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5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54화(54/207)
[너무해, 꼬마 주인! 내 말 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서 계속 모른 척하고!]나와 깊은 대화를 나눈 피오가 내 어깨 위에 매달려서 시끄럽게 끼유끼유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놀라고 당황한 듯 어버버거리더니, 역시 쓸데없이 회복력이 빨랐다.
[게다가 나랑은 말 한마디 없이 키노랑만!]“시끄러워. 내가 못 듣는 줄 알고 내 흉이나 보던 게.”
[그, 그건 그런 게 아니라 다 애정으로!]아우, 시끄러워.
섭섭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서 그냥 봐줬는데, 손 들기 벌을 조금 더 시킬 걸 그랬나.
[바보. 내가 피오, 너 언제 한번 이럴 줄 알았어.] [씨이, 너도 나빠! 꼬마 주인한테 혼나기 전에 슬쩍 알려줬어야지!] [네가 뭐가 예쁘다고? 그리고 아까 분명 내가 눈치를 줬는데 네가 못 알아들어 놓고는.]또 투덕거리기 시작한 두 족제비를 보며 작게 혀를 찼다.
그나저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애들끼리 인사나 시켜 둘까?
아무래도 마가렛이 오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하고.
“앤디미온, 나와.”
하여 내친김에 앤디미온을 불렀다.
[뭐야? 여긴 어디야? 매번 보던 방이 아닌데?]“마차야. 지금 외출해서 어딜 좀 가는 중이거든.”
[헉! 화, 황궁보다 더 바깥이란 말이냐?]앤디미온은 백색 심연에 좀 오래 갇혀 살아서 그런지, 별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려 했다.
“오늘은 다른 애들하고 소개해 주려고. 자, 인사해. 앞으로 가끔 만날 일 있을 테니 사이좋게 지내.”
마가렛이 올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많이 있는 건 아니라 얼른 앤디미온을 피오와 키노에게 소개해 주었다.
조금 전에 먼저 설명해 준 게 있어서 그런지 그들은 앤디미온을 경계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와, 백색 심연에 있던 성령이라니, 처음 보네.] [이름이 앤디미온이야?]앤디미온은 현재 위치가 황성 밖이란 사실에 흥분하려 하다가, 눈앞의 녀석들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는 코앞까지 다가와 관찰하는 두 족제비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이, 새끼 인간…….]“쓰읏.”
[아, 아니. 아스포델. 이것들이 전에 네가 말한 내 부하냐?]“내가 언제 부하라 그랬어?”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네가 우리 집 셋째인데.
[흠, 촐싹거리는 모습이 날 섬기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이긴 한데, 아쉬운 대로 할 수 없지.]하지만 앤디미온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는 피오와 키노를 향해 오만하게 손을 내밀었다.
[자, 내게 충성을 맹세하는 걸 허락해 주지.]음. 동화책을 너무 읽게 했나 보다…….
특히 기사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더니만, 이런 걸 흉내 내네.
당연히 족제비들의 반응은 앤디미온의 기대처럼 열렬하지 않았다.
족제비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덕거렸다.
[얘 뭐지?] [백색 심연에 처박혀 있다가 나왔다잖아.] [아, 그래서 이렇게 구닥다리구나.] [게다가 사회성도 개똥이고.]둘이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다 들렸다.
[이것들이, 지금 뭐라고 속닥거리는 거야!]앤디미온도 들었나 보다.
[이런 건방진 것들이! 기껏 아량을 베풀어 부하로 삼아주려 했더니 내가 누구인 줄 알고……!]“앤디미온, 근데 있잖아.”
[이봐, 아스포델! 당장 저 무엄한 족제비들을 쫓아…….]“네가 막내야.”
[뭐?!]내 무릎에 앉아 있던 앤디미온이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것처럼 나를 휙 돌아봤다.
“으응, 지금 여기서 네가 막내라고.”
난 그런 그를 보며 친절하게 다시 설명해 줬다.
“구러니까, 우리 집 성령 중 네가 서열 3위란 뜻인데.”
“아, 우리 집은 그런 거 안 따지거든. 그냥 들어온 순서로 줄 서는 거란다.”
앤디미온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날 쳐다봤다.
[그럼 쟤가 우리 부하야?] [아, 진짜 웃겨. 야, 형님 해 봐.]족제비들이 또 저들끼리 키득거리며 숙덕였고, 앤디미온은 그 소리에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앤디미온.”
[뭐! 왜!]내가 다시 이름을 부르자 앤디미온이 까칠하게 반응하면서도 뭔가를 기대하듯이 나를 쳐다봤다.
