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96)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96화(96/207)
아니, 그건 그렇고…….
“어디 봐봐!”
“의원이나 신관님은 다녀갔어?”
“혹시 약 먹었으면 사탕 줄까?”
그만 좀 주물럭거려라, 이 녀석들아.
“아, 나 괜찮아.”
성가신 건 둘째 치고, 털끝 하나 안 다친 몸으로 이런 부스러기들의 관심과 걱정을 한몸에 받고 있으려니 영 겸연쩍었다.
무엇보다도, 난 아직도 이 아이들의 이런 호의 섞인 행동과 말투, 눈빛이 좀 낯설었다.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나한테 먼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괜히 몸을 움찔거리게 됐다.
“아델, 아빠는 문밖에 있을 테니 잠깐만 언니 오빠들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렴.”
문밖에는 아이들을 데려온 1부군과 2부군이 서 있었다.
그들을 보고 우리 아버지가 일어났다.
아무래도 조금 전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걱정돼서 멀리 가진 않고 문 앞에서 대화를 나눌 생각인가 보다.
‘크흑, 진짜 원작 루트 타는 거 아닌가, 이거…….’
역시 우리 아버지에게서 육아물 속의 ‘과보호 딸 바보 아버지’의 냄새가 스멀스멀 나는 것 같아 걱정이 좀 됐다.
‘그럼 난 우리 궁에 있는 개구멍을 열심히 이용해야 하는 건가?’
아버지가 밖으로 나간 후 나는 또 세 명의 부스러기에게 시달려야 했다.
“참, 아스포델. 네 족제비가 길을 잃어버렸는지 탄신연 자리에서 혼자 헤매고 있더라. 그래서 내가 데려왔는데, 지금은 니엘라랑 같이 있어.”
“뭐?!”
그러다 타마린느가 꺼낸 말에 흠칫했다.
족제비들을 일부러 탄신연에 보낸 건데 길을 잃어버린 줄 알고 데려왔다고?
“둘 중에 어느 족제비?”
“하얀 애!”
어억, 역시 피오인가.
하긴, 레예스랑 바론한테 보낸 키노보다는 루벨리오 부자와 카루스를 살펴보라고 보낸 피오가 타마린느 눈에 띄기 쉬웠겠지.
귀족석보다는 같은 황족석에 있는 애가 당연히 잘 보일 테니까.
그러니까 피오가 타마린느에게 붙잡혀 온 것도 어쩔 수 없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간식을 달라고 먼저 따라오더라고.”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먹을 거에 낚인 거였냐!
하지만 왠지 익숙한 전개였다.
‘참, 피오다워서 뭐라고 할 말이 없네.’
“루벨리오 오빠는 지금 어디 있어?”
“그 녀석은 탄신연에 남겠다고 안 왔어. 냉정하기는.”
내 물음에 답한 유클레드가 설핏 미간을 좁혔다.
“아델, 헬리가 안 온 건 탄신연 음식에 정신이 팔려서니 이해해 줘.”
옆에 있던 알렉시아가 슬쩍 헬리만이 여기에 안 온 건 루벨리오 같은 냉정함이 아니라 식탐 때문임을 피력했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동생을 두둔해 줄 마음이 알렉시아에게도 조금은 있는 듯했다.
하지만 당연히 나는 그들이 오거나 말거나 딱히 서운하지 않았다.
‘피오가 보고 있지 않아도 별일은 없겠지?’
어차피 피오는 혹시 몰라서 황족석에 보낸 거였으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탄신연 자리에서의 일을 깊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사람들 때문이었다.
“우리 손녀가 아프다고?!”
“우리 아델!”
“내 조카!”
“아델, 고모도 왔다!”
아앗!
히세리온 가족들까지 방에 들이닥친 걸 보고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니, 그러니까!
털끝 하나 안 다쳤는데 민망하다니까요!
“어디 보자, 우리 손녀!”
내 마음도 모르고 히세리온 가족들은 한달음에 달려와 사방에서 나를 살폈다.
“앗, 왠지 우리 아델의 말랑한 찹쌀떡 뺨이 빨갛게 부은 것 같은데?”
그건 조금 전에 애들이 주물럭거려서…….
“헉! 여기 우리 아델의 조약돌처럼 자그마한 손톱이 부러졌잖아?!”
부러진 부분이 0.1㎜도 안 되는 것 같은데요.
“맙소사! 어머니, 아버지.”
그때 삼촌 디트리히가 파들거리는 손으로 내 어깨에서 무언가를 잡아 들었다.
“아델의 머리카락이 두 가닥이나 뽑혀 있습니다……!”
“이럴 수가!”
악, 이제 그만해!
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육아물을 보는 걸 좋아한 거지, 내가 직접 겪고 싶었던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히세리온 가족들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뜯어보며 작은 흐트러짐 하나에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야단을 떨었다.
오죽하면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세 명의 황녀, 황자들까지 입을 떡 벌리고 우리를 쳐다볼 정도였다.
