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7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77화(77/207)
1회차 때 맨날 업신여기는 눈빛만 받다가 이런 질투 어린 눈빛을 받자 신선하기까지 했다.
물론 2회차 때는 내가 믿음과 신뢰의 황녀님이었던 만큼 천하의 메리엘도 날 좀 어려워하는 듯했다만…….
그때도 쌍둥이들과 난 별로 친하지 않았으니, 메리엘이 이런 식으로 날 질투할 일은 없었다.
“슬슬 시간도 되었으니 그만 내려가지.”
“네, 무척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황자님, 황녀님.”
“잠깐만, 아스포델. 계단은 위험하니까 손잡아줄게.”
잠시 후 푸른 심해 정원의 계단을 내려갈 때, 날 어린애 취급하며 손을 붙잡은 1황자 놈을 단번에 쳐내지 않은 데는 처음 느껴보는 우월감도 분명 조금쯤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나도 모르게 ‘흐엑!’ 요상한 소리를 냈다.
“뭐야, 나 혼자 내려갈 수 있어!”
한순간이지만 고작 메리엘 따위의 약을 올려주려고 마음이 흔들린 데 자존심이 상해서 유클레드에게 눈을 부라렸다.
“지난번에도 그러다가 넘어진 거라며?”
“그건! 헬리만 발에 걸려서 그런 거고.”
여긴 지난번에 3황자 놈의 계략으로 내가 넘어졌던 바로 그 계단이었다.
밑에서 나를 받아주다가 유클레드의 팔이 부러졌던 장소이기도 했다.
아무튼 녀석의 말을 듣고 괜히 그때의 일이 연상돼 뒤에 있는 시스나몬 자매를 슬쩍 돌아봤다.
‘설마 메리엘 저것이 3황자처럼 나한테 발을 거는 건 아니겠지?’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듯하던 유클레드가 나한테 이상한 질문을 던진 건 바로 그때였다.
“그런데 너 이제 나한테 그런 거 안 시켜?”
“뭐? 내가 뭘 안 시켜?”
“지난번에는 나한테 업어달라고 했잖아.”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 놓고 살며시 귓불을 붉히는 유클레드를 작게 입을 벌린 채 쳐다봤다.
“크흠, 그렇다고 내가 널 다시 업고 싶다거나 해서 물어보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이럴 때는 내가 오빠니까 한 번쯤 등을 빌려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해본 소리야.”
저놈의 귀, 참 솔직하네…….
아니, 자기가 말해놓고 이렇게 쑥스러워할 거면 그냥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지 않나?
난 떨떠름하게 말했다.
“됐어. 오빠가 업어주는 거 별로야.”
“뭐?! 별로야? 왜?!”
“왜긴 왜야, 불편하니까지.”
유클레드는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그는 회복력이 빨랐다.
“그렇군. 내가 업어주는 게 편하지가 않아서…….”
난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유클레드의 얼굴에서 눈을 뗐다.
허이고, 보나 마나 뻔하다.
또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더 상대해 주기 귀찮으니까 굳이 말 시키지 말아야지.
‘응?’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번에는 내 오른쪽 손에서 온기가 스몄다.
“아스포델, 이쪽 손은 나랑 잡고 가자. 나도 아스포델이 넘어질까 봐 걱정되니까.”
타마린느가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얼결에 그 상태로 계단을 내려가게 됐다.
잠깐.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그림이야?
꼭 양옆에 엄마, 아빠를 둔 어린애가 된 것 같았다.
순간 손발이 미친 듯이 오그라들었다.
“흐엑.”
내 두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만약을 대비해 오늘은 나보다 앞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마가렛이 흐뭇한 얼굴로 가끔 우리를 돌아보았다.
내 오른쪽에서는 타마린느가 해맑게 웃고 있었고, 왼쪽에서는 유클레드가 여전히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는 메리엘이 아까보다 더 이글거리는 눈빛을 나한테 열심히 쏴 보내는 중이었다.
나는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스포델, 앞을 제대로 보고 걸어야지. 그러다 또 넘어진다?”
“오빠 말이 맞아. 자, 아스포델. 앞을 보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옮기자.”
양옆에서 번갈아 날아온 말들이 또 한 번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나 진짜 5살 아니라고!’
제길.
역시 이 푸른 심해 정원은 나와 상성이 매우 안 맞는 게 분명했다.
side
클라리사와 메리엘
“우리 딸들, 오늘 황궁에는 잘 다녀왔니?”
클라리사와 메리엘이 시스나몬 저택으로 돌아가자마자 안주인인 케이든이 딸들을 맞았다.
시스나몬 가주인 모린은 전대 가주 때부터 일궈온 사업을 몇 년 전부터 급격히 확장해서 몹시 바빴다.
