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5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50화(50/207)
앗, 아버지를 위해 좀 더 천천히 물건을 고를 걸 그랬나.
하지만 굳이 지금 쪼그리고 앉아 저 책을 보지 않아도, 어머니한테 말만 하면 바로 선물해 주실 텐데.
하기야, 아버지 성격에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청을 먼저 어머니한테 올릴 리가 없지만.
기회가 되면 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슬쩍 어머니께 말을 흘려 보는 게 낫겠다.
무, 물론 나도 아직 어머니만 보면 심장이 쫄리지만 우리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용기를 낼 수 있어!
“이 물건을 가져갈 테니, 폐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오. 로잔티나의 지고한 태양께 데메테아의 영원한 빛이 머물기를.”
아버지가 어머니의 수석 궁인에게 감사 인사를 대신 전했다.
그녀도 우리에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로잔티나의 달과 별께 태양의 가호를.”
내가 금고에서 무엇을 선택해 가져갔는지, 궁인을 통해 어머니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서쪽 금고에서 나와 우리가 머무는 궁으로 돌아갔다.
* * *
그날 저녁, 글씨 공부를 핑계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데 성공했다.
밖으로 내보냈던 키노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피오도 아까 어슬렁거리며 마가렛의 뒤를 따라간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방에 혼자 남은 나는 내 보물 상자에 고이 넣어 두었던 보라색 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까 봤던 성물이 들어 있었다.
물 속성 신수의 모양을 본떠 만든 인형은 슬라임처럼 말랑한 재질이었다.
이건 아주 오래전에 멸망한 심해 마법 왕국의 유물, 그것도 지금은 완전히 유실된 신성 물질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나도 나중에 신전에 들어가 고위직만 볼 수 있는 금서들을 열람한 뒤에야 알게 된 물건이다.
솔직히 말이 좋아 물 속성 신수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냥 해파리처럼 생겼다.
대충 만든 것처럼 생긴 건 좀 하찮았지만 이건 국보나 다름없는 보물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이 하찮은 인형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가볍게 시험해 볼까.’
“앤디미온, 나와.”
[뭐야, 벌써 글씨 연습 시간이야? 나 하기 싫어!]내 부름을 받은 앤디미온이 진저리치며 나타났다.
짜식이, 요즘 글씨 공부를 좀 시켰더니 이러네.
[응? 그런데 그 만들다 만 건 뭐야? 네가 가지고 노는 인형이냐? 오, 설마 오늘은 글씨 연습이 아니라 인형 놀이하자고? 그래그래! 차라리 인형 놀이가 낫지!]“네가 애냐? 인형 놀이 같은 걸 하게?”
반색하는 앤디미온을 향해 혀를 찼다.
그러자 녀석이 또 발끈해서 빽빽거리기 시작했다.
[애는 네가 애지! 아직 다섯 살밖에 안 된 게! 이 앤디미온 님은 백색 심연에서만 700년을 보낸…….]지잉!
나는 그걸 무시하고 들고 있던 인형 안에 성력을 불어넣었다.
그 순간, 일반인들은 느끼지 못할 힘의 파장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어? 방금 뭐였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하지만 역시 앤디미온은 이변을 알아차린 듯, 허공에 둥실 떠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이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해졌다.
나는 성물의 머리 부분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하얀 빛을 확인하고 후다닥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봤다.
[헉! 뭐야? 저 인간들이 왜 저러고 있는 거야?]밖에서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춘 게 보였다.
하늘을 날던 새도 날갯짓하던 그대로 공중에 박제된 상태였다.
혹시 몰라 문을 열고 나가 복도를 내다봤다.
물건을 옮기고 청소를 하던 궁인들이 마네킹처럼 멈춰 있었다.
어디선가 가져온 과자를 입에 물고 어슬렁거리던 피오도 앞발을 든 상태로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부자연스럽게 멈춘 모습이었다.
‘흠, 역시 피오와 키노는 앤디미온 같은 성령이긴 해도 지상에 뿌리를 둔 생물체의 육신에 깃든 상태라 성물의 강제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군.’
[꼬마 인간! 설마 네가 한 짓이냐? 응? 네가 한 짓이냐고?]고로 지금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건 여기서 나와 앤디미온뿐이었다.
좋아, 좋아. 생긴 건 이래도 역시 성물은 성물이네.
만족스럽게 확인을 끝내고 다시 방문을 닫고 들어와 성력을 거두었다.
인형의 머리에서 퍼지던 은은한 빛도 꺼졌다.
