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4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47화(47/207)
일전에 마주친 모르페우스의 반응도 마음에 걸린 참이라 아무래도 한동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3황녀님! 로잔티나의 별을 뵙습니다!”
그런데도 어쩌다 아버지의 궁 밖으로 나갈 때면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시선이 따라붙었다.
“3황녀님, 데메테아 여신의 가호를 받으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황금빛 눈이 정말 잘 찬란하세요!”
데메테아 여신의 선택을 받은 자의 징표가 황금빛 눈이다 보니, 어딜 가도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기 일쑤였다.
아우, 귀찮아.
이런 일이 계속되자 몸서리쳐지게 귀찮고 성가셔졌다.
그나마 이번에는 2황자 루벨리오도 데메테아의 선물을 받아서 사람들의 관심이 분산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유클레드와 타마린느의 말대로,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신성 의식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루벨리오의 아버지인 쿤차도 조용했다.
‘신나서 여기저기 얼굴 비출 줄 알았더니?’
그날 백색 심연에서 봤던 루벨리오의 충격받은 모습도 그렇고,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지 궁금해졌다.
가뜩이나 신경 쓸 일도 많은데 왜 저놈까지 신경 쓰이게…….
[으아아, 똥 마려워!]똥을…… 엥?
[이 짐승 몸은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서 좋은데 자꾸만 똥이 마렵단 말이야!] [시끄러워. 네가 많이 처먹으니까 그렇지.]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를 바삐 굴리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산통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으, 더 못 참겠다. 나 똥 싸러 다녀올게!] [아, 닥치고 꺼져!]흰 족제비 피오가 방 밖으로 정신없이 뛰어가고, 갈색 털이 섞인 족제비 키노는 쿠션 위에 다시 짜증스럽게 드러누웠다.
[어유, 저 똥싸개 자식.]내 말이 그 말이다.
내 사역마들이 저런 품위 없는 소리를 하는 걸 누가 듣기라도 하면…….
갑자기 뒷골이 좀 당기는 느낌이 들어서 아까 마가렛이 마시라고 주고 간 우유를 들이켰다.
그래, 내가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잠깐 아련해져서 있는 정 없는 정 다 끌어모아 저 녀석들에게 잘해 줘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말이지…….
이제 좀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 보면 녀석들을 구박했던 이유가 다 있었다.
거의 20년이나 옆에서 저렇게 떠드는 소리를 듣고 살아봐.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다니까?
사실은 신성 의식을 치른 뒤에 바로 녀석들과 말을 트려고 했는데, 그날 자기들끼리 오늘처럼 떠드는 소리를 듣고 조용히 계획을 미뤘다.
지금도 이런데, 내가 자기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단 걸 알면 얼마나 귀찮게 굴까?
게다가 피오와 키노는 영체 상태로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죽은 생물의 몸을 입고 내 사역마가 된 경우라서, 앤디미온처럼 편리하게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피오가 배변 활동을 하러 간 사이 쿠션에 혼자 드러누워 하품을 쩍쩍하던 키노가 우유를 들이켜는 나를 빤히 보다가 갑자기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글쎄, 마음대로 내 무릎을 타고 올라와 코를 킁킁거리는 것이 아닌가?
[캬하……. 오늘도 군침 도는 냄새.]생긴 건 귀여운 새끼 족제비인 놈이 꼭 술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헤롱거리는 모습을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데메테아 님의 숨결이 닿은 공간에 다녀와서 그런가? 쪼그만 주인한테 흘러나오는 성력에서 전보다 더 맛있는 냄새가 난단 말이야.]급기야 이놈은 입맛까지 찹찹 다시기 시작했다.
[으으, 오늘은 진짜 못 참겠어. 피오 녀석 오기 전에 하, 한 번만! 한 번만 살짝 핥아 봐야지.]날름!
바로 그 순간 내 인내심도 같이 끊어졌다.
“낼름은 무슨!”
[켁!]“야, 이 바보야. 성력이 무슨 과자에 뿌려진 설탕도 아니고 그렇게 핥아본다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손등을 할짝이는 족제비를 양손으로 붙들어 잡고 쏘아붙이자 녀석이 기겁해서 케엑 소리를 질렀다.
[어, 언제부터 쪼그만 주인이 독심술을 할 수 있었지?!]“참나, 독심술은 무슨.”
[히에엑!]“그리고 누구더러 자꾸 쪼그만 주인이래?”
그동안 참느라 진짜 힘들었다!
그래도 말을 트는 시점을 조금이라도 더 미뤄보려고 했는데 무리였다.
[주인! 서, 설마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어떻게? 어떻게?!]놀라긴 진짜 놀랐는지, 키노가 허둥지둥거리며 키에키에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떨어댔다.
아유, 벌써 귀찮아지는 기분이구나.
“그냥 난 다 알아. 너희가 얼마 전에 검은 사기로 칠갑한 남자애 하나를 길바닥에서 두드려 팬 것도 알고 있지.”
[흐억! 그, 그럼 그동안 우리 말 다 알아들으면서 모른 척한 거야?! 아닌데? 피오가 멍청하고 성깔 더러운 꼬마 주인이라고 불러도 아무 반응 없었는데?!]“뭐 인마?”
