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78)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78화(78/207)
“아버지 말 흘려듣지 마. 너 오늘 황성에서 있었던 일,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네 친구한테도 마찬가지야!”
“아, 알겠다니까 다들 귀찮게 왜 이래!”
메리엘은 잔소리가 귀찮은 듯이 자신을 붙잡은 클라리사의 손을 짜증스레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클라리사는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주고 메리엘에게 덧붙였다.
“아버지한테도 오늘 일은 내가 제대로 다시 말씀드릴 거야. 어머니한테도 마찬가지고.”
“뭐? 그 말은 조금 전에 내가 아버지한테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야? 그리고 어머니한테는 왜!”
“정말 몰라서 물어? 오늘 일은 네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언니도 그 조그만 황녀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봤잖아!”
“너,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계속……!”
“아, 됐어! 어머니한테 이르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언니 미워! 이 치사한 고자질쟁이야!”
메리엘은 무엇이 그리도 억울하고 분한지 클라리사에게 쏴붙인 뒤,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갔다.
클라리사는 그런 여동생의 뒷모습을 착잡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Chapter 23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니야
“세상에! 오늘은 1황녀님까지 같이 오시다니! 어, 어서 들어오세요! 어서요!”
오늘은 드디어 1황자와 1황녀를 데리고 카루스의 궁에 방문했다.
카루스는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거렸다.
“곧 다과를 준비하겠습니다. 5부군님은 앉아 계십시오.”
우리의 방문을 알아차린 궁인이 스리슬쩍 나타나 손님을 맞는 척했다.
“우리 4황자님……. 우르릉 까꿍!”
약은 사람들답게 확실히 이런 쪽으로 눈치가 비상하게 발달한 건가?
제르카인의 육아 전담 궁인도 소리 없이 와서는 꼭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아기와 놀아주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안녕, 제르! 누나 왔어.”
그런 궁인들을 흘기며 요람에 누운 제르카인에게 가까이 갔다.
“꺄!”
왠지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던 제르카인이 날 보고 활짝 웃었다.
“와, 귀여워. 네가 제르카인이구나.”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타마린느는 벌써 아기와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제르카인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어제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말도 했는데,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닌 ‘누나’ 소리였다.
“누아! 꺄우.”
완벽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지!
물론 열매 상태로 오래 있었던 만큼 개화 후에는 성장 속도가 빠를 거라고 했지만, 지난 생들과 비교해도 이번 회차의 제르카인은 아주 잘 자라고 있었다.
가끔 아이의 상태를 보러 오는 황궁 의원도 3주도 안 돼 누나 소리를 하다니 빠르다며 놀랐다.
이게 다 내가 육아를 잘하고 있다는 증거 같아서 뿌듯했다.
물론 난 카루스처럼 매일 제르카인 옆에 붙어 있진 않았지만 양보다는 질 아니겠는가?
열매로 있을 때부터 내가 사기도 정화해 주고, 인성 교육도 시켜주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줬는데 이런 누나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맞아, 심지어 이번엔 이름도 지어줬네……!
‘……크흠. 하지만 제르카인이란 이름은 원래 이 녀석 거였으니까 이름 지어준 건 그냥 넘어가자.’
“지금 너한테 누나라고 그런 거야?”
“응, 이제 말도 해! 제르, 오늘은 형아랑 다른 누나도 같이 왔어. 오빠랑 언니도 인사해.”
유클레드가 신기한 듯이 옹알이하는 제르카인을 내려다보다가, 또 지난번처럼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제르카인.”
“후웅…….”
왠지 애기가 귀찮은 듯이 한숨을 내쉰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안녕, 아가야? 난 타마린느야. 그러니까…… 내가 첫째 누나겠네.”
타마린느도 요람에 누운 제르카인에게 인사했다.
“누아?”
그러자 제르카인이 타마린느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귀를 쫑긋거렸다.
아기의 반응에 타마린느가 기뻐했다.
“응, 맞아. 누나야.”
“누아…….”
제르카인이 타마린느를 빤히 쳐다봤다.
그래도 이번엔 유클레드한테 그런 것처럼 한숨은 안 쉬었다.
하지만 날 볼 때처럼 반가워하며 웃거나 꺄꺄거리지는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제르카인이 나한테 눈을 돌렸다.
말랑한 아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누아!”
그 모습을 본 카루스가 웃었다.
“우리 제르가 3황녀님을 정말 좋아해요.”
“그러게요. 아스포델, 널 볼 땐 표정이 달라지네.”
“우리한텐 낯을 좀 가리나 봐. 웃는 거 진짜 귀엽다.”
유클레드와 타마린느가 차례로 제르카인을 보며 말했다.