난 그런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 오랜만에 나왔잖아. 오늘 일찍 쉬고 싶으면 그만 가서 빨리 글씨 연습이나 마저 해.”
[뭣! 오늘 같은 날도 그런 걸 하라고?]“아니면 내가 굳이 여기서 널 왜 불렀을까?”
[…….]“원래 매일매일 꾸준히 해야 빨리 느는 거란다.”
전의를 상실한 원숭이 인형이 내 다리 위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옆 좌석으로 걸어갔다.
족제비들이 케케케 웃으면서 그 뒤를 촐랑촐랑 따라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히히 웃었다.
“농담이야, 바부야. 무슨 밖에 나와서까지 공부를 하냐?”
[……날 속인 거냐! 이 교활한 인……!]“뭐얏?”
[아, 아니……. 그, 글씨 연습 안 해도 돼서 좋다고.]“그러치?”
앤디미온이 또 나쁜 말을 하면 진짜 짐칸에서 글씨 연습이라도 시키려고 했는데 얼른 말을 번복해서 봐줬다.
그래도 요즘은 처음 봤을 때보다 말투가 많이 착해졌다.
이래서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니까.
앤디미온은 계속 바깥에 미련이 남은 듯했지만 난 그를 금방 돌려보냈다.
이왕 밖에 나온 김에 콧바람을 좀 쐬게 해주면 좋을 테지만 지금 이곳에는 신관들도 있었다.
그들이라면 성령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감지할지도 모르니, 앤디미온에게 제대로 바깥을 구경시켜 주는 건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후 마가렛이 돌아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는 신수를 타고 멀리 날아갔던 아버지도 귀환했다.
“아빠, 밖에 뭐 있었어요?”
“아니, 그냥 혹시 몰라서 한번 둘러보고 온 거란다.”
아버지가 그냥 돌아온 걸 보니 딱히 이상한 걸 발견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듯, 그의 얼굴은 마냥 편해 보이지 않았다.
나도 그게 좀 신경 쓰였다.
아무튼 우리는 다시 대신전으로 출발했다.
이제 목적지까지는 두세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되었다.
* * *
예상대로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대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웅장하기까지 한 거대한 회백색의 기둥들과 열두 개의 동그란 문을 넘어 우리는 신성한 기운이 가득한 땅에 몸을 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
“데메테아 여신님의 품으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가 마차에서 내려서자마자 신전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신관들이 환영 인사를 해주었다.
평소 엉덩이가 무거운 신관들이 이렇게 우르르 나와 손님을 맞이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이런 환대는 당연히 우리가 황족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냥 황족도 아니고, 무려 신성 의식 때 데메테아 여신의 축복을 받은 황족이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그런 황족이 하나도 아니고 둘!
그러니 이런 환대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드디어 도착했군요. 확실히 대신전의 공기가 맑긴 합니다.”
우리와 동행한 신관들도 익숙한 곳에 와서 살판이 났는지, 얼굴이 아까보다 활짝 펴져 있었다.
나도 뭐, 오랜만에 대신전의 공기를 맡으니 상쾌한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기에 적응되지 않은 사람들은 약간의 거북함을 느끼는 기색이었다.
신전 자체가 주는 위압감도 있긴 하지만 확실히 대신전의 공기는 다른 곳과 좀 달랐다.
비유하자면, 1급수의 물에서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농축된 신성력 때문에 공기가 너무 깨끗하고 맑아서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고 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와아, 오랜만에 손님이 거하게 왔네.] [여기 애기들 좀 봐! 이번에 신성 의식 치른 황족인가 봐.] [아이고, 뽀송해라.]그리고 역시 신성한 대신전답게 이곳에는 성령이 많았다.
[우르르, 까꿍! 애기들아 우리랑 놀래?]난 눈앞에서 정신 사납게 얼쩡거리는 성령들을 못 본 척하느라 진땀을 뺐다.
“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여독부터 푸시지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대신전에서 머무시는 동안 사용하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성수로 축복을.”
견습 신관들이 손에 은반을 들고 다가왔다.
“와아……. 나 황족분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나도. 황자님하고 황녀님 눈 좀 봐. 진짜 황금색이야.”
“모르페우스 신관님 이후로 처음 보는…….”
개중에는 나이가 10대 초반으로 아직 어린 견습 신관들도 있었다.
그들은 처음 보는 황족들이 신기한지,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며 우리를 곁눈질했다.
“크흠! 다들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
다른 어른 신관이 눈치를 주고 나서야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나와 루벨리오를 힐끔거리는 눈빛만큼은 여전히 초롱초롱했다.
고위급 신관들이 성수로 직접 축복을 내려준 뒤 우리는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