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9)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9화(9/207)
‘네? 지금 신의 정원에 가려고 하셨다고요? 그 안에 있는 동생 열매님이 걱정되어서요? 어쩜, 우리 황녀님은 다정하기도 하시지!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 돼요. 다행히 데메테아 님과 폐하의 은혜로 로사리움은 무사하다고 하니까요. 그러니 걱정 말고 코오 주무세요.’
결국 나는 다시 방으로 고이 안겨 와 강제로 자장가를 경청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갈 때까지 또 자는 척을 하려다가 그만 진짜로 잠들어 버렸다.
어제는 워낙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연회에 참석한 일로 꽤 지쳤던 모양이다.
하긴, 지금은 어린 몸이니 성인일 때와 체력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역시 이상하단 말이야.’
이전 회차에서는 이 시점에 다짜고짜 신의 정원에 찾아가 본 적도, 또 카루스와 이런 식으로 마주쳤던 적도 없어서 그런가?
지금 카루스한테서 사기가 느껴지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람?
‘혹시 악역들이 심은 걸까? 하지만 그들이 카루스와 4황자에게까지 직접적으로 손을 뻗치는 건 훨씬 나중이어야 하는데. 아니면…… 카루스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건가?’
<황녀 아스포델>에서 여주인공의 나라인 로잔티나를 파멸로 몰아넣으려 했던 악의 세력들.
그들은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응축한 사기를 힘의 근원으로 사용했다.
그 못된 놈들은 서서히 옷깃을 적시는 가랑비처럼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공을 들여 로잔티나를 잠식하려 했다.
그러니 분명 지금 이 시점에도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터.
‘어쨌거나 지금 카루스에게 저 정도의 사기가 있다니. 혹시 이 시점에 아스포델이 몰랐던 사건이라도 있었던 건지…….’
나는 고민에 빠졌다.
<황녀 아스포델>은 주로 여주인공인 아스포델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따라서 여주인공이 모르는 일은 독자들도 모르는 게 당연했다.
특히 초, 중반부 아스포델의 어린 시절은 가족들과 애정을 쌓는 아기자기한 일상 위주로 전개되었다.
간혹 사건이나 갈등이 터져도 자잘한 범위였지, 악역 세력에 대한 건 거의 언급되지도 않았었다.
기껏해야 2황자가 시비를 건다든가, 아니면 아버지들 밑의 귀족들이 서로의 세력을 견제해 흉계를 꾸민다거나 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거기에서 이 세계의 안위와 관련한 내용은 당연히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리 황녀님, 거의 다 드셨으면 이것 좀 보시겠어요?”
그렇게 내가 한참 생각에 잠겼을 때, 마가렛이 식탁 위에 하나 남아 있던 접시의 뚜껑을 야심 차게 열어젖혔다.
“짜잔! 원래 조찬 때는 더 가벼운 후식을 준비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
그 안에 있는 건 한눈에 봐도 미친 듯이 달아 보이는 요리사 특제 우유 푸딩이었다.
“으우와아…….”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탄식했다.
혹시 단어를 잘못 사용한 게 아닌지 의심하지 마라.
다시 말한다. 탄성이 아니라 탄식이다.
“어제 축하연이 일찍 끝나서 아쉬우셨죠? 그런데도 투정 한 번 안 부리시고 정말 의젓하셔요, 우리 황녀님.”
나는 흐린 눈으로 접시 위의 말랑한 푸딩을 내려다봤다.
이거 진짜 오랜만이다.
소설에서 아스포델이 어릴 때 하루에도 몇 번씩 먹고 싶다고 떼쓸 정도로 좋아하던 간식인데.
설탕과 꿀에 졸인 과일과 젤리를 듬뿍 넣고 캐러멜시럽으로 코팅해서 한 입 먹으면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로 달게 만든 엄청난 당분 폭탄 우유 푸딩이었다.
그래서 마가렛 말대로 아침에 이걸 먹는 건 진짜 특별한 날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난 진짜 아스포델과 달리 단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1회차 때는 아스포델을 흉내 내느라, 또 2회차 때는 그동안 나도 모르게 정든 마가렛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한 번도 이걸 거절한 적이 없었다.
“자, 황녀님, 맛있게 드시…… 어멋! 이 아이들이 버릇없게!”
“끼이! 낑!”
때마침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오른 그림자 두 개가 추억에 젖어 있던 나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하나는 흰색, 하나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족제비들이었다.
‘짜식들, 너희도 반갑다.’
이름은 피오와 키노.
소설에 의하면, 아버지 록샨이 시찰을 나갔던 북서쪽 마수의 숲에서 비를 맞고 죽어가는 새끼 동물들을 데려온 것이 이들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록샨의 애정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 녀석들은 그대로 황성에 눌어붙어 군식구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진짜 짐승이 아니라 동물의 몸을 그릇으로 삼은 성령이었다.