그러다 1황자 유클레드가 깨달음을 얻은 듯이 눈을 반짝였다.
“그렇군……. 그동안 나한테 섬세함이 너무 부족했던 거군. 이렇게 좀 더 세세하게 살펴봐야 하는 거였어.”
넌 도대체 뭘 배우고 있는 거냐?
매우 감명 깊은 눈으로 내 친척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유클레드를 보며 불길함을 느꼈다.
아무튼 나는 대화를 마친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이 정신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 *
“가까이 오라, 황녀.”
거기에서 끝인 줄 알았지만, 황궁 최고 권력자인 라 벨리카 어머니를 만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탄신연 도중 자리를 나와 관련자들에게 보고를 듣는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평소와 같은 권태와 서늘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권태보단 서늘함의 비중이 월등히 컸다.
“수상한 자들을 만났다고 들었는데, 다친 곳이 없어 다행이구나.”
가까이 오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가 나를 안은 채 걸어갔다.
당연히 지금까지처럼 그냥 가까이에서 얼굴이나 보려나 싶었는데…….
“응?”
갑자기 아버지가 날 들어서 어머니한테 넘겨줬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어머니 다리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뒷덜미의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바로 코앞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서늘한 시선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나는 경악해서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아, 아버지?
갑자기 이게 뭐 하시는 거죠?
아무래도 조금 전 일로 판단력을 좀 잃으신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선을 세게 넘는 거 같은데요?
내가 어머님 무릎 위에 올라가다니……!
이 철혈의 여인조차 함락시켰던 소설 속의 아스포델이라면 몰라도,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못 해본 일이었다.
“많이 놀란 건가? 오늘따라 황녀의 말수가 적군.”
“예, 혼자 침입자들과 마주쳐 많이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내 마음도 모르고 그저 안쓰럽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침입자들과 마주쳤을 때보다 지금 더 놀라서 기절하기 직전인 걸 모르고 말이다.
어머니의 차가운 시선이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곧이어 무심한 듯한 가벼운 손길이 내 머리 위로 톡 올라왔다.
‘헉.’
왠지 예전에 마수한테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가 그대로 내 머리통이라도 뽑으려는 게 아닌가 싶어 한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이어진 일은 내 상상과 달랐다.
“그렇군. 5살 어린아이이니 그럴 만도 하지.”
그리 섬세하지 못한 손길이 내 머리를 몇 번 쓱쓱 문질렀다.
오늘의 탄신연을 위해 아침부터 마가렛이 정성껏 꾸며주었던 머리가 헝클어졌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엄청나게 당황했다.
도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님, 지금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건가요……?’
꼭 짐승 털을 쓰다듬듯이 투박한 손길이었지만 그래도 쓰다듬는 건 쓰다듬는 거였다.
당혹감과 혼란, 경악과 의문이 내 머릿속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내려온 어머니의 손이 우연히 내 뺨을 스쳤다.
그 순간 어머니가 멈칫했다.
잠깐 나를 떠났던 그녀의 손이 다시 내 뺨에 닿았다.
“쓰러진 신관은 아직인가?”
말랑말랑.
시종에게 묻는 동안 어머니는 내 볼이 찹쌀떡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물렀다.
“예, 폐하. 다른 신관이 신성력으로 치유했으나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뺨을 고스란히 내준 채 정신이 우주 밖으로 날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하면 강제로라도 깨워라. 짐은 그리 한가하지 않다.”
시종에게 싸늘히 말한 어머니가 다시 나한테 시선을 내렸다.
“걱정 마라, 황녀. 오늘 황궁 일과 관련된 놈들은 반드시 전부 찾아내서 머리와 몸을 양단 내줄 테니.”
어머니의 말은 아주 믿음직스러웠다.
지금까지처럼 카리스마와 멋짐도 넘쳤다.
“감히 내가 있는 황궁에서 황녀를 건드리다니, 비천한 놈들이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 게지.”
하지만 그녀는 내 말랑한 얼굴에 중독된 듯이 이제는 아예 두 손으로 내 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기이한 상황에 내 두 눈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예, 폐하. 반드시 침입자를 찾아내 오늘 일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습니다.”
아버지도 묘한 눈으로 그런 어머니를 보다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여 다짐하듯이 결의가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한데 이상하게 지난 생일 연회 이후로 3황녀에게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군.”
뜨끔.
그러다 어머니가 지나가듯이 내뱉은 말에 움찔했다.
역시 우리 어머님은 날카로웠다.
어쩌면 그녀는 별생각 없이 꺼낸 말일 수도 있지만, 내 빙의와 회귀가 일어난 시점을 정확히 간파해 지적한 것이다 보니 나로서는 가슴이 좀 뜨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덧붙인 말에 또다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파르두스에서 호위기사라도 붙여주랴?”
파르두스는 황제 직속의 정예 호위기사로, 황제의 그림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나한테 붙여주겠다고?
순간 위기감이 엄습했다.
‘이건 개구멍도 이용 못 할 각이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