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85)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85화(85/207)
“후, 후으…….”
그제야 헬리만은 안심한 듯이 남은 눈물을 찔끔 짜내며 깊은 숨을 토해 냈다.
“크흠. 하면…… 신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로잔티나의 별들께 태양의 축복이 내리기를.”
바론 오클란테도 어색하게 헬리만과 내게 인사한 뒤 몸을 물렸다.
‘뭐였지? 방금 왜 어머님이 바론과 나를 수상하게 쳐다본 거지?’
난 나대로 조금 전 라 벨리카 어머니가 내게 보인 수수께끼 같은 시선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피오, 키노!”
바론이 사라지기 전에 족제비들을 얼른 풀어줬다.
“너희가 가서 사기 좀 쫓아주고 와.”
피오와 키노가 신이 나서 뛰어갔다.
“으악, 이게 뭐야!”
잠시 후 바론의 비명과 족제비들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황궁 안에 울렸다.
내 귀에도 그 소리가 꽤 처참하게 들려서 괜히 뜨끔했다.
아니, 쟤들은 기껏 좋은 일을 하면서 왜 저렇게 흉악하게 웃는 거람?
그냥 조용히 가서 툭툭 몇 대 쳐주면 되잖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헬리만 놈이 말하던 것처럼 폭력적인 족제비들이라고 오해하겠네.
“앗, 저 족제비들이 또! 황녀님, 제가 얼른 가서 잡아 올게요!”
역시 내 생각대로 우리 족제비들이 애먼 사람을 괴롭히는 걸로 오해한 마가렛이 황급히 달려갔다.
“마가렛~ 나도 같이 가! 아이코!”
“헉, 황녀님!”
나도 일단 겉으로는 족제비들을 쫓아가는 척하다가, 실수인 양 살짝 넘어졌다.
족제비들이 바론의 사기를 쫓을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깜짝 놀란 마가렛이 다시 나한테 뛰어왔다.
그러는 동안 피오와 키노는 특명을 완수했다.
바론은 족제비들의 습격에 몹시 어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보더니 지난번에 카루스의 궁에서 말실수를 한 게 기억났는지 사과도 받지 않고 도망치듯이 허둥지둥 뛰어갔다.
그런 바론의 몸에서는 더 이상 아까의 사기가 보이지 않았다.
‘좋아,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사기를 쫓는 게 만능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며칠 정도는 나쁜 생각을 덜 하겠지.
사실 카루스의 형인 바론 오클란테도 이번 달에 내가 신경 써야 할 요주의 인물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바로, 라 벨리카 황제의 탄신연 직후에 생길 ‘2황자 루벨리오의 독살 시도 사건’에 연루될 사람이 바론이기 때문이다.
“너, 너! 지금 일부러 그런 거지!”
“엥, 너 아직 거기 있었냐?”
그때 잠깐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3황자 헬리만이 끼어들었다.
“지금 네가 일부러 족제비들을 저 아저씨한테 보내는 거 다 봤어!”
그는 질색한 얼굴로 나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는 소금에 절인 시금치처럼 시들시들하더니, 위압감을 흘리는 어머니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기운을 좀 차린 모양이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주인이나 족제비나 똑같이 사악하고 난폭하다니까……!”
그런데 바로 코앞에서 떠드는 게 귀가 따가워서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하, 이래서 저런 범인들은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 못 한다니까?
나처럼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저런 누명을 씌우나 몰라.
좋은 일을 하고도 이렇게 욕을 먹으니 마음이 너무 아프군.
[사악하고 난폭하다니!] [저 꼬맹이가 심한 소리 하네.]우리 족제비들도 마음의 상처를 받은 눈치였다.
“야.”
결국 쓰라린 마음을 이기지 못해 내가 음험한 목소리를 내자 헬리만이 흠칫했다.
“뭐, 뭐!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너 내가 손가락 간수 잘 하랬지?”
눈치 빠른 족제비들이 그 순간 하늘을 날았다.
“으악!”
“화, 황자님!”
3황자 헬리만이 황급히 뒤돌아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우리 족제비들은 그냥 한번 자리에서 폴짝 뛰었을 뿐, 저 녀석에게 수염조차 대지 않았는데 역시 엄살이 엄청났다.
나와 족제비들은 마음의 상처가 약간 해소되는 기분에 크헤헤 사이좋게 웃으며 궁으로 돌아갔다.
그날 3황자 녀석과 그의 옆에 있던 뷔요른 영식에 의해 ‘무시무시한 마수 박제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데다 사나운 족제비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무서운 황녀님’이라는 소문이 나한테 하나 더 축적된 걸 모르고 말이다.
* * *
“아델, 내일은 폐하의 탄신연이라 오전부터 바쁠 테니 지금 하던 것만 마무리하고 오늘은 일찍 자는 게 좋겠구나.”
“네, 아빠. 이것만 마저 할게요!”
내 방에 잠깐 들렀던 아버지가 다시 나간 뒤, 책상 위에 가만히 있던 미노타우로스 인형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봐, 아스포델. 네 아버지가 오늘은 일찍 자라고 하는데, 오늘 치 베껴 쓰기는 그냥 여기까지만 하면…….]“응, 안 돼. 일찍 쉬고 싶으면 그냥 빨리빨리 합시다~”
내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반사시키자 앤디미온이 좌절했다.
