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66)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66화(66/207)
아버지의 옆에는 쿤차도 같이 있었다.
쿤차의 외모도 꽤 괜찮았지만 우리 아버지와 함께 있으니 그냥 꽃 병풍일 뿐이었다.
사실 약간의 사감이 들어간 생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동의할걸!
‘아무튼 아버지랑 같이 있을 때 모르페우스랑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까 했던 생각을 또 한 번 떠올렸다.
실은 되도록 아버지와 모르페우스를 만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은 모르페우스와 우리 아버지가 괜히 서로 얼굴을 마주해 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촉도 장난이 아니라 모르페우스를 대하는 내 태도를 보고 지난번처럼 또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 아버지를 악당인 모르페우스 눈에 괜히 띄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 저기 아이작도 있네.’
그러다 멀리서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는 아이작 신관을 목격했다.
레예스가 신경 쓰여서 여길 보고 있었던 건가?
아무튼 지난번에 데메테아 여신상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아이작은 내가 반가운 듯이 얼굴을 활짝 폈다.
하지만 지난번처럼 날 응원하듯이 파이팅 자세를 한번 취해 보인 뒤, 시치미를 뚝 떼고 위엄 있는 얼굴로 돌아가 다시 앞을 보았다.
‘참, 소설에서는 일회용 엑스트라였던 양반인데 이번 회차에서는 묘하게 자주 본단 말이지?’
게다가 존재감이 희끄무레하긴 해도 나름대로 무해한 호감형이라 그런가?
얼굴을 볼 때마다 감초같이 제법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3황녀님, 단체 기도 시간에는 이 베일을 머리에 써주십시오.”
그때 다가온 신관이 흰 천을 건넸다.
미사포처럼 생긴 베일이었다.
딱히 성별 차이를 두진 않아서, 대예배실에 있는 남녀 모두가 같은 걸 머리에 썼다.
“앗!”
에구, 그런데 신관한테 베일을 받다가 실수로 떨어뜨렸다.
“화, 황녀님! 여기, 제 걸 쓰세요!”
얌전히 날 힐끔거리기만 하던 어린 견습 신관들이 병아리 떼처럼 앞다투어 일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아니에요, 제가 바꿔드릴게요!”
“제 건 오늘 처음 꺼낸 새것입니다! 그러니 제 베일을!”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깜빡이다가 가장 먼저 달려온 견습 신관의 베일을 잡았다.
“고마워. 깨끗하게 쓰고 돌려줄게.”
선택받은 아이와 그러지 못한 아이 모두가 꺄꺄거리며 좋아했다.
녀석들, 황족이 진짜 신기한가 보네.
하긴, 한창 그럴 나이지.
지난 회차 때도 내가 성녀가 돼서 대신전에 들어왔을 때 어린 애기 견습 신관들이 한동안 내 뒤만 졸졸 쫓아다녔던 기억이 났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응……? 그런데 왠지 뒤통수가 좀 따가운 것 같지 않아?”
“너도 그래? 나도.”
“난 어쩐지 한기가…….”
제자리로 돌아가서도 해맑게 시시덕거리던 어린 견습 신관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뒷목을 문지르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왠지 뒤통수가 좀 간지러운 것 같았다.
그래서 슬쩍 뒤를 돌아봤지만 거기에 있는 건 레예스밖에 없었다.
기분 탓인가?
왠지 레예스한테서 뭉글뭉글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레예스는 내가 쳐다보는 걸 느꼈을 텐데도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돌린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옆얼굴이 아까보다 좀 새초롬해 보이는데…….
묘하게 토라진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착각인가?
“그럼 지금부터 저녁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단상에서 저녁 기도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레예스를 더 관찰하지는 못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예배당에는 신성한 기운이 한가득 농축되어 있었다.
난 신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모르페우스를 쉽게 찾아냈다.
모두가 베일을 쓴 채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지금, 나만큼은 싸늘한 눈으로 미래의 적이 될 남자를 직시하고 있었다.
‘……지금 한번 시험해 볼까? 죽일 수 있는지 아닌지.’
처음에는 모르페우스가 타락하는 것을 막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시벨라누스 대신관에게 검은 마석을 사용했다는 걸 안 지금은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다.
만약 가능하기만 하다면, 미래의 악당이 개화하기 전에 죽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모르페우스에게 쌓인 지난날의 원한이 새삼스럽게 내 안에서 강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뭉쳐 드는 듯했다.
마침내 내 손끝에서 작은 화살촉처럼 날카롭게 뭉친 신성력이 빠르게 날아갔다.
당연히 목적지는 모르페우스의 심장이었다.
‘죽어라, 모르페우스!’
팟!
하지만 내 신성력은 모르페우스에게 닿지도 못하고 와해되었다.
한순간, 그의 몸에 희미한 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모르페우스가 눈을 뜨는 순간, 반대로 난 고개를 숙이고 견습 신관들 뒤에 몸을 숨겼다.
