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76)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76화(76/207)
날 향해 도끼눈을 뜬 메리엘이 씨근덕거리며 언성을 높였다.
“지금 저랑 장난하는……!”
“타마린느, 아스포델.”
그때 1황자 유클레드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기어이 황녀인 나한테 성질을 부리는 중죄를 범하고 말았으리라.
“유르 오빠!”
유클레드를 본 새뮤엘 린델과 시스나몬 자매가 일어나 인사했다.
“로잔티나의 별께 인사드립니다.”
특히 메리엘은 이때부터 벌써 유클레드를 좋아했는지, 허둥지둥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 로잔티나의 별께 인사드립니다.”
그러나 역시 유클레드는 메리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 다들 앉아도 돼.”
그들에게 대충 고개를 까딱여 화답한 유클레드가 다시 나와 타마린느를 돌아봤다.
근데 이 자식, 되게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네.
물론 타마린느 옆에는 빈 의자가 없긴 하다만, 차라리 사촌인 새뮤엘 린델의 옆에 앉을 것이지.
“타마린느, 네가 혼자 손님들하고 있다고 들어서 와봤는데 아스포델도 같이 있었네.”
“응, 아스포델이 나한테 꽃 과자를 주고 싶다고 찾아왔지 뭐야. 이거 봐. 예쁘지?”
“아스포델이 너한테 과자를?”
타마린느의 말을 들은 유클레드가 움찔했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있는 예쁜 과자들에 닿았다.
그런데 유클레드의 얼굴이 묘하게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금방 그런 기색을 지우긴 했지만 말이다.
“진짜 예쁘네. 이건 너한테 주려고 가져왔나 보다. 타마린느, 너 노란색 좋아하잖아.”
순간 메리엘이 흠칫했다.
바로 그 노란 꽃 과자를 탐했던 사람으로서 유클레드의 말을 듣고 켕기는 얼굴이었다.
한편 클라리사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우리의 대화를 듣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약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스포델, 근데 너 왜 요즘 나한테는 과자 먹으러 오란 소리 안 해?”
그러던 중에, 유클레드가 나한테 은근한 목소리로 별 시답잖은 걸 물었다.
“내가 안 불러도 알아서 오잖아.”
“그럼 내가 안 가면 불러줄 거야? 지금 타마린느한테 그런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 직접 만나러 찾아오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귀찮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참고로 난 파란색을 제일 좋아해. 지금 여기엔 없지만.”
아니, 사실 이 녀석이 나한테 뭘 바라고 이러는지 이미 눈치는 챘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인데, 9살 난 어린애 속 하나 모르면 그것도 웃기는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곱게 대답해 주기엔 지금 내 속이 약간 뒤집힌 상태였다.
빙의 1회차 때 유클레드, 타마린느 쌍둥이들과 관련해 나와 악연을 쌓았던 메리엘과 만난 여파였다.
특히 유클레드 이 녀석이 그때 얼마나 날 싫어하는 티를 내고 다녔으면, 메리엘이 나한테 그렇게 시건방지게 굴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자 한동안 누그러졌던 1황자 놈을 향한 뾰족한 마음이 또 가시처럼 돋아났다.
그래서 내가 들어도 얄미운 목소리로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바보야? 오빠가 타마린느 언니랑 같아? 뭐 그런 멍충한 비교를 해?”
하지만 뜻밖에도 유클레드는 내 말에 묘하게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네 말이 맞네. 그런 건 바보 같은 비교지. 난 타마린느랑 다르니까. 다른 애들하고도 다르고.”
난 허망하게 1황자를 쳐다봤다.
텄다…….
이 답답한 착각쟁이 녀석은 이미 답이 없어.
혹시 콩깍지가 눈이 아니라 귀에도 낄 수 있나요?
저 바보 같은 얼굴을 보니 내 말을 또 저 좋을 대로 해석한 게 분명했다.
아, 됐다, 됐어.
지금은 너랑 입씨름하기도 귀찮다.
썩은 눈으로 유클레드를 보다가 메리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 적어도 지금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든 건 1황자 녀석이 아니니까.’
난 싸하게 웃으며 내 심기를 건드린 메리엘에게 화살을 돌렸다.
“근데 너, 좀 전에 나한테 무슨 말 하려고 하지 않아써?”
“저한테 한 소리였어요, 3황녀님!”
내 물음에 클라리사가 얼른 답했다.
“제가 동생에게 몰래 장난을 쳤는데 그것 때문에 할 말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동생의 허물을 덮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필사적이었다.
클라리사 시스나몬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내 분위기를 읽고 위험성을 간파한 게 분명했다.
지난 회차들에서도 메리엘이 철없이 여기저기 싼 똥을 치우는 건 언니인 클라리사의 역할이었다.
그 모습이 내 기억 속에 꽤 애잔하게 남아 있었다.
