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8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83화(83/207)
“아무튼 피곤하면 케이크라도 먹어. 단걸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잖아.”
유클레드가 간식을 권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정작 자기는 단 케이크를 먹고 있지 않았다.
난 테이블 위를 살펴봤다.
내 앞에는 잼과 설탕이 많이 들어간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유클레드의 앞에는 딱 봐도 달지 않아 보이는 파이가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들 앞이라고 또 어른스러운 척하느라 일부러 좋아하지도 않는 걸 먹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반면 나는 단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클레드의 간식이 탐났다.
좋아, 교환하면 되겠군.
“그거랑 이거랑 바꾸자.”
“어?”
뜻밖의 말을 들은 듯이 유클레드가 눈을 크게 떴다.
어차피 지금 여기서는 유클레드가 망설일 게 뻔해서, 대답을 듣지 않고 그의 접시와 내 접시를 바꿔치기했다.
“왜 바꾸는 거야? 원래 네 케이크가 더 맛있을 텐데…….”
“구냥 오늘은 다른 거 먹어보고 싶어서.”
유클레드가 접시를 다시 바꾸자고 하기 전에 내 앞에 있는 걸 얼른 먹기 시작했다.
“아스포델, 너…….”
그러자 날 보는 유클레드의 눈이 아롱거렸다.
그는 왠지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자기를 위해서 일부러 케이크를 바꿔 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유클레드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엄숙하게 포크를 들었다.
“크흠, 그래. 오늘은 내가 이걸 먹지. 네 것도 괜찮아 보이네.”
달콤한 케이크와 조우한 그의 귀는 케이크에 올라간 체리처럼 빨갰다.
그걸 보고 나도 만족스러워졌다.
‘좋아,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간식을 교환하면 되겠군.’
서로 입맛에 맞는 걸 먹을 수 있으니 좋고, 또 겸사겸사 이 착각쟁이 녀석에게 고마움도 살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자잘하게나마 나한테 빚진 기분을 들게 만들면 나중에 이 녀석이 필요해질 때 협조를 얻기도 쉬울 거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겉으로는 사이좋아 보이는 우리의 모습에 2황자 루벨리오와 3황자 헬리만이 얼굴을 우그러뜨렸다.
“아스포델, 네가 뭔데 우리 형님 걸 뺏어 먹어?”
허겁지겁 간식을 먹다 말고 불만스럽게 외친 건 헬리만이었다.
루벨리오는 신성 의식 이후 확실히 나한테 먼저 시비를 거는 일이 줄었다.
물론 여전히 날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이제는 패턴을 바꿔서 나한테 시비를 걸기보다 꼭 못 볼 걸 본 듯이 무시하기 일쑤였다.
헬리만도 그런 루벨리오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흥.”
지금도 루벨리오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도 루벨리오보다 헬리만이 나서서 나한테 불만을 표출했다.
난 그런 그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뺏어 먹은 게 아니라 바꿔 먹은 거야, 바보야.”
“뭐?!”
“헬리만, 나도 동의하고 바꾼 거니까 아스포델한테 괜한 시비 걸지 마.”
쿠궁!
유클레드까지 내 편을 들어 싸늘히 말하자 헬리만이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혀, 형님…….”
“유르 오빠랑 아델은 여전히 친하네.”
분위기가 묘해질 낌새를 느꼈는지, 알렉시아가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늘도 그녀의 주위에 장미꽃들이 날아다니는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
“자, 헬리. 괜히 질투하지 말고 너도 누나가 주는 과자 먹어.”
“필요 없, 으웁!”
알렉시아는 동생인 헬리만에게 간식을 물려 입을 막았다.
헬리만은 불만인 듯했으나, 알렉시아가 준 간식이 맛있었는지 제 누나를 노려보면서도 열심히 입을 우물거렸다.
그렇게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의 평화를 지켜낸 알렉시아가 대화의 소재를 바꿨다.
“이렇게 다 같이 모이니까 좋네. 요즘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없어서 좀 따분했는데.”
그 말을 들은 유클레드가 알렉시아에게 의문을 표했다.
“왜, 너희 아버지가 현자의 탑에서 나오신 지 얼마 안 됐잖아? 돌아와서 자주 놀아주시지 않아?”
“응, 그러니까 재미없다는 건데?”
알렉시아가 상큼하게 웃으며 내뱉은 답변에 우린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기 아버지랑 노는 게 노잼이라는 소리를 대놓고 했으니 당연했다.
“우리 아버지 취향 다들 알잖아?”
그 말에는 또 다른 의미로 할 말이 없어졌고.
‘응, 알지. 알고말고…….’
슬쩍 옆 테이블에 있는 2부군 요네스를 쳐다봤다.
마침 부군들의 테이블에서 카루스가 요네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보다 현자의 탑에서 이번에 발표한 연구에 요네스 님이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요즘 제르카인을 돌보느라 제가 소식이 늦었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고맙네, 카루스. 하지만 탑에는 워낙 뛰어난 학자가 많아서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다네.”
