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5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53화(53/207)
맥을 못 추는 루벨리오의 모습을 보아 혹여 그에게 안 좋은 예지라도 떨어진 게 아닐까 우려가 되었지만, 그런 말은 다른 사람에게 경솔히 꺼낼 사안이 아니었다.
쿤차는 이미 록샨에게 심중에 든 이야기를 너무 많이 꺼내놨다는 사실을 퍼뜩 깨닫고 말을 돌렸다.
“크흠, 아까부터 내가 자네 앞에서 공연한 소리를 다 하는군. 그럼 난 다시 루벨에게 가보겠네.”
“예,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십시오, 쿤차.”
록샨은 루벨리오가 탄 마차로 향하는 쿤차를 잠깐 지켜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가 향한 곳은 당연히 딸 아스포델이 있는 마차였다.
“아델, 혹시 멀미가 나거나 몸이 안 좋은 곳이 있으면 아빠에게 말해줘야 한다.”
“웅!”
록샨의 말에 아스포델이 간식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신성 의식 이후 맥을 못 추는 루벨리오를 보고 그의 딸도 걱정이 되었었는데, 아무래도 괜한 기우였던 듯했다.
록샨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웃었다.
야무지게 과자를 먹는 아스포델의 모습을 보니 몸이 안 좋은 것 같지는 않아 마음이 놓였다.
‘음?’
그러다 록샨은 멈칫했다.
한순간 바깥의 어딘가에서 기이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잠깐이라 그가 느낀 위화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어쩌면 딸을 데리고 황성 밖으로 나온 것이 오랜만이어서 다른 때보다 예민해진 것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잠시 후, 마차의 창밖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두던 록샨은 결국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델, 아빠는 잠깐 나갔다 오마.”
딸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한번 확인해 본다 해서 나쁠 것도 없었으니.
록샨은 아스포델을 마가렛에게 맡기고 신수를 불러 주변을 정찰하러 나섰다.
Chapter 17
돌고 도는 데드 플래그
‘뭐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창밖을 보던 아버지가 마차 밖으로 나갔다.
슬쩍 확인해 보니, 푸른 신수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멀리서 작게 보였다.
‘설마 뭐가 있나?’
갑자기 나도 미심쩍은 마음이 들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이맘때 두드러질 정도의 사건 사고는 없었지만 워낙 바뀐 게 많아서 이젠 뭐 하나 확신할 수가 없었다.
“황녀님, 여기 과일도 드세요. 한입 크기로 작게 잘라 놨답니다.”
[나도 줘, 나도!]“어맛, 이 먹보 족제비가 또 황녀님의 간식을 탐하네. 흥, 그럴 줄 알고 너희 것도 준비해 왔지.”
3황자처럼 유독 식탐이 많은 피오가 또 다른 간식을 꺼내 드는 마가렛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키노가 혀를 내둘렀다.
옆에서 들리는 수다 소리에 상념이 다 깨졌다.
에구, 하여간에 얘네랑 있으면 뭘 깊이 생각하질 못하겠다니까.
난 마가렛이 입에 물려주는 간식을 먹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녀님, 저 잠깐 손 좀 씻으러 다녀올게요. 금방 올 테니까 밖에 나오지 마시고 꼭 마차 안에 계셔야 해요?”
“응, 알았어.”
마가렛도 잠깐 자리를 비웠다.
그러고 나서 난 창밖을 살폈다.
휴식 시간이라 그런지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중에는 신관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 신관은 보이지 않았다.
‘남주인공 형이랑 같이 있나?’
몸이 안 좋다던 2황자 루벨리오와 3부군 쿤차도 마차 안에 있는 듯했다.
“앗? 조슈아!”
그러다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황녀님?”
창문을 열고 이름을 외치자 멀지 않은 곳에서 웬 나뭇잎을 줍고 있던 조슈아가 나를 돌아보았다.
혼자 뭘 하고 있던 거지?
무슨 도토리 줍는 다람쥐인 줄 알았네.
조슈아도 내가 반가운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조슈아도 호위로 같이 온 거야?”
“아, 아뇨! 저 같은 게 호위로 왔을 리가요. 그게 아니라 신수 감응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해서 다른 사육사분들과 함께 왔어요.”
조슈아가 겸연쩍은 듯이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황족들의 행렬에 실력 좋은 기사들이 호위로 동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리에는 황실 소속 테이머와 그들의 신수를 돌보는 사육사들도 함께했다.
황실의 기사들이 강하긴 해도, 유사시에 잘 길들인 신수만큼 든든한 창과 방패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슈아는 일전의 일로 신수와의 감응 능력이 높다는 걸 인정받아 차기 사육사 유망주로서 이번 대신전행에 함께할 것을 권유받은 듯했다.
