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88)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88화(88/207)
“여보, 하지만……!”
“씁. 토 달지 말고. 어차피 말싸움해서 이기지도 못하잖아.”
“네…….”
결국 루벨리오의 할아버지는 시무룩해져서 부인에게 돌아갔다.
참, 그래도 자꾸 보면 귀여운 맛이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좀 잘 살란 말이다, 루벨리오야.’
난 2황자 녀석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지난 회차들에서 저놈이 매번 철없는 악역 짓만 안 했어도, 디오메네 가문이 마지막에 그런 식으로 풍비박산 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무튼! 우리 디오메네에서는 이번에 폐하께 바칠 탄신연 선물을 특별히 신경 써서 준비했지. 그러니 이번 일로 히세리온에서 괜히 우리와 비교당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
그러나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루벨리오의 할아버지는 부인 옆으로 돌아가서도 끈질기게 우리를 도발해 왔다.
“차라리 그냥 깔끔하게 우리에게 입궁 순서를 양보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확실히 두 가문의 짐 마차들을 동시에 일렬로 들어오게 했으니 비교가 되긴 할 것이다.
“아델, 오늘 입은 옷이 참 귀엽구나.”
“올해 초에 봤으니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그동안 이렇게 많이 크다니!”
하지만 우리 히세리온 사람들은 이미 다른 사람의 말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사실 우리 가문 사람들은 대체로 마이 웨이형 인간이었다.
무시당한 루벨리오의 할아버지가 뒤에서 또 한 번 파르르 몸을 떠는 게 보였다.
난 잠깐 그를 동정했다.
그러는 사이에 마차 행렬은 슬슬 끝으로 다다라 가고 있었다.
루벨리오의 할아버지가 눈에 불을 켜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먼저 끊긴 건 디오메네의 마차였다.
이후 히세리온에서만 두 대의 마차가 추가로 들어왔다.
“이, 이럴 리가 없어!”
루벨리오의 할아버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고모 아가사가 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백부인 디트리히가 그런 고모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록샨……. 이제 보니 히세리온에서도…… 이번 탄신연 준비를 굉장히 공들여 한 것 같군.”
“음……. 저도 몰랐는데 지금 보니 신경을 쓰신 듯합니다.”
쿤차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그동안 이번 탄신연 선물을 엄청나게 신경 써서 준비했다고 여기저기 떠벌리며 자랑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자고로 양보다는 질인 법이지.”
하지만 그는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듯,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외알 안경을 추켜 올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크흠, 네 말이 맞다! 암, 양보다는 질이지.”
루벨리오의 할아버지도 아들의 말에 동조했다.
부자가 나란히 서서 바람을 맞은 들꽃처럼 파들거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무슨 소리냐? 우린 양과 질, 모두 최고로만 엄선했다.”
할아버지가 우아하게 입술을 끌어 올리며 그런 두 사람을 비웃었다.
“아델, 잠깐 여길 좀 보렴. 이번에 우리 조카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 있지.”
그러는 동안 백부 디트리히가 눈부시게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들어온 짐 마차로 다가갔다.
“그래, 우리 손녀를 위해 다 같이 준비한 거란다.”
암막 천에 꽁꽁 감싸인 채 짐 마차에 실린 물건은 뭔지 몰라도 크기가 엄청나게 컸다.
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짜잔!”
잠시 후 검은 천이 걷혔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마수의 위용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남부 바다의 해적이라 불리던 마수 크레욘이다. 개중에 이놈이 가장 큰 것이더구나.”
“이만한 크기면 200년은 족히 묵은 것 같은데.”
“우리 조카가 요즘 마수 박제품 수집을 즐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야심 차게 준비했지!”
“어때, 마음에 드니?”
와, 이제는 바다 마수까지 섭렵하게 되는 건가…….
잠깐 아연해졌지만 친척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마주한 순간 얼른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최고……! 완전 머쪄요!”
“크흠, 아무래도 황성에서는 바다 마수를 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다. 포인트는 여기 이 생동감 넘치는 다리란다.”
“와아! 진짜 살아 있는 것 같다!”
내가 열심히 좋아하는 척하자 친척들이 쑥스러워하면서 기뻐했다.
“아델, 새로운 박제품이 생겨서 좋겠구나.”
아버지도 나를 안고 뿌듯하게 웃었다.
서문에는 히세리온과 디오메네 가문과 있는 게 아니라, 먼저 도착한 다른 귀족 가문의 사람들도 짐을 풀고 있었다.
그들도 마수의 위용에 압도당한 듯이 입을 벌리고 있다가, 곧 사색이 된 얼굴로 저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다.
“마수 박제품이라니 참 멋진 선물이군. 좋겠구나, 아스포델.”
