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6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63화(63/207)
아니, 그보다!
루벨리오가 지금 여기서 저런 식으로 레예스를 아는 척해 버리면 좀 위험한 거 아닌가?
가뜩이나 지난번에 말한 신탁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모르페우스 신관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신전의 마석을 경계하는 것도 그렇고, 레예스를 향해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루벨리오 이 녀석……. 대신전에 와서 유독 수상한 짓들만 하고 있었다.
루벨리오의 물음에 레예스도 한순간 멈칫했다.
“그렇습니다, 2황자님.”
마침내 그의 대답을 들은 루벨리오가 비틀거렸다.
“황자님!”
그런 루벨리오를 그의 전담 궁인이 얼른 붙잡아 줬다.
“신관님……. 저는 갑자기 현기증이 심하게 나서 기도실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내가 봐도 루벨리오의 얼굴은 그새 핏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것처럼 창백했다.
“그러십니까, 2황자님?”
루벨리오의 말에 마리벨 신관이 웃었다.
언뜻 자애롭게 느껴지는 미소였지만 그의 눈은 먹잇감을 포착한 솔개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하면 무리하지 마시고 돌아가서 쉬십시오. 혹 필요하다면 치유 능력이 있는 신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괘, 괜찮습니다. 좀 쉬면 나아질 듯합니다.”
루벨리오는 그의 전담 궁인과 함께 비틀거리며 예배당을 먼저 떠났다.
“2황자님의 몸이 정말 많이 안 좋으신가 보네요.”
“그러게…….”
마가렛이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내 귀에는 그녀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마리벨 신관은 뭔가를 확신한 듯한 눈으로 멀어지는 루벨리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틈에 힐끔 레예스의 얼굴을 살폈다.
혹시 루벨리오의 저런 반응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없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레예스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약한 의문을 느끼는 듯했다.
물론 시선을 느끼자마자 금방 그런 감정을 깨끗이 지워버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잠시 후, 우리는 루벨리오 없이 각자 기도실에 들어갔다.
머릿속에 의심과 의혹이 가득해서 저녁 기도 시간은 기도문을 입으로 읊는지 코로 읊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늦은 저녁, 나는 바로 루벨리오가 머무는 방에 쳐들어갔다.
* * *
“너, 뭐 잘못 먹었어? 어제부터 왜 이렇게 이상하게 굴어?”
다른 건 몰라도 대신전에 와서 보인 그의 이상한 행동들만큼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들한테 말해 루벨리오와 둘이 있을 기회를 마련했다.
다른 때라면 탐탁지 않아 했을 쿤차도 이번만큼은 쉽게 허락해 줬다.
루벨리오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날 보고 창백한 얼굴을 종잇장처럼 구겼다.
“허락도 없이 남의 방에 들어와서는 뭐라는 거야?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걸어?”
역시나 앙칼진 반응이 돌아왔다.
난 그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신성 의식 때의 일 때문에 계속 이러는 거야? 아까도 너 이상한 말 했잖아.”
“시끄러워! 내가 그걸 너한테 왜 말해야 하는…….”
“루벨리오야, 혹시 너도 예지 봤어?”
진짜 궁금해서 못 참겠네!
요 녀석아, 나한테만 한 번 살짝 말해보란 말이다.
누나 믿지? 응?
그런데 내 말이 상당히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 순간 루벨리오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너, 너 그 말은……!”
곧바로 그가 이마 위의 물수건을 패대기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너도 데메테아 여신님께 예지를 받은 거냐? 혹시 너도 나랑 똑같은 걸 본 거야?!”
루벨리오의 얼굴은 언제 혈색 없이 창백했냐는 듯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걸 보고 난 눈을 끔뻑였다.
‘아니, 난 우리 라 벨리카 어머니 얘기를 한 건데.’
그녀가 신성 의식 때 황제가 되는 미래를 봤다는 건 유명한 일화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혹시 이 녀석도 뭘 봐서 이렇게 수상쩍게 구나 싶었지.
그런데 이 녀석은 내 얘기인 줄 착각한 듯했다.
“너, 그날 네가 본 걸 설마 다른 사람한테도 얘기한 건 아니겠지?!”
침대에서 일어나 휘청이며 달려온 루벨리오가 내 어깨를 거칠게 붙잡았다.
날 내려다보는 녀석의 눈빛이 강렬하게 이글거렸다.
“아니, 야. 그게 아니라…….”
“어디 가서 얘기하면 진짜 가만 안 둬! 신성 의식 때 네가 본 건 다 가짜야! 그런 건, 그런 건…… 뭔가 잘못된 거라고!”
이 자식이, 말할 틈을 안 주네?
아니, 그보다 지금 루벨리오의 말에 따르면 녀석이 진짜 신성 의식 때 예지를 봤다는 건데…….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지난 회차 때까지는 데메테아 여신의 축복 쪼가리 하나 못 받았던 놈이 이번에는 무려 미래를 보다니.