2황녀 알렉시아와 3황자 헬리만의 부친.
아들인 헬리만과 같은 구불거리는 청록색 머리칼에 분홍색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생김새는 제 자식들과 전혀 닮지 않았다.
듬직한 체격과 구릿빛 피부, 그리고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진 요네스와 달리 그의 두 자식은 섬세하게 생긴 외양이었으니까.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성격과 취향도 그들은 많이 달랐다.
알렉시아와 헬리만은 둘 다 나름대로 활동적인 성격이었으나 그들의 부친인 요네스는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3황자 헬리만도 토실토실한 몸 때문에 곧잘 오해받곤 했지만 의외로 여기저기 뽈뽈거리며 잘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살이 왜 안 빠지는지는 나도 좀 궁금한데…….
‘체질인가? 아니면 어쨌든 움직이는 것보다 먹는 양이 더 많아서 그런가?’
아무튼.
반면 요네스는 방에서 얌전히 책을 보는 게 취미인 선비 같은 사람이었다.
“겸손한 말씀을 하십니다. 현자의 탑에서도 인장이 찍힌 백금 깃펜을 세 개 이상 하사받은 학자는 드물다고 알고 있는데요.”
“록샨의 말이 맞지. 잘난 척한다고 흉보지 않을 테니 좀 더 자랑해도 괜찮네, 요네스.”
지금도 아버지들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턱을 매만지는 모습이 약간 쑥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무표정하게 있으면 되게 무뚝뚝한 느낌인데 저런 표정을 지으니 성격이 드러났다.
“아니……. 그냥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머리만 쓰면 되는 일이니 정말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크흠, 요네스 님이 불편해하시니 이 이야기는 그만 넘어가지요. 그보다 폐하의 탄신연 때 말인데…….”
자기가 최고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쿤차만이 요네스를 칭찬하는 이 상황을 못마땅해하다가 기회를 엿봐 냉큼 말을 돌렸다.
요네스는 딱히 과시욕이 있는 성격은 아니라 그런 쿤차를 내버려 뒀다.
아무튼 외양만 보면 누구나 그를 육체파로 생각하기 쉬웠으나, 실상은 의외로 몸을 쓰는 일에는 젬병인 반전의 사나이가 바로 요네스였다.
그러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와 노는 것이 재미없을 만도 했다.
“그래서 탄신연이 기대돼. 사람들도 많이 오니까 북적거리고 재미있을 거 아냐.”
알렉시아의 말에 유클레드와 타마린느는 반대 의견을 냈다.
“난 사람 많은 거 별로인데.”
“나도.”
이런 부분은 닮은 쌍둥이였다.
“난 연회 때 맛있는 게 많아서 좋아!”
헬리만도 지극히 자기다운 이유로 연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들 어마마마의 탄신연을 너무 유흥거리로만 생각하는 거 아냐?”
그때 다과 시간 내내 조용하던 루벨리오가 초 치는 소리를 했다.
“형님과 누님들도 그래요. 곧 다가올 탄신일은 위대한 로잔티나의 황제 폐하께서 탄생하신 역사적인 날이니만큼, 우리 황족들도 엄숙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다가올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죠.”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새치름하게 말하는 모습이 꼭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여 괜히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인지, 다른 황녀, 황자들의 얼굴도 떨떠름해졌다.
나는 루벨리오를 보며 츳츳 혀를 찼다.
‘원래 저 탄신연 때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황족들의 위엄을 해칠 예정인 게 바로 자기 아버지인 쿤차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난번에 내가 허브 화원에서 회수했던 검은 마석.
원래는 거기에 조종당한 3부군 쿤차가 라 벨리카 황제의 탄신연 때 황족들을 공격해 엄청난 파란을 불러일으킬 운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검은 마석을 회수했으니 그런 소동이 일어날 리는 없지.’
그러니 일단 이번 탄신연 때는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물론 전개가 바뀔 가능성도 있으니, 일단 경계는 해둘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날 내가 살펴봐야 할 사람에는 바론 오클란테와 루벨리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다가올 제 암울한 운명도 모른 채 고상한 척 차를 마시는 루벨리오를 보며 또 한 번 혀를 찼다.
* * *
내가 사기에 물든 바론 오클란테를 본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그때 나는 족제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와 레예스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혹시 탄신연 때 레예스도 올까? 원래는 바스티온의 수장 부부만 참석했었는데.’
황제의 탄신일 때는 알렉시아의 말대로 로잔티나의 기둥인 10개 가문을 포함한 모든 귀족 가문의 대표들이 연회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우리 아버지의 가문인 히세리온의 친척들도 남부의 영지에서 올라올 것이고, 바스티온 가문의 사람들도 황성에 들어올 터였다.
만약 레예스가 제 부모와 함께 참석한다면 겸사겸사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좋을 테지만, 아직 그의 방문 여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만나러 와주셔서 기쁜걸요.’
문득 대신전에서 봤던 레예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