나도 무방비하게 웃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봤다.
티 한 점 없는 주홍색 눈에는 나를 향한 맹목적인 애정만이 가득했다.
‘누님께서는 여전히 절 그런 눈으로 보시네요.’
그 눈을 마주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지난 회차 때의 일이 가끔 생각났다.
‘부디 오늘 밤은 깊은 잠에 드시길.’
‘그럼 안녕히, 아스포델.’
요람 속으로 손을 뻗자, 아기가 방긋 웃으며 내 손가락을 붙잡았다.
어린아이의 손은 말랑하고 따뜻했다.
“누아!”
“그래, 누나야.”
나도 제르카인을 보며 한숨을 내쉬듯이 웃었다.
마음속으로 그에게 속삭였다.
이번엔 날 배신하지 마.
나도 네가 미래에 그런 소리를 또 하지 않을 수 있게, 노력해 볼게.
“으웅!”
제르카인이 꼭 대답하듯이 또 한 번 환하게 웃어서 왠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 * *
“어? 1황녀님, 그 머리 장식 못 보던 거네요?”
……그래.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이 가벼웠는데.
하지만 지금의 나는 떫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구경해도 돼요?”
“그래.”
메리엘의 건방진 요구에 타마린느가 또 상냥하게 웃으면서 직접 머리 장식을 떼줬다.
오늘도 나는 1황녀 타마린느, 그리고 시스나몬 자매와 함께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었다.
당연히 내 자의로 이 세 사람과 함께할 시간을 만든 건 아니었다.
오늘은 타마린느가 나를 직접 자신의 궁에 초대했다.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차가 궁에 들어왔는데, 나한테도 그걸 맛보여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물론 타마린느는 이 다과회에 시스나몬 자매가 참가한다는 사실을 나한테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메리엘 때문에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은 타마린느의 첫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이렇게 1황녀 궁에 오게 되었다.
‘가능하면 메리엘을 타마린느와 일찌감치 떨어뜨려 놓고 싶기도 하니까 말이지.’
아까 날 처음 본 이후로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메리엘은 지금 탐욕스러운 눈으로 타마린느의 머리 장식을 한창 뜯어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나도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봤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예뻐요! 이렇게 색이 예쁜 에메랄드는 처음 봐요.”
“그렇지?”
칭찬을 받아서 좋은지, 타마린느가 생긋 웃었다.
왠지 메리엘이 뭔가를 재보듯이 그런 타마린느의 얼굴을 슬쩍 살피는가 싶었다.
“황녀님, 이거 저 주시면 안 돼요?”
메리엘이 말인지 방구인지 모를 소리를 다과회 자리에 투척한 건 바로 그때였다.
‘아니, 지금 쟤가 뭐라는 거야?’
어이가 없으면 말문이 막힌다더니,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랬다.
지금 황녀의 물건을 달라고 먼저 요구한 게 맞나?
아니, 저런 걸 뭐 저렇게 당당하게 말해?
심지어 메리엘은 타마린느의 허락 없이 머리 장식을 자기 머리카락에 직접 대보기까지 했다.
“보세요. 제 눈도 녹색이라 저한테도 잘 어울리죠?”
“메리엘, 너 또! 그거 당장 내려놔!”
“왜? 황녀님은 이런 거 많으시니까 괜찮잖아.”
클라리사가 기함했으나 메리엘은 뻔뻔하게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8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라 그런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족의 앞에서 개념과 상식이 너무 없었다.
황당한 마음으로 메리엘을 보다가 타마린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마린느! 너 설마 지난 회차에서도 계속 이런 취급을 당하면서 살아온 거야?’
갑자기 물 없이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막힌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이런 좋은 날씨에, 이런 고구마를 먹으려고 여기 왔나?
결국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타마린느 대신 한마디 해주려고 메리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
“그건 안 돼, 메리엘.”
하지만 여느 때처럼 상냥한 타마린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게 먼저였다.
“왜요? 황녀님은 다른 예쁜 것도 많잖아요.”
어린것이 욕심이 뭐 저리 많은지, 메리엘은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린 얼굴로 타마린느의 머리 장식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또 한 번의 고구마를 참지 못해 발광하려던 찰나, 타마린느가 메리엘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네 말대로 그 머리 장식이 나한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거라면, 네가 이렇게 떼를 써서 시끄럽게 굴기 전에 줬겠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엥……?
그런데 뭔가…….
“메리엘, 네 말대로 나한테 있는 물건 하나쯤 너한테 주는 게 뭐가 어렵겠니. 네가 가지고 싶어 욕심내는 것들 대부분이 나한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흔해 빠진 물건일 뿐인걸.”
뭔가 좀 이상한데……?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