하긴, 그런 게 아니고서야 이 녀석이 신전의 마석에 대한 걸 알고 있는 게 이상하긴 했지!
“그래! 그런 게 아니고서야 내가 너한테 그럴 리가 없잖아! 그건 예지가 아니라 환각 같은 거였던 게 분명해……!”
루벨리오는 쉽게 진정이 안 되는지 계속 횡설수설하며 떠들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익숙했다.
‘저건 현실 부정기를 겪는 자의 모습!’
내가 처음 아스포델이 되었을 때 나도 겪어봐서 지금 이놈의 맛 간 상태가 낯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것만 믿고 나한테 까불면……. 씨, 아무튼 가만 안 둬!”
어우 씨, 얼굴에 침 튀잖아?
그보다 아직 어린 데다 나름대로 우아 떨며 살아온 7년 인생이라 그런 걸까?
아까부터 이놈이 할 줄 아는 협박은 ‘가만 안 둬!’가 전부인 것 같았다.
“나가! 너 같은 거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왠지 초조하고 불안한 손짓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른 루벨리오가 날 마구 밀쳐 방에서 쫓아냈다.
그래서 녀석과 다른 얘기를 더 하지는 못했다.
* * *
방으로 돌아온 나는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무슨 미래를 봤기에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지? 신전 마석에 대한 것만 본 게 아닌가?’
어디 보자.
지난 회차까지 저 녀석이 살았던 삶으로 유추해 보면…….
혹시 또 악역 짓을 하다가 내 손에 된통 당하는 미래를 본 건가?
그래서 나한테 그 미래를 믿고 까불지 말라고 한 건가?
‘오, 말 되는군. 일리 있어. 어쩐지 아까 표정이 되게 수치스러워 보이더라니.’
마리벨 신관이 준 향주머니와 바스티온 첫째 공자에게 예민하게 군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루벨리오가 나한테 한 말들은 그렇게 해석하면 대충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가만, 그럼 혹시 모르페우스 신관과 마리벨 신관이 그냥 헛다리 짚은 게 아닌가?’
난 당연히 모르페우스 신관이 마리벨 신관을 이용해서 떠보려는 게 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어쩌면 그런 생각이야말로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긴, 모르페우스 신관한테 지금 난 그냥 코찔찔이 어린애일 뿐일 텐데.
물론 신성 의식 때 성력 각성을 한 이유로 경계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 데메테아 여신의 축복을 받은 게 나 하나인 것도 아니고.
애초에 힘숨찐 악역이 그때 나한테 관심을 가진 것도 남주인공 형의 신탁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이었잖아?
‘그럼 진짜 2황자가 그 신탁인지 뭔지 하고 연관이 있어서, 모르페우스가 찾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건가?’
아무튼 루벨리오 녀석이 내 데드 플래그를 대신 가져간 게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자, 약간 켕기던 일말의 양심조차 아주 상쾌해졌다.
대신 미래를 본 2황자가 이번 회차에는 더 심기일전해서 내 앞길에 걸리적거릴까 봐 성가신 기분이 들었지만…….
[앗, 풍뎅이!] [어디? 확실히 청정한 신전이라 그런지 미생물이 많네.]‘에효, 오늘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하긴 했나 봐. 집중이 하나도 안 되네.’
대신전에 머무는 이틀 동안 연속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난 데다, 오늘 하루 동안에도 갑자기 많은 일이 일어나서 그런지 자꾸만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그래서 루벨리오에 대한 다른 건 미리 골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그를 직접 다시 떠보기로 했다.
일단 그놈이 무슨 예지를 본 건지, 그것부터 정확히 알아내야 나도 나중 일을 생각하기 쉬울 것 같았다.
[끼약! 날개 펴고 도망갔어!] [저기로 간다, 잡아!]“피오, 키노! 풍뎅이 그만 괴롭히고 잘 준비 하자.”
하지만 오늘은 침대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었다.
* * *
“야, 너 자꾸 변태같이 우리 아빠 방 기웃거릴래?”
어제부터 계속 거슬렸던 걸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의 침실로 향했다.
마침 아버지가 씻으러 가서 자리를 비운 걸 알고 일부러 지금을 노렸다.
[세상에! 아가야, 너 설마 지금 나한테 말 건 거야? 설마 내가 보이니?]우리 아버지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오늘도 그를 줄기차게 스토킹해 댔던 성령이 경악했다.
그나마 일말의 양심은 있어 욕실까지 숨어 들어가진 않았던 듯한데…….
그래도 이 늦은 시간까지 미련을 못 버리고 방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던 걸 보면 유죄였다.
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성령을 보고 ‘파하!’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아빠가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루 멋지고 예뻐도 이런 짓은 하면 안 되지.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할 거 아냐? 이거 범죄인 거 몰라?”
그러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던 성령이 움찔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