그래서 클라리사와 메리엘 자매는 어릴 때부터 모린의 남편인 케이든이 돌볼 때가 많았다.
특히 둘째인 메리엘은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케이든의 손으로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유독 메리엘에게 물렀다.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오, 그래그래. 우리 딸!”
지금도 케이든은 자신에게 달려와 투정을 부리는 메리엘을 그저 허허 웃으며 받아주었다.
“저 오늘 황성에서 진짜 너무 화났어요!”
“뭐? 아이구, 이런! 우리 예쁜 메리엘이 왜 화가 났을까?”
“오늘 황성에서 3황녀님을 만났거든요?”
“얼마 전에 신성 의식을 치른 그 3황녀님 말이냐?”
“네! 그런데 얼마나 짜증 났는지 몰라요.”
클라리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에게 불만을 쏟아내는 메리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부터 차분하고 얌전했던 첫째 클라리사와 달리, 둘째인 메리엘은 질투심도 많고 어리광이 심한 성격이었다.
두 사람의 어머니인 모린은 아이의 버릇이 나빠지니 적당히 받아주라고 늘 케이든에게 경고했다.
케이든은 아내와 금실도 좋았고, 또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 그때마다 항상 진심으로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문제는 케이든이 그 ‘적당히’라는 게 어느 수준인지 몰랐다는 데 있었다.
그 결과는 오늘의 메리엘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떼를 쓰면서 1황녀님이 저한테 준 걸 억지로 빼앗아간 거 있죠?!”
“아이고, 우리 메리엘이 정말 속상했겠구나. 3황녀님이 어려서 그런 게 예의가 아니라는 걸 잘 몰랐나 보다.”
“그래도 그렇죠! 아무리 욕심이 많은 성격이어도 1황녀님이 저한테 준 건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그렇게 제 걸 빼앗아가 놓고는 또 변덕을 부려서…….”
“아이고, 그런 일이!”
8살이 된 메리엘은 자기만 알고 배려심과 양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아이로 자라났다.
케이든은 그런 딸조차 그저 예쁘다고 좋아했지만 모린과 클라리사는 조금씩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1황녀 타마린느의 놀이 상대로 황궁에 들어가기 전에도 시스나몬 가주인 모린은 굉장히 많이 고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메리엘이 황족에 대한 예우는 알고 있으리라 믿었고, 이것이 작은딸의 오만한 성정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게다가 황족의 놀이 상대로 선택받는 것은 가문의 영광인 데다 딸들의 앞길에도 도움이 되는 일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모린은 클라리사에게 동생을 잘 살펴볼 것을 당부한 뒤 그들을 황궁에 들여보냈다.
설마 메리엘이 이 정도까지 염치없는 성격일 줄은, 클라리사와 마찬가지로 아마 모린도 몰랐으리라.
“진짜 머리도 나쁜 게 떼쓰고 조르는 것밖에 할 줄 모르고!”
“메, 메리엘? 우리 딸아?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는 게…….”
“게다가 잘난 척도 심하고 오만한 제멋대로인 황녀님이었어요! 어떻게 그런 사람이 황녀일 수가 있어요?”
처음에는 메리엘의 말을 오냐오냐 받아주던 케이든도 이때쯤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라지만 황족 모독 수준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케이든은 혹시 지금 대화를 고용인 중 누가 듣지는 않았을지 목을 길게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다행히 클라리사가 고용인들을 아까 내보내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시스나몬 가문의 세 사람뿐이었다.
메리엘은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실컷 쏟아낸 뒤 이제 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클라리사는 조금 전 메리엘이 3황녀의 흉을 볼 때 한 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메리엘, 너 지금 자기소개하니?’
케이든이 침을 꿀꺽 삼킨 뒤 메리엘을 붙들고 당부했다.
“메리엘, 혹시 해서 하는 말이지만 밖에서는 절대 지금 한 것 같은 얘기를 하면 안 된다.”
“아버지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당연히 아버지 앞이니까 하는 말이죠.”
“그래그래, 앞으로도 뭐든 들어줄 테니 이런 얘기는 아버지 앞에서만 하거라.”
똑똑!
바로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케이든은 간이 작은 사람답게 괜히 놀라서 흠칫했다.
“둘째 아가씨, 베릴 가문의 아가씨가 방문하셨습니다.”
“앗!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친구의 방문 소식에 메리엘이 얼른 아버지의 품에서 나와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메리엘! 아빠가 지금 한 말 잊으면 안 된다!”
그런 메리엘의 뒤에서 케이든이 불안하게 외쳤다.
“메리엘, 잠깐 서 봐.”
클라리사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메리엘을 따라 나왔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