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56)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56화(56/207)
그렇게 마리벨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나서, 난 향주머니에 달린 끈을 잡고 붕붕 돌리며 아버지한테 뛰어갔다.
“와아아, 아빠아아! 아델도 신관님한테 선물 받아써요오오!”
“앗, 자, 잠깐!”
내 채신머리없는 행동에 마리벨 신관이 기겁했다.
이 향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게 날 시험해 보려는 물건인 걸 마리벨이 알고 그러는 건지 아닌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마리벨 신관이라면 모르페우스가 준 코 푼 휴지라도 소중히 여길 인간이니, 어쩌면 신전에서 선물한 물건을 거칠게 다루는 내 행동에 경악한 건지도 몰랐다.
“우와아아아! 으앗……!”
그렇게 한참 뛰던 중, 난 쥐불놀이라도 하듯이 붕붕 돌리던 향주머니를 실수인 척 손에서 놨다.
퍼억!
결국 사정없이 바닥에 패대기쳐진 향주머니가 터졌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꽃잎들과 정화석들이 쏟아졌다.
역시 그중에는 아주 희미하게 회색빛을 내는 마석도 섞여 있었다.
쳇, 무슨 보호색이냐?
나야 워낙 뛰어난 인재니까 차이를 알아보는 거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진짜 정화석이랑 구분 못 하겠네.
‘내가 이걸 몸에 지니고 있는 동안 정화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하려고 한 건가?’
신성 의식 때 내가 데메테아 여신의 축복을 받은 건 변한 눈 색 때문에 이미 숨길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벌써 파다하게 소문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 이후로 몇 번이나 신관들을 만나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티를 냈는데도 이런 수작을 부리다니.
‘어차피 며칠 후에 신성력 측정 결과가 나올 텐데 쓸데없이 부지런하기는.’
게다가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사기를 정화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관 중에도 사기 정화는 열 명 중 한 명만 가능할 정도니까.
한데 이제 막 신성력을 각성한 나한테 이런 확인 작업을 거치려 하다니, 어떤 의미로는 주도면밀하다 할 만했다.
“화, 황녀님! 신성한 신전에서 이 무슨 경거망동이십니까!”
마리벨 신관이 허둥지둥 뛰어왔다.
우리 아버지도 놀라서 나한테 달려왔다.
“아델! 혹시 파편이 깨져 다치지 않았나 보자꾸나.”
역시 우리 아버지는 신전의 위신이고, 황족의 품위고 간에 내 안위가 최우선인 듯했다.
그에 마리벨 신관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신전의 정화석은 그 안에 깃든 신성력만큼이나 견고해서 이 정도 타격에 깨지지 않습느드.”
마지막에는 이까지 악물었는지 말이 약간 씹혀서 나왔다.
“실례했습니다. 저희 아델이 대신전에 처음 와서 많이 들뜬 모양입니다.”
어쨌든 이건 내가 잘못한 게 맞기 때문에 아버지는 신관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한 다음 나를 타일렀다.
“아델, 물건을 그렇게 휘두르면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잖니. 이 향주머니를 만든 사람들도 속상할 테고 말이다.”
“힝, 아델이 잘못해써요. 미안해요, 신관님.”
난 냉큼 사과한 뒤 누가 말리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진 향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미안하니까 이건 아델이 주워서 호오 해줄게!”
왠지 날 떠보려고 이런 장난을 친 것 같은데, 대신전에 있는 내내 감시받는 것도 귀찮으니 그냥 아예 지금 보여줘야지.
이제 성력 각성도 해서 내 의지로 정화 능력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저 마석을 만지고, 아무 반응도 없는 걸 똑똑히 확인시켜 주는 거다.
“아델, 네가 직접 주울 필요는…….”
“그, 그거 만지지 마!”
엥?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2황자 놈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 달려와 마석을 향해 뻗어지던 내 손을 거세게 쳐냈다.
얼마나 필사적이었던지, 옆에서 날 말리려 하던 아버지보다도 더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헉……!”
“화, 황자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루벨리오의 무례한 행동에 두 번째로 놀랐다.
하지만 나만큼 놀랐을까?
나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2황자를 올려다봤다.
루벨리오 녀석은 두려운 무언가라도 본 듯이 희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내 손을 쳐낸 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던 듯, 그도 당황한 눈빛이었다.
“이, 이런 건…… 시종이나 하는 일이잖아.”
루벨리오가 더듬거리며 제 행동에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황족씩이나 되면서 이런 허드렛일을 직접 하려 들다니, 네 위치에 대한 자각이 너무 없는 거 아냐?”
변명하듯이 꺼낸 루벨리오의 말은 그래도 꽤 자연스러웠다.
