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79)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79화(79/207)
타마린느의 표정은 여전히 상냥했고, 말투는 조곤조곤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메리엘에게 한 말은 묘하게 뼈를 때리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약간은…… 메리엘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인데…….
메리엘도 당황했는지 두 눈을 흔들며 입술을 뻐끔거렸다.
“제, 제가 언제 그렇게 시끄럽게 떼를 썼다고 그러세요?!”
“그건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니?”
타마린느는 계속 나를 놀라게 했다.
메리엘은 타마린느의 직구에 또 할 말을 잃은 눈치였다.
“하지만 메리엘. 이건 내가 아버지께 선물 받은 거라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거야. 나한테도 무척 소중한 거지.”
타마린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응접실 안에 단호하게 울렸다.
“그러니 네가 아무리 원해서 졸라도 이걸 가질 수는 없어. 너는 곧잘 잊는 것 같지만, 넌 내가 허락하는 것만 이 궁에서 가지고 나갈 수 있으니까.”
오, 오오…….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타마린느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 지금 이 전개는 도대체 뭐지?’
타마린느는 마냥 갈대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는 성격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도 알잖아?
‘앗, 잠깐.’
그러다 퍼뜩 기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럼 혹시…… 지난 회차들에서 타마린느가 나한테 거리를 뒀던 것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냥 휩쓸린 게 아니라 자의인 거였나?
‘아, 잠깐만. 나도 뼈 맞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속이 막 쓰려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미 지나간 일을 곱씹으며 쓸데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건 관두기로 했다.
“그, 그런 거였으면…….”
메리엘도 타마린느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지, 꽤나 당황스러워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버지한테 선물 받은 거라고 진작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잖아요! 그럼 저도 달라는 말 안 했을 텐데……!”
하지만 역시 메리엘은 쉽게 반성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끄러움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이 뒤섞인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인사도 없이 응접실을 뛰쳐나갔다.
“메리엘!”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상황에 굳어 있던 클라리사가 황망하게 동생을 불렀다.
그녀도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동생을 잡으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타마린느와 내 앞에 먼저 무릎을 꿇었다.
“1황녀님, 제 동생이 거듭 보인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3황녀님께도 못 보일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중엔 제일 나이가 많았지만 객관적으로는 아직 11살밖에 안 된 어린애였으니, 클라리사에게도 이런 일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했다.
“메리엘을 당장 데려와서 황녀님들께 사죄 올리게 하겠습니다.”
“됐어. 클라리사가 늘 고생이 많아.”
이런 소란에도 타마린느는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여전히 한 송이 장미꽃처럼 평온하고 고운 모습으로 차를 마실 뿐이었다.
“오늘 보니 메리엘이 곧 여름 감기에 걸릴 것 같던데. 다음에는 클라리사 혼자 황궁에 들어오겠네.”
그녀가 지나가듯이 덧붙인 말을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오랜 시간 황궁에서 굴렀던 덕에 저 에두른 말의 뜻이 뭔지 나도 알고 있었다.
지금 타마린느가 꺼낸 말의 의미는 명백했다.
메리엘을 더 이상 황궁에 데려오지 말라는 거였다.
클라리사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침을 꿀꺽 삼킨 뒤 대답했다.
“예, 어머니께도 말씀드려 메리엘은 한동안 저택에서 쉬게 하겠습니다.”
“그래도 이번 여름 감기가 그렇게 독한 편은 아니니 너무 오래 쉴 필요는 없을 거야. 돌아가서 시스나몬 가주님께도 안부 전해 줘.”
“예……. 1황녀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난 이제 9살인 타마린느가 누구보다 황족다운 화법으로 대화하는 걸 멍하니 쳐다봤다.
클라리사가 물러난 뒤 타마린느의 시선이 날 향했다.
“아스포델, 메리엘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나가서 놀랐지? 미안, 난 그래도 다른 사람이 같이 있으면 저 아이도 정도를 지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아니야.”
“역시 다음에는 우리끼리만 만나는 게 좋겠다.”
나한테 미안한 표정을 지은 타마린느는 내가 알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낯설다, 타마린느!’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귀로 직접 들었어도 여전히 조금 전의 일을 믿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나는 타마린느에 대해 내 생각처럼 잘 알고 있던 게 아닌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안다는 건가?
“아 참, 차가 식지 않았어? 니엘라, 여기 아스포델의 차를 새로운 걸로 다시 따라줘.”
타마린느의 명령을 받고 다가온 궁인이 다시 따라준 따뜻한 차를 한 잔 더 마시면서도 여전히 머리가 멍했다.
혼란과 놀라움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다과회였다.
Chapter 24
내 남동생은 내가 지킨다
“3황녀님!”