록샨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 족제비들은 황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그때 아스포델 주변을 맴돌던 성령들이 혼이 빈 동물의 육신 안에 들어가 새로운 주인이 된 것이다.
원래 성령들은 신의 은총을 받은 자들, 즉 성력을 지닌 자들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는 존재다.
비록 각성 전이라 해도, 성력을 개화할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냄새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이 녀석들이 일찍부터 아스포델 옆에 달라붙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들었다.
“끼기잉!”
“너희들! 아까 밥도 챙겨줬는데 황녀님 걸 탐내면 못 써! 어서 내려오지 못해?”
마가렛이 테이블에 올라간 족제비들을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조막만 한 앞발로 테이블을 어찌나 꽉 붙들고 있던지, 찹쌀떡같이 말랑하고 유연한 몸만 길쭉하게 늘어날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먹을 푸딩을 달라고 끈질기게 낑낑거렸다.
나야 소설을 봐서 이미 이놈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데다, 이전 회차 때 긴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 알아보는 거지만, 아직은 성력 각성 전이라 말이 통하지 않았다.
“끼유! 낑!”
그래서 그들은 손짓, 발짓으로 열심히 의사 표현을 하려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용을 쓰는 모습이 좀 애잔했다.
“쯧. 피오, 키노. 한 입씩 줄 테니까 마가렛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어.”
솔직히 예전에는 진짜 아스포델의 사역마들이란 생각에 거리감이 들어 이들을 멀리했었다.
또 가끔씩 녀석들이 말을 안 들을 땐 아주 조금, 진짜 아주 조금 구박도 했었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을 함께한 동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이젠 좀 더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절대 내가 아침부터 단걸 먹기 싫어서 마가렛의 푸딩을 주려는 게 아니란 말이지.’
“자, 아- 해.”
큰마음 먹고 우유 푸딩을 티스푼으로 직접 떠서 주기까지 했다.
“세상에, 황녀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일에 우유 푸딩 100접시를 먹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을 정도로 그렇게 좋아하시는 간식이면서! 어쩜 우리 황녀님은 이렇게 양보심도 많고 사랑스러우셔요?”
마가렛은 내 배포에 크게 감격한 눈치였다.
흥, 뭐 이 정도를 가지고.
“끼이……?”
“끼……!”
그런데 이 녀석들, 표정이 왜 이래?
내 말을 들은 족제비 둘이서 뭔가 굉장히 당황한 얼굴로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하고 난리가 났다.
끼끽거리긴 하는데 당연히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흰 족제비가 내 얼굴과 스푼 위의 푸딩을 경계하듯이 번갈아 쳐다보다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검은색이 섞인 족제비는 눈동자를 불안하게 흔들며 주춤주춤 나한테 다가와서 하얀 발바닥으로 내 손을 조심스레 툭툭 건드리기까지 했다.
그 둘의 눈빛에서 내게 불손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야, 나 제정신이거든?”
“……끼유!”
“참나, 우유 푸딩에 이상한 짓 한 것도 아니야.”
“끼이이이!”
뭘 놀라고 있어?
이것들이, 눈으로 다 말해놓고.
갑자기 억울해졌다.
누가 보면 내가 매일 괴롭히기만 한 줄 알겠네.
나처럼 착한 주인이 어디 있다고.
‘아니……. 그보다 얘네 반응이 좀 묘한 것 같은데.’
원래 내가 빙의하기 전인 네 살 때까지의 아스포델은 이 둘한테 잘해준 거 아니었나?
그런데 내가 먹을 걸 준다고 왜 놀라지?
지난 회차까지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족제비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날 미친 사람 취급하는 듯한 눈빛에 울컥하는 마음만 더 커졌다.
“아, 됐어. 흥, 먹기 싫으면 말아. 그냥 내가 혼자 다 먹을 거야.”
“끼야! 끼이이……!”
심술이 나서 그냥 우유 푸딩을 내 입안에 쓸어 넣었다.
족제비들이 뒤늦게 후다닥 달려와서 시끄럽게 아우성치며 팔에 매달렸다.
칫, 그런다고 내가 마음을 바꿀 줄 알고? 이미 기분 다 상했다, 이거야.
“마가렛, 아침 먹었으니까 화원에 놀러 가자!”
나를 욕하듯이 끼유끼유 울면서 빈 접시를 핥는 족제비들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록샨 님도 오시지 않았는데요?”
“오늘은 아빠 없이 나갈 거야.”
마가렛은 분주히 식당을 나서는 나를 따라오며 알겠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군요! 우리 귀여우신 황녀님이 어제 다섯 살 생일을 맞으신 이후로 정말 훌쩍 자라신 것 같네요. 그럼 오늘은 이 마가렛과 황녀님, 둘이 궁 밖으로 나가 볼까요?”
당연히 오해였지만, 어쨌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상관은 없었다.
“가자, 마가렛!”
좋아.
사냥감을 찾으러 출동이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