분해서 소리쳤다.
“확실합니다! 데메테아 님의 숨결이 깃든 분은 살로메 성녀님 이후 500년 만입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푸르던 눈이 데메테아 여신과 같은 황금빛으로 완전히 변했겠지.
“다른 이상은 없는 것인가? 아이가 코피를 흘렸다고 했네.”
“염려 놓으십시오. 신성력을 받아들이면서 육체에 일시적으로 무리가 갔을 뿐, 다른 이상은 없으십니다.”
그제야 아버지가 안심했다.
그때 아이작 신관이 외쳤다.
“2황자님도 감축드립니다! 희미하지만 성력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예, 3황녀님처럼 성력을 품으신 건 아니지만 데메테아 님께 선택받으신 게 분명합니다.”
쿤차가 반색했다.
뭔지는 몰라도 아들이 의식 때 여신에게 무언가를 받았다니 확실히 환영할 일이었다.
그런데 난 의문이 들었다.
‘어? 원래 루벨리오는 이날 아무 일도 없이 의식을 마쳤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뭐가 변해 이런 결과가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금 간 꽃 가지 때문인가?’
“두 아이 모두가 데메테아의 가호를 받다니, 기쁜 일이군.”
옥좌에서 일어난 어머니가 명했다.
“이 일을 널리 공표하라! 또한 오늘을 로잔티나의 임시 축일로 삼을 것이니, 백성들에게 술과 꽃을 하사하도록.”
“예, 폐하! 은혜에 감읍하나이다!”
소란스러웠던 신성 의식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시끌벅적하게 끝이 났다.
* * *
그날 밤, 나는 백색 심연에서 데려온 악령을 불렀다.
“나와, 앤디미온.”
파앗!
[헉, 뭐, 뭐야! 여긴 어디야?!]영혼체가 되어 나타난 앤디미온이 꼭 새집에 처음 온 영역 동물처럼 잽싸게 방구석에 달라붙어 사방을 경계했다.
[너, 너 날 어디로 데려온 거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난 침대 위에 팔짱을 끼고 앉아 그런 녀석을 보고 혀를 찼다.
좀 귀찮지만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니 설명해 주마.
“여기, 내 방. 네가 왜 여기 있냐면, 내가 널 백색 심연 밖으로 데려왔으니까.”
[여기가 백색 심연 밖이라고……?]앤디미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백색 심연 밖으로 나온 건 그가 신의 사자가 된 이후로 처음일 테니 신기해할 만도 했다.
곧 상황을 파악한 악령의 눈에 환희가 차올랐다.
[하……. 하하하하……! 정말 밖이다! 심연 밖이야!!]그는 언제 방구석에 처박혀 달달 떨었냐는 듯이 해방감에 젖어 내 눈앞을 산만하게 날아다녔다.
[내가 심연 밖으로 나왔어어어어!!]그런데 정신 사납다.
이 자식, 꼭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온 똥파리 같잖아.
“야, 시끄러워.”
[와하하하하하!]“시끄럽다고.”
[꺄하하하하핳!]아오, 저걸 그냥 확.
“앤디미온, 앉아!”
[으헤헤헤……. 켁!]내 명령을 받은 악령이 바닥으로 푹 꺼졌다.
[으, 어? 뭐야?! 내가 왜 이러고 있어?!]그는 바닥에 강제로 주저앉혀져 버둥거렸다.
하지만 내가 명령을 취소하지 않았으니 몸이 움직일 리 없었다.
곧 앤디미온이 으르릉거리며 나를 노려봤다.
[새끼 인간……! 설마 네 짓이냐?!]“새끼 인간? 야, 내가 인간님이라고 하랬지?”
성력을 담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러자 백색 심연에서의 일이 떠올랐는지, 앤디미온이 깨갱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놈은 또 다른 일을 상기한 듯, 쉽게 굴복하지 않고 건방지게 눈을 치떴다.
[이, 이 교활한 인간! 그러고 보니 네가 나한테 사기를 쳤지!]“멍청아, 그게 왜 사기야? 네가 선물 달라며?”
[그 선물이 이름이라는 말은 안 했잖아!]“네가 뭐든 상관없으니까 달라며?”
[그건, 그건……!]자고로 이름이란 모든 생물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빼앗을 수 있는 술사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의 황족들은 진명을 따로 감춰두고 살았다고 들었다.
특히 성령들은 육신이 없는 영혼체라 이름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동의하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으로 성령을 종속시킬 수 있었다.