앤디미온이 안에 들어간 황소 머리 인형이 책상 위에 놓인 펜을 주섬주섬 힘없이 다시 집어 들었다.
지난번에 피오가 원숭이 인형의 얼마 안 되는 머리털을 죄다 뽑아놓은 일로, 앤디미온은 그 인형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나한테 있는 대부분의 인형은 동물 모양이었는데, 원숭이 말고는 손 부분이 다 뭉툭해서 앤디미온에게 제대로 펜을 쥐는 연습을 시키기 어려웠다.
그러다 마침 내가 마수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밖에까지 났는지, 우리 궁에 마수 모양을 본뜬 인형이 몇 개 들어왔다.
그래서 결국 타협을 본 게 저 미노타우로스 인형이었다.
[하아, 록샨은 오늘도 아름답구나. 어쩌면 이렇게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을까.]앤디미온처럼 현신하지 않고 영혼 상태로 내 옆에 둥둥 떠 있던 티타니아가 감미로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문 쪽을 보며 양손의 엄지를 전부 추켜올리는 걸 보니, 나와 계약한 게 아주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티타니아와 처음 만난 날부터 앙숙이 된 앤디미온이 그녀를 보고 빈정거렸다.
앤디미온이 광분해서 일장 연설을 시작했지만 티타니아는 그를 무시하고 나한테 달라붙어 속닥거렸다.
[그런데 아스포델, 네 아버지는 혹시 둘째를 만들 생각이 없다니?]난 앤디미온이 글씨 연습을 할 동안 성력석을 만들고 있었다.
혹시 내일 탄신연에 레예스가 오면 그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티타니아의 말을 듣고 눈살을 살포시 찌푸렸다.
“웬 둘째?”
[생각해 봐. 물론 너도 네 아버지를 닮아 아름답지만 록샨과 똑같이 닮은 미소년이 세상에 있으면 엄청 좋을 것 같지 않니?]흠, 물론 우리 아버지 유전자가 이대로 두기에 엄청나게 아까운 건 맞지.
[그러지 말고 네가 동생 갖고 싶다고 엄마 아빠에게 졸라 보면 어때?]티타니아는 진심인지, 날 본격적으로 살살 꼬드겼다.
“그치만 우리 어머니, 아이는 이제 질리셨을걸.”
[아까워라! 저런 뛰어난 미모는 후손까지 최대한 많이 대물림해야 하는데 말이야. 더군다나 로잔티나의 황족은 직접 아이를 출산할 필요도 없으니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잖아?]티타니아는 엄청나게 안타까워했다.
이론상으로는 그녀의 말이 맞긴 했다.
실제로 대신들도 그렇게 주장해서, 라 벨리카 어머니도 황제의 의무로 원래 남편 한 명당 아이 둘씩은 만들려고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또 정치적인 목적으로 3부군을 들였을 때부터는 귀찮아져서, 그때부터 남편 한 명당 아이는 하나로 줄였다는 설이 있었다.
‘물론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총애하니까 생각만 있으면 그런 규칙은 깨고 아이를 더 만들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티타니아의 말을 듣고 그들 사이에 나 말고 다른 아이가 있는 상상을 하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마음이 영 찝찝하면서 뭔가 은근히 꽁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지금 내가 나잇값도 못 하고 질투하는 건가?’
하지만 소설에서나 내 지난 회차들의 삶에서나, 우리 어머니가 4황자 제르카인 이후로 다른 아이를 더 만든 적은 없으니 어차피 쓸데없는 가정이었다.
“아무튼 그럴 일 없을걸.”
완성한 성력석과 함께 티타니아의 말을 한쪽에 치우고, 이번에는 상자에 고이 넣어 신줏단지처럼 모셔둔 성물을 꺼냈다.
크, 오늘도 이 영롱한 자태!
나중에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 요긴하게 사용할 물건인 만큼 매일 성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먼지 한 톨 없이 닦아주는 게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후흥, 흐흥~”
나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해파리 모양 성물의 촉수 한 가닥 한 가닥을 정성껏 닦기 시작했다.
[내일 기대된다. 황제의 탄신연이니까 맛있는 것도 엄청 많겠지?]그런 내 옆에서 피오가 꼭 3황자 헬리만 같은 소리를 하며 츄르릅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와 피오의 말대로 내일이 드디어 라 벨리카 황제의 탄신연.
그래서 내일 오전부터 각지의 귀족 가문들이 줄줄이 황궁 안에 들어올 예정이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도 보겠네.’
지난번에 내 생일 때는 영지 일 때문에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대신 편지와 선물을 보냈었지.
‘아무튼 내일은 황궁이 엄청나게 북적거릴 테니 레예스가 오면 몰래 만나기 딱 좋은데.’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성물의 마지막 촉수를 막 닦기 시작했을 때였다.
꿈틀.
갑자기 손끝에 이상한 촉감이 느껴졌다.
“응……?”
뭐지?
지금 한순간 촉수가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꿈틀!
“헉!”
이번엔 진짜 확실히 느껴졌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내 귀한 성물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야.]급기야 내 귀에 웬 흐릿한 목소리까지 스몄다.
[아이야, 내 말이 들리느냐?]동시에 꿈틀거리는 해파리 촉수가 내 손등에 척하니 올려졌다.
해파리 성물이 조금만 더 위엄 있게 생겼으면 크툴루가 재림한 줄 알았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질겁했다.
해, 해파리가 말을 한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