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9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90화(90/207)
“우와아아아!”
사방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졌다.
‘역시 황제의 탄신연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다르구먼.’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신수들의 비행을 보며 나도 적당히 감탄하는 척했다.
“와아, 머시따아~”
그러면서 슬금슬금 움직여 2황자 루벨리오의 옆으로 다가갔다.
하늘에서는 화려한 꽃비와 폭죽이 연신 흩뿌려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조금 전에 시작된 탄신연의 축하 공연을 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다들 자리에서까지 일어나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으니까.
그건 루벨리오도 마찬가지였다.
“응?”
하지만 원래 둔한 녀석은 아니라, 그는 금방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뭐, 뭐야!”
그런데 너무 놀라네.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크게 흠칫거린 루벨리오가 경계심이 잔뜩 어린 눈으로 날 보며 상체를 뒤로 뺐다.
“너 언제 왔어? 네가 왜 내 옆에 있는 거야?”
“이 자리 네가 맡아 놔써? 어딜 앉든 내 마음이지.”
내 당당한 대답에 루벨리오는 더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쏟아지는 꽃잎들 사이에서 가자미눈을 뜨고 루벨리오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왜 이래?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그러자 루벨리오가 주춤거렸다.
나를 보는 그의 눈도 정처 없이 흔들렸다.
나는 루벨리오에게 은밀하게 속삭였다.
“루벨리오야, 사실은 나 알고 있다?”
“뭐? 네가 알긴 뭘 알아?”
“오늘 탄신연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너도 예지로 봤지?”
의미심장한 내 말을 듣고 루벨리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이게 또 날 떠보려고……!”
하지만 그는 내 유도신문에 넘어오지 않았다.
“내가 그런 데 대답할 것 같아? 지난번부터 계속 심심하면 날 찔러 보려고 하는데, 네 속셈이 뭔지 내가 모를 줄 알고?”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나를 째려보는 얼굴에는 오늘도 철벽이 처져 있었다.
하, 요놈. 여전히 가드가 단단하네.
나는 쩝 입맛을 다시며 뱁새 눈을 뜨고 루벨리오의 얼굴을 살펴봤다.
‘표정만 봐서는 진짜 뭘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모르겠네.’
먼저 말했다시피, 나는 오늘 탄신연에서 남몰래 루벨리오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원래 오늘 거한 사고를 치게 되어 있던 쿤차는 그렇다 쳐도, 루벨리오 역시 성가신 사건을 일으킬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황자 루벨리오는 신성 의식 때 데메테아 여신을 통해 예지를 봤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어쩌면, 곧 자신에게 일어날 일도 미리 봐서 알고 있을지 몰랐다.
그래서 겸사겸사 루벨리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그에게서는 별다른 조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름하여, 탄신연 이후에 있을 2황자 루벨리오 독살 시도 사건.
그 발단이 되는 게 바로 이 탄신연이었으니 말이다.
그 사건은 카루스와 바론 형제하고도 연관이 있었다.
왜, 얼마 전에 황궁 안에서 사기로 새까매진 바론 오클란테와 마주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원래 이 무렵 바론은 조카인 4황자 제르카인의 탄생을 말미암아, 오클란테 가문을 부흥시킬 기대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탄신연 때 오히려 다른 10대 귀족 가문들과 오클란테 가문의 격차만 실감하고 큰 굴욕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바론의 굴욕감에 기름을 뿌린 게 바로 2황자 루벨리오였다.
오만한 루벨리오는 이날도 여지없이 탄신연 자리에서 마주친 카루스를 무시하며 오클란테 가문에게 모욕을 주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론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만 눈이 뒤집히고 만 것이다.
그래서 탄신연 이후 바론이 독기를 품고 2황자의 독살을 시도하는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쩝. 물론 루벨리오도 잘한 건 없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놈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긴 작가가 그렇게 설정한 건데, 소설 속 인물에게 굳이 왜 그랬냐고 따질 수는 없는 일이지.’
쿤차도 마침 탄신연에서 일으킨 검은 마석 사건으로 대신전에 유폐되었을 때라, 가장 큰 보호막이 사라진 루벨리오에게 손을 쓰기도 쉬웠을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바론은 이 세상에서 아디오스! 사라지게 되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이치이고, 나도 그 부분은 유감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일로 카루스와 4황자의 앞날이 더욱 굴곡진 가시밭길이 되었다는 거였다!
그 일로 한미한 가문이나마 기반이 완전히 사라진 카루스는 황궁에서 더 박대받고, 그 아들인 4황자 제르카인의 멘탈도 더 약해져 나중에 악당에게 세뇌당하고…….
‘망할 나비 효과. 그렇게 과거의 온갖 자잘한 일이 훗날의 불행 요소로 불어나 미친 피폐로 달리는 전개였지.’