물론 난 이미 그에게서 수상함을 감지한 뒤였지만, 다른 사람들 귀에는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게 들린 모양이다.
특히 마리벨 신관은 또다시 이마에 굵은 핏대를 세웠다.
“황자님, 데메테아 여신님의 앞에서는 모든 이가 동등합니다. 특히 이 신전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그러니 아무리 어리시다고는 하나, 적어도 대신전에서 머무시는 동안 그런 경솔한 발언은 삼가 주십시오.”
어이쿠, 여기서 저런 소리를 하면 안 될 텐데.
지금은 젊어서 그런지 마리벨 신관은 내 기억에서보다 더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이었다.
“신관, 그런 말은 듣기 거북하군.”
아니나 다를까, 마리벨 신관의 말에 쿤차가 발끈했다.
“물론 이 땅의 모든 만물은 데메테아 여신님의 피조물이라 해도 무방할 테지만, 신성한 피를 직접 이은 황족들까지 다른 이들과 동등하다니. 이는 지나치게 위험한 발언이 아닌가?”
“아니, 제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게다가 신전에서도 신관들의 시중을 드는 이가 따로 있는 걸 우리가 모를 것 같은가? 그러면서 동등함을 주장하다니, 이 무슨 모순인지 모르겠군.”
외알 안경 너머로 쿤차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리벨 신관이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신전의 위세가 높다고 하나, 그들이 모시는 데메테아 여신의 피를 이었다고 전승되는 황족 앞에서는 대신관이라도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예, 지엄하신 황족분들께 제가 대단히 실례되는 말씀을 드렸군요. 본의 아니긴 하나 제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마리벨 신관도 그것을 아는지 약간 굴욕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물론 그 내용에는 약간의 빈정거림이 숨겨져 있었다.
쿤차도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도 대신전에서 신관과 더 큰 마찰을 일으킬 생각은 없는 듯, 그냥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닫았다.
“그럼 황녀님께는 다른 향주머니를 드리겠습니다. 황자님도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마리벨 신관은 하나 남은 향주머니를 루벨리오에게 건넸다.
루벨리오는 도대체 뭣 때문인지, 정말 싫은 걸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집어갔다.
그런 그를 마리벨 신관의 차가운 눈이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리벨 신관의 관심은 이미 나를 떠난 것 같았다.
왠지 그를 신분으로 찍어 누르려 한 쿤차와 루벨리오 부자에 대한 사적인 악감정이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것 같았는데…….
‘와, 그냥 가만히 있어야지.’
난 기회주의자였기 때문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고 일단 그냥 눈에 띄지 않게 찌그러져 있기로 했다.
“아델, 신전에서 미리 만들어 둔 작은 향주머니가 없어서 일단 지금은 큰 걸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니?”
“응, 상관업써요!”
다시 받은 향주머니에는 검은 마석이 들어 있지 않았다.
다만 조금 전 루벨리오가 가져간 향주머니에는 내가 먼저 받았던 것과 같은 미세한 사기가 느껴졌다.
마리벨 신관은 쿤차와 함께 멀어지는 로벨리오의 뒷모습을 아직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비실거리는 루벨리오의 뒷모습을 촉촉한 눈으로 보다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루벨리오야…….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지금 네가 내 데드 플래그를 하나 대신 가져간 것 같은데…….
‘파이팅. 널 전력으로 응원할게.’
물론 루벨리오는 듣지 못할 응원이었다.
* * *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대신전의 1,008계단입니다. 옛 성인들의 위엄이 느껴지지요?”
대신전 관광은 역시 내 예상대로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이곳의 명물인 중앙 예배당의 데메테아 여신상, 로잔티나의 성지 중 하나인 푸른 눈꽃 암벽, 성서의 구절과 그림을 새긴 1,008개의 계단, 신성한 성력을 가득 머금은 아스포델 꽃 화원 등등 확실히 대신전에는 볼거리가 상당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난 회차들에서 이 모든 것을 질리도록 봐서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2황자님은 흥미가 없으십니까? 별다른 반응이 없으시군요.”
“아, 아니요……. 무척 감명 깊어 그만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대신전 내부를 구경하는 동안, 마리벨 신관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때때로 2황자 루벨리오에게 향했다.
그럴 때마다 난 속으로 루벨리오를 격려해 줬다.
힘내라, 이 녀석!
역시, 아까 일로 저 녀석이 나 대신 주의를 끈 게 맞는 것 같다.
나도 똑같이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을 텐데 루벨리오에게만 시비를 거는 걸 보면 말이다.
내가 살다 살다 중간 보스 악역에게 도움받을 때가 있을 줄이야.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