내가 악령 켈피에게 한 방식도 그런 것이었다.
물론 소설에서 아스포델은 지금처럼 계획적으로 녀석에게 이름을 준 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순수하고 선량한 어린애였단 말이다.
그래서 정말 선물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이름을 줬다.
물론 그때도 놈은 아스포델이 준다는 선물이 이름인 줄 모르고 허락했던 것 같긴 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얼렁뚱땅 맺은 의식이라 그런지, 녀석은 지금도 분에 차서 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주먹맛을 보기까지 해서 그런가?
유독 반응이 앙칼졌다.
“야, 너 다시 백색 심연에 들어가서 수천 년 썩고 싶어?”
난 그런 앤디미온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러자 녀석이 흠칫하며 나를 보았다.
“내가 너한테 이름 안 줬으면 넌 거기서 못 나왔을 텐데?”
그런 생각은 못해 봤는지 앤디미온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조금 전에 녀석이 백색 심연에서 나온 것을 깨닫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다 봤기 때문에 나도 강하게 나갈 수 있었다.
“정 불만이면 무를까?”
[뭐, 뭐?]“난 취소해도 상관없어. 발닦개 삼을 게 너밖에 없는 것두 아니고.”
진심이라는 듯이 일부러 더 심드렁하게 말하자 악령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나는 관심 없는 척 그를 살살 구슬렸다.
“근데 너, 잘 생각해. 나한테 종속돼서 사는 게 너한테 더 이득 아니겠어? 어차피 나 죽은 뒤에는 너도 자유로운 몸이 될 텐데. 인간이 길어 봤자 몇 년이나 살겠어?”
내 말에 귀가 얇은 앤디미온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놈은 입을 우물거리며 심각하게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 중간중간 사악한 눈빛이 날 향하는 것 같은데?
‘짜식이, 또 머리 굴리고 있나 보네?’
저놈 생각이야 뻔했다.
어떻게 하면 날 빨리 죽게 만들어서 한시라도 빨리 자유의 몸이 될까, 그 생각하고 있겠지.
어차피 나한테 종속된 이상 내 뜻에 반해서 해가 될 일은 하지 못할 텐데.
애초에 앤디미온은 장난꾸러기 꼬마 악령이었던 만큼 진심으로 나한테 살의를 품어 해코지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지난 생의 마지막에 녀석이 나한테 죽지 말라고 소리치던 게 생각났다.
놈의 불손한 눈빛을 보고 슬슬 구려지고 있던 기분이 살짝 나아졌다.
그래도 확실히 같이 지낸 만큼 정이 들긴 했나 보다.
나도 죽을 때는 성령들한테 맨날 시끄럽다고 구박만 하지 말고 좀 잘해 줄 걸,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쯧. 그러니까 이놈이 다시 만난 심연에서 4황자 놈으로 변신만 안 했으면 나도 온건한 방식으로 계약해 줬을 텐데.
[좋아, 인간. 내가 특별히 너와 계약을 해주지!]계산을 끝냈는지, 앤디미온이 큰마음 먹고 봐준다는 양 말했다.
“그으래, 그래. 잘 생각해써.”
[이익! 반응이 왜 그따위야! 좀 더 감격하란 말이야!]“아, 구래구래.”
어차피 그럴 줄 알았던 터라 하품을 쩍 하며 대충 대꾸했다.
오늘 의식을 치른 게 몸에 부담이 가서 그런가? 되게 피곤하네.
아까 내 상태를 보러 와줬던 신관의 말로는 며칠 푹 쉬면 나아질 거랬는데.
[씨……. 그런데 너! 앤디미온은 어디서 따온 이름이냐? 설마 이 몸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은 건 아니겠지?]그런데 이 녀석, 아닌 척하면서 자기 이름이 엄청나게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처음으로 심연 밖에 나와 궁금한 게 많을 텐데 눈을 굴리면서 처음 묻는 게 이런 거라니.
“심심하면 이거나 보든가.”
나는 가볍게 혀를 찬 뒤 아버지가 요즘 잘 때마다 나한테 읽어주던 동화책을 집어 녀석의 앞에 던졌다.
<눈의 요정 세렌디피와 해골 기사 앤디미온>
앤디미온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카펫 위에 떨어진 동화책 표지를 보았다.
[혹시 이 해골 이름이 앤디미온이냐?]“맞아.”
[이것 참 용맹해 보이는 해골이구나!]의외로 마음에 든 모양이다.
흥, 하긴 누가 붙여준 이름인데.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