“뀨앙!”
“앗, 뀽뀽아! 얼른 다시 들어가.”
그런데 조슈아의 웃옷 주머니에서 느닷없이 하얀 찹쌀떡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 둥지에 있던 새끼 신수잖아? 조슈아랑 같이 온 거야?”
“아, 저 그게…… 실은 이 아이가 몰래 따라와서……. 혹시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조슈아, 여전히 사랑받고 있구나…….
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슈아는 조금 전에 주운 나뭇잎을 새끼 신수에게 몰래 먹이며 서둘러 사육사들의 마차로 돌아갔다.
나도 창문을 닫고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족제비들은 조슈아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데 키노, 너 요즘 황성에서 어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녀?]그때, 다시 쿠션 위에 널브러져 배를 긁던 피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키노를 향해 호기심을 표했다.
[주인네 궁 밖에 뭐 재밌는 거 있어? 아니면 너 혼자 맛있는 거라도 숨겨 놓은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멍청아.]키노는 내 눈치를 슬쩍 보다가 몸을 말고 누웠다.
내가 아직 피오와 대화를 트지 않은 걸 알고 말을 아끼는 듯했다.
녀석, 그래도 피오랑 달리 눈치가 있다니까.
[아냐, 너 수상해. 혹시 지난번에 봤던 그 미역 머리네 궁에 몰래 가는 거면 나도 같이 가! 고놈,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걸 보고 혹시 했는데 역시나 거기 간식이 참 맛났단 말이지?]빠그작!
순간 피오가 한 말을 듣고 동물 모양 쿠키를 움켜쥔 손에 무심코 힘을 줬다.
저 녀석, 저거! 그때 나한테 혼나고 한동안 외출 금지까지 당했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키노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 같으면 거기 가겠냐? 네가 몇 번이나 3황자 간식을 죄다 뺏어 먹고 방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바람에 애가 자지러질 듯이 울어서 거기 인간들이 쫓아왔던 거 기억 안 나?] [쩝. 난 그냥 꼬맹이 건강을 위해서 간식도 대신 먹어주고 운동도 시켜줄 겸 같이 놀아주려고 그런 건데, 애가 생각보다 소심하더라.] [참나, 네 뱃살이나 신경 써.] [뭣! 이건 살이 찐 게 아니라 털이 찐 거야!]피오가 키노의 말에 발끈해 외쳤다.
그러나 별로 신뢰성이 없는 소리였다.
아까도 저 녀석이 나한테 달려들 때 얼마나 무거웠는데.
키노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흥 콧방귀를 뀌며 피오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피오도 덩달아 흥흥거려서 한동안 내 옆에서는 정신 사나운 흥흥 파티가 열렸다.
그러다 피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날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주인 말이야. 요즘 그래도 좀, 진짜 진짜 쪼오끄음 전보다 똑똑해진 것 같지 않아? 얼마 전까지는 그냥 평범하게 좀 멍청하고 성격 나쁜 꼬마였는데.]순간 키노가 흠칫했다.
피오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이제는 글씨도 그럭저럭 읽는 것 같더라니까? 말도 맨날 ‘피오 때찌! 키노 지지!’, ‘구로지 마, 아야 해~!’ ‘아빠, 죠아~ 마가렛 죠아~ 세상에서 제일 죠아~’ 이러다가 요즘은 제법 문장 구상력이 좋아졌단 말이야. 아, 물론 성격 나쁜 건 똑같지만!]피오가 내 흉내를 낸답시고 어린애 말투를 실감 나게 따라 했다.
뽀각!
내 손에 들려 있던 기린 모양 쿠키가 반으로 툭 부러졌다.
[피, 피오.]키노가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히 피오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눈치가 있으면 그건 피오가 아니었다.
[그래그래, 이럴 때! 난 가끔 요 성질 더러운 땅꼬마 주인이 사실 우리가 하는 말도 알아듣는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니까? 으캬캬캬!]흰 족제비의 솜털 같은 손이 날 건방지게 팍팍 쳤다.
그러면서 혼자 재미있는 농담을 한 것처럼 방정맞게 웃어댔다.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어두운 기운을 느낀 키노가 슬금슬금 피오와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피오오오…….”
나는 음산하게 피오를 부르며 그를 양손으로 감싸 들었다.
[으엥?]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흰 족제비는 내 손 안에서 귀엽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내 입에 걸린 미소를 보고는 무언가를 감지한 듯이 피오도 몸을 파드득 떨었다.
“너 나랑 오붓하게 얘기 좀 해야게따.”
그렇게 길디긴 대화의 장이 열렸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