‘제길, 망할 데메테아! 망할 작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데메테아 여신과 <황녀 아스포델>의 작가를 향해 온갖 욕설을 속으로 내뱉었다.
확실히 모르페우스는 데메테아 여신의 남다른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황녀 아스포델>의 작가는 소설의 강력한 악당 중 하나인 모르페우스를 쓸데없이 바퀴벌레처럼 죽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작가가 만든 진짜 짜증 나는 설정은, 그가 데메테아 여신의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데메테아의 신성력 보호막을 잃을 만큼 타락하기 전까지는 모르페우스를 죽일 수 없었다.
여기서 모순적인 건, 모르페우스가 타락할수록 성력은 약해지나 반대로 사기를 근원으로 한 사악한 힘은 강해져서 다른 의미로 그를 죽이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신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위에서는 여전히 기도가 한창이었다.
예배당에 온 사람들은 단상에서 신관이 읊는 기도문을 경건하게 따라 읽었다.
난 언제 눈을 똑바로 뜨고 모르페우스를 노려봤냐는 양 얌전히 두 손을 모르고 기도문을 따라 했다.
‘모르페우스가 지금 그를 공격한 게 나인 걸 눈치챘을 리는 없어.’
현재 예배당에는 대부분의 신관이 자리해 있었다.
내가 알기로 모르페우스는 신전 내에 적이 많았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었고, 그건 성직자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성력을 여기저기 날려 흩뿌려 놨으니 지금 내 위치를 들킬 위험도 없었다.
그렇게 비장한 암살 시도에 실패한 채로, 저녁 기도는 아쉽게 끝났다.
* * *
‘역시 대신관 할아버지를 구출해야겠어.’
신성력 측정 3일째.
오늘은 어린애들을 상대하기 질렸는지, 모르페우스가 시벨라누스에게 신성력 측정만 짧게 하게 시킨 뒤 우리를 내보냈다.
오늘따라 모르페우스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는데, 원래 흡혈귀처럼 창백하던 놈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제 내일이면 3일에 걸친 신성력 측정 결과가 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
원래는 그 후로도 이삼 일 정도 더 대신전에 머물다 갈 예정이었지만, 분위기상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마리벨 신관에게 며칠째 시달리고 있는 쿤차와 루벨리오가 황궁행을 간절히 희망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 대신관을 모르페우스의 손아귀에서 빼내야 하는데.’
이틀 전에는 충격이 커서 혹시 모르페우스가 시벨라누스 대신관을 죽이는 게 아닐지 우려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리는 없었다.
모르페우스는 대신관이 되기에 아직 나이와 경력이 부족했다.
그러니 시벨라누스가 지금 죽으면 다른 사람이 빈 대신관 자리를 차지할 텐데, 그건 나중에 모르페우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대신관이 될 자는 반드시 현직 대신관에게 추천을 받아야 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벨라누스 대신관은 대신전에 있는 모든 신관을 아울러 모르페우스에게 가장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실제로 지난 회차들에서도 모르페우스를 대신관으로 추천하고 앞에서 이끌어준 건 시벨라누스였다.
그러니 그를 섣불리 제거하려 들 리 없었다.
그렇다 해서 다른 신관들을 전부 검은 마석으로 조종해 신전을 장악할 수도 없을 테니까.
지금 시벨라누스에게 검은 마석을 사용해 본 것도 어디까지나 단순한 시험용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몰랐을 뿐, 원래도 지난 회차들에서 이런 식으로 다른 신관들에게 검은 마석을 미리 사용해 봤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 대상이 시벨라누스 대신관인 건 놀랍지만…….
‘사람 의심할 줄 모르는 양반이라 방심한 사이에 당했나? 그렇다 해도 모르페우스의 이번 행동은 생각보다 과감하긴 해…….’
아무튼 시벨라누스 대신관은 지금 모르페우스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안 됐다.
아직은 시기가 너무 일렀다.
그래서 지난 이틀간 여러 가지로 고민해 본 결과, 나는 황궁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를 검은 마석으로부터 해방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만약 지난번에 라 벨리카 어머니에게서 얻어낸 성물을 쓴다면 시간을 멈추고 아무도 모르게 대신관을 만나 그를 정화시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성물은 현재 황성에 있다.
게다가 그렇게 단발적으로 대신관의 사기를 정화하는 건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런 식으로 대신관을 정화한다 해도, 내가 계속 대신전에 남아서 그를 케어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아는 모르페우스라면, 시벨라누스 대신관에게 분명 검은 마석을 또 쓸 거야.’
그래도 대신관에게 사용한 검은 마석의 효력이 예상대로 강하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지난 3일간 유심히 살펴보니, 어떤 계기만 있으면 시벨라누스 스스로 사기를 떨칠 수 있을 듯했으니까.
그러니 모르페우스가 선수를 친 것처럼, 나도 똑같이 해주기로 했다.
‘시벨라누스 대신관에게 속임수를 좀 써야겠군.’
마침 이곳은 신성한 기운이 가득한 대신전.
내 힘을 조금 사용한다고 해서 문제 될 일은 없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