왠지 그런 클라리사의 모습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살리려고 혼자 똥줄을 태우며 안간힘을 쓰는 나와 묘하게 닮아 보인다고 예전에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쳇, 갑자기 동병상련의 마음이 좀 드네.’
클라리사를 지그시 쳐다보다 입술을 작게 삐죽였다.
‘흥, 이번엔 클라리사를 봐서 그냥 넘어가 줄까?’
그녀는 지난 회차 때 여동생과 달리 나와 괜찮은 인연이었던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러쿠나. 왠지 날 노려보는 거 같아서 놀라짜나.”
“메리엘 눈이! 원래 좀 찢어져서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이 종종 있답니다.”
“언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눈이 찢어지다니, 무슨!”
메리엘이 다급히 항변했다.
유클레드의 앞에서 체면을 구기게 되어 창피스러운지, 메리엘의 얼굴은 새빨갛게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황족 모욕죄에 걸리는 것보다는 그냥 한번 쪽팔린 게 나을 텐데 말이다.
“거기, 시스나몬 영애라고 했던가?”
“네, 네, 1황자님!”
그때 유클레드가 메리엘에게 말을 걸었다.
메리엘이 언제 클라리사에게 씩씩거렸냐는 듯이, 이번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담긴 눈으로 1황자를 보았다.
역시 다른 애들 눈에는 저 녀석이 백마 탄 왕자처럼 보이는 건가?
흠, 그래. 한창 저 나이 때는 소녀다운 꿈을 꿀 만도 하지.
“아까부터 느낀 건데 조금만 조용히 말해줄래? 영애 목소리가 너무 커서 동생들이 놀랄 것 같은데.”
물론 현실은 동화와 다른 법이지만.
이어진 유클레드의 말은 메리엘의 기대를 박살 내고도 남았다.
메리엘이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음, 그러고 보니 3황녀님. 얼마 전에 대신전에 다녀오셨다지요?”
새뮤엘 린델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이 화제를 바꿨다.
“축하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신의 축복을 받으신 걸 경하드립니다.”
클라리사 시스나몬은 입을 열기에 앞서 먼저 쌍둥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바깥에도 소식이 퍼졌나 보군.”
“맞아, 이제 아스포델이랑 루벨리오의 눈도 알렉시아하고 같은 황금색이야.”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어 보이자, 안심하고 내게 축하를 건넸다.
“네, 황금색 눈이 3황녀님과 정말 잘 어울리세요. 신의 축복을 받으신 걸 축하드려요.”
“고마워. 근데 그냥 눈 색만 변하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일단 한동안은 평범한 사람인 척할 생각이라 아무 능력도 각성하지 못한 양 말했다.
그러자 당치도 않다는 듯 새뮤엘과 클라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데메테아 여신님께 선택받으신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지요.”
“맞아요. 황금색 눈은 신의 사랑을 받는 자의 상징이잖아요.”
메리엘이 입을 삐죽이며 구시렁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웃겨. 그깟 눈 색 하나 바뀐 거 가지고 요란은…….”
클라리사의 팔꿈치가 재빨리 메리엘의 옆구리를 찔렀다.
보아하니 메리엘의 중얼거림을 들은 건 클라리사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자기 언니 때문에 봐주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꾸 까부네.’
“참, 지난주에 4황자님께서 드디어 개화하셨다고 들었어요. 2부군님도 연구를 성공적으로 끝마치시고 현자의 탑에서 나오셨고요. 로잔티나 황실에 기쁜 일이 연달아 많이 생기네요.”
앗, 새뮤엘 린델이 마침 말을 잘 꺼냈다.
난 기다렸다는 듯이 타마린느에게 말했다.
“맞아! 다음에 타마린느 언니도 같이 제르카인 보러 가자. 유클레드 오빠도 보러 갔었어.”
“정말? 유르 오빠가?”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타마린느는 의외란 듯이 유클레드를 보다가 선선히 수락했다.
“그럼 아스포델, 다음에 2부군님 만나러도 같이 가자. 알렉시아랑 헬리만도 오랜만에 보고.”
아니, 맨 마지막 놈은 빼고 싶은데 말이다.
게다가 그놈은 바로 이틀 전에도 봤다고.
그래도 일단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게 먼저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응?
그런데 어째 옆얼굴이 좀 따가운데?
눈을 살짝 옆으로 굴려 보니, 메리엘이 나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보였다.
뭐야, 쟨 또 왜 날 저런 눈으로 봐?
뭔가 되게 못마땅하고 분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메리엘 시스나몬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쌍둥이들과 만날 약속을 잡아서 그게 약 오르는 건가?’
왠지 그게 맞을 것 같았다.
자기는 유클레드를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볼 수가 없는데 가뜩이나 아까 일로 마음에 안 드는 내가 쌍둥이들과 친해 보여서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호, 근데 내가 메리엘한테 저런 눈빛을 받는 건 처음이잖아?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