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9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93화(93/207)
챙! 채앵!
하지만 지금은 일단 저 수상한 괴한들을 상대해야 할 때였다.
모르페우스에게서 뻗어져 나온 날카로운 기운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너희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흥미로운 힘을 사용하고 있구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르페우스의 신성력 공격을 막아내며 불길한 보라색 잔상을 흘렸다.
동시에, 모르페우스가 일부러 찢은 그들의 옷 속에서 특이한 날개 모양의 문신이 드러났다.
그 순간 모르페우스의 눈에 날카로운 이채가 스쳤다.
‘역시 그때 접근했던 나부랭이 놈들이군.’
모르페우스는 괴한들의 정체를 확신했다.
얼마 전, 모르페우스에게 기묘한 거래를 제안하러 왔던 자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모르페우스는 그때 그것을 거절했다.
제 정체를 밝히지도 않는 수상한 무리와 손을 잡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르페우스, 오늘의 결정을 후회할 거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저런 같잖은 경고를 남긴 채 사라졌다.
하면 오늘은 그 보복이라도 하러 온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때를 잘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겉으로 티는 나지 않았지만, 모르페우스는 현재 육신과 신성력 모두 많이 약해진 상태였으니까.
하여 그는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 신성력 보호막이 약해진 것을 알고 지금을 노린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었다.
일전에 보았을 때, 자신의 육신을 갉아 먹어가고 있는 병에 대해서도 알고 있던 놈들이니.
하지만 황녀의 앞이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 중 무엇 하나도 밖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신관님, 신관님! 가만히 있지 말구, 공격 막으면서 저기로 가요!”
겁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던 3황녀는 지금 이 상황이 무섭기는 한지, 자꾸만 모르페우스에게 들러붙었다.
그것이 거추장스러워서 떼어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르페우스는 또 목으로 울컥 올라오려는 피를 삼켜냈다.
조금 전부터 적들의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가해지는 타격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혹시 시간을 끌면 황실 근위 기사들이 변고를 알아차리고 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모르페우스에게 한계가 오는 게 먼저였다.
검은 옷을 입은 괴한들의 공격을 막아내던 어느 순간, 속에서 비릿한 피가 치솟으며 귀에 이명이 울렸다.
“시, 신관님?!”
결국 모르페우스는 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에게 달라붙어 있던 온기도 떨어졌다.
“신관님, 일어나 봐……!”
옆에서 종알거리는 3황녀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다.
찰싹, 찰싹!
동시에 뺨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이 조그만 황녀가 지금 겁도 없이 그의 뺨을 치는 것인가 싶어 기가 막혔지만, 의식을 붙들고 있는 데는 조금 도움이 되었다.
“모르페우스! 감히 그분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해라!”
괴한들이 모르페우스를 향해 외치며 공격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고작 이런 곳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혹시 지금 여기서 그가 잘못되면, 이 어린 3황녀가 길동무가 되는 것인가?
왠지 그건 그리 달갑지 않은 기분이었다.
파앗!
그리고 가물가물한 의식 사이로, 모르페우스가 처음 데메테아 여신에게 축복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거대한 신성력의 빛이 찬란하게 폭발했다.
* * *
“뭐, 뭐야, 이 신성력은!”
아스포델이 억눌렀던 신성력을 개방하자 거대한 황금색 빛이 단숨에 퍼져 나갔다.
그것은 모르페우스의 신성력 보호막을 깨뜨리려 공격하던 이들을 파도처럼 휩쓸었다.
보라색 빛과 황금색 빛이 부딪쳐 모닥불 속의 불똥처럼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설마 모르페우스? 우리를 방심시킬 작정이었던 건가!”
‘참나.’
아스포델은 코웃음을 쳤다.
검은 옷의 괴한들은 설마 이 신성력의 주인이 조금 전까지 모르페우스에게 껌딱지처럼 안겨 있던 어린 3황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눈치였다.
하여 모르페우스가 기절한 척해서 그들을 방심하게 한 뒤 공격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아스포델은 두 힘이 격돌할 때 분 돌풍 때문에 입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퉤 뱉어내며 파하,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페우스는 무슨, 기절한 놈을 지금 왜 찾아?”
아스포델은 위풍당당하게 걸어 모르페우스의 신성력 보호막 밖으로 빠져나왔다.
물론 본인 생각에만 위풍당당이지, 실제로는 조그맣고 귀여운 어린애가 아장아장 걸어 나온 모습으로 보였다.
아무튼, 왠지 괴한들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모르페우스에게 타격이 가는 것 같아서, 아스포델은 큰마음 먹고 신성력 보호막 밖으로 나와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줬다.
검은 옷의 괴한들은 신성력의 주인이 아스포델임을 깨닫고 경악했다.