오늘 사용한 시간이 겨우 1분 정도밖에 안 돼서 그런가?
인형의 색깔에는 아직 변화가 없었다.
지금은 반투명한 푸른빛이었지만 사용할수록 점점 투명한 색으로 변하다가 마지막에는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네가 한 거냐니까?! 내 말 안 들려?]“오늘치 베껴 쓰기 다 하면 알려주지.”
앤디미온이 궁금한 듯이 나를 닦달했지만 바로 알려주지 않고 까딱 손가락질했다.
[베껴 쓰기 싫어! 글씨 연습 싫어어!]앤디미온이 몸부림쳤지만 내가 명령을 내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도살장에 가는 소처럼 비틀거리며 날아가 내 침대맡에 있는 인형 중 하나에 들어갔다.
우울한 기운을 흘리는 원숭이가 곧 침대를 가로질러 비실비실 걸어왔다.
나는 그를 들어 책상 위에 앉혔다.
그러고 나서 나도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자, 일단 20장만 채우자.”
[이 사악한 인간! 악마 같은 새끼 인간!]나는 음산한 저주를 퍼뜨리는 인형에게 성력을 담은 딱밤을 먹였다.
따악!
[악!]“떽. 그런 나쁜 말 하는 거 아니랬지?”
[으우우…….]“이거 다하면 오늘은 다른 동화책 읽어줄게.”
[저, 정말이냐?]“그래그래.”
귀찮지만 앤디미온을 다루는 데에는 적절한 당근과 채찍이 필수였다.
그는 조금 구시렁거리다가 얌전히 펜을 들고 종이 위에 글씨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사용한 성물을 다시 보라색 함에 넣었다.
쥐면 부러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조심조심 촉수 하나하나 애지중지 소중히 다뤘다.
지난 생에서 내가 이 물건을 발견한 건 지극히 우연이었다.
이 볼품 없는 인형에 성력을 불어넣으면 시간이 멈춘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로또 맞은 기분이었는지…….
하지만 비록 시작은 미약했더라도 끝은 창대했으니.
내가 2회차 인생에서 마수 침공과 악역들의 만행을 막아내고 모든 사건을 원만히 해결한 데에는 이 성물의 역할이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어머니의 보물 창고에서 꺼내 온 건 무려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성물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껴 쓴다고 했는데도 마지막에는 제한 시간이 다해서 피똥 좀 쌌었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아껴뒀다가 진짜 필요할 때만 써야지.
일단 확실한 치트키 하나를 손에 넣고 나자 마음에 여유가 찾아들었다.
[이것 봐라, 벌써 20장 다 썼다!]“오, 빠르네. 장하다, 장해. 그거 한 세트만 더해.”
[뭐라고!]나는 충격 받은 앤디미온을 우쭈쭈 어르며 기어이 글씨 연습을 더 시키고 그날 하루를 마무리했다.
Chapter 16
유감천만 대신전행
시간이 흘러 대신전에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난 오전부터 외출 준비로 분주했다.
“우리 아델은 글씨도 귀엽구나! 게다가 하루 만에 이만큼이나 글씨 연습을 하다니, 대견하기도 하지.”
나보다 먼저 외출 준비를 마친 아버지가 방에 널려 있던 종이를 보고 웃으며 자상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마가렛도 옆에서 나를 띄워 주었다.
“맞아요. 황녀님이 다섯 번째 생일이 지난 후로 부쩍 자라신 것 같아요. 벌써 글씨 연습까지 다 하시고. 이 마가렛은 아주 감개가 무량하답니다.”
나는 아낌없이 쏟아지는 칭찬을 들으며 뻔뻔하게 외쳤다.
“응, 나 열심히 해쏘!”
사실 저건 앤디미온이 쓴 거였지만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미 다 아는 글씨 연습을 또 할 필요가 있어?
어차피 앤디미온도 백색 심연 밖으로 나왔으니 일상생활을 좀 편하게 하려면 글씨를 아는 게 좋을 테고.
또 글씨를 알아두면 그렇게 좋아하는 동화책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물론 솔직히 말해, 내가 녀석을 잘 부려 먹으려고 공부시키는 것이지만.
어쨌든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정원 쓸고 돈도 줍고.
서로서로 좋은 거니 됐…….
“이것도 앨범에 보관할까요?”
“지금까지 아델이 글씨 연습한 종이들을 전부 액자에 넣어 1층 로비에 장식하는 게 어떻겠는가?”
“어머, 좋은 생각이세요!”
억, 잠깐! 그건 아니잖아……!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