마찬가지로 마수를 보고 굳어 있던 쿤차가 이내 후후 웃으며 웬일로 히세리온에서 준비한 선물을 칭찬해 줬다.
내 생각에는, 히세리온의 짐마차에 실려 있던 물건 중 가장 눈에 띄게 크던 것이 황제에게 진상할 선물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약간의 여유를 되찾은 것 같았다.
“그럼 우린 먼저 가보겠네. 잠시 후에 다시 보지, 록샨.”
그는 루벨리오와 디오메네 사람들을 데리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우리도 가지요.”
“그래.”
그런 뒤 우리 히세리온 사람들도 축하연이 시작될 장소로 움직였다.
* * *
“아스포델!”
“너도 친척들이랑 인사하고 왔나 보구나.”
축하연 자리로 가자마자 먼저 도착해 있던 유클레드와 타마린느 쌍둥이가 나를 반겨 주었다.
오늘 황제의 탄신 축하 연회는 점심부터 밤까지 내내 열릴 예정이었다.
이미 아침부터 황성 밖에서도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럼 아델, 언니 오빠들하고 놀고 있으렴.”
아버지는 나를 쌍둥이들 옆에 앉혀주고 다른 부군들이 앉은 자리로 갔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보자…….
황족들은 1부군 테드릭네와 3부군 쿤차네, 그리고 우리만 도착했군.
2부군 요네스와 그의 두 아이, 그리고 5부군인 카루스와 제르카인은 아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우측 상석 자리에는 신관들이 데메테아 여신의 후예라 불리는 황제의 탄신일을 맞아 축하와 축복을 내려주러 와 있었는데…….
개중에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앗! 저기 황녀님이다!”
“뭐? 어디?”
“와아! 아기 황녀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대표적인 게 대신전에서 봤던 견습 신관들이었다.
물론 어린 견습 신관들이 전부 다 온 건 아니었고, 일부만 차출되어 온 것 같았다.
“안뇽!”
아무튼 하도 나를 반가워하며 인사하길래 나도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러자 어린 견습 신관들이 더 신이 난 듯이 아예 양손을 들어 붕붕 흔들었다.
“뭐야? 저 견습 신관들이랑 아는 사이야?”
“이번에 대신전 갔을 때 봤어.”
유클레드의 물음에 대충 대답한 뒤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오늘 탄신연에 온 다른 신관 중에는…… 아이작이랑 마리벨이 있군.
“그래? 그런데 왜 같이 대신전에 갔던 루벨리오한테는 아는 척을 안 하지?”
“흥, 전 저런 코흘리개 견습 신관들한테는 관심 없…… 히익!”
마침 루벨리오 녀석도 마리벨을 발견했나 보다.
그는 유클레드의 말에 신관들이 모인 곳을 곁눈질하며 새침하게 자존심을 세우다가 사색이 되어 질겁하고 있었다.
‘제길, 그런데 너도 왔냐?’
그때쯤에는 나도 반갑지 않은 얼굴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차라리 마리벨까지면 괜찮았을 텐데, 모르페우스도 탄신연에 참석한 상태였다.
지난 회차들에서는 이때 모르페우스가 라 벨리카 황제의 탄신연에 온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할 일이 무지하게 없는 모양이다.
괜히 뒷덜미가 싸해졌다.
행여나 모르페우스 신관과 눈이라도 마주치기 전에 얼른 귀족들의 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쪽도 빈자리가 빠르게 채워지고 있군.’
1황녀 타마린느의 궁에서 보았던 시스나몬 자매와 다른 황녀, 황자들의 놀이 친구들도 있었고, 아버지들의 가문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앗, 레예스다!’
나는 상위 10개 가문의 귀족들이 모인 상석에서 익숙한 군청색 머리칼을 가진 소년을 발견했다.
때마침 타마린느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잠깐 저쪽에 좀 다녀올게. 클라리사랑 메리엘하고 인사하려고.”
“나도 같이 가!”
“아스포델, 너도?”
“응!”
옳다구나 싶어서 타마린느의 손을 잡고 나도 일어났다.
“뭐야, 그럼 나도 갈래.”
유클레드도 심심했는지 우리를 따라 왔다.
“그럼 아스포델, 사람이 많으니까 오빠랑 내 손 하나씩 잡고 가자.”
“흠, 하긴. 아스포델은 콩알 같아서 사람들한테 치일지도 몰라.”
“그래! 손 잡고 가자!”
황족들의 이동은 수행인들과 함께 늘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법이었다.
그러니 솔직히 지금 이곳에 아무리 사람이 많다 한들, 우리를 보고 다들 알아서 길을 비킬 게 분명했다.
따라서 저들이 말한 건 괜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언니 오빠를 따라서 움직이는 어린애처럼 보이는 게 모르페우스의 의심도 받지 않고 모양새가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 흔쾌히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사이좋게 다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로 이동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