아무래도 내 사역마들과 심도 깊은 마음의 대화를 좀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피오도 없고, 똑같은 얘기를 두 번 하긴 귀찮으니까 순서를 좀 뒤로 미루기로 하고.
마침 할 일도 많은데 이렇게 된 김에 그냥 키노에게 심부름이나 하나 보낼까 싶었다.
“너, 지난번에 봤던 2황자 기억하지?”
[2황자? 아, 혹시 그 궁상맞은 검은 인간 괴롭히던 건방진 딸기 머리 꼬마 녀석 말하는 거야?]“딸기 머……. 음, 그래. 아무튼 걔. 뭐 하고 있는지 지금 좀 가서 봐봐. 아, 오는 길에 위스테리아 궁에 있는 군청색 머리 남자애 상태도 한번 확인해 보고. 혹시 또 사기가 많아졌으면 살짝 쫓아주고 와도 돼.”
[어? 지금?]“그래, 얼른얼른!”
[어어어……!]원래 좀 맹해서 그런지, 키노는 내가 괜히 급한 척 닦달하자 거기에 떠밀리듯이 후다닥 밖으로 튀어 나갔다.
[캬아, 쾌변을 했더니 시원……. 엥? 너 어디 가냐?] [비켜, 비켜, 급하다고!]그러다 막 배를 비우고 개운한 얼굴로 돌아온 흰 족제비 피오와 키노가 맞닥뜨렸다.
하지만 키노는 피오를 제치고 날쌔게 방문을 빠져나갔다.
아닛, 생각보다 말을 잘 듣네.
기특한 녀석, 다녀오면 맛있는 거 줘야지.
[뭐야, 급똥인가? 쳇, 저러면서 매일 누구더러 똥싸개래?]피오는 어리둥절하게 키노가 사라진 자리를 보다가 자기 혼자 결론을 내렸는지 투덜거리면서 방으로 들어와 쿠션을 독차지했다.
동시에 열린 문으로 마가렛도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황녀님, 5부군님이 서한을 보내셨어요. 지금 읽어 드릴까요?”
앗, 카루스라고?
그렇지 않아도 슬슬 어떻게 지내나 확인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직접 볼래.”
“어머? 하지만 황녀님은 아직 글을…….”
“연습해서 조금은 읽을 수 이써!”
마가렛에게서 후딱 편지를 가져와 확인했다.
카루스가 보낸 편지는 나한테 아부하려고 편지를 보낸 다른 사람들과 달리 군더더기 없이 본론만 들어 있었다.
[3황녀님, 신성 의식을 무사히 치르시고 데메테아 여신님의 축복을 받으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그리고 3황녀님을 향한 감사의 인사도 함께 전해요.
우리 까꿍이를 자주 보러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까꿍이를 아껴 주시고 염려해 주시는 황녀님의 마음이 어찌나 기쁜지요.
까꿍이도 황녀님의 애정 덕분인지 요즘은 나날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아요.
요즘 많이 바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다음에도 같이 까꿍이를 보러 가주세요.
그럼 3황녀님께 늘 데메테아 여신님의 가호가 따르기를 기도하며.
-카루스 올림.]
편지를 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역시 정화해 주러 갈 때가 되긴 했지? 요즘은 바빠서 통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카루스한테 사기가 쌓이지 않았는지도 점검해야 하고.’
한번 마음먹은 이상 난 끝까지 책임진다!
그런데 내 진지한 얼굴을 보고 오해했는지, 마가렛이 옆에서 과장되게 나를 띄워주었다.
“황녀님, 벌써 글을 읽으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우리 황녀님 최고!”
그녀가 서둘러 손짓하자 주위에 있던 다른 궁인들도 호들갑스럽게 가세했다.
“맞아요, 우리 황녀님 너무 멋지세요!”
“저는 황녀님 나이 때 겨우 그림일기나 그렸는데!”
“벌써 편지까지 읽으실 줄 알다니, 정말 훌륭하십니다!”
“우리 황녀님, 귀엽고 사랑스럽고 똑똑하시고! 어쨌든 최고!”
“황녀님, 그래도 아직 어려운 단어가 있으실 텐데 괜찮으시면 이 마가렛이 한번 읽어드려도 될까요?”
“으응, 그래…….”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옆에서 뭐라고 떠드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듣다가, 손을 내미는 마가렛에게 들고 있던 편지를 넘겨주었다.
2황자 루벨리오와 남주인공의 형을 염탐하는 건 지금 키노에게 맡겼고…….
아무래도 한동안 보지 못한 카루스와 제르카인을 살피러 조만간 외출해야 할 듯했다.
그보다 이제 성력을 각성했으니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차례다.
‘좋아, 어머니를 보러 가자.’
* * *
“아빠아아! 오셨어요!”
잠깐 궁을 비웠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나는 뛰어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우리 아델이 아빠 마중을 나와 줬구나.”
앗, 그렇다고 안아 달라는 건 아니었는데요.
역시 이런 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영 적응이 되지 않아서 낯이 간지러웠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