“모르페우스가 아니다……! 일단 3황녀부터 죽여!”
아스포델은 쯧 혀를 찼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황녀님을 가차 없이 죽이라니.
역시 이놈들처럼 어린애들을 아끼지 못하는 것들은 죽어도 싸다.
아스포델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티타니아 언니!”
[바퀴벌레처럼 시꺼먼 버러지들이 감히 내 계약자를 건드리다니.]아스포델의 성령 중 하나인 티타니아가 부름을 받고 곧바로 나타났다.
긴 은빛 머리칼을 나부끼는 아름다운 여인이 눈앞의 적들을 하찮은 것을 깔아보듯이 응시했다.
곧 그녀가 팔을 들어 가볍게 손짓했다.
“으, 으악!”
일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아귀가 아스포델을 공격하던 사람들을 하나씩 내던져 바닥에 처박았다.
벌레를 눌러 죽이듯이 그 움직임은 가차 없고 무정했다.
그래도 그중 일부는 감이 뛰어난지, 보이지 않는 손의 공격을 피해냈다.
특히 조금 전까지 입을 나불거리던 자는 기회를 틈타 보라색 기운을 흘리며 아스포델에게 다시 달려들기까지 했다.
아스포델은 그걸 보고 꽤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멍충한 것들, 그치만 날 죽이려면 아직 백 년은 이르다!”
조금 전의 모르페우스를 흉내 내듯이 외친 아스포델에게서 황금빛이 번쩍였다.
아스포델의 신성력에 튕겨 나간 괴한이 바닥을 굴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이런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아스포델은 경악 어린 외침을 들으며 비죽 웃었다.
이들은 1, 2회차 때의 모르페우스와 비슷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 그보다 훨씬 약했다.
아스포델이 조금 전에 그들을 두고 피라미라 한 이유가 있었다.
“3황녀! 정체가 뭐냐!”
“너희야말루 대체 뭐냐?”
이놈들은 자기소개나 하고 남의 정체를 물을 것이지.
“아니지, 말을 바꿔야 하나? 너, 정체가 뭐야? 이런 꼭두각시들이나 쓰고 말이야.”
아스포델이 손짓하자 또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지금 그녀와 대화 중인 자를 제외한 다른 괴한들을 강한 힘으로 짓눌렀다.
파스슥!
그들은 옷자락만 남긴 채 재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어, 어떻게!”
다른 이들을 조종하고 있던 검은 옷의 남자가 놀랐다.
“어떻게 내 술법을 알았지?”
“뭘 어떻게야, 내가 똑똑하니까 알았지!”
아스포델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외쳤다.
“게다가 결정적인 건!”
이어서 작고 통통한 손가락이 혼자 남은 검은 옷의 괴한을 삿대질했다.
“아까부터 계속 너 혼자만 말했잖아, 이 수다쟁이야!”
“헉!”
어이 없는 이유로 아스포델에게 정체를 간파당한 괴한이 숨을 들이켰다.
모자 달린 망토에 복면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을 가리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느낀 건데, 그의 행동이나 말투는 큰 덩치에 비해 묘하게 어린애 같은 부분이 있었다.
“아무튼 얌전히 잡혀라, 너한테 물어볼 것도 있으니까!”
“내가 고작 너 같은 어린애한테 당할 줄 알고!”
바로 그때 검은 옷의 괴한이 보라색 기운이 넘실거리는 손을 어디론가 뻗었다.
그와 가까운 곳에 쓰러져 있던 아스포델의 전담 궁인 마가렛이 그 손에 잡혀 끌려갔다.
“앗!”
“이 여자, 너와 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던데.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는 거냐?”
비열한 말에 아스포델이 귀여운 얼굴을 왕창 구겼다.
“너 진짜 짜증 나게 군다.”
‘죽여버리고 싶게, 정말.’
알아낼 게 있어서 기껏 살려서 생포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은 빈정이 상해서 그냥 콱 죽이고 싶어졌다.
[아스포델,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콰지직!
그 순간, 어딘가에서 알의 껍질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델!”
주변에 쳐 있던 무형의 결계가 조금 깨졌다.
그 사이로 한 남자가 긴 은빛 머리칼을 흩날리며 들어섰다.
“뭐…… 넌 또 뭐야? 어떻게 결계 안으로 들어온 거지?”
록샨은 곧바로 쓰러진 모르페우스와 그 앞에 있는 아스포델을 발견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감히 내 딸을 위협하다니, 너희가 죽고 싶은가 보구나.”
싸늘하다 못해 한기마저 느껴지는 음성이 울렸다.
아스포델은 잠깐 머리를 굴린 뒤 얼른 바닥에 엎어졌다.
“아, 아빠아!”
그러고 나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록샨을 불렀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