하지만 이번엔 그때와 상황이 다르니 독살 시도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회차에서도 그 사건은 내가 막아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루벨리오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일단 적당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물론 여차해서 저 녀석이 진짜 위험해질 것 같을 땐 내가 나설 마음도 있긴 했다.
“아스포델?”
루벨리오와 나의 기묘한 대치는 1황자 유클레드가 내 부재를 깨달으며 끝났다.
마침 축하 공연도 마무리된 참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클레드가 루벨리오의 옆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쿠궁!
한순간 유클레드가 명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스포델, 너……. 왜 루벨리오의 옆으로 간 거야?”
그는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핑계를 만들기 귀찮아서 그냥 대충 대답했다.
“구냥 이 자리가 좋아서.”
“내 옆보다 그 자리가…… 더 좋다고?”
그런데 유클레드는 그 말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의 눈이 나를 떠나 루벨리오에게 닿았다.
그 순간 루벨리오가 몸을 포르르 떨었다.
“혀, 형님, 제가 오라고 안 했어요!”
어우, 그런데 갑자기 뭐지?
공기가 좀 쌀쌀해진 것 같은데.
“음? 구름 때문에 해가 가려져서 그런가. 갑자기 한기가 드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3황녀 알렉시아가 옷깃을 여미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옆에 있던 3황자 헬리만이 뒤늦게 상황을 알고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
“너! 이번엔 루벨한테 친한 척하는 거냐?”
“하유, 겁쟁이 울보한테는 볼일 없으니까 나한테 말 시키지 마.”
“뭐어? 거, 겁쟁이 울보라니!”
지난번에 라 벨리카 황제 어머니 앞에서 있었던 일을 입에 올리자 3황자 헬리만이 파들거렸다.
그를 무시하고 다른 좌석으로 눈길을 돌렸다.
흠, 좋아.
쿤차도 멀쩡하고, 카루스 표정도 좋고.
바론은 아까 귀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그런지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였지만, 일전에 우리 족제비들이 한번 사기를 털어줘서 당장 욱해서 사고를 칠 것 같진 않았다.
“라 벨리카, 황제 폐하! 탄신일을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먼 길을 와주어 고맙군.”
다음은 신관들이 축복 시간인가.
황제의 탄신연이니만큼 준비된 일정도 많아서, 축복 시간에만 한 시간은 거뜬히 걸릴 게 분명했다.
나는 하품을 삼키며 단상으로 올라가는 신관들을 보았다.
그 안에는 모르페우스와 아이작도 있었다.
‘음?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모르페우스 얼굴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하지만 멀리서 본 것이라 확실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워낙 창백한 양반이기도 했고.
모르페우스가 탄신연에 온 건 처음 있는 일이라 한동안은 경계했지만 축복의 시간 내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이후부터는 조금은 마음을 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 *
“안녕하십니까, 3황녀님?”
컥!
잠깐 화장실을 핑계로 족제비들에게 뭔가를 좀 시키고 오던 길에 모르페우스 신관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신관님!”
젠장,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 않았는데 모퉁이를 돌자마자 바로 있어서 미처 피하지 못했다.
“대신전에 오셨던 이후로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간 무탈히 잘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를 듣자 피부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으슬거리는 몸을 티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네! 신관님은요?”
“예, 저도 잘 지냈습니다.”
태연하게 미소 짓는 모르페우스를 보자 이마에 슬그머니 핏대가 솟아오르려 했다.
……이 자식!
그때 대신전을 나와서 황궁으로 돌아오던 길에 네가 보낸 마수 때문에 우리 쪽에선 부상자가 나왔었단 말이다!
그 일로 조슈아가 각인하긴 했지만 그래도 네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그렇구나, 잘 지내셨구나~”
난 살짝 빈정이 상해서 순진한 척 모르페우스를 비꼬았다.
“우응, 근데 신관님 얼굴이 왜 그래용?”
“제 얼굴 말입니까?”
“네! 오늘 되게 되게 되게, 별론데~”
어떻게 별로냐고 하면 오늘따라 못생겨 보인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설마 이런 어린애가 얼굴 흉 좀 봤다고 죽이진 않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모르페우스는 지난번에 대신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웬 김칫국 마시는 소리를 꺼냈다.
“또 저를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모르페우스가 입매를 늘여 가느다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한, 묘한 웃음이었다.
엥, 얘가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설마 내가 안색이 안 좋다고 말한 걸로 착각했나?
얘 바보 아냐?
혹시 이놈도 유클레드처럼 착각쟁이의 자질이 있었던 건가?
“응?”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들이 뜬금없이 시야에 나타난 건 내 표정이 썩어들어가던 바로 그때였다.
발소리조차 없이 그림자처럼 조용히 다가와서,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질 때까지 수상한 자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구지?”
모르페우스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싸늘한 시선을 다가오는 자들에게 옮기며 물었다.
헐?! 그런데 모르페우스가 입을 열자마자 검은 옷의 사람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우리를 공격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