황궁 안을 거닐던 중, 익숙한 갈색 머리 소년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로잔티나의 별께 태양의 가호가 내리기를.”
“조슈아, 안녕!”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조슈아를 직접 만나는 건 대신전에서 돌아온 후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조슈아는 확실히 신수가 환해져 있었다.
뀽뀽이…….
그러니까 조슈아를 따르던 새끼 신수와 각인한 이후, 그는 신수 사육사가 아니라 신수 소환사로서 황궁에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모두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덕인지, 조슈아는 전보다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덥수룩하던 머리카락도 전보다 단정하게 정돈되어서 전체적인 인상도 한결 밝아 보였다.
음울한 분위기가 한풀 걷히니 나름대로 귀엽게 잘생긴 얼굴도 도드라져서, 이제 좀 내가 아는 최강 테이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응, 조슈아는 잘 지냈어?”
“예, 황녀님 덕분에 매일 즐겁게 보내고 있답니다.”
“머리도 잘랐네. 잘 어울린다, 조슈아!”
“앗!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역시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닌지, 쉽게 쑥스러움을 타는 건 여전했다.
“저, 실은 제가 황녀님께 드리고 싶어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엉? 나한테?”
그러다 조슈아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아, 물론 황녀님께는 보잘것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조슈아가 두 손을 모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수줍게 말했다.
“제가 정말 힘들 때 황녀님께 많이 격려받은 것도 있고, 또 일전에 신수 둥지에서 벨라 풀 건으로 도움을 받은 것도 감사해서……. 그래서 계속 고민하다가 이번에 드디어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았어요.”
조슈아가 작게 ‘뀽뀽아’ 하고 부르자 그의 옆쪽에서 연두색 빛이 퍼졌다.
각인의 방식으로 신수를 길들인 소환사의 강력한 이점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신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물론 황궁은 결계 때문에 제한이 있었지만, 황성에 서약과 등록을 마친 소환사는 괜찮았다.
“뀽!”
하여 연두색 빛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흰 찹쌀떡 같은 신수는…….
줄기 같은 초록빛 꼬리에 거대한 황금색 불곰 같은 뭔가를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헉.”
내 뒤에 있던 수행인들이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수많은 시선 속에서 조슈아가 부끄러운지 뺨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3황녀님께서 마수 박제품을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
“물론 이미 가지고 계신 수집품들에 비하면 초라하겠지만……. 그래도 뀽뀽이랑 제가 지금 가장 손상 없이 깔끔하게 잡을 수 있는 마수예요. ”
조슈아가 녹색 줄기에 칭칭 감겨 있는 마수를 내게 수줍게 선물하며 덧붙였다.
“꼬, 꼭 더 강해져서 다음엔 3황녀님께 더 멋진 마수를 선물해 드릴게요!”
“뀨우!”
그걸 보고 잠깐 머리가 띵해졌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초심자처럼 오래 굳어 있거나 어색한 미소로 반응하지 않았다.
“……고마워, 조슈아! 날 위해서 이런 걸 다 잡아주다니 감동했어!”
‘왠지 이럴 거 같았어……!’
조슈아가 신수를 부를 때부터…… 아니, 나한테 줄 선물이 있다고 말했을 때부터 왠지 느낌이 익숙했다고!
이번 회차에서는 처음부터 소문이 이상하게 나서 그런지, 다들 내가 마수를 진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귀여운 편이지. 응, 그래.’
흐린 눈으로 눈앞의 마수를 쳐다봤다.
그나마 지금 조슈아가 준 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준 마수에 비하면 크기도 조그맣고 생긴 것도 귀여운 편이었다.
이런 게 적응이 되다니, 참…….
“황녀님, 이번엔 자그마하고 귀여운 마수네요. 옮겨서 박제하기도 편하겠어요.”
마수에 적응한 건 내 뒤에 있던 마가렛도 마찬가지인지, 이번엔 침착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평소에 마수를 가까이에서 볼 일이 거의 없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것도 충분히 흉악해 보이는 모양이다.
특히 길을 지나가던 어린 귀족 자제 몇은 걸음까지 멈추고 입과 눈을 크게 벌린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엔 얼마 전에 본 얼굴도 있었고 아닌 얼굴도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입궁한 다른 황자, 황녀들의 놀이 상대인 듯했다.
그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이쪽을 보다가 자기들끼리 급히 시선을 맞추고 뭐라고 속닥거렸다.
“역시…… 소문이…….”
“무서운…….”
“그럼 그 말도…… 사실인…….”
“메리엘이…….”
엥? 잠깐.
지금 한순간 거슬리는 이름